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31화: 봉인된 치료관
회수 실패 시 반점 보유자를 우선 확보.
엔반의 봉인함 바닥에 떠오른 문장은 방 안의 시선을 세리아나의 손목으로 끌어당겼다.
카시안이 한 걸음 움직였다.
세리아나는 그보다 먼저 손을 들었다.
"아직 아무도 방을 나가지 않습니다."
아르덴의 손은 검집 위에서 멈췄다. 헬라가 문밖의 하녀들을 물렸고 미나는 새 젖은 천을 탁자 위에 펼쳤다.
엔반은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치료관의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는 이제 봉인함보다 더 창백했다.
카시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를 가둘 것이다."
"봉인 심문 대상으로 둡니다. 감금이라고 쓰이게 두지 마세요."
"세리아나."
"전하가 그를 처벌하고 싶은 건 압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입을 닫으면 금서고 위임자라는 말만 남습니다."
카시안의 손등에서 검은 비늘이 다시 일었다. 그는 엔반을 보았다가 세리아나를 보았다.
"네가 또 질문하겠다는 뜻인가."
"제가 표적이 됐으니까요."
세리아나는 리본 아래 욱신거리는 손목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풀지도 않았다.
"표적이 된 사람이 침묵하면 그들은 제 이름을 마음대로 쓸 겁니다."
로젤린의 펜촉이 떨렸다.
"기록하겠습니다."
세리아나는 엔반의 봉인함을 가리켰다.
"봉인함, 향낭, 주사관, 금속패를 황실 입회 사본 옆에 두세요. 서로 닿지 않게 합니다."
미나가 젖은 천 사이를 넓혔다. 약초 잎 끝은 봉인함 바닥의 문구를 향해 검게 물들다가 멈췄다.
세리아나는 엔반에게 물었다.
"엔반 레하르. 이 문구를 직접 설계했습니까."
엔반은 마른 입술을 적셨다.
"저는 치료원 명령을 받았습니다."
"질문에 답하세요."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가 설계했습니까."
"금서고 위임 표식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름은 없었습니다."
사비에가 문가에서 떨리는 숨을 뱉었다.
"옛 하부문 절차에서는 위임자가 이름 대신 봉인으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세리아나는 사비에를 보았다.
"그 조항을 뒷받침할 서식이 남아 있습니까."
"기록함 안에 있을 겁니다."
엔반이 낮게 말했다.
"금서고 위임은 치료원보다 상위 절차입니다. 대공 전하의 병증은 일반 치료관이 다룰 수 없습니다."
"병증이라는 말로 입회를 바꾸고 발작을 확인하고 반점 보유자를 확보하려 했군요."
"확보가 아니라 안정화입니다."
그 말에 카시안의 눈동자가 검게 가라앉았다.
세리아나는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 단어도 남기세요. 엔반 레하르는 반점 보유자 확보를 안정화라고 표현했다."
엔반의 회색 장갑 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세리아나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장갑을 벗으세요."
"의료 기밀 물품입니다."
"당신의 봉인함에서 제 손목을 우선 확보하라는 문구가 나왔습니다. 장갑도 검열 대상입니다."
엔반은 버텼다.
"대공 전하의 치료 기록과 관련된 물품은 황도 치료원장의 허가 없이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발레리우스 대공성이고 저는 대공비입니다."
세리아나는 젖은 천을 가리켰다.
"벗으세요. 아니면 거부 진술로 남깁니다."
엔반은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손바닥 안쪽은 깨끗했다. 하지만 손목을 감싸던 안감 봉합선이 어색하게 두꺼웠다.
미나가 약초 잎을 가까이 댔다. 잎 끝이 곧장 검게 물들었다.
"봉합선입니다."
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르덴이 작은 칼을 꺼내려 하자 세리아나가 막았다.
"쇠붙이는 대지 마세요. 젖은 천으로 눌러 글자만 떠오르게 합니다."
천이 장갑 안쪽을 누르자 얇은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밀랍이 가장자리를 붙들고 있었다.
로젤린이 글자를 읽었다.
"반점 보유자 안정화 후 황도 치료원 이송."
방 안의 공기가 식었다.
세리아나의 손목이 뜨겁게 욱신거렸다. 반점은 리본 아래에서 피부를 찌르는 것처럼 맥박쳤다.
로젤린이 두 번째 줄을 읽었다.
"대공비 입회 자격 임시 정지."
카시안의 발톱이 바닥에 박혔다.
"불허한다."
"전하."
세리아나가 짧게 불렀다.
그는 멈췄다. 멈추는 데 성공했지만 숨은 거칠었다.
세리아나는 엔반을 보았다.
"제가 답합니다."
엔반의 시선이 카시안에게서 세리아나에게 돌아왔다.
"반점은 위험합니다. 대공비 전하께서도 이미 반응을 보였습니다. 치료원으로 이송하면 안정화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제 이송에 동의했습니까."
"위험 요인에게 동의를 묻는 절차는 없습니다."
카시안의 검은 비늘이 턱 아래까지 올라왔다.
세리아나는 손목을 탁자 위에 올렸다.
"기록하세요. 엔반 레하르는 반점 보유자에게 이송 동의를 묻는 절차가 없다고 진술했다."
로젤린은 숨을 삼키며 받아 적었다.
"그리고 제 반점 반응도 적으세요. 반점은 엔반의 손이 아니라 장갑 안쪽 예비 명령서 중 황도 치료원 이송 문구에 반응했다. 정화 능력 사용 없음."
미나가 젖은 천을 반점 가까이 대려다 멈췄다.
세리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닿게 하지 마세요. 아직 제 몸입니다."
그 말에 카시안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세리아나를 숨기고 싶어 했다. 그 욕망은 방 안의 단향보다 선명했다. 그러나 그는 대신 말하지 않았다.
"발레리우스 대공가의 인장으로 보증한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대공비는 입회자다. 누구도 그의 입을 대신 닫지 못한다."
세리아나는 그를 보았다. 감사가 아니라 확인이었다. 그는 그녀가 세운 선 안에 서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하녀 하나가 헬라에게 귓속말을 했다. 헬라의 얼굴이 굳었다.
"증인 보호 객실의 에블린 베르네가 추가 진술을 요청했습니다."
세리아나는 잠시 생각했다.
"문을 열지 말고 기록관 한 명을 보내세요. 진술은 문 너머에서 받습니다."
로젤린의 보조 기록관이 나갔다가 곧 돌아왔다.
"에블린 베르네는 정문 밖 얼굴 가린 남자가 황도 치료원 표식뿐 아니라 검은 봉인도 지니고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봉인에는 이름이 없었고 별 모양과 아래로 꺾인 선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비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스타 하부식 표식과 닮았습니다."
엔반의 입술이 굳었다.
세리아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엔반 레하르는 한스타 하부식 언급에 반응했다. 표정 변화. 진술 없음."
"저는 모릅니다."
"그러면 모른다고 적습니다."
사비에는 낡은 서식을 떨리는 손으로 펼쳤다.
"위임자는 이름 대신 봉인으로 증명한다. 봉인이 치료원 표식과 함께 제시될 경우 하부문 회수 절차는 우선한다."
로젤린이 낮게 말했다.
"치료관은 문을 여는 이름이고 금서고 봉인은 명령의 주체군요."
세리아나는 엔반을 보았다.
"당신은 문을 여는 이름입니까. 명령의 주체입니까."
엔반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봉인으로."
"사람의 이름은요."
"보지 못했습니다."
카시안이 낮게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바닥이 갈라지는 소리 같았다.
"이름 없는 봉인이 내 성에서 사람을 옮긴다고."
"그래서 이름을 찾을 겁니다."
세리아나는 로젤린의 사본을 가리켰다.
"엔반 레하르의 진술은 아직 자백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금서고 위임 봉인을 받은 실행자라고 진술했습니다. 최종 설계자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엔반의 어깨가 미세하게 내려갔다. 처벌이 늦춰졌다고 생각한 얼굴이었다.
세리아나는 이어 말했다.
"동시에 장갑 안쪽 예비 명령서와 봉인함 문구는 대공비를 입회에서 배제하고 황도 치료원으로 이송하려는 절차로 확인합니다."
그의 얼굴에서 안도는 사라졌다.
검은 뿌리가 봉인함 바닥 아래에서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세리아나의 손목을 향하다가 로젤린의 보존 인장 앞에서 멈췄다.
미나가 흙을 뿌리자 뿌리는 방향을 잃고 장갑 안쪽 종이로 기어갔다.
"회수 반응은 반점 보유자보다 예비 명령서에 먼저 닿았습니다."
세리아나가 말했다.
"그것도 기록하세요."
카시안은 엔반의 앞에 섰다.
"봉인실로 옮긴다."
세리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증인 자격은 유지합니다. 손은 묶지 말고 치료 물품 접근은 막습니다."
"문 앞은 내가 선다."
"전하가 직접요?"
"너를 숨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문을 지키는 건 할 수 있겠지."
세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보호인지 통제인지 살폈다.
카시안은 덧붙였다.
"네가 나오라고 하면 비킨다."
그제야 세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반은 아르덴과 기사들 사이로 옮겨졌다. 그는 마지막 순간 세리아나를 보았다.
"치료원으로 오지 않으면 반점은 커질 겁니다."
"그 말도 남깁니다."
세리아나는 로젤린에게 마지막 기록을 불렀다.
"엔반 레하르는 금서고 위임 봉인을 받은 실행자라고 진술했다. 장갑 안쪽 예비 명령서에서 반점 보유자 황도 치료원 이송과 대공비 입회 자격 임시 정지 문구가 확인됐다. 대공비는 이송 동의 없이 자신을 옮기는 절차를 거부하고 입회 자격을 유지한다고 진술했다."
새벽 종이 울렸다.
로젤린이 사본 위 보존 인장을 확인하려 몸을 숙인 순간 손을 멈췄다.
"전하."
붉은 보존 인장 아래에 검은 선이 하나 더 겹쳐 있었다.
별 모양과 아래로 꺾인 선.
세리아나의 반점이 조용히 욱신거렸다.
금서고 위임 봉인은 이미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