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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의 일기장2화

살인마의 일기장

살인마의 일기장

2화. 응답하는 일기장

은호는 눈을 비볐다. 자취방의 낡은 스탠드 불빛 아래, 고동색 수첩의 누런 종이 위에 새겨진 검은 글씨는 환상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누구지? 내 일기장에 낙서를 하는 게. ]

방금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듯, 잉크의 가장자리가 아주 미세하게 번져 있었다. 은호는 본능적으로 코를 가까이 댔다. 비릿하면서도 쇠 냄새가 섞인 독특한 향.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은호는 일기장을 책상 너머로 밀쳐버렸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과로로 인한 환각인가? 아니면 누군가 특수 장치를 이용해 자신을 상대로 정교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가? 그는 급히 방 안을 둘러보며 숨어 있는 카메라를 찾으려 했지만, 적막한 자취방에는 오직 자신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바라본 종이 위에는 여전히 검은 잉크가 선명했다. 일기장은 기묘한 진동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고 위협적이었다.

은호는 다시 펜을 쥐었다. 손끝이 땀으로 흥건해 펜이 미끄러졌다.

[ 당신이 정말 박민석인가? 지금은 2026년이다. 당신이 있는 곳은 몇 년도지? ]

글자를 채 다 쓰기도 전에 종이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물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듯 파란 글씨 아래로 검은 흔적이 솟아났다.

[ 2026년? 환각을 보거나 미친놈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 일기장은 나만이 아는 장소에 보관되어 있는데, 대체 누가 이런 정교한 장난을 치는 거지? 아니면 정말로 20년 뒤의 미래에서 편지라도 보낸다는 건가? ]

박민석의 답장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공포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자의 날카로운 경계심이 담긴 필체였다. 은호는 수사 기록 사본을 미친 듯이 뒤졌다.

'2006년 6월 3일. 삼선동 사건 발생일.'

오늘이다. 은호가 기억하는 원래 역사에서는, 정확히 20년 전 오늘 밤 박민석의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이용해 이 교신이 진짜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살인을 막아야 했다.

[ 농담이 아니다. 오늘 밤 10시 15분, 넌 삼선동 재개발 구역 골목 끝 전신주 뒤에서 김윤아를 죽이려 할 거다. 하지만 수사 기록에는 그 시간에 골목을 지나던 세탁소 주인이 '검은 코트를 입은 낯선 남자'를 봤다는 목격담이 적혀 있어. 그게 꼬리가 잡힌 결정적 단서였지. ]


2006년 6월 3일, 삼선동의 어두운 골목.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전신주 뒤에 몸을 숨긴 박민석은 품속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방금 새겨진 파란 글씨를 읽는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세탁소 주인? 목격담?'

그는 비웃음 섞인 헛웃음을 삼켰다. 일주일간 이 골목을 관찰했다. 세탁소 영감은 매일 밤 10시 정각에 정확히 문을 닫고 반대편 골목으로 퇴근했다. 10시 15분, 이곳은 완벽한 사각지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박민석은 칼을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그의 소름 끼치는 완벽주의가 발동한 것이다. 그는 먹잇감인 김윤아가 골목으로 들어서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몸을 돌려 세탁소 쪽을 향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전신주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민 박민석의 미간이 좁아졌다.
꺼져 있어야 할 세탁소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잠시 후, 셔터 문이 열리더니 돋보기안경을 쓴 노인이 큼지막한 보따리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무언가 잊은 물건이 있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정확히 박민석이 숨어 있던 전신주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만약 1분만 일찍 움직였다면, 박민석은 피 칠갑이 된 칼을 든 채 저 노인과 정면으로 마주쳤을 것이다. 그의 완벽한 범죄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남는 순간이었다.

박민석은 어둠 속으로 더 깊숙이 몸을 숨겼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노인이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그는 숨조차 쉬지 않고 일기장을 움켜쥐었다.

그는 깨달았다. 종이 위를 어지럽히는 저 파란 글씨는 장난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를 비추는, 잔혹하고도 정교한 거울이었다.


은호는 일기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박민석의 마지막 문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자취방의 공기가 기묘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웅-, 하는 낮은 진동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이 힘없이 깜빡였고, 창밖의 빗줄기가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허공에 멈춰 서는 착각이 들었다.

"아, 아아악...!"

갑작스러운 두통이 은호의 머리를 강타했다. 수만 개의 송곳이 뇌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기억의 충돌이었다. 은호의 뇌 속에서 두 종류의 과거가 거칠게 맞부딪히고 있었다. 원래 역사 속 6월 3일, 삼선동 골목에서 김윤아의 시신을 수습하던 처참한 현장의 기억이 비명을 지르며 뜯겨 나갔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6월 3일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공허한 사실과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6월 9일, 창천동에서 발견된 새로운 피해자 '박혜진'의 참혹한 사체 현장이었다.

역사에서 김윤아 사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의 기록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된 것이다. 대신 은호의 머릿속에는 오직 박혜진을 '제1차 피해자'로 하는 새로운 연쇄살인 수사 기록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하아, 하아......"

통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지독한 구역질만이 남았다. 은호는 비틀거리며 책상을 붙잡고 일어섰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 마우스를 움직여 미제 사건 데이터베이스의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 사건명: 동북부 연쇄살인 사건 ]
[ 제1차 피해자: 박혜진 (사망) ]
[ 발생일: 2006년 6월 9일 ]
[ 특이사항: 사각지대가 완벽히 확보된 장소에서 범행 발생. 목격자 및 현장 증거 전무. ]

선의로 던진 정보가 더 완벽한 범죄를 낳았다. 은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박민석은 은호가 알려준 '목격자'라는 변수를 학습하여, 아예 범행 자체를 취소하고 일주일 뒤 사각지대가 전혀 없는 새로운 장소와 시간을 골라 사냥을 마친 것이었다.

그때, 책상 위의 일기장이 다시 한번 차가운 진동을 내뿜었다.


일기장 위로 배어 나오는 잉크는 이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정갈했다. 박민석의 당혹감은 어느새 서늘한 호기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 강은호 형사라고 했나? 당신 덕분에 큰 실수를 면했어. 세탁소 영감이 그렇게 늦게 나올 줄은 몰랐거든. 내 계획에 '타인의 시선'이라는 변수를 넣지 않은 게 내 패착이었지. ]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여유에 은호는 소름이 돋았다.

[ 살인을 멈춰, 박민석.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미리 알고 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난 널 방해할 거야. ]

하지만 돌아온 박민석의 답장은 은호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 아니, 당신은 나를 방해하는 게 아니야. '교정'해주고 있는 거지. ]

종이 위로 잉크가 번지며 소름 끼치는 문장들이 이어졌다.

[ 당신 덕분에 내 계획에 어떤 빈틈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게 됐어. 다음 사냥은 훨씬 더 즐거울 것 같군. ]

박민석은 은호가 던져준 미래의 정보를 자신의 범죄를 완벽하게 다듬는 '오답 노트'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은호가 살인을 막으려고 던진 한 마디가, 과거의 살인마에게 수사망을 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꼴이 되었다.

일기장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하지만 은호는 자취방의 정적 속에서 박민석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자신이 열어버린 것은 구원의 통로가 아니었다.
완벽한 괴물을 사육하는 지옥의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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