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44화: 문턱 안쪽의 보호
치료실 문 앞의 검은 글자는 새벽이 밝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회수 시작 전야.
문구는 돌바닥 안쪽에 박힌 못처럼 남아 있었다. 하인들이 물을 가져와도 지워지지 않았고 기사들이 등불 그림자를 가려도 빛을 잃지 않았다. 카시안은 그 앞에 서서 밤새 한 번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의무관이 세리아나의 맥을 살핀 뒤 낮게 말했다.
"맥은 이어져 있습니다. 다만 너무 깊습니다."
"깨어날 가능성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억지로 흔들면 안 됩니다."
카시안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그는 치료실 안으로 들어가 침대 곁에 서고 싶었다. 문을 닫고 싶었다. 모든 사람을 물리고 세리아나가 숨 쉬는 소리만 듣고 싶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로젤린을 보았다.
"기록해라. 대공은 치료실을 비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으나 시행하지 않았다."
로젤린의 펜 끝이 잠시 멈췄다.
"그 문장 그대로 남기겠습니까."
"그대로."
카시안은 문턱 안쪽에 놓인 의자를 보았다. 밤새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의자 다리는 바닥에 짧은 자국을 남겼다. 그는 자기가 그 자국처럼 세리아나 곁에 박혀 버리고 싶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욕망은 위험했다.
헬라가 방문자 명부를 들고 다가왔다.
"전하. 치료실 접근 명단입니다. 의무관 둘, 미나, 하녀 한 명, 기사 둘, 로젤린. 그 외에는 전하께 보고 후 접근으로 정리했습니다."
"보고 후가 아니라 기록 후."
카시안은 곧바로 말했다.
"내 허락이 먼저가 되면 안 된다. 의무관 판단이 먼저고 대공성 기록이 그다음이다. 나는 나중에 본다."
헬라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 안도와 긴장이 함께 스쳤다.
"수정하겠습니다."
미나는 세리아나의 손을 감싼 천을 조심스럽게 갈았다. 손끝에는 녹색 빛이 아주 가늘게 남아 있었다. 치료실 문 앞의 검은 글자가 희미하게 번질 때마다 그 빛도 한 박자 늦게 흔들렸다.
"문이 닫히면 더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미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시안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문을 닫았나."
"바람 때문에 잠깐 반쯤 닫혔습니다. 그때 손끝 빛이 줄었습니다. 다시 열자 조금 돌아왔습니다."
문을 열어 둔다.
누구든 안을 볼 수 있다.
문을 닫는다.
세리아나의 빛이 약해진다.
카시안은 턱을 굳혔다.
"가림막을 세워라. 침대는 보이지 않게 하고 문은 닫지 않는다. 가림막 안쪽에는 의무관과 미나만 들어간다. 로젤린은 밖에서 들은 내용만 기록한다."
헬라가 바로 적었다.
"보호 목적의 가림막이며 치료실 폐쇄가 아니라고 남기겠습니다."
"그렇게 해."
카시안은 다시 세리아나를 보았다. 흰 가림천 사이로 그녀의 손끝 빛만 보였다. 작고 고집스럽게 살아 있는 빛이었다.
그 빛을 자기 손안에 넣어 숨기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동쪽 회랑에서 발소리가 났다.
아르덴이 먼저 검을 내렸다. 마르셀 라운이 기사 둘 사이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밤새 대기실에 있었음에도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손에는 얇은 서류가 들려 있었다.
"전하. 정식 절차를 제안드리러 왔습니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셀은 치료실 문턱의 검은 글자를 힐끗 보았다. 두려움보다 계산이 먼저 보이는 눈이었다.
"회수 시작 전야 문구가 나타난 이상 대공비 전하께서는 황후궁 보존 절차의 직접 대상이 되셨습니다. 다만 전하께서 단독 보호자 서명을 하시면 인계 전까지 대공성 안에서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은 열렸나."
헬라가 먼저 물었다.
마르셀의 입술이 굳었다.
"원문은 아직 보존 중입니다. 그러나 긴급 조항은 현장 문구로도 충분히."
"기록해라."
카시안이 말했다.
로젤린이 펜을 들었다.
"마르셀 라운은 황후궁 칙서 원문이 열리지 않았고 긴급 조항 권한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공의 단독 보호자 서명을 요구했다."
마르셀의 눈썹이 움직였다.
"요구가 아닙니다. 전하께 유리한 길을 드리는 겁니다. 서명하시면 대공비 전하를 지금 당장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 말은 정확히 카시안의 가장 약한 곳을 찔렀다.
지금 당장 빼앗기지 않는다.
카시안은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들었다. 세리아나를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을 권리. 그녀가 깨어나지 않아도 자신이 대신 막을 수 있는 권한. 누구도 침대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이름.
갖고 싶었다.
너무 갖고 싶어서 숨이 막혔다.
카시안은 천천히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가 손등의 마른 비늘 자국 사이에 굳어 있었다.
"그 서류를 펼쳐라."
마르셀의 얼굴에 희미한 빛이 스쳤다.
아르덴이 움직이려 하자 카시안이 손을 들었다.
"아르덴. 검은 그대로 둔다. 읽기만 한다."
마르셀은 서류를 펼쳤다. 얇은 종이 위에는 검은 밀랍선과 닮은 테두리가 있었다. 중앙에는 몇 줄의 문장이 비어 있었다.
보호자 지정 가능.
대상 의사 확인 불가 시 보호자 의사로 대체.
서명란 아래에 검은 점 하나가 떠올랐다.
치료실 안쪽에서 세리아나의 손끝 빛이 희미하게 줄었다.
미나가 낮게 숨을 삼켰다.
"전하."
카시안은 세리아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붙잡고 싶어질 것 같았다.
"마르셀."
"예."
"네가 가져온 것은 보호가 아니다."
마르셀은 미소를 거두었다.
"대공비 전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아니. 대공비가 의식 없는 동안 누군가가 그녀의 의사를 대신할 방법이다."
카시안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리고 나도 그 방법을 원했다."
회랑이 조용해졌다.
마르셀도 대답하지 못했다.
카시안은 로젤린을 보았다.
"기록해라. 대공은 대공비를 잃을까 두려워 단독 보호자 권한을 원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대공비의 의사가 아니다."
로젤린의 손이 떨렸다. 그래도 문장은 끊기지 않았다.
"기록했습니다."
카시안은 마르셀의 서류를 가리켰다.
"보존 천 위에 올려라. 내 손으로 받지 않는다."
마르셀이 한 걸음 물러섰다.
"전하께서 거부하시면 황후궁이 직접 보호자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기록해."
헬라가 차갑게 말했다.
로젤린이 이어 적었다.
카시안은 마르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치고 싶은 충동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그를 치면 세리아나가 남긴 질서가 깨진다. 그래서 카시안은 제자리에 섰다.
"마르셀 라운은 현장 이탈을 금한다. 정식 체포가 아니라 공개 심문 전 증거 보존을 위한 임시 감시다. 식사와 치료는 제공한다. 대공성 사람이 그를 해치면 내가 먼저 처벌한다."
마르셀의 얼굴에서 여유가 조금 사라졌다.
"전하. 그렇게까지 기록하실 필요는."
"있다.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으니까."
카시안은 치료실 문턱을 보았다.
검은 글자가 바뀌고 있었다.
회수 시작 전야.
그 아래에 새 문장이 천천히 떠올랐다.
보호자 지정 가능.
돌바닥의 글자는 마르셀의 서류와 같은 박자로 뛰었다. 치료실 안쪽에서 미나가 세리아나의 손을 받쳤다.
"빛이 또 줄었습니다."
카시안의 발이 반걸음 움직였다.
미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전하. 들어오시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전하께서 손을 잡으시면 문구가 반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카시안은 말을 멈췄다.
나는 손만 잡겠다.
나는 살리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남편이다.
그 모든 말이 서류의 빈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시안은 문턱 밖에 무릎을 꿇었다. 회랑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세리아나."
그 이름은 침대까지 닿을 만큼만 낮았다.
"내가 너를 대신하고 싶다. 네가 깨어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막고 싶다. 그게 얼마나 쉬운지 안다."
가림막 안쪽에서 아무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네가 내게 맡긴 적 없는 권한을 내가 가지면 황후궁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손끝의 녹색 빛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카시안은 그 흔들림을 대답으로 쓰지 않았다.
"기록해라. 대공비는 의식이 없으므로 방금 반응은 동의로 쓰지 않는다."
로젤린이 눈물을 삼키며 적었다.
"기록했습니다."
의무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체온이 더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미나가 가림막 안쪽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문을 열어 두니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카시안은 고개를 숙였다.
"문을 열어 둔다. 증인은 남긴다. 침대는 가린다. 누구도 대공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는다."
헬라가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 적었다.
마르셀은 침묵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치료실 문턱의 검은 글자에 붙어 있었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앞으로 오지 못했다.
낮이 가까워질 무렵 세리아나의 손끝 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미나가 숨을 멈췄다.
"전하."
카시안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했다. 옆구리의 상처가 찢기듯 아팠다. 그는 의자 팔걸이를 붙잡고 멈췄다.
"말해."
"눈꺼풀이 움직였습니다."
그 한마디에 회랑의 모든 소리가 꺼졌다.
카시안은 문턱에서 더 들어가지 않았다. 의무관이 가림막 안쪽으로 들어갔고 미나가 세리아나의 손목을 받쳤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난 뒤 가림막 너머에서 마른 숨소리가 났다.
"문..."
목소리는 거의 부서져 있었다.
카시안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는 묻고 싶었다.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보았는지.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나를 알아보는지.
그러나 첫 질문도 명령이 될 수 있었다.
카시안은 이를 악물고 기다렸다.
세리아나의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닫지... 마세요."
미나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로젤린의 펜이 종이를 긁었다.
카시안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기록해라. 대공비가 짧게 의식을 되찾아 문을 닫지 말라고 말했다. 그 외의 의사 확인은 하지 않는다."
로젤린이 대답했다.
"기록했습니다."
세리아나의 눈은 다시 감겼다. 손끝의 빛도 처음보다 약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카시안은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앉은 것이다. 그는 세리아나가 남긴 한 문장을 붙잡고 있었다.
문을 닫지 말 것.
그 말은 그에게서 가장 원하는 행동 하나를 빼앗았다.
그래서 살아 있는 말이었다.
치료실 문턱의 검은 글자가 다시 움직였다. 마르셀의 서류 위에도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보호자 서명 대기.
카시안은 그 글자를 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마르셀이 낮게 말했다.
"서명하지 않으시면 절차는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보호자는 황후궁이 정할 겁니다."
카시안은 세리아나가 누운 가림막을 보았다.
"그럼 그들이 누구를 보내는지 보겠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문은 열어 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