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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50화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50화 무릎 꿇은 대공

황태후궁 명령서의 검은 봉인은 보존실 앞에서 아주 느리게 흔들렸다.

카시안은 그 움직임을 보며 에커리 몬르디아를 지나쳤다. 전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설 권한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황태후 전하께서는 즉시 답신을 원하십니다."

"받을 것이다."

"대공비 지위 임시 정지 심의는 황실 절차입니다. 전하께서 거절만 하실 수 있는 문건이 아닙니다."

아르웬의 손이 검집 위에 멈췄다.

카시안은 손짓 하나로 그를 멈췄다. 저들은 칼을 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문장을 들고 왔다.

그러니 문장으로 막아야 했다.

"겉면을 다시 읽어라."

에커리가 잠시 굳었다.

"예?"

"전달자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겉면뿐이다. 본문은 보존관 입회 아래 열람 위치를 기록한 뒤 확인한다."

로젤리가 펜을 들었다. 셰라는 명령서 아래에 검은 천을 깔았다. 황태후궁 문서와 에리나의 보존 봉투가 같은 책상 위에 놓이지 않도록 두 보존대 사이 간격을 세 걸음이나 벌렸다.

에커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대공비 지위 임시 정지 심의. 대체 배우자 예비 명단 열람. 대공비 개인 문서 확인 권고."

복도에 있던 하인 하나가 숨을 삼켰다.

대체 배우자.

그 말이 대공성의 돌벽에 부딪혀 다시 돌아왔다. 에리나가 아직 치료실 안에서 숨 쉬고 있는데 누군가 이미 다음 자리를 불렀다.

카시안은 명령서에 손을 대지 않았다.

"기록해라. 황태후궁 명령서는 대공비의 생존과 현 거주 사실을 확인받은 뒤에도 대체 배우자 예비 명단 열람을 요구했다."

로젤리의 펜이 달렸다.

에커리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 그 표현은 황태후궁의 의도를 왜곡합니다."

"그 말도 기록해라."

로젤리가 바로 적었다.

검은 봉인은 에리나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아주 작게 떨렸다. 치료실 쪽 문성이 그에 맞춰 낮은 울림을 냈다.

미나가 복도 끝에서 뛰어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전하."

카시안의 시선이 돌아갔다.

"대공비 전하께서 다시 눈을 뜨셨습니다. 그런데 손끝 빛이 계속 문 쪽으로 기울어요. 명령서가 가까이 있는 걸 아시는 것 같습니다."

에커리가 한 걸음 나섰다.

"그렇다면 대공비 전하의 반응을 확인해야 합니다."

"멈춰라."

카시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에커리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치료실에 황태후궁 문서를 들이지 않는다. 전령도 들이지 않는다. 대공비의 생명 반응을 절차 증거로 쓰지 않는다."

마르바 라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대공비 전하의 반응이 문서와 연결되어 있다면 방어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방어 근거가 되기 전에 상처가 된다."

"하지만 전하께서 판단하지 않으면 황태후궁이 먼저 판단할 겁니다."

카시안은 마르바를 보았다.

"그래서 판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는 치료실 쪽으로 걸었다.

"내가 그녀의 말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남긴다."

치료실 안은 전보다 더 조용했다.

에리나는 가림막 안쪽 침대에 반쯤 기대어 있었다. 미나가 급히 받친 베개가 어깨 아래에 겹쳐 있었다.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손끝의 금빛만이 미세하게 떨렸다.

카시안은 문 앞에서 멈췄다.

그의 발소리를 들은 듯 에리나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카시안..."

"여기 있다."

그는 곁으로 다가갔지만 손을 잡지 않았다. 그녀의 손은 아직 허공에 조금 떠 있었다. 문 쪽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밀어내려는 것 같기도 했다.

"문서..."

"황태후궁 명령서가 왔다."

미나가 불안하게 카시안을 보았다. 숨겨도 에리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손끝 빛이 문성의 울림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네 접힌 문서는 열지 않았다. 보존실 안쪽 금고에 넣었다. 네 약초 기록 인장으로 봉인했다."

에리나의 눈가가 아주 작게 풀렸다.

"다행..."

그 말은 거의 숨이었다.

카시안은 그 숨 하나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문서가 열린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누가 대신 뜻을 정할지가 더 무서웠을 것이다.

"황태후궁은 네 지위를 임시로 정지하겠다고 한다."

에리나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리고 대체 배우자 예비 명단을 열람하라고 했다."

미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셰라는 가림막 밖에서 고개를 숙였다.

에리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끝 빛이 조금 밝아졌다가 사그라졌다. 문성에 닿으려던 빛이 다시 그녀의 손끝으로 밀려난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게 두지 않는다."

카시안이 곧장 말했다.

에리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안심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힘겹게 눈을 떴다.

"붙잡으면..."

카시안의 숨이 멎었다.

"붙잡으면 안 돼요."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분명했다.

미나가 눈물을 참느라 고개를 돌렸다.

카시안은 그 말에 다가가고 싶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다. 누가 너를 그렇게 몰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가 곁에 있으면 덜 위험해진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에리나의 두려움을 자기 말로 덮게 된다.

"명령하지 않겠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가면 안 된다고 명령하지 않는다. 네 문서를 열지 않고 네 말을 대신 적지 않는다."

에리나의 눈동자가 그를 붙들었다.

"그런데..."

카시안은 말을 멈췄다.

그러나 그 말을 삼킬 수 없었다.

"가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치료실 안의 공기가 멈췄다.

마르바가 가림막 밖에서 숨을 들이마셨다. 로젤리의 펜 끝이 종이 위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에리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왜..."

왜냐고.

카시안은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대공의 답을 내려놓았다.

"네가 없으면 대공성이 버티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는 낮게 말했다.

"네 능력이 필요해서도 아니다. 황태후궁을 막기 위해서도 아니다."

손끝의 금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네가 살아서 네가 고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가 내 곁이 아니어도 네가 직접 골라야 한다."

에리나의 입술이 떨렸다.

"나 때문에..."

"네가 사라져야 누군가 덜 다친다고 생각했나."

에리나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한 침묵이 대답이 되었다.

카시안은 그 침묵을 기록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이 나였다면 내가 고치겠다."

"대공님..."

"하지만 네 선택을 빼앗아 고치지는 않겠다."

그는 뻗으려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침대 곁에 한쪽 무릎을 내렸다.

돌바닥이 차가웠다. 치료실 안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괴물 대공이 무릎을 꿇는다는 사실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가 그 자세로 아무 명령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카시안은 에리나보다 낮은 곳에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에리나."

그녀의 이름이 치료실에 내려앉았다.

"가지 마라."

에리나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명령이 아니다."

그는 곧바로 덧붙였다.

"청이다. 네가 거절할 수 있는 말이다."

로젤리의 펜이 떨리는 소리가 났다.

카시안은 계속 말했다.

"네가 떠나야 산다고 믿었다면 그 이유를 듣게 해 달라. 내가 너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면 내가 물러날 방법을 찾겠다. 별거가 필요하면 받아들이겠다. 성을 나가 회복해야 한다면 길을 열겠다."

에리나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황태후궁이 네 자리를 비우게 두지는 않겠다. 네가 말하기 전까지 누구도 네 이름을 지우지 못하게 하겠다."

에리나의 손이 조금 움직였다.

카시안은 여전히 손을 뻗지 않았다.

한참 뒤 에리나의 손끝이 그의 손등 위에 떨어졌다. 잡았다기보다 닿은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카시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작은 무게를 허락처럼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간..."

에리나가 속삭였다.

"네게 시간을 주겠다."

"나도..."

그녀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눈꺼풀이 다시 내려앉았다. 미나가 다가와 호흡을 확인했다.

"다시 잠드셨습니다. 하지만 호흡은 전보다 안정됐습니다."

카시안은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에리나의 손끝은 아직 그의 손등에 닿아 있었다. 아주 가벼운 온기였다. 붙잡을 수 없어서 더 분명한 온기였다.

그때 치료실 밖에서 낮은 소란이 일었다.

아르웬이 문을 열었다.

"전하."

카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황태후궁 명령서에 새 문구가 나타났습니다."

가림막 밖의 공기가 굳었다.

"읽어라."

아르웬은 이를 악문 듯 짧게 말했다.

"선택 확인 필요."

카시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황태후궁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에리나의 자리를 곧장 빼앗는 대신 그녀의 입을 절차 안으로 끌어내려 했다.

아직 열도 내리지 않은 사람에게 선택을 증명하라고 명령하려 했다.

카시안은 무릎을 꿇은 채 에리나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손끝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꺼지지 않겠다고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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