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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9화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9화: 사슬의 기억

사슬이 돌바닥을 긁는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쪽 회랑 깊은 곳에서 낮게 울린 금속음은 잠시 멎었다가 다시 길게 끌렸다. 아직 밤은 완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탑 안쪽은 이미 누군가 깨어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카시안의 손이 세리아나 앞을 막았다.

"뒤로."

손끝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세리아나는 반 걸음 물러섰다. 물러서면서도 시선은 균열 아래 검은 흙에서 떼지 않았다. 흙 위의 은색 잔가루는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아주 작게 빛났다.

아르덴이 낮게 말했다.

"전하, 지금 시간에는 사슬을 움직일 이유가 없습니다."

"탑 안에서 신호가 왔나."

"아직 보고받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쇳소리가 울렸다.

카시안의 손등 위 검은 선이 꿈틀거렸다. 목덜미의 비늘 자국도 희미하게 떠올랐다. 세리아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 뻔했다.

그러나 멈췄다.

힘을 쓰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카시안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그를 건드리는지 보는 일이었다.

"아르덴 님. 손수건 말고 밀랍 먹인 종이나 기름종이가 있습니까?"

아르덴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왔다.

"있습니다."

"그 가루가 천에 스며들면 양이 줄어들 겁니다. 흙도 조금만 떼어 주세요. 균열 안쪽은 건드리지 마시고요."

아르덴은 곧장 품 안에서 작은 종이 봉투를 꺼냈다. 그가 은색 가루를 떠내는 동안 세리아나는 바닥을 살폈다.

가루는 균열 아래쪽보다 돌 틈의 바깥 턱에 더 많이 묻어 있었다. 안에서 새어 나온 것이라면 아래로 흐르거나 흙 사이에 섞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 손끝으로 바른 것처럼 얇게 퍼져 있었다.

"안에서 나온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카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뜻이지."

"바깥쪽에 더 많습니다. 이곳에 묻은 뒤 흙으로 흘러든 것처럼 보입니다. 아직 확정할 수는 없지만요."

아르덴의 손이 멈췄다.

이번에는 사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불길했다.

카시안이 낮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굳었다. 세리아나는 그가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공 전하."

"괜찮다."

"괜찮아 보이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멈췄다.

세리아나는 말을 고쳤다.

"지금은 조사해야 하니까요. 대기실로 옮기겠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반응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카시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공이었다. 세리아나의 말을 무시하고 명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먼저 뒤로 물러났다.

"입구 옆 대기실로 간다."

서쪽 회랑의 대기실은 좁고 차가웠다.

평소 탑 근무자들이 교대 전에 기다리는 곳이라고 했다. 벽에는 꺼진 촛대 세 개가 붙어 있었고 긴 의자 하나와 닫힌 약품함이 전부였다.

카시안은 촛대에서 가장 먼 의자에 앉았다. 앉았다고 하기보다는 무너짐을 막기 위해 몸을 눌러 둔 것에 가까웠다.

세리아나는 그와 거리를 두고 섰다.

"아까 사슬 소리가 들렸을 때, 식사 자리에서처럼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그건 들으면 알 수 있다."

"소리 때문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은색 가루, 촛불, 향신료, 열기. 아직 어느 쪽인지 모릅니다."

카시안은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선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군."

"있습니다."

"계약에 걸리는 질문인가."

"대공 전하의 몸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서쪽 탑에서 들은 것을 묻는 겁니다."

카시안의 입매가 굳었다.

세리아나는 덧붙이지 않았다. 재촉하면 그는 닫힐 것이다.

아르덴은 문가에 서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긴 침묵 끝에 카시안이 말했다.

"밤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고통뿐이다. 쇠가 살을 파고드는 감각, 타는 냄새, 누군가 멀리서 부르는 소리. 그중 어떤 것은 실제고 어떤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카시안의 회색 눈이 세리아나를 보았다.

"그 말은 늘 쉽게 하는군."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리아나는 고개를 내렸다.

"하지만 틀린 단정은 사람을 더 깊게 묶습니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 뒤, 아주 낮게 말했다.

"세 번째 촛불."

아르덴의 얼굴이 굳었다.

세리아나는 숨을 멈췄다.

"무엇입니까?"

"모른다. 말이었는지, 생각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어떤 날에는 내가 움직이기 전에 사슬이 먼저 당겨졌다."

"괴수화한 뒤에요?"

"그 전인지 후인지 흐릿하다. 하지만 내 몸이 아직 문을 치기도 전에, 목과 어깨가 먼저 잡아당겨졌다."

카시안의 손이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세 번째 촛불 이후 사슬을 당기라고."

대기실의 공기가 차갑게 굳었다.

아르덴이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 절차는 없습니다."

카시안의 턱이 굳었다.

"나도 그런 명령을 내린 적 없다."

세리아나는 벽의 촛대 세 개를 보았다.

하나, 둘, 셋.

이곳은 서쪽 탑 입구 대기실이었다. 근무자들이 교대 전에 서는 곳. 탑 안으로 명령이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그 말을 들은 날을 기억하십니까?"

"날짜는 모른다."

"냄새는요."

카시안의 시선이 흔들렸다.

세리아나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됩니다."

"단 향."

카시안이 이를 악물었다.

"매운 향이 아니라, 단 향이었다. 꽃을 태운 것 같은 냄새."

아르덴은 즉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세리아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향신료가 아니라 향일 수도 있었다.

촛불이 아니라 촛불에 태운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가능성뿐이었다.

"전하."

아르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탑 입구 명령 전달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정식 절차 외에 임시 지시가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모두 가져와라."

카시안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세리아나는 그 앞에 한 발 다가갔다가 멈췄다.

"오늘 밤에는 모두 가져오지 마십시오."

카시안이 그녀를 보았다.

"이유는."

"지금 화가 나셨습니다. 그리고 아프십니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기록을 보시면, 기록보다 사람을 먼저 의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아르덴이 숨을 삼켰다.

대공에게 너무 곧은 말이었다.

카시안은 오래 침묵했다.

그의 손등 위 검은 선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가 가라앉았다.

"너는 내게 멈추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군."

"두렵습니다."

세리아나는 솔직히 말했다.

"그래서 멈춰야 할 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카시안은 눈을 감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안의 붉은 기운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아침에 가져와라."

아르덴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아침, 미나는 약초 보관실 앞에서 세리아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창백했다. 손에는 아무 무늬 없는 천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대공비 전하."

"무슨 일입니까?"

미나는 복도 양끝을 확인한 뒤, 주머니를 살짝 열었다.

안에는 마른 흙이 조금 들어 있었다. 흙 사이로 아주 희미한 은빛이 보였다.

"서쪽 선반 화분 흙에서 나왔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어젯밤에 아르덴 님께서 가져가신 가루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세리아나는 손끝으로 주머니 가장자리를 잡았다. 직접 흙을 만지지는 않았다.

검은 뿌리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낯선 금속 냄새가 섞였다.

"누가 봤습니까?"

"아직은 저뿐입니다. 다른 하녀들은 말라 죽은 화분을 치우는 것만 보았습니다."

"잘했습니다."

미나의 눈이 흔들렸다.

칭찬을 받을 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세리아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 흙을 둘로 나누세요. 하나는 아르덴 님에게 직접 전하고 하나는 표식 없는 주머니에 넣어 제 방 장식장 맨 아래 칸에 보관하십시오. 누구에게도 은색 가루라고 말하지 마세요."

"예."

"무섭습니까?"

미나는 주머니를 꼭 쥐었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모른 척하면 더 무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세리아나는 잠시 미나를 보았다.

자신이 카시안에게 했던 말과 닮아 있었다.

말은 혼자 남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에 옮겨지면 행동이 되었다.

"혼자 움직이지 마세요. 그리고 의심받을 것 같으면 바로 물러나세요."

"전하께서는요?"

세리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미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공비 전하께서도 혼자 움직이지 않으셔야 합니다."

세리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기억하겠습니다."

아르덴은 정오가 가까워서야 집무실로 왔다.

그의 얼굴은 밤보다 더 어두웠다. 손에는 검은 밀랍이 찍힌 작은 쪽지가 들려 있었다.

카시안은 창가에 서 있었다. 밤을 넘긴 사람의 피로가 눈 밑에 남아 있었지만 그는 꼿꼿했다.

세리아나는 책상 옆에 서서 아르덴이 쪽지를 펼치는 것을 보았다.

짧은 문장이었다.

세 번째 촛불 이후 사슬을 당길 것.

세리아나의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카시안은 쪽지를 오래 보았다.

"어디서 나온 거지."

"탑 입구 보관함의 임시 지시 묶음 사이에 있었습니다. 정식 장부에는 없습니다."

"내 인장인가."

아르덴이 침통하게 대답했다.

"겉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나는 이런 명령을 내린 적 없다."

"알고 있습니다."

아르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나 탑 근무자는 밀랍 인장을 보면 전하의 지시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카시안의 손이 책상 끝을 짚었다.

나무가 낮게 삐걱거렸다.

세리아나는 그가 손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분노를 밖으로 터뜨리지 않으려 붙들고 있었다.

그녀는 쪽지 가까이 몸을 숙였다.

"만져도 됩니까?"

카시안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아나는 종이 가장자리를 잡고 빛 쪽으로 돌렸다. 검은 밀랍은 발레리우스의 문장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가장자리 한쪽이 거칠었다.

그 거친 틈에 아주 작은 은빛 가루가 붙어 있었다.

"아르덴 님."

아르덴이 다가왔다.

세리아나는 밀랍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어젯밤 회랑에서 나온 가루와 같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곳에 박혔다.

검은 밀랍.

은색 가루.

세 번째 촛불.

사슬을 당기라는 명령.

조각들이 아직 하나의 그림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우연처럼 흩어져 있지 않았다.

카시안이 아주 낮게 말했다.

"누군가 내 이름으로 나를 묶었군."

그 말은 분노보다 차가웠다.

세리아나는 쪽지를 내려놓았다.

"아직 누군지는 모릅니다."

"모른다고 해서 없는 일은 아니지."

"예."

세리아나는 카시안을 똑바로 보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단정하지 않고 놓치지도 않겠습니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책상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그때 집무실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멈췄다.

"전하."

기사의 목소리였다.

"서쪽 탑 입구 촛대 하나가 밤새 타 있었습니다. 누가 켰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세리아나는 벽에 있던 세 개의 촛대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하나의 불꽃을 떠올렸다.

서쪽 탑은 밤이 지나도 완전히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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