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43화: 잠든 대공비
세리아나는 치료실 침대 위에서도 손을 펴지 못했다.
검은 선이 손등에서 팔목 위로 이어져 있었다. 깨끗한 천을 감아 두었지만 선의 모양은 얇은 가지처럼 비쳐 나왔다. 미나는 젖은 수건을 갈다 말고 숨을 삼켰다.
"체온이 너무 낮습니다."
의무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완전히 꺼진 상태는 아닙니다. 손끝에 남은 빛이 있습니다."
카시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앉아 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는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의자에 묶여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옆구리와 어깨 밑을 감싼 붕대에는 이미 피가 배어 있었다.
그래도 그는 세리아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깊이 가라앉은 씨앗 같습니다."
의무관이 덧붙였다.
"흙 위로 잎을 내지 못할 뿐 안쪽의 생명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흔들면 뿌리가 찢길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면 되지."
카시안의 목소리는 낮았다.
의무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미나가 대신 고개를 숙였다.
"대공비 전하께서 깨어 계셨다면 먼저 전하께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을 겁니다."
카시안의 손이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나무가 낮게 삐걱거렸다.
"그 말은 이미 들었다."
"그럼 따라 주셔야 합니다."
미나는 울지 않았다. 세리아나가 그랬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시안은 천천히 손을 풀었다.
세리아나의 손끝에 남은 녹색 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숨처럼 보였고 대답처럼도 보였다. 카시안은 그 빛을 보며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만지고 싶었다.
자기 피를 주고 싶었다. 목숨을 갈라서라도 세리아나가 눈을 뜨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황후궁 문구는 서로를 살리려는 행위까지 자기 말로 바꾸려 했다. 세리아나가 끝까지 남긴 기록을 그가 망칠 수는 없었다.
"로젤린은."
"치료실 밖에 있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명령을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헬라가 답했다.
카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게 하지 마라. 대공비의 상태를 기록해야 할 때만 의무관의 진술로 받는다. 의식 없는 사람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헬라의 눈빛이 짧게 흔들렸다.
"예. 기록하게 하겠습니다."
치료실 문밖은 조용하지 않았다. 멀리 환영회장에서부터 회랑을 따라 낮은 발소리와 속삭임이 이어졌다. 첫눈 축제 장식들이 이미 성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하인들은 등불과 보온 상자와 붉은 천을 옮기다 말고 검은 보존 천 쪽을 보았다.
대공은 인간에 가까운 얼굴로 깨어났다.
대공비는 그 대가로 쓰러졌다.
그 두 소문이 같은 속도로 성 안을 돌았다.
아르덴이 문을 두드렸다.
"전하. 환영회장 보존 조치는 유지 중입니다. 검은 조각과 황후궁 봉투는 보존 천 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마르셀 라운은 동쪽 회랑 대기실에서 감시 중입니다."
"이름 없는 수행원 둘은."
"분리했습니다. 뒤쪽 수행원의 손목 봉인은 아직 반응합니다. 다만 신원 확인 전까지 심문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좋다."
카시안은 상처를 누른 채 몸을 세우려다 멈췄다. 미나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마르셀은 뭐라고 하나."
"대공비 전하께 황후궁 문구가 나타났으므로 치료실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헬라가 차갑게 말했다.
"대공성의 치료실을 황후궁 임시 보존실로 지정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카시안의 입술 끝이 굳었다.
"그 발언은."
"로젤린이 모두 기록했습니다. 원문이 열리지 않았고 권한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반박도 함께 남겼습니다."
"마르셀이 원하는 것은 대공비의 치료가 아니다."
"예."
"그럼 치료실 문 앞에는 대공성 기사 둘과 하녀 둘을 둔다. 검이 먼저 보이지 않게 세우고 방문자는 이름과 목적을 적게 해라. 봉쇄가 아니다. 대공비가 의식 없는 사이에 누가 말을 훔쳐 가는지 막는 보호다."
헬라가 고개를 숙였다.
"그 문장 그대로 기록하게 하겠습니다."
카시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문장을 골라야 했다. 명령 하나가 세리아나의 감금으로 바뀔 수 있었다. 분노에 찬 한마디가 그녀가 지켜 낸 공개 기록을 찢을 수 있었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었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했다.
사비에가 급히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는 문턱을 넘지 않고 멈췄다.
"전하. 축제 물자 동선에서 이상한 표식을 찾았습니다."
카시안의 눈이 바로 차가워졌다.
"말해라."
"첫눈 축제 보온 상자 일부가 원래 하역 동선이 아니라 서쪽 온실 하부 배수로와 가까운 길로 들어왔습니다. 상자 바닥 안쪽에 보존실 문턱에서 본 것과 같은 아래로 꺾인 선이 있습니다."
치료실 안의 공기가 식었다.
미나는 세리아나의 이불 끝을 꼭 쥐었다.
"대공비 전하께서 그 동선을 의심하셨습니다."
"알고 있다."
카시안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쓰러지기 전에도 다음 문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녀가 눈을 뜨기만 바라고 있었다.
"상자는 어디 있지."
"치료실 바깥 회랑 끝에 격리했습니다. 아르덴 님이 열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
"열지 마라."
카시안은 즉시 말했다.
"젖은 흙과 약초 잎을 먼저 대라. 미나."
"예."
"대공비가 쓰던 흙과 약초 잎이 남아 있나."
"환영회장 보존 천 옆의 것은 움직이면 안 됩니다. 다만 대공비 전하께서 따로 말려 두신 약초 잎과 폐온실 흙이 있습니다."
"그것을 써라. 단 네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미나는 고개를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카시안은 그녀를 보았다. 명령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미나의 눈빛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네 선택으로 기록해라."
"예."
회랑 끝으로 옮겨진 보온 상자는 붉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첫눈 축제 때 아이들에게 나눠 줄 따뜻한 음료와 등불을 보관하는 물건이었다. 평소라면 성 안이 가장 밝아질 준비였을 것이다.
오늘은 그 붉은 천이 피 묻은 가림막처럼 보였다.
카시안은 치료실 문턱 안쪽에 머물렀다. 상처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직접 나서면 모두가 그의 분노만 볼 것이다. 세리아나가 남긴 순서와 증거는 뒤로 밀릴 수 있었다.
아르덴이 상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나는 작은 접시에 폐온실 흙과 말린 약초 잎을 담아 왔다. 손끝이 떨렸지만 흙을 흘리지는 않았다.
"상자 위가 아니라 바닥 안쪽 표식 가까이에 대겠습니다."
사비에가 말했다.
"기록합니다. 축제 보온 상자는 개봉하지 않았고 대공성 측은 외부 표식 확인을 위해 흙과 약초 잎만 사용합니다."
로젤린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기록했습니다."
흙이 상자 바닥의 나무 틈에 닿았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이어 약초 잎 하나가 바싹 말랐다. 초록이 아니라 회색으로 말라 붙었다.
나무 안쪽에서 검은 글자가 떠올랐다.
반점 보유자 회수 대기.
미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또 다른 문구가 천천히 이어졌다.
축제 환호 시 개방.
회랑에 있던 하인들이 얼어붙었다.
첫눈 축제.
성 안 사람들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기로 했던 날. 카시안이 정원에 등불을 걸겠다고 했던 날. 세리아나가 이 문 뒤를 먼저 치우고 보러 가자고 말했던 그 약속의 자리.
그 환호를 문을 여는 신호로 쓰려 했다.
카시안의 안에서 무언가 검게 끓었다. 상처 둘레의 비늘 흔적이 다시 따끔거렸다. 그러나 그는 숨을 삼켰다.
"사람을 공격하고 싶은 충동은 없다."
그가 먼저 말했다.
로젤린의 펜이 바로 움직였다.
"대공 전하가 직접 진술했습니다."
"나는 저 상자를 부수고 싶다. 그러나 먼저 기록한다."
카시안은 회랑 끝의 붉은 상자를 노려보았다.
"첫눈 축제 물자에서 반점 보유자 회수 대기와 축제 환호 시 개방 문구가 확인됐다. 축제는 취소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물자를 검수하고 동선을 공개로 바꾼다. 기쁨을 미끼로 쓴 자가 누구인지 드러낼 때까지 아무도 몰래 움직이지 못하게 해라."
아르덴이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그 순간 치료실 안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
천이 스치는 소리였다.
카시안은 돌아보았다.
세리아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나 감싸 둔 손끝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천 아래 검은 밀랍 무늬가 가느다랗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상자 안쪽 문구가 뛴 박자와 같았다.
미나가 달려가려다 멈췄다. 억지로 흔들지 말라는 의무관의 말이 모두의 발목을 붙잡았다.
카시안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손을 뻗지도 않았다. 다만 침대 곁으로 시선을 옮겼다.
"세리아나."
그 이름은 명령이 아니었다.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들리면 대답하지 마라. 힘을 쓰지도 마라."
손끝의 녹색 빛이 아주 느리게 흔들렸다.
카시안은 숨을 멈췄다가 내쉬었다.
"네가 깨어나면 내가 듣겠다. 네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선택할지. 그 전까지는 네 이름으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가 마른 손이었다. 세리아나의 손을 붙잡고 싶어 떨리는 손이었다.
붙잡지 않았다.
"다만 지킨다."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경고에 가까웠다.
"가두지 않고 지킨다."
헬라가 문턱 밖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대공성은 축제 장식을 모두 거두지 않았다. 대신 모든 등불과 상자를 회랑 한가운데로 옮겼다. 하인과 기사와 환영회 증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나씩 기록하고 흙과 약초 잎을 댔다.
붉은 천 아래 숨은 문구가 더 나왔다.
환호 유도.
회수 동선 확보.
보존 대상 접근 대기.
카시안은 그 모든 문구를 들으며 치료실 문턱 안쪽에 남았다. 인간에 가까운 얼굴로 돌아온 대공의 곁에는 괴물보다 더 지독한 침묵이 있었다. 누구도 감히 축하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새벽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서쪽 회랑 끝의 첫눈 축제 등불 하나가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켜졌다. 붉은 불빛이 바닥 위로 미끄러졌다. 그 빛이 치료실 문 앞에서 멈추자 돌바닥에 검은 글자가 떠올랐다.
회수 시작 전야.
카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로젤린을 보았다.
"기록해라."
그의 목소리는 낮고 선명했다.
"대공비는 아직 의식이 없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저 문구는 대공비의 의사가 아니다."
로젤린이 떨리는 숨으로 답했다.
"기록했습니다."
카시안은 다시 세리아나를 보았다.
잠든 그녀의 손끝에 남은 녹색 빛이 아주 작게 살아 있었다.
그 빛 하나가 아직 이 성에서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