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42화: 돌려받은 숨
세리아나의 몸이 무너졌다.
미나가 어깨를 받쳐 들었지만 세리아나의 손끝은 카시안의 손가락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잡은 것도 아니고 놓은 것도 아닌 닿음이었다. 그 작은 닿음 위로 검은 조각들이 보존 천 위에서 한꺼번에 몸을 틀었다.
반점 보유자 인계 필요.
황후궁 칙서 봉투의 검은 밀랍선이 또 한 번 벌어졌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르덴의 검끝이 봉투 앞을 가로막았다. 칙서를 베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러나 봉투가 더 벌어지는 순간 검이 어디를 누를지 모두 알 수 있었다.
마르셀 라운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대공비 전하는 반점 보유자입니다. 문구가 인계를 요구했습니다. 지금 당장 황후궁 절차에 따라 격리해야 합니다."
"그 발언도 적으세요."
헬라가 로젤린 쪽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마르셀 라운은 원문이 열리지 않았고 인계 권한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공비 세리아나 베르딘의 격리를 주장했다."
로젤린은 울음이 섞인 얼굴로 펜을 움직였다.
"기록했습니다."
미나는 세리아나를 품에 받치고도 손을 떨지 않으려 애썼다. 세리아나의 손등을 덮은 검은 선은 팔목 위에서 멈춰 있었다. 리본은 이미 젖은 흙과 피에 더러워져 아무것도 숨기지 못했다.
"대공비 전하. 들리세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카시안의 숨이 들렸다.
아주 낮고 거친 숨이었다. 보존 천 위에 흘러 있던 피가 더는 빠르게 번지지 않았다. 상처가 닫힌 것은 아니었다. 찢긴 가장자리마다 녹색 빛이 아주 얇게 걸려 있었다. 마치 무너지는 문을 손가락 하나로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빛은 세리아나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주인이 눈을 감았는데도 힘만 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곳에서 끌어 올렸다는 뜻이었다.
"전하의 숨이 안정됩니다."
미나의 목소리가 기어이 흔들렸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시안의 목덜미 비늘 하나가 바스러졌다. 검은 가루가 아니라 마른 껍질처럼 떨어졌다. 이어 턱 아래의 비늘이 흐릿해지고 손등을 덮던 단단한 결이 피부 안쪽으로 잦아들었다.
환영회장 쪽에서 누군가 흐느꼈다.
괴물이 사라지는 광경이 아니었다.
사람이 간신히 돌아오는 광경이었다.
카시안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는 먼저 숨을 삼켰고 그다음 손끝을 움직였다. 세리아나의 손가락이 닿아 있던 곳을 찾는 움직임이었다.
"세리……."
목소리는 거의 피와 함께 긁혀 나왔다.
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헬라가 낮게 말했다.
"대공 전하. 움직이지 마십시오. 대공비 전하가 상처를 간신히 붙들어 두셨습니다."
카시안의 눈이 열렸다.
완전히 검지 않았다. 괴수의 눈동자 안쪽에 사람의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천장을 보지 않았다. 칙서 봉투도 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세리아나를 보았다.
세리아나는 미나의 팔에 기대어 있었다. 얼굴은 촛불보다 희고 손등의 검은 선은 너무 선명했다.
카시안의 입술이 벌어졌다.
"무슨 짓을."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로젤린이 펜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대공비 전하께서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대공 전하의 생명을 붙들기 위해 본인의 선택으로 힘을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명령도 아니고 칙서 동의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카시안은 눈을 감았다.
그 한 번의 눈감음이 포효보다 거칠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나."
"아닙니다."
미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공비 전하께서 누구도 대신 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카시안은 다시 세리아나의 손을 보았다.
검은 반점은 팔목을 넘어 얇은 가지처럼 뻗어 있었다. 그 아래 아주 희미한 녹색 빛이 손끝에서만 남아 깜빡였다. 살아 있음의 증거치고는 너무 작았다.
카시안의 가슴에서 낮은 숨이 끓었다.
살아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누워 있는 쪽은 세리아나였다. 그 단순한 순서가 카시안의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뒤집혔다.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실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르덴이 한 걸음 다가왔다.
"전하. 지금 분노하시면 상처가 다시 열립니다."
"분노하지 말라고?"
카시안의 시선이 마르셀에게 꽂혔다.
마르셀은 뒤로 물러서려 했다. 아르덴의 검이 그 앞을 막았다.
"저는 절차를 말했을 뿐입니다. 대공비 전하가 반점 보유자인 이상 황후궁 보존 대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공 전하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대공비 전하는 전하의 생명력을 조정했습니다."
카시안의 손이 보존 천을 긁었다. 손톱 밑에 피가 배었다.
"그 입으로 한 번만 더 말해 봐."
마르셀의 얼굴이 굳었다.
헬라가 즉시 끼어들었다.
"전하. 이곳은 아직 공개 증거 보존 장소입니다."
카시안은 헬라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은 들었다.
공개 증거.
세리아나가 피를 흘리는 자신 옆에서 끝까지 붙들었던 것.
카시안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상처가 따라 찢어지는 통증에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래도 그는 검을 찾지 않았다.
"로젤린."
"예. 전하."
"마르셀 라운의 발언을 모두 적어라. 황후궁 원문이 열리지 않았고 인계 권한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공비를 보존 대상이라 불렀다. 대공의 치명상을 치료한 행위를 생명력 조정이라 불렀다. 그 말이 어떤 의도를 갖는지도 뒤에 심문한다."
로젤린의 펜끝이 다시 움직였다.
"기록했습니다."
마르셀이 입술을 깨물었다.
"원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황후궁 절차는."
"그럼 네가 가진 것은 명령이 아니다."
카시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회일 뿐이지."
환영회장 쪽이 얼어붙었다.
카시안은 힘겹게 팔을 세웠다. 아르덴이 말리려 했지만 카시안은 시선 하나로 멈추게 했다. 그는 일어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세리아나의 손에 닿으려는 것이었다.
미나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세리아나가 깨어 있었다면 숨기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미나는 세리아나의 손을 조금 낮췄다.
카시안의 손끝이 세리아나의 검어진 손등 가까이에 닿았다.
그는 차마 꽉 잡지 못했다.
"너는."
말이 막혔다.
세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숨은 아주 얕았다. 미나는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숨은 이어져 있습니다. 다만 너무 약합니다."
"내 피를 가져가라."
카시안이 즉시 말했다.
미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전하?"
"내게 돌려준 것이라면 다시 가져가면 된다."
"안 됩니다."
헬라가 이번에는 단호했다.
"대공비 전하가 살아 있는 쪽과 죽은 봉합선의 경계를 나누어 붙들었습니다. 지금 전하의 피를 다시 섞으면 상처 안쪽의 잔여가 어느 쪽으로 반응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사비에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대공비 전하는 생명력을 주고받는 통로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지금 되돌리려 하시면 황후궁 문구가 기다리던 상호 인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카시안의 눈동자가 사비에에게 향했다.
사비에는 몸을 굳혔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제 추정입니다. 하지만 문구는 이미 전하를 시료라 불렀고 대공비 전하를 보유자라 불렀습니다. 서로를 살리려는 행위를 저쪽 말로 바꾸는 순간 위험합니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세리아나의 손을 보았다. 손끝의 녹색 빛은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멀어졌다.
그 사실이 카시안의 목을 죄었다.
"내가 받아 달라고 한 적 없다."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미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대공비 전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전하께 허락받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고요."
카시안의 턱이 굳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녀는 그를 살렸다. 그를 소유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에게 빚을 지우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러니 카시안이 지금 할 수 있는 첫 일은 그 선택을 모욕하지 않는 것이었다.
"헬라."
"예."
"환영회 참석자는 모두 신분을 확인하고 보호하라. 봉쇄가 아니다. 증인 보호다. 누가 떠나고 싶다면 이름과 목격 사실을 기록한 뒤 호위 붙여 내보내라."
헬라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아르덴."
"예. 전하."
"검은 조각과 황후궁 봉투는 보존 천 위에 고정한다. 손대는 자는 제압하라. 다만 죽이지 마라. 죽으면 말이 줄어든다."
"알겠습니다."
카시안은 마르셀을 보았다.
"마르셀 라운은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황후궁 인장은 당분간 누구의 몸에도 닿지 못한다."
마르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대공 전하께서 황후궁 권한을 막으시는 겁니까?"
"아니다."
카시안의 눈빛이 얼음처럼 가라앉았다.
"황후궁 권한이라고 네가 부르는 것을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칙서 봉투가 다시 들썩였다.
검은 밀랍선은 이미 반쯤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봉투는 젖은 흙과 약초 잎이 놓인 선을 넘지 못했다. 그 위에 아주 흐릿한 녹색 빛이 남아 있었다.
세리아나가 쓰러지기 전에 남긴 힘이었다.
분노는 여전히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향한 분노가 가장 컸다.
그는 손을 뻗어 세리아나의 손목을 감싼 리본 조각을 풀었다. 검은 선이 더 잘 드러났다. 미나가 숨을 삼켰지만 말리지 않았다.
카시안은 깨끗한 천을 요구했다.
미나가 즉시 건넸다.
그는 세리아나의 손을 덮었다.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차가워지는 손을 덥히기 위해서였다. 천 아래에서도 검은 선의 모양은 희미하게 비쳤다.
"기록해라."
카시안이 말했다.
"대공은 대공비의 반점을 은폐하지 않았다. 다만 의식을 잃은 사람의 손을 보호하기 위해 천으로 감쌌다."
로젤린의 펜끝이 젖은 종이를 지나갔다.
"기록했습니다."
카시안은 미나를 보았다.
"치료실로 옮길 수 있나."
"예. 하지만 전하께서도."
"나는 숨이 붙어 있다."
"대공비 전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미나의 말은 날카롭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게 박혔다.
카시안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고 있다."
그는 세리아나에게 몸을 기울였다. 상처가 다시 열리며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내가 옮긴다."
헬라가 조용히 말했다.
"전하. 대공비 전하께서 깨어 계셨다면 전하의 상처부터 보셨을 겁니다."
카시안의 손이 멈췄다.
그 말도 맞았다.
지금 상처를 찢는 것은 세리아나가 붙든 숨을 다시 짓밟는 일일 수 있었다.
카시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들것을 가져와라. 내가 옆에 간다."
미나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세리아나는 들것에 조심스럽게 눕혀졌다. 젖은 흙 냄새와 피 냄새 사이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카시안은 일어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세리아나."
의식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가 선택한 것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겠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니 돌아와. 네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나에게 직접 말해."
세리아나의 손끝 녹색 빛이 아주 희미하게 흔들렸다.
대답처럼 보일 만큼 작았다.
카시안은 그 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보존 천 쪽에서 로젤린이 숨을 삼켰다.
"전하."
카시안이 돌아보았다.
검은 조각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칙서 봉투도 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봉투의 밀랍선과 같은 모양이 세리아나의 천 아래에서 잠시 비쳤다. 손목 반점 밑으로 아주 얇은 검은 밀랍 무늬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미나가 창백해졌다.
"방금 보셨습니까?"
카시안은 세리아나의 손을 감싼 천을 더 단단히 잡았다.
이번에는 숨기기 위해서도 덥히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떨림을 멈추기 위해서였다.
"기록해라."
그가 말했다.
"황후궁 칙서 봉투와 같은 검은 밀랍 무늬가 대공비의 반점 아래 잠시 나타났다. 대공비는 의식이 없었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
로젤린이 떨리는 손으로 적었다.
"기록했습니다."
카시안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그를 살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무엇인가가 그녀를 향해 문을 열고 있었다.
이번에는 카시안이 그 앞에 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