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51화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51화: 선택의 시간

황태후궁 명령서의 검은 봉인은 에리나의 손끝 빛이 약해질 때마다 더 선명해졌다.

선택 확인 필요

그 한 줄은 보존실 앞 회랑에 멈춰 있었지만 치료실 안쪽까지 닿아 있었다. 돌벽에 박힌 문성이 낮게 떨었고 가림막 너머에서 잠든 에리나의 숨이 얕아졌다.

카시안은 아직 침대 곁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였다. 에리나의 손끝이 그의 손등에서 미끄러져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허락 없이 붙잡지 않는다.

그가 조금 전 그녀에게 한 말은 치료실의 공기보다 무거웠다.

"전하."

아르웬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낮게 들어왔다.

"전령이 대공비 전하의 직접 답변을 요구합니다. 문구가 바뀌었습니다."

카시안은 천천히 일어섰다.

"읽어라."

"대공비 직접 진술 대기."

치료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미나가 가림막을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지금은 안 됩니다. 조금 전에 겨우 잠드셨어요. 열도 아직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전령은 치료실 반경 밖으로 물려라."

아르웬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회랑 쪽에서 마르바 라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황태후궁이 직접 진술을 요구한다면 대공비 전하의 의사를 남길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카시안은 그를 보았다.

"기회라는 말로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는다."

"선택 확인이 없으면 지위 정지 심의로 넘어갈 겁니다. 그 또한 대공비 전하께 불리합니다."

"그 말도 기록해라."

로젤리가 펜을 들었다. 밤새 이어진 기록 탓에 손끝이 떨렸지만 글자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르바 라운은 대공비의 회복 전 직접 진술을 방어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바의 얼굴이 굳었다.

"저는 전하와 대공비 전하를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보호가 먼저라면 열에 눌린 사람에게 황실 문구를 들이밀지 않는다."

카시안은 치료실 문턱을 넘어 회랑으로 나갔다. 검은 봉인은 보존실 앞 보존대 위에서 아주 느리게 들썩이고 있었다. 명령서 아래에는 셰라가 깔아 둔 검은 천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젖은 흙과 약초 잎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

에커리 몬르디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예법대로 고개를 숙였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황태후 전하께서는 대공비 전하의 선택을 확인하라 하셨습니다. 대공 전하의 거절만으로는 절차가 멈추지 않습니다."

"선택을 확인한다는 절차가 누구를 향하는지 기록해라."

로젤리가 펜을 움직였다.

"황태후궁 명령서는 대공비의 회복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직접 진술을 요구했다."

에커리의 눈썹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전하. 직접 진술은 대공비 전하의 권리를 위한 것입니다."

"권리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사람의 숨을 문서에 붙여 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검은 봉인이 그 말에 반응하듯 흔들렸다. 봉인 아래로 새 문구가 번졌다.

기한 내 미확인 시 지위 정지

치료실 안쪽에서 미나가 작게 비명을 삼켰다.

카시안은 봉인에 손대지 않았다. 손등에는 아직 에리나의 손끝 온기가 남아 있었다. 너무 작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사라질 온기였다.

"답신을 적는다."

로젤리가 고개를 들었다.

"첫 줄."

카시안은 검은 문구를 똑바로 보았다.

"에리나 발레리우스의 선택은 황태후궁의 기한으로 대신 만들어지지 않는다."

로젤리의 펜 끝이 종이 위를 달렸다.

"대공비가 의식을 온전히 회복할 때까지 직접 진술 요구를 거부한다. 이 거부는 대공비의 잔류 의사도 이혼 포기 의사도 아니다. 강제 확인 절차에 대한 거부다."

에커리가 입을 열려 했다.

그때 치료실 안에서 미나가 다급히 불렀다.

"전하. 대공비 전하께서..."

카시안은 바로 돌아섰다.

에리나는 눈을 뜨고 있었다.

완전히 깨어난 것은 아니었다. 시선은 흐렸고 입술은 마른 잎처럼 떨렸다. 그래도 그녀는 문 쪽을 보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문 너머 보존실 앞의 검은 문구를 느끼는 듯했다.

"문서..."

"치료실 안에는 없다."

카시안은 침대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멈췄다.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뼈를 당겼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섰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된다."

에리나의 손끝 빛이 아주 얇게 떠올랐다. 미나가 그 손 아래에 젖은 천을 받쳤다.

"말... 해야..."

"아니."

말이 너무 빠르게 나갔다. 카시안은 곧바로 숨을 낮췄다.

"아니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에리나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붙잡지... 말라는 말..."

치료실 안의 모두가 숨을 멈췄다.

"떠난다는... 뜻으로 쓰면 안 돼요."

카시안의 손가락이 굳었다.

로젤리의 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에리나는 아주 힘겹게 숨을 골랐다.

"남겠다는 뜻으로도... 쓰면 안 돼요."

"기록해라."

카시안은 낮게 말했다.

로젤리가 떨리는 글씨로 적었다.

"대공비 에리나 발레리우스는 '붙잡지 말라'는 발언이 떠나겠다는 확정도 잔류 의사도 아니라고 말했다."

에리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나 대신... 정하지 말라는 뜻..."

미나의 눈가가 젖었다. 셰라는 가림막 밖에서 고개를 숙인 채 손등으로 입술을 눌렀다.

카시안은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손을 잡고 네 말대로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조차 허락을 대신하는 약속처럼 들릴까 봐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록했다."

그는 에리나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네 말을 황태후궁 답신에도 그렇게 남긴다."

에리나의 시선이 그를 찾았다.

"시간..."

"네가 요구한 시간으로 기록한다."

"대공님도..."

그녀의 숨이 흔들렸다.

"나를 보고... 정하지 말아요."

카시안의 가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알았다."

"내가 아파서... 불쌍해서..."

"그렇게 정하지 않겠다."

"내가 필요해서도..."

"그렇게도 정하지 않는다."

에리나의 손끝 빛이 아주 조금 안정됐다. 그러나 문 밖의 검은 봉인은 더 세게 떨렸다. 방금 나온 말을 붙잡아 자기 문구로 바꾸려는 것처럼 검은빛이 얇게 치솟았다.

아르웬이 문가에서 말했다.

"전하. 명령서에 반응이 있습니다."

"읽어."

"직접 진술 일부 확인. 선택 유예."

에리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카시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니다."

그는 치료실 문턱으로 돌아섰다.

"기록해라. 황태후궁 명령서는 대공비의 발언 전체가 기록되기 전 일부 문구만 반응으로 취했다."

로젤리가 바로 적었다.

카시안은 보존실 쪽을 향해 말했다.

"그 발언은 선택 유예가 아니다. 강제 해석 금지다."

마르바가 낮게 말했다.

"전하. 그렇다면 대공비 전하께 독립된 회복 공간을 보장해야 합니다. 전하께서 곁에 계신 상태에서는 진술이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치료실 안쪽이 다시 조용해졌다.

미나가 불안한 눈으로 카시안을 보았다. 셰라는 마르바를 경계하듯 어깨를 굳혔다.

카시안은 마르바의 말에서 함정을 보았다. 그 말은 그를 밀어내려는 말이었다. 동시에 에리나에게 필요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 둘을 구분해야 했다.

"기록해라."

로젤리가 고개를 들었다.

"마르바 라운은 대공비의 자유로운 회복과 진술을 위해 대공의 상시 동석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바가 안도하려는 순간 카시안이 말을 이었다.

"대공은 그 주장의 목적과 의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공비의 회복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는 필요는 인정한다."

마르바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

"치료실은 오늘부터 대공비의 임시 거처로 둔다. 내 출입도 미나와 의무관의 허락 아래에서만 한다. 황태후궁 사절단은 접근 금지. 대공성 내부 문서도 치료실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미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전하. 정말..."

"너는 에리나가 깨어 있을 때 묻는다. 내가 들어와도 되는지. 대답할 힘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에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 안도만 있지는 않았다. 슬픔도 있었다. 카시안은 그 슬픔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지 않았다.

"별거가 필요하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는 낮게 말했다.

"그 전 단계부터 시작한다. 같은 성 안에서도 네가 닫을 수 있는 문을 만들겠다."

에리나는 입술을 열었다.

"문..."

"네 문이다."

카시안은 그녀의 방에서 꺼내지 않은 물건들과 접힌 문서를 떠올렸다.

"네 방의 보관함도 네 권한으로 둔다. 접힌 문서는 네가 열라고 할 때까지 열지 않는다. 황태후궁의 기한은 그 권한을 바꾸지 못한다."

에커리가 회랑에서 낮게 말했다.

"황태후궁은 그 조치를 대공비 격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한다."

카시안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 조치는 대공비의 발언을 얻기 위한 격리가 아니라 발언을 강요하지 않기 위한 회복 보장이다. 대공의 출입도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

로젤리의 펜이 다시 움직였다.

에리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눈꺼풀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잠들기 전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럼... 기다려요."

카시안은 숨을 멈췄다.

"무엇을."

"내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내가 말하면... 싫어도 들어요."

카시안은 대답을 늦추지 않았다.

"듣겠다."

에리나는 그제야 잠들었다. 손끝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가늘게 남아 치료실 문성 위에 얹혔다.

회랑의 검은 봉인은 한동안 흔들렸다. 그러다 새 문구를 밀어 올렸다.

기한 내 미확인 시 지위 정지 심의 개시

에커리 몬르디아가 침묵 속에서 말했다.

"황태후궁은 삼 일 안에 답을 요구할 겁니다."

카시안은 치료실 문을 보았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문은 누구나 넘을 수 있는 열린 문이 아니었다.

"답은 오늘 보낸다."

"대공비 전하의 선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낸다."

카시안은 로젤리에게 말했다.

"마지막 줄."

로젤리가 펜을 들었다.

"에리나 발레리우스의 선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누구도 그 선택을 대신 완료할 수 없다."

검은 봉인이 다시 떨렸다.

카시안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공은 대공비를 붙잡는 대신 대공비가 말할 시간을 지킨다."

그 말이 회랑에 남았다.

치료실 안에서 에리나의 숨이 조용히 이어졌다. 문성의 낮은 울림은 아주 조금 잦아들었다.

그러나 보존대 위의 검은 봉인은 완전히 잠잠해지지 않았다.

그 안쪽에서 마지막 문구가 늦게 떠올랐다.

삼 일

카시안은 그 짧은 기한을 보았다.

삼 일 안에 에리나를 깨우라는 명령.

삼 일 안에 선택을 내놓으라는 압박.

삼 일 뒤에는 그녀의 침묵을 지위 정지로 바꾸겠다는 예고.

그는 치료실 문 앞에 섰다. 이제 그 문은 에리나가 닫을 수 있어야 했다. 동시에 황태후궁이 부술 수 없게 지켜야 했다.

카시안은 낮게 말했다.

"그 삼 일 동안 누구도 에리나에게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르웬이 고개를 숙였다.

"예."

"요구하는 자는 대공을 먼저 상대한다."

검은 봉인이 다시 한번 떨렸다.

치료실 안에서 에리나가 잠결에 아주 희미하게 숨을 내쉬었다. 대답은 아니었다. 허락도 아니었다.

그래도 카시안은 그 숨을 들었다.

그가 지금 지켜야 할 것은 그녀의 대답이 아니라 대답하지 않을 권리였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