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19화: 벽난로 아래의 향
별실 안의 촛불이 크게 흔들린 뒤에도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세리아나는 벽난로 아래를 가리킨 손을 내리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장작과 닫힌 재받이 사이에서 단 향이 얇게 올라오고 있었다.
불을 피우지 않은 곳에서 향이 난다.
그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벽난로 아래를 봉인합니다."
로젤린의 눈이 처음으로 급하게 움직였다.
"대공비 전하. 별실 벽난로는 황녀 전하의 사적 공간에 속한 시설입니다. 함부로 열 수 없습니다."
"함부로 열지 않겠습니다."
세리아나는 로젤린이 쥔 기록판을 보았다.
"양쪽 기록관이 보고 문턱과 손잡이를 먼저 보존합니다. 그 뒤에 점검구를 엽니다."
황실 의전관이 곧장 끼어들었다.
"점검구라니요. 이곳은 무도회장 별실입니다."
"오래된 황궁 별실에는 재를 빼내는 하부 통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라면 그 사실도 기록하면 됩니다."
의전관의 얼굴이 굳었다.
세리아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남쪽 온실 보수 분류 담당자를 이 자리로 부르십시오."
"그런 담당자가 무도회장에 대기할 리 없습니다."
"그럼 창고에 있을 겁니다. 별실 대장에는 남쪽 온실 보수 분류가 남았고 촛대 밑동에는 보수라는 글자가 남았습니다. 담당자가 없다면 담당자가 없다고 적겠습니다."
황실 기록관의 펜끝이 멈췄다.
세리아나는 그 펜을 보았다.
"기록하십시오. 대공비가 담당자 호출을 요청했고 황실 의전관은 담당자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잠시."
의전관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로젤린을 보았다. 로젤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판을 품에 더 가까이 당겼다.
"확인하겠습니다."
의전관이 문밖 시녀에게 낮게 명했다.
문이 열리자 별실 밖의 시선이 다시 밀려 들어왔다. 귀족들은 멀리 물러나 있었지만 문 하나가 열릴 때마다 이 방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세고 있었다.
세리아나는 그 시선을 막지 않았다.
막힌 방 안에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면 이번에는 열린 문 앞에서 끝내야 했다.
카시안은 벽난로 가까이에 서 있었다.
목덜미의 검은 선은 조금 전보다 짙었다. 향이 약해도 그의 몸은 먼저 알아차렸다. 손등의 힘줄이 뻣뻣하게 솟고 손끝이 아주 작게 떨렸다.
세리아나는 다가가지 않았다.
"전하. 문가로 물러나 주십시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나는 견딜 수 있다."
"견디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리아나는 의전관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지금 전하의 반응을 누군가 절차를 중단할 핑계로 삼으면 안 됩니다."
카시안의 턱이 굳었다.
세리아나는 낮게 덧붙였다.
"전하께서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증거를 치우는 이유가 되게 하지도 않겠습니다."
잠시 뒤 카시안은 벽난로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한 걸음에 별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는 세리아나를 막지 않았다. 그녀도 그를 방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아르덴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재받이 손잡이와 바닥 틈을 먼저 보존하겠습니다."
미나가 밀랍 먹인 종이를 펼쳤다. 손은 떨렸지만 종이는 정확히 펴졌다.
세리아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 집게를 쓰세요. 손으로 닿지 않게."
"예. 대공비 전하."
미나의 대답은 작았지만 분명했다.
문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남루한 작업복 위에 황궁 창고 표식을 단 사내가 들어왔다. 머리카락에는 회색 가루가 묻어 있었고 손톱 밑은 검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서지 마십시오."
세리아나가 말했다.
사내가 어정쩡하게 멈췄다.
"이름과 직무를 말하십시오."
"에딘입니다. 남쪽 창고 임시 보수 물품을 분류합니다."
"남쪽 온실 보수 분류를 아십니까."
에딘의 입술이 마른 소리를 냈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물품입니까."
그가 의전관을 보았다.
세리아나는 바로 말했다.
"지금 대답을 늦춘 이유도 기록됩니다."
에딘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폐온실 수리 자재입니다. 습기를 잡는 밀랍 초와 향재, 말린 꽃가루가 들어갑니다. 은색 광물 가루를 아주 조금 섞은 방습재도 있습니다."
"연회 초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대답이 이번에는 빨랐다.
"손님 앞에서 태우는 물건이 아닙니다. 냄새가 강하고 검은 연기가 납니다. 지침에도 보수 구역 밖에서는 쓰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황실 기록관의 펜이 다시 움직였다.
세리아나는 샹들리에 아래에서 보존한 초와 별실 촛대의 밑동을 차례로 떠올렸다. 누르스름한 밀랍. 검은 연기. 꽃을 태운 듯한 단 향. 은빛 가루.
"오늘 무도회장과 별실로 반입된 물품 중 그 분류가 있었습니까."
에딘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남쪽 창고에서 빠져나간 묶음은 있었습니다."
"누가 가져갔습니까."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창고 반출대에 표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어떤 표식입니까."
에딘의 시선이 로젤린 쪽으로 흔들렸다.
"황녀 전하 서기관실 보조 표식이었습니다."
로젤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나는 그런 표식을 내린 적 없습니다."
"내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리아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식이 있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표식이 진짜인지 위조인지 확인하면 됩니다."
로젤린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 침묵은 인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숨기는 말도 아니었다.
카시안이 문가에서 숨을 내쉬었다. 검은 선이 손목 쪽으로 아주 얇게 뻗었다가 멈췄다.
세리아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누군가는 대공의 상태를 먼저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방의 향은 또 뒤로 밀려날 것이다.
세리아나는 창을 가리켰다.
"창을 조금 여십시오. 외부 시선이 문제라면 가림막을 세우면 됩니다. 향이 남은 상태로 점검구를 열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로젤린도 거절하지 못했다.
시녀 둘이 창 아래 두꺼운 휘장을 잡아 올렸다. 틈이 열리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들어왔다. 단 향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지만 얇아졌다.
카시안의 손끝 떨림도 조금 늦춰졌다.
아르덴이 재받이 손잡이를 보존한 뒤 천천히 당겼다.
쇠가 긁히는 소리가 별실 바닥을 타고 퍼졌다.
재받이 아래에는 작은 점검구가 있었다.
흔히 쓰는 장식 벽난로라면 필요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별실은 오래된 황궁 건물에 붙어 있었다. 재를 치우는 좁은 통로가 아래로 이어져 있었고 통로 안쪽 공기는 방 안보다 더 눅눅했다.
점검구 테두리에는 검은 재가 얇게 묻어 있었다.
미나가 종이를 받쳐 들었다. 아르덴은 집게로 첫 번째 조각을 들어 올렸다.
누르스름한 밀랍 조각이었다.
그 표면에는 아주 작은 글자가 눌려 있었다.
남쪽.
두 번째 조각은 종이 띠였다. 끝이 그슬렸고 가운데가 찢겨 있었지만 두 글자는 남아 있었다.
보수.
세리아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단 향이 목 안을 긁었다.
손목 안쪽이 욱신거렸다. 리본 아래의 반점이 뜨겁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기록하십시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별실 벽난로 아래 점검구에서 누르스름한 밀랍 조각과 그슬린 종이 띠가 나왔습니다. 밀랍에는 남쪽이라는 표식이 남아 있고 종이 띠에는 보수라는 글자가 남아 있습니다."
황실 기록관은 이번에도 로젤린을 보지 않았다.
그는 바로 적었다.
세리아나는 에딘을 보았다.
"남쪽 온실 보수 분류 묶음에도 이런 종이 띠를 씁니까."
"씁니다. 창고 번호와 분류명을 감아 둡니다."
"무도회장 샹들리에 문제 초에도 같은 묶음 번호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받침이나 초 밑동에 눌림이 남았다면 가능합니다."
아르덴이 짧게 말했다.
"샹들리에 초 받침 번호를 대조하겠습니다."
의전관이 한 걸음 나섰다.
"이제 충분합니다. 발견물은 황궁에서 보관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세리아나는 즉시 답했다.
"황궁 기록과 대공가 기록에 같은 번호로 나눠 보존합니다. 한쪽만 보관하면 훼손 여부를 가릴 수 없습니다."
"대공비 전하. 이곳은 황궁입니다."
"그래서 황궁 기록관이 먼저 적었습니다."
세리아나는 한 박자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물건은 대공 전하의 몸에 반응을 일으킨 향과 연결됩니다. 대공가에도 보존권이 있습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오래 머물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문틀을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 작은 변화가 세리아나에게는 대답처럼 들렸다.
로젤린이 결국 말했다.
"양쪽 보존으로 처리하십시오."
의전관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서기관님."
"황녀 전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지금 숨길 수 없습니다."
로젤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세리아나는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로젤린은 자신을 지키려는 것인지 황녀를 지키려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방금 그녀는 숨기는 쪽에서 한 발 물러났다.
그때 문밖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천이 문틀에 스치는 소리.
루시엘이 있던 자리였다.
카시안이 눈을 들었다.
세리아나는 아직 돌아보지 않았다.
"헬라 님은 문밖 인원을 기록해 주세요. 지금 나간 사람과 남은 사람을 구분합니다."
헬라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예. 대공비 전하."
세리아나는 점검구 안쪽을 다시 보았다.
검은 재 사이에 은빛 잔가루가 있었다. 그리고 재 아래에는 아주 가느다란 긁힌 자국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와 있었다.
무언가를 별실 안에서 떨어뜨린 흔적이 아니었다.
아래 통로에서 밀어 올린 흔적이었다.
"아르덴 님. 점검구 안쪽 벽면도 기록해 주세요."
"아래에서 위로 긁힌 자국이 있습니다."
"그대로 남기십시오."
세리아나는 천천히 말했다.
"향은 별실 안에서 태운 것만이 아닙니다. 아래 통로에서 올려 보낸 흔적이 있습니다."
에딘이 숨을 삼켰다.
의전관의 입술이 굳었다.
로젤린은 기록판을 끌어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카시안이 문가에서 낮게 말했다.
"그 통로는 어디로 이어지나."
이번에는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세리아나는 카시안을 보았다.
그의 눈은 아직 인간의 눈이었다. 검은 선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더는 번지지 않았다.
"창고로 가겠습니다."
세리아나가 말했다.
"지금 바로."
의전관이 반박하려 했지만 로젤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남쪽 창고 반입 대장은 이 시간에 열 수 없습니다."
"그럼 닫힌 대장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세리아나는 보존된 밀랍 조각을 보았다.
"오늘 밤 움직인 물건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기록도 기다리면 안 됩니다."
미나가 품에 안은 금빛 리본 보존본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아르덴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세리아나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미나."
"예."
"리본 보존본은 아직 열지 않습니다. 다만 향이 강해지면 바로 말하세요."
미나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조금 비슷합니다."
그 말에 별실 안의 공기가 다시 굳었다.
세리아나는 문밖을 보았다.
루시엘이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금빛 리본과 벽난로 아래 재.
별실과 남쪽 창고.
그리고 황녀 전하의 서기관실 보조 표식.
조각들이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세리아나는 손목 안쪽의 통증을 눌러 감추고 문턱을 넘었다.
카시안이 반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세리아나."
그가 낮게 불렀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거짓말이면 멈춘다."
그 말에 세리아나는 아주 잠깐 숨을 삼켰다.
명령이 아니었다.
그녀가 무너지기 전에 붙잡겠다는 말이었다.
"그럼 아직은 걷겠습니다."
세리아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황녀의 이름도 베르딘의 이름도 아니었다.
증거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