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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의 일기장7화

살인마의 일기장

살인마의 일기장

7화. 기적의 대가

세아가 사라졌다.

광수대 미제팀 사무실의 공기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겁고 텁텁했지만, 강은호에게 그 공기는 폐부를 찌르는 유리 파편 같았다. 그는 취조실 바닥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사무실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자신의 책상 바로 옆자리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한세아가 앉아 있던 곳. 그녀가 즐겨 마시던 바닐라 라떼의 달콤한 향기가 감돌고, 포스트잇이 어지럽게 붙어 있어야 할 그 자리는, 이제 주인을 잃은 낡은 서류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먼지만 가라앉아 있었다.

"강 형사,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임기태 경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은호의 어깨를 짚었다. 은호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책상 위에 놓인 인명부를 뒤졌다. 떨리는 손가락이 'ㅎ' 섹션을 훑었다. 한세아. 한세아 경위.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반장님. 한세아 형사요... 우리랑 같이 수사했던 그 세아, 진짜 기억 안 나세요?"

은호의 절규에 가까운 물음에 사무실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동료 형사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임 경감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은호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은호야, 너 요새 너무 무리했어. 한세아라니... 20년 전 그 동북부 사건 때 죽은 어린애 이름이잖아. 네가 그 사건에 너무 집착하니까 꿈이라도 꾼 모양인데, 제발 정신 좀 차려."

머릿속에서 굉음이 울렸다. 은호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미제 사건 시스템에 접속해 '2006년 동북부 연쇄살인 사건'을 검색했다. 로딩 바가 돌아가는 짧은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 제1차 피해자: 한세아 (당시 12세) ]

화면에 뜬 흑백 사진 속에서, 앳된 얼굴의 소녀가 무구하게 웃고 있었다. 은호가 알던 그 당당하고 밝은 한세아 경위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사진 옆에는 '사망 원인: 경부 압박 및 자창에 의한 과다출혈'이라는 메마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은호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내렸다. 자신이 박혜진을 살리겠다고 던진 그 답이 역설적으로 박민석의 칼날을 어린 세아에게 인도한 꼴이었다. 자신의 선의가, 자신의 정보가 가장 소중한 동료를 죽이는 살해 흉기가 되었다는 자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은호는 경찰청 지하 자료실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남긴 2006년의 수사 일지, 그 빛바랜 기록들 사이에 세아를 구할 유일한 '틈'이 있을 거라 믿었다. 먼지 쌓인 서류 박스를 뒤엎은 끝에 그는 마침내 2006년 6월 10일 밤의 기록을 찾아냈다.

[ 23:45. 성북구 돈암동 산 12번지 폐가 수색. 지하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내부에서 별다른 기척 없음. 강신우 경위, 문고리를 돌려본 뒤 주변 수색으로 전환. ]

은호의 눈이 번뜩였다. 아버지는 그때 그 문 너머에 박민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5분 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세아는 숨을 거두었다. 그 5분의 공백. 그것이 은호가 파고들어야 할 운명의 모서리였다.

은호는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을 펼쳤다. 세아의 목숨을 되찾기 위해, 그는 기꺼이 악마에게 정보를 팔기로 했다.

[ 박민석. 지금 네 머리 위 지상에서 수색 대원이 지하실 문고리를 돌리고 있을 거다. 곧 그는 포기하고 돌아설 테지. 하지만 5분 뒤, 지원 병력이 폐가 전체를 포위할 거다. 지금 그 환기창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넌 여기서 끝이다. ]


[2006년 6월 10일 밤, 돈암동 폐가 지하실]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실. 박민석은 겁에 질린 어린 세아의 입을 틀어막은 채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때, 은호의 경고대로 머리 위에서 덜컥, 하고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민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품 안의 일기장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가 그의 가슴을 지졌다. 그는 일기장에 적힌 은호의 문장을 읽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살리려는 건가, 아니면 저 아이를 살리려는 건가. 강 형사?"

민석은 은호가 준 '5분의 유예'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칼끝으로 세아의 목덜미를 가늘게 그으며 속삭였다.

"이건 네가 준 정보값이다. 평생 나를 기억하게 될 증표지."

민석은 세아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좁은 환기창을 통해 뱀처럼 빠져나갔다. 빗속으로 몸을 날린 그는 차량에 올라타 재빨리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임기태 형사가 골목 어귀에서 그의 차량 앞을 막아섰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타이어 비명소리. 쾅! 하는 둔탁한 충격음이 정적을 찢었다. 임기태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추락했다. 박민석은 백미러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임기태를 확인하고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026년 현재]

세상이 다시 한번 거대한 소음과 함께 재편되었다. 은호의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더니, 낯선 기억들이 뇌세포를 태우며 쏟아져 들어왔다.

"강 형사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은호가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는 2026년의 파트너, 한세아 경위가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아 씨... 살아 있었어..."

은호는 울먹이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아의 하얀 목덜미에 새겨진 가늘고 긴 흉터가 은호의 시야에 들어왔다. 20년 전 박민석이 남긴 지독한 낙인이었다.

"강 형사님, 왜 그래요?"

은호의 시선이 사무실 입구 벽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임기태 경감의 사진이 이제는 검은 리본이 둘러진 흑백 영정 사진으로 바뀌어 걸려 있었다.

[ 故 경위 임기태. 2006년 6월 10일, 범인 추격 중 순직. ]

세아를 살려낸 대가로, 그의 멘토였던 임기태가 죽었다. 은호는 자신이 저지른 기적의 참혹한 청구서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그때, 은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번호 제한.

"강 형사, 파트너를 되찾은 기분이 어떤가? 내가 말했지. 균형을 맞춘 것뿐이라고."

2026년의 박민석, 국과수 분석실장이 된 괴물의 목소리가 은호의 귓가를 잔혹하게 긁었다.

"임 반장님을 네가 죽였어... 내 정보를 이용해서, 사고로 위장해서!"

"죽이다니, 표현이 무례하군. 난 그저 자네가 제안한 '운명'에 순응했을 뿐이야. 자네가 문고리 소리를 예고하지 않았다면, 임기태는 지금도 살아있었을 텐데. 안타깝군, 자네의 그 오만한 선의가 한 남자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박민석의 조롱은 은호의 영혼을 시커먼 늪으로 밀어 넣었다. 박민석은 은호가 던진 구원의 정보를 역이용해 자신을 추격하던 임기태를 사고사로 위장해 제거했고, 자신을 구해준 영웅으로 남은 임기태의 기억을 세아에게 심어놓았다.

"이제 그만해... 더 이상 누굴 죽일 셈이지?"

"글쎄. 그건 자네가 다음 페이지에 무엇을 적느냐에 달렸지. 자네의 그 오만한 펜 끝이 이번엔 누구의 심장을 겨누게 될까?"

뚝. 전화를 끊은 박민석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세아는 저 멀리서 박민석 실장이 보내온 감정 보고서를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괴물을 우러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은호는 피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만든 뒤틀린 세계, 그곳은 박민석이 완성한 완벽한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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