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46화: 빈방의 목록
치료실의 문은 이틀째 닫히지 않았다.
문턱에는 아직 검은 글자가 남아 있었다. 보호자 서명 대기는 조금 옅어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계약서와 마르셀 라운의 서류 사이에는 젖은 흙과 약초 잎이 놓여 있었다.
카시안은 그 경계를 지키듯 앉아 있었다.
세리아나는 오래 깨어 있지 못했다. 눈꺼풀이 열리는 시간은 짧았고 말은 한두 단어로 끊겼다. 그러나 손끝의 녹색 빛은 전날보다 조금 고르게 이어졌다.
"전하. 물을 조금 더 적시겠습니다."
미나가 가림막 안쪽에서 말했다.
세리아나의 대답은 작았다.
"괜찮아요."
카시안은 그 목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이 정말 괜찮다는 뜻인지 더는 묻고 싶지 않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의무관이 낮게 보고했다.
"짧은 대화는 가능합니다. 다만 기억을 오래 붙들게 하거나 판단을 요구하면 안 됩니다."
"요구하지 않는다."
로젤린의 펜이 종이 위를 스쳤다.
세리아나가 희미하게 숨을 들이켰다.
"미나."
"예. 전하."
"내 방에... 푸른 끈."
미나의 손이 멈췄다.
"푸른 끈이요?"
"보관함... 아래 칸. 봉투."
카시안의 시선이 가림막으로 향했다. 묻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무슨 봉투냐.
왜 지금 필요하냐.
그 안에 이혼 서류가 있느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리아나가 힘겹게 덧붙였다.
"닫히면... 안 돼요."
그 말은 문에 대한 말일 수도 있었다. 계약서에 대한 말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녀가 아직 보여 주지 않은 어떤 길에 대한 말일 수도 있었다.
카시안은 헬라를 보았다.
"대공비의 방에서 보관함을 확인한다. 미나가 위치를 안내하고 헬라가 절차를 기록해. 봉투를 찾으면 열지 말고 겉면만 확인한다."
헬라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예."
마르셀 라운이 대기석에서 몸을 조금 움직였다.
"대공비 전하의 개인 서류라면 보호자 지정 전에는 임의 보존이 어렵습니다."
"임의 열람이 아니라 대공비의 직접 요청에 따른 위치 확인이다."
카시안은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 발언도 기록해라. 마르셀 라운은 대공비가 짧게 의사를 밝힌 직후 개인 서류 확인을 보호자 지정 문제로 돌리려 했다."
로젤린이 적었다.
마르셀의 입술이 굳었다.
세리아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손끝의 빛이 얇게 이어졌다.
카시안은 그 빛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그녀가 준비한 문이 또 하나 있었다.
그가 모르는 문이었다.
세리아나의 방은 오래 비어 있던 사람의 방처럼 조용했다.
미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세리아나가 처음 대공성에 들어왔을 때 가져온 작은 가방은 침대 옆 상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창가에는 말라 가던 약초 화분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흙은 최근에 갈린 흔적이 있었다.
"전하께서 깨어나시면 화분부터 보실 겁니다."
미나가 작게 말했다.
헬라는 방 안으로 들어가며 로젤린이 남긴 절차 종이를 펼쳤다.
"대공비의 요청에 따라 푸른 끈으로 묶인 봉투를 찾는다. 보관함 외 물품은 만지지 않는다."
"예."
미나는 침대 아래쪽 낮은 보관함을 열었다. 맨 위에는 세리아나가 정리해 둔 약초 기록이 있었다. 병증별 잎의 양, 물 온도, 금지 조합이 작은 글씨로 빼곡했다.
그 아래 칸에 푸른 끈이 보였다.
봉투는 두껍지 않았다. 그러나 겉면에는 세리아나의 필체로 몇 줄이 적혀 있었다.
만료 후 확인.
베르딘 백작가 접촉 차단 요청.
북부 외곽 거처 후보 셋.
약초 정원 인수 목록.
능력 사용 중지 조건.
미나는 숨을 멈췄다.
"이건..."
헬라가 손을 내밀어 봉투를 받지 않았다. 대신 보존 천을 펼쳐 그 위에 놓게 했다.
"대공비가 직접 열라고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하. 만료 후라니요."
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공비 전하께서 정말 떠나실 준비를..."
헬라는 봉투 겉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준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 둔 것만 알 수 있다."
그 말은 차가웠지만 미나를 꾸짖는 말은 아니었다.
방 안의 모든 물건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낡은 가방은 도망칠 짐처럼 보였고 정리된 약초 기록은 남은 사람들에게 넘겨주려는 인수 문서처럼 보였다. 그러나 창가 화분의 젖은 흙은 아직 이 방에 살아 있는 손길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나는 봉투를 보존 천으로 감싸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하께서는 떠나도 이곳 약초가 끊기지 않게 하려고 하신 걸까요."
"그것도 아직 추측이다."
헬라가 말했다.
"그러나 추측이 아니라 기록해야 할 사실은 있다. 대공비는 계약 만료 이후를 대비한 목록을 미리 작성했다."
그때 봉투 끈의 매듭 아래에서 작은 검은 점이 번졌다.
미나가 뒤로 물러섰다.
헬라가 즉시 젖은 흙이 담긴 작은 주머니를 봉투 옆에 놓았다. 검은 점은 더 커지지 않았다. 대신 푸른 끈의 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치료실로 가져간다."
헬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열지 않는다. 겉면만 보고한다."
카시안은 봉투를 보자마자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알 것 같다는 착각이 가장 위험했다.
헬라가 보존 천째 봉투를 탁자 위에 놓았다. 가림막 밖이었다. 세리아나에게 보이지 않는 거리였고 마르셀의 서류와도 닿지 않는 거리였다.
"대공비 전하의 요청 위치에서 푸른 끈 봉투를 확인했습니다. 내부는 열지 않았습니다."
"겉면만 읽어."
카시안이 말했다.
헬라가 읽었다.
"만료 후 확인. 베르딘 백작가 접촉 차단 요청. 북부 외곽 거처 후보 셋. 약초 정원 인수 목록. 능력 사용 중지 조건."
말이 끝날 때마다 치료실의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거처 후보.
인수 목록.
능력 사용 중지 조건.
세리아나는 떠나는 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떠난 뒤 살아남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없어진 뒤에도 대공성의 약초 정원이 멈추지 않게 하려 했다.
카시안은 봉투를 열고 싶었다.
어디로 가려 했는지 알고 싶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베르딘 백작가와 황후궁이 그 길을 알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세리아나는 봉투를 가져오라고만 했다.
열라고 하지 않았다.
"봉투는 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대공비가 깨어 직접 허락할 때까지 내부 열람을 금지한다."
마르셀이 바로 끼어들었다.
"전하. 거처 후보와 능력 사용 중지 조건은 명백히 신변 불안정의 증거입니다. 대공비 전하가 정상 판단을 하기 어려운 지금 보호자 지정은 더 필요해졌습니다."
로젤린의 펜이 움직였다.
카시안은 이번에도 그를 보지 않았다.
"마르셀 라운은 대공비의 사전 계획을 대공비의 의사로 인정하지 않고 판단 불능의 증거로 해석했다."
"저는 위험을 말하는 겁니다."
"기록해라. 위험을 명분으로 대공비의 봉투 내부 열람과 보호자 지정을 연결하려 했다."
마르셀의 낯이 굳었다.
치료실 문턱의 보호자 서명 대기가 아주 조금 짙어졌다. 동시에 푸른 끈 매듭 아래에 맺힌 검은 점이 봉투 안쪽으로 파고들 듯 움직였다.
세리아나의 손끝 빛이 흔들렸다.
미나가 놀라 그녀의 손을 받쳤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세리아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대신 입술만 조금 움직였다.
"읽지... 마세요."
카시안의 숨이 끊겼다.
"읽지 않는다."
그가 즉시 대답했다.
"열지도 않는다. 네가 말하기 전까지 아무도 보지 않는다."
로젤린이 그 말을 적었다.
세리아나의 손끝 빛이 다시 얇게 이어졌다.
카시안은 봉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푸른 끈으로 묶인 작은 종이 하나가 그보다 더 오래 세리아나의 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웃으며 약초를 말리고 하인들의 이름을 익히던 날에도 어딘가에는 떠난 뒤의 거처 후보가 접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었다.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 사실이 더 아팠다.
아르덴이 치료실 밖에서 급히 멈춰 섰다.
"전하."
카시안은 고개를 들었다.
"말해."
"첫눈 축제 물자 조사 중 보온 상자와 별도로 분류된 봉투 하나를 찾았습니다. 보존 천에 싸서 가져왔습니다. 겉면의 끈이..."
아르덴의 시선이 탁자 위 푸른 끈 봉투로 향했다.
"같습니다."
치료실 안의 모두가 한순간 숨을 멈췄다.
아르덴은 작은 봉투를 들어 보였다. 푸른 끈의 색과 매듭 방식이 세리아나의 봉투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종이는 더 새것이었다.
"열었나."
"아닙니다. 겉면만 확인했습니다."
"읽어."
아르덴이 낮게 말했다.
"만료 전 회수."
치료실 문턱의 검은 글자가 번쩍였다.
세리아나의 봉투에 맺힌 검은 점도 같은 박자로 떨렸다.
카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움직임을 참지 않았다. 다만 봉투를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두 봉투 모두 보존한다. 서로 닿게 하지 마라."
"예."
"그리고 기록해라."
로젤린이 펜을 들었다.
카시안은 세리아나의 열린 문과 닫힌 봉투 사이에 섰다.
"대공은 대공비가 준비한 만료 후 계획을 발견했으나 내부를 열람하지 않았다. 그 계획은 대공비가 깨어 직접 허락할 때까지 보호 대상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푸른 끈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또한 첫눈 축제 물자에서 발견된 별도 봉투의 문구는 대공비의 개인 계획과 무관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공비의 의사로도 단정하지 않는다."
로젤린의 펜 끝이 종이를 긁었다.
"기록했습니다."
카시안은 가림막 너머를 보았다.
세리아나는 다시 잠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끝이 아주 희미하게 봉투가 놓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알지 못했던 길.
그녀가 혼자 준비했던 빈방의 목록.
그리고 누군가 그 길을 먼저 회수하려 했다.
카시안은 낮게 말했다.
"문은 열어 둔다."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누가 그 문 앞에 덫을 놓았는지는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