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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5화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5화: 버려진 약초

세리아나가 방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내려놓은 것은 계약서가 아니었다.

깨진 화분이었다.

그녀는 창가에 화분을 놓고 흙을 살폈다. 손끝에 닿은 흙은 돌처럼 굳어 있었고 속은 젖은 재처럼 검었다. 마른 약초 줄기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아주 가늘고 희미한 숨이 뿌리 끝에 남아 있었다.

"물을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다면 깨끗한 흙도요."

방을 정리하러 들어왔던 하녀 셋이 동시에 굳었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하녀가 고개를 숙였다.

"대공비 전하, 그 화분은 버려야 하는 물건입니다."

"누가 정했습니까?"

"서쪽 회랑에서 나온 것은 방 안에 들이지 않는 게 관례라서요."

관례.

세리아나는 그 단어를 조용히 삼켰다.

베르딘에서도 많은 일이 관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사생아는 본채 식탁에 앉지 않는 것. 사생아의 방에는 불을 늦게 넣는 것. 사생아가 아프면 의원보다 먼저 쓸모를 계산하는 것.

그 관례들은 늘 누군가에게만 편했다.

"저는 그 관례를 전달받은 적 없습니다."

하녀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라 죽은 약초를 오래 두면 불길하다고 해서..."

"제가 살아남은 것도 불길합니까?"

방 안이 얼어붙었다.

하녀들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세리아나는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물을 가져오세요. 흙이 어렵다면 작은 삽이라도 좋습니다."

"아르덴 님께 확인을..."

"확인하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하녀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물러났다. 문이 닫힌 뒤에도 복도에는 발소리가 한참 남아 있었다. 누가 다시 들어가야 할지 정하지 못하는 발소리였다.

세리아나는 계약서를 침대 옆 서랍에 넣었다.

종이는 방패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시선까지 막아 주지는 못했다.

창가의 마른 약초가 희미한 빛 아래 누워 있었다. 세리아나는 리본 아래 손목을 가만히 눌렀다. 검은 반점은 조용했다. 다만 피부 밑에 작은 가시가 박힌 듯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함부로 힘을 쓰면 안 된다.

그 대가를 아직 알지 못했다.

그때 아주 작은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문이 손바닥 하나만큼 열렸다.

어린 하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두 손에는 물그릇과 낡은 손삽이 들려 있었다.

"대공비 전하."

하녀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을 듯 고개를 숙였다.

"저는 미나라고 합니다. 물을 가져왔습니다. 흙은... 깨끗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찾지 못했다니요?"

미나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꼭 붙잡았다.

"정원 흙은 모두 검게 굳었습니다. 온실도 오래전에 닫혔고요. 주방 뒤쪽 흙은 그나마 덜하지만 약초에는 쓰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세리아나는 물그릇을 받아 들었다.

"이 약초를 미나가 맡았습니까?"

미나의 어깨가 움찔했다.

"예. 서쪽 회랑 근처 보관실에 있던 것입니다. 아침에 보니 말라 있었습니다. 버리라고 해서 옮기던 중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래서 직접 물을 가져왔군요."

미나의 눈에 겁이 어렸다.

"꾸짖으실 겁니까?"

"아니요. 지금 확인할 것은 약초입니다."

세리아나는 화분 앞에 앉았다.

"이 약초는 어디에 쓰입니까?"

"밤이 지난 뒤 대공 전하께 올리는 진정차에 조금 넣습니다. 통증을 줄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약효가 거의 없어서..."

미나는 말을 흐렸다.

카시안.

세리아나는 마른 줄기를 내려다보았다. 죽어 가는 약초 하나가 그의 통증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성에서는 모든 것이 그 밤으로 이어졌다.

사슬, 서쪽 탑, 닫힌 회랑, 그리고 말라 죽은 약초까지.

"보관실을 볼 수 있습니까?"

미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금요?"

"지금."

"하지만 허락이..."

"약초를 보러 가는 겁니다."

세리아나는 깨진 화분을 조심히 들었다.

"제 방을 잠그지 않기로 했으니, 나가는 길도 막히지는 않았겠지요."

미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더 묻지 않고 앞장섰다.

하인용 복도는 본관보다 낮고 좁았다.

벽에는 오래된 촛농 자국이 남아 있었고 돌바닥 사이로 검은 먼지가 끼어 있었다. 세리아나가 지나가자 하인들이 길을 비켰다. 고개는 숙였지만 눈은 따라왔다.

"저분이..."

"살아 계신..."

"쉿."

말끝이 잘렸다.

세리아나는 못 들은 척 걸었다. 미나는 점점 더 빠르게 걷더니 모퉁이를 돌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미나가 한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전하께서 들으셨으니까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익숙합니다."

그 말에 미나가 살짝 뒤돌아보았다.

세리아나는 웃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보관실은 서쪽 회랑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 옆에 있었다. 미나가 문을 열자 차갑고 매캐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세리아나는 곧바로 알았다.

썩은 뿌리 냄새.

카시안의 비늘 아래에서 느꼈던 검은 기운과 닮아 있었다. 다만 훨씬 약하고 넓게 퍼져 있었다. 누군가의 몸속이 아니라 흙과 벽에 묻은 냄새였다.

선반에는 약초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대부분 잎 끝이 검게 말랐고 흙 위에는 얇은 회색 곰팡이가 떠 있었다.

"전부 이렇습니까?"

"최근 들어 더 심해졌습니다. 서쪽 탑과 가까운 것부터 말라 죽었습니다."

세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했다. 이 병은 단순히 물을 덜 준 탓이 아니었다.

그녀는 깨진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삽을 들었다.

"물그릇을 주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요. 뿌리는 제가 보겠습니다."

흙을 조금씩 걷어 내자 가느다란 뿌리가 드러났다. 겉은 말랐지만 안쪽 한 줄기가 아직 흰빛을 품고 있었다. 대신 뿌리 끝에는 검은 실 같은 것이 얽혀 있었다.

세리아나는 손을 멈췄다.

"칼이 있습니까?"

미나는 허리춤에서 작은 약초칼을 꺼냈다.

세리아나는 검은 실이 엉긴 뿌리 끝을 조심히 잘라 냈다. 그리고 남은 흙을 물로 적셨다. 물은 곧바로 탁하게 변했다.

손목이 미세하게 욱신거렸다.

아직 아무 힘도 쓰지 않았는데.

"대공비 전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멈추면 이 약초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세리아나는 손끝을 줄기에 댔다.

강하게 밀어 넣지 않는다.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남아 있는 숨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줄 뿐이다.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손끝에서 아주 희미한 초록빛이 피어났다. 보관실의 어둠 속에서도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작은 빛이었다. 마른 줄기 안쪽에 남은 생명력이 그 빛에 반응해 천천히 떨렸다.

손목 안쪽이 따갑게 달아올랐다.

세리아나는 숨을 삼켰다.

더는 안 된다.

그녀가 손을 떼려는 순간, 줄기 끝에서 아주 작은 새잎이 말려 나왔다.

미나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살아..."

"쉿."

세리아나는 낮게 말했다.

"크게 말하지 마세요."

미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에는 이미 두려움보다 다른 것이 차오르고 있었다.

세리아나는 그 눈빛도 부담스러웠다.

소문이 되기 쉬운 눈빛이었다.

"제가 한 일은 죽은 것을 되살린 것이 아닙니다. 남아 있던 것을 살린 겁니다."

"하지만 모두 버리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보관실 문밖에서 기척이 났다.

하인 둘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새잎에 박혀 있었다.

"정말 살아났어?"

"대공비 전하가..."

미나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아직 약합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세리아나는 잠시 미나를 보았다.

작은 하녀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문 앞을 막아섰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물러나세요."

이번에는 세리아나가 말했다.

하인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약초는 제 방으로 가져가겠습니다. 보관실의 다른 화분들은 당분간 버리지 마세요.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십시오."

"예, 대공비 전하."

대답은 전보다 빨랐다.

세리아나는 화분을 들려 했다. 그러나 미나가 먼저 손을 뻗었다.

"제가 들겠습니다."

"깨져서 위험합니다."

"그래서 제가 들겠습니다."

미나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세리아나는 잠시 망설이다 화분을 넘겼다.

돌아가는 복도 끝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카시안이었다.

그는 멀리 있었다. 다가오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다만 세리아나의 손목과 미나가 든 화분을 번갈아 보았다.

세리아나는 본능적으로 리본을 손끝으로 가렸다.

카시안의 눈이 그 움직임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 뒤, 그가 입을 열었다.

"계약은 유효하다."

세리아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그녀의 힘에 대해 묻지 않겠다는 조항.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묻지 않겠다."

카시안은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세리아나는 알았다.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묻고 싶은 것을 삼키는 얼굴이었다.

그가 멀어지자 미나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대공 전하께서 화내실 줄 알았습니다."

"화가 나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으셨습니다."

세리아나는 카시안이 사라진 복도 끝을 보았다.

참는 것.

이 성에서는 그것도 드문 친절일지 모른다.

방으로 돌아온 뒤, 미나는 화분을 창가에 내려놓았다. 새잎은 아직 손톱보다 작았다. 그래도 분명히 녹색이었다.

"미나."

"예, 대공비 전하."

"이 약초로 진정차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요."

"잎이 더 자라야 합니다. 하지만..."

미나는 조심스럽게 새잎을 보았다.

"이 상태라면 아주 연하게는 우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공 전하의 통증을 조금은 덜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세리아나의 손목이 다시 욱신거렸다.

그녀는 리본을 만지지 않았다.

카시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인을 알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성의 흙과 약초가 왜 병드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남을 길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잎을 보는 순간, 그 변명은 조금 약해졌다.

살릴 수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지켜봅시다."

세리아나는 말했다.

"아무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말고요."

미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예. 제가 지키겠습니다."

제가.

세리아나는 그 말을 천천히 들었다.

대공성에 온 뒤 처음으로 누군가가 그녀를 피하지 않고 곁에 서겠다고 말했다.

창밖의 정원은 여전히 검고 메말라 있었다.

하지만 창가의 깨진 화분에는 아주 작은 잎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그 잎은 약했다.

세리아나도 약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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