← 작품으로
정오에 갇힌 소년15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15화: 문하린의 거짓말

나선계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졌다.

벽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1999년의 해온고. 지금보다 낮은 본관, 흙바닥 운동장, 시계탑 앞에서 웃는 학생들. 그중 한 여학생은 모든 사진의 중앙에 있었다.

문하린.

짧은 단발머리, 하얀 운동화,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지 않는 눈.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사진을 오래 보면 웃음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후가 사진 앞에서 멈췄다.

"이 목소리, 계속 내 안에서 났어."

"문하린 선배 목소리?"

"응. 그런데 정확히는... 목소리라기보다 명령이었어. 방송을 켜라. 문을 닫아라. 이름을 불러라."

그는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문양은 사라졌지만 희미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난 내가 나쁜 놈이 된 줄 알았어."

이수가 말했다.

"네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아. 그래도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네 선택이야."

지후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더 무섭다."

계단 끝에는 문이 있었다. 낡은 음악실 문이었다. 안쪽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한 음씩 틀리는 느린 멜로디. 문을 열자 1999년의 음악실이 펼쳐졌다.

문하린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다섯 명은 동시에 멈췄다.

그녀는 사진보다 더 생생했다. 교복 리본은 조금 삐뚤어져 있었고, 손목에는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 피아노 위에는 카세트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왔구나."

하린이 말했다.

서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하린 선배님?"

"선배라고 부르기엔 내가 너무 오래 죽어 있었지."

민재가 작게 중얼거렸다.

"죽은 사람이랑 대화하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담담하시네."

하린이 웃었다.

"많이 연습했거든. 누군가 여기까지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소라가 물었다.

"진짜예요?"

"뭐가?"

"선배님을 누가 밀었다는 거요."

하린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멈췄다. 음악실 창밖에는 정지된 흰 꽃잎이 떠 있었다.

"반은 진짜고, 반은 거짓말."

서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녹음에서 누가 밀 거라고 했잖아요."

"응. 그 말을 해야 너희가 여기까지 올 테니까."

민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죽은 선배님까지 어른들 화법 쓰시네."

하린은 민재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밀리지 않았어."

음악실이 조용해졌다.

이수가 낮게 물었다.

"그럼 첫 번째 죽음은 뭐였어요?"

하린은 손목의 붉은 실을 풀었다. 실 끝은 피아노 아래로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시계 장치가 박혀 있었다.

"나는 뛰어내린 게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시간을 멈추려고 탑 안으로 들어갔고, 실패해서 죽었어."

서진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시간을 멈추려고 했는데요?"

하린은 창밖을 보았다. 운동장 한쪽에 어린 남학생이 서 있었다. 사진 속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내 동생이 그날 죽을 예정이었거든."

1999년 6월 14일. 해온고 근처 사거리에서 덤프트럭 사고가 났다. 하린의 남동생 문하율은 학교로 누나를 데리러 오다가 그 사고에 휘말렸다. 하린은 사고 몇 분 전, 시계탑 안에서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정오를 바치면 하루를 돌려주겠다.

그녀는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나는 하루를 되돌려서 동생을 구하려고 했어. 그런데 탑은 하루를 돌려주는 대신, 하루를 먹기 시작했어."

소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선배님이 시작한 거예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도겸이 문가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왜 이제 말해."

하린은 그를 보았다.

"도겸아."

"내 친구들은 범인 찾다가 사라졌어. 네가 밀린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그래도 너희는 탑을 못 이겼을 거야."

도겸의 손이 떨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탑의 첫 번째 문이니까."

그 순간 음악실 벽이 갈라졌다. 검은 톱니바퀴들이 살처럼 꿈틀거렸다. 하린의 몸 뒤로 시계탑의 중심부가 드러났다.

그녀는 죽은 학생이 아니라, 문이었다.

"나를 통과해야 탑의 심장으로 갈 수 있어."

하린이 말했다.

"하지만 들어가면 너희 중 한 명은 1999년에 남게 돼."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