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47화: 푸른 끈의 원본
푸른 끈 봉투 두 개는 같은 탁자 위에 놓이지 못했다.
헬라는 보존실 바닥에 흰 천을 두 장 펼쳤다. 세리아나의 방에서 나온 봉투는 왼쪽 천 위에 놓였고 첫눈 축제 물자에서 나온 봉투는 오른쪽 천 위에 놓였다.
두 천 사이에는 젖은 흙과 약초 잎을 담은 얕은 접시가 있었다.
카시안은 그 사이에 섰다.
한쪽에는 세리아나가 직접 준비한 만료 후 계획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누군가가 적어 둔 만료 전 회수가 있었다.
둘 다 푸른 끈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의 속은 얼음처럼 식었다.
"내부는 열지 않는다."
카시안이 말했다.
로젤린의 펜이 곧장 움직였다.
"세리아나가 깨어 직접 허락하기 전까지 왼쪽 봉투는 열지 않는다. 오른쪽 봉투도 겉면과 봉인 상태만 확인한다. 두 봉투를 서로 닿게 하지 않는다."
헬라가 고개를 숙였다.
"예. 끈과 종이 겉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마르셀 라운은 보존실 입구에서 감시 기사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손은 묶이지 않았지만 한 발짝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푸른 끈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대공비 전하의 개인 계획이 황후궁 물자와 연결되었다면 원본 확인이 우선입니다."
카시안은 그를 보지 않았다.
"기록해라. 마르셀 라운은 대공비가 읽지 말라고 한 봉투를 원본 확인 명분으로 열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셀의 입술이 굳었다.
"위험을 막기 위한 절차입니다."
"그 말도 기록해. 위험을 명분으로 대공비의 금지 의사를 우회하려 했다."
로젤린이 적었다.
보존실의 공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바닥에 놓인 두 봉투는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더 불길했다.
헬라는 먼저 세리아나의 봉투를 살폈다. 손끝은 종이를 누르지 않았다. 빛을 비스듬히 받게 한 뒤 모서리와 끈 매듭만 보았다.
"오래 접힌 자국이 있습니다. 종이는 대공비 전하께서 약초 기록에 쓰시는 것과 같습니다. 푸른 끈은 색이 조금 바랬습니다."
"오른쪽은."
아르덴이 첫눈 축제 물자 봉투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봉투를 조금 돌렸다.
"종이가 새것입니다. 접힌 자국도 얕습니다. 끈 색은 비슷하지만 매듭이 더 빳빳합니다."
미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공비 전하께서는 매듭을 이렇게 단단히 묶지 않으세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미나는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약초 주머니를 묶으실 때 늘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여유를 두셨습니다. 나중에 급히 열어야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왼쪽 봉투의 매듭에 닿았다.
푸른 끈 아래에는 아주 작은 틈이 있었다. 세리아나다운 틈이었다. 닫아 두되 완전히 닫지 않는 방식.
오른쪽 봉투의 매듭은 목을 조르듯 죄어 있었다.
헬라가 낮게 말했다.
"모방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르셀이 바로 반박했다.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왼쪽 봉투의 내부를 보면 대조가 끝납니다."
카시안의 손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열면 알 수 있다.
세리아나가 어디로 가려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녀가 어떤 거처를 골랐고 누구에게 약초 정원을 맡기려 했는지 알 수 있다. 능력 사용 중지 조건이라는 말 아래에 무엇을 적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면 황후궁이 그 길을 어떻게 흉내 냈는지도 더 빨리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카시안은 왼쪽 봉투를 바라보았다.
세리아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읽지 마세요.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기록해라."
로젤린이 펜을 들었다.
"대공은 왼쪽 봉투를 열면 조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안다. 또한 대공은 그 안에 대공비가 떠날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열람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로젤린의 펜이 잠시 흔들렸다. 그래도 문장은 종이에 남았다.
"그러나 대공비가 금지했으므로 열지 않는다."
"기록했습니다."
마르셀은 입을 다물었다.
카시안은 그제야 헬라를 보았다.
"내부가 아니라 겉면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해."
"예."
헬라는 작은 유리판을 가져오게 했다. 두 봉투의 끈 끝을 유리 위에 올리고 약초 잎을 조금 가까이 두었다.
세리아나의 봉투에서는 젖은 흙 냄새가 옅게 올라왔다. 폐온실과 약초 보관실에 남던 살아 있는 흙 냄새였다.
오른쪽 봉투에서는 다른 냄새가 났다.
미나가 먼저 얼굴을 찌푸렸다.
"검은 밀랍 냄새가 납니다."
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궁 봉투에서 나던 냄새와 같습니다."
아르덴이 보온 상자 표식 조각을 가져왔다. 첫눈 축제 물자에서 분리한 작은 종이였다. 그 종이의 구멍에도 푸른 실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것도 같은 물자 묶음에서 나왔습니다."
헬라는 조각을 오른쪽 봉투 옆에 두었다.
오른쪽 봉투의 푸른 끈 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세리아나의 봉투는 반응하지 않았다.
치료실 쪽에서 의무관이 급히 들어왔다.
"전하. 대공비 전하의 손끝 빛이 흔들립니다."
카시안의 몸이 먼저 움직이려 했다.
그는 발을 멈췄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가림막도 그대로입니다."
"봉투를 치료실 쪽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내가 간다."
마르셀이 끼어들었다.
"대공비 전하께 보여 드리고 반응을 확인하는 편이 빠릅니다."
카시안이 처음으로 그를 보았다.
"의식이 흐린 사람에게 증거를 들이대고 반응을 뽑아내자는 뜻인가."
"저는 확인을."
"기록해라."
로젤린이 적었다.
"마르셀 라운은 대공비의 불안정한 생명 반응을 증거 확인 절차로 이용하려 했다."
마르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카시안은 치료실로 향했다.
세리아나는 가림막 안쪽에서 잠들어 있었다. 손끝의 녹색 빛은 얇게 이어졌고 때때로 아주 작게 떨렸다.
미나는 그녀의 손을 받치고 있었다.
"전하. 두 봉투 이야기가 나오자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왼쪽보다 보존실 오른쪽 방향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카시안은 가림막 밖에서 멈췄다.
"그 말은 추측으로 기록한다."
로젤린이 따라와 적었다.
의무관이 낮게 말했다.
"아주 짧은 질문 하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답을 요구하면 안 됩니다. 깨어나지 않으면 중단해야 합니다."
카시안은 세리아나의 손끝 빛을 보았다.
질문 하나.
그 질문 하나로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떠날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 봉투가 정말 네 길이냐고 묻고 싶었다. 누가 네 매듭을 흉내 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모든 질문은 그를 위한 질문이었다.
카시안은 고개를 숙였다.
"세리아나."
가림막 안쪽에서 미나가 숨을 멈췄다.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금지한 봉투는 열지 않았다."
손끝의 빛이 아주 미세하게 밝아졌다.
"첫눈 축제 물자에서 나온 봉투가 있다. 네 봉투와 끈을 흉내 냈다. 우리는 내부를 열지 않고 겉면만 보고 있다."
세리아나의 눈꺼풀이 아주 조금 떨렸다.
카시안은 더 다가가지 않았다.
"네가 깨어서 허락하기 전까지 네 봉투는 열지 않는다."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의무관이 그만하라는 듯 고개를 들려던 순간 세리아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원...본..."
미나가 울음을 삼켰다.
카시안은 숨을 멈췄다.
원본.
그 말은 너무 많은 뜻을 품고 있었다. 세리아나의 봉투가 원본이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 원본을 찾는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녀가 아직 말하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원본이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카시안은 그중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았다.
"기록해라. 대공비는 짧게 의식을 되찾아 원본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열람 허가로 쓰지 않는다. 봉투 내부 확인 동의로도 쓰지 않는다."
로젤린이 빠르게 적었다.
"기록했습니다."
세리아나의 눈꺼풀은 다시 닫혔다. 손끝 빛은 꺼지지 않았지만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보존실 쪽에서 아르덴이 급히 돌아왔다.
"전하."
카시안은 고개만 돌렸다.
"말해."
"황후궁 칙서 봉투가 반응했습니다."
카시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치료실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한 뒤 보존실로 돌아갔다.
황후궁 칙서 봉투는 검은 천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원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봉투 표면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회수 대상 원본 대조.
왼쪽의 세리아나 봉투는 조용했다. 오른쪽의 만료 전 회수 봉투는 검은 밀랍 냄새를 더 짙게 풍겼다.
마르셀이 숨을 삼켰다.
카시안은 그 작은 반응도 놓치지 않았다.
"아는 문구인가."
"처음 봅니다."
"기록해라. 마르셀 라운은 회수 대상 원본 대조 문구를 처음 본다고 답했다."
로젤린이 적었다.
카시안은 세 봉투를 차례로 보았다.
만료 후 확인.
만료 전 회수.
회수 대상 원본 대조.
황후궁은 세리아나가 떠날 길을 닫으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회수하고 대조하려 했다. 그 무언가가 세리아나의 신병인지 능력인지 계약서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누군가 세리아나의 문 앞에 덫을 놓았다.
그리고 이제 그 덫은 문 안쪽까지 이름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르덴이 다시 말했다.
"전하. 방금 황도 쪽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황후궁 사절단이 북부로 출발했다는 소식입니다."
"몇 명."
"공식 명단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황실 혼인 명령 관련 문서가 함께 움직인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보존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마르셀이 눈을 내리깔았다.
카시안은 세리아나의 푸른 끈 봉투를 보았다.
그녀가 열어 둔 문.
누군가 회수하려는 원본.
그리고 황실이 새로 보내는 혼인 명령.
카시안은 낮게 말했다.
"문은 계속 열어 둔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보존실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황실이 내 혼인까지 절차로 다루려 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맞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