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27화: 초대장을 들고 온 손
초대장 발송.
납관 바닥에 남은 문구는 밤 종소리보다 오래 울렸다.
세리아나는 그 말을 사람 이름으로 읽지 않았다. 에블이라는 반쪽짜리 단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 순간 기록은 길을 잃는다.
"봉인하세요. 이름이 아니라 경로로 기록합니다."
미나가 납관을 젖은 천 위에 올렸다. 로젤린은 금속판 문구를 황실 입회 사본으로 옮겼고 헬라는 검게 물든 약초 잎을 온실 장부 사이에 끼웠다.
카시안은 북쪽 온실 문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등에는 검은 비늘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음 밤 초입을 사슬 없이 버틴 흔적이었다.
"그 경로가 널 향하고 있다."
"그래서 문 앞에서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세리아나는 처방 봉투와 금속판을 서로 다른 봉인함에 나누었다.
"초대장이 온다면 정문으로 들입니다. 사적 면담은 없습니다. 접견실에는 기록관이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막겠다."
"막으면 다른 길을 찾습니다."
"그럼 그 길을 부수겠다."
"부수면 누가 들어오려 했는지 모릅니다."
카시안의 턱이 굳었다. 분노가 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리아나가 무엇을 남기려 하는지 알아 멈춘 것이다.
세리아나는 온실을 둘러보았다.
빈 묘상과 약초밭이 어둠 속에서 낮게 숨을 쉬고 있었다. 카시안이 사람을 물리고 흙을 갈아 둔 장소. 그녀가 마른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비워 둔 장소.
그곳에 누군가 처방 봉투를 묻었다.
생일 축하라는 이름으로.
"전하가 제게 주신 장소라면 제가 지킬 조건도 정하겠습니다."
카시안의 눈이 흔들렸다.
그때 아르덴이 온실 입구에 멈춰 섰다.
"정문 대기실에 베르네 백작가 심부름꾼이 도착했습니다. 에블린 아가씨의 생일 축하 서신이라 주장합니다."
에블.
반쪽짜리 이름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세리아나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리본 아래 반점은 뜨겁게 뛰지 않았다. 대신 어딘가에서 길을 더듬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욱신거렸다.
"들입니다. 다만 접견실 문 앞에서 멈추게 하세요."
카시안이 한 걸음 다가왔다.
"너 혼자 만날 필요는 없다."
"혼자 만나지 않습니다."
세리아나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전하도 접견실에 함께 서십시오. 대신 제 말을 대신하지 마세요."
"그건 명령인가."
"권유입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카시안이 낮게 답했다.
"받아들이겠다."
정문 대기실에는 젖은 외투 냄새와 낯선 단향이 섞여 있었다.
베르네 백작가의 심부름꾼 도먼은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세리아나보다 먼저 카시안을 찾았다. 검은 옷자락을 본 순간 도먼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대공비 전하. 베르네 백작가에서 생일 축하를 전하러 왔습니다."
"누구의 이름입니까."
"에블린 아가씨의 이름입니다. 자매분께서 오래 걱정하셨습니다."
세리아나는 웃지 않았다.
베르네 백작가에서 언니라는 말은 부탁할 때만 쓰였다. 희생을 요구할 때만 부드러워졌다.
"걱정한 사람이 왜 대공성 검열 절차를 피하려 했습니까."
도먼의 눈썹이 떨렸다.
"피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의 사적인 안부라 여겼을 뿐입니다."
"이곳에서 제 친가는 계약서에 따라 사적 접촉이 제한됩니다. 그 조항은 베르네 백작가도 통보받았습니다."
로젤린이 기록관에게 손짓했다. 펜촉이 움직였다.
도먼은 입술을 깨물었다.
"에블린 아가씨께서는 전하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생일 축하 정도는 허락해 주셔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카시안이 움직이려 했지만 세리아나가 먼저 말을 이었다.
"초대장과 물품은 기록관 입회 아래 접수합니다. 단독 면담은 없습니다. 초대에 대한 답도 기록으로 남깁니다."
도먼은 억지로 고개를 숙였다.
미나가 젖은 천을 깔고 상자를 올렸다. 작은 상자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생일 선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끈은 금빛이었고 매듭 사이에는 은빛 가루가 얇게 끼어 있었다.
세리아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불은 쓰지 않습니다."
미나가 젖은 천으로 뚜껑을 감쌌다. 헬라가 말린 약초 잎 하나를 상자 옆에 두었다. 잎 끝이 천천히 검게 물들었다.
카시안의 손등 비늘이 움직였다.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상자와 세리아나 사이에 섰다.
도먼이 급히 말했다.
"평범한 선물입니다."
"그 평범한 선물이 왜 반응합니까."
세리아나는 로젤린을 향해 말했다.
"생일 축하 물품 개봉 전 약초 잎 반응. 단향 미약. 금빛 끈에 은빛 가루 확인."
상자 안에는 얇은 향낭과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향낭에는 꽃 모양 자수가 놓여 있었다. 카드는 에블린의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첫 줄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세리아나는 카드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
"필체 확인 전까지 전언으로만 기록합니다."
로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가 상자 바닥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안쪽에 작은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
북쪽 둘째 묘상.
온실 납관이 묻혔던 자리와 가까운 위치였다.
아르덴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 위치는 오늘 낮까지 외부에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카시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성 안에서 샜다."
"아직은 그렇게 확정하지 않습니다."
세리아나는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대공성 내부 정보가 외부 서신 물품에 반영된 정황. 누출 경로 미상."
도먼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봉투와 상자를 전달받았을 뿐입니다."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백작가 서재 앞에서 받았습니다. 백작님 인장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에블린 아가씨께서도 그 자리에..."
그가 말을 멈췄다.
세리아나는 그 멈춤을 놓치지 않았다.
"계속하세요."
"아가씨께서 직접 쓴 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도먼의 얼굴이 붉어졌다. 세리아나는 그를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대신 봉투 안쪽을 보게 했다.
겉에는 에블린의 이름이 있었다.
안쪽에는 베르네 백작의 인장이 눌려 있었다.
"생일 축하 명목. 에블린 명의. 베르네 백작 인장. 북쪽 묘상 위치 표식. 단향 반응."
로젤린의 펜이 멈추지 않았다.
카시안이 조용히 물었다.
"답장을 보낼 건가."
"보냅니다."
세리아나는 도먼을 보았다.
"받아 적으세요."
도먼이 굳었다.
"제가 말입니까."
"당신이 가져온 길로 돌아갈 답입니다. 기록관도 함께 적습니다."
세리아나는 천천히 말했다.
"세리아나 발레리우스는 생일 축하 명목의 모든 물품과 서신을 대공가 검열 및 기록관 입회 아래에서만 접수한다. 친가라는 이유로 단독 면담을 허락하지 않는다. 에블린 베르네가 직접 방문한다면 정문으로 들어와 접견실에서 대기할 것. 축하라는 이름으로 전달되는 모든 물품은 봉인 절차를 거친다."
도먼의 손이 떨렸다.
"백작님께서 불쾌해하실 겁니다."
"그 문장도 기록하세요."
도먼이 숨을 삼켰다.
세리아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베르네 백작가 심부름꾼 도먼은 답장 구술 중 백작이 불쾌해할 것이라 발언했다. 이는 축하가 아니라 압박 가능성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카시안의 발톱이 바닥을 긁었다가 멈췄다.
그는 대신 아르덴에게 말했다.
"대공비의 명의로 보낸다. 내 인장은 보증으로만 붙인다."
세리아나는 그제야 카시안을 보았다.
그는 그녀를 앞세우지도 뒤로 숨기지도 않았다. 그녀가 세운 경계의 바깥쪽에 섰다.
도먼이 물러나려 할 때 헬라가 낮게 말했다.
"잠시."
그녀는 도먼의 출입 패찰을 가리켰다. 검은 밀랍이 귀퉁이에 말라붙어 있었다. 금이 간 방향이 낯익었다.
아르덴이 얼굴을 굳혔다.
"서쪽 하부문 폐쇄 장부 안쪽 쪽지와 비슷합니다."
도먼이 패찰을 움켜쥐었다.
"대기실에서 받은 것입니다. 대공성에서 내준 통행 표식이라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문지기 옆에 있던 남자입니다.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카시안의 눈이 어두워졌다.
세리아나는 패찰을 빼앗지 않았다.
"밀랍을 떼지 말고 그대로 봉인합니다. 도먼은 임시 대기실에 머물게 하세요. 돌아가는 길도 우리가 정합니다."
도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를 가두시는 겁니까."
"증인을 보호하는 겁니다."
세리아나는 상자와 초대장을 보았다.
생일 축하.
자매의 안부.
친가의 걱정.
모두 같은 모양의 끈이었다. 부드럽게 묶고 나면 자기가 묶였다는 사실을 늦게 알게 되는 끈.
이번에는 달랐다.
"에블린 아가씨는 이미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도먼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접견실 안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무슨 뜻입니까."
"대공비 전하께서 초대를 거절하기 전에 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세리아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아직 에블린이 직접 오는지 누군가 그 이름을 쓰는지 모른다. 그러나 들어오려는 길은 하나로 좁혀졌다.
정문.
접견실.
기록관 앞.
세리아나는 카시안에게 말했다.
"문을 닫지 마세요."
카시안이 그녀를 보았다.
"들일 생각인가."
"예."
그녀는 초대장을 봉인함 위에 올렸다.
"다만 이번에는 그들이 원하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밖에서 정문 종이 울렸다.
긴 밤의 두 번째 손님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