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13화: 검은 인장
폐온실의 덩굴은 아직 카시안의 앞을 막고 있었다.
손끝으로 잡아당기면 쉽게 끊어질 것처럼 가늘었다. 그런데도 카시안은 그 줄기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세리아나는 서쪽 문틈 아래에 붙은 연갈색 재를 보았다.
탄 꽃잎처럼 얇았다. 바람에 쓸려온 재라면 안쪽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재는 문 아래 좁은 틈을 따라 일자로 눌려 있었다.
바깥에서 밀려든 흔적이었다.
"아르덴."
"예."
"재가 섞인 흙과 섞이지 않은 흙을 나누어 보존해 주세요. 긁지 말고 얇게 떠야 합니다."
아르덴은 즉시 무릎을 굽혔다. 미나는 물병을 품에 안은 채 한 걸음 다가왔고 헬라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카시안은 뒤에서 낮게 말했다.
"너는 쉬어야 한다."
세리아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쉬면 재가 사라집니다."
"네 손목도 사라질 것처럼 굴고 있다."
미나가 숨을 삼켰다.
세리아나는 리본 아래 손을 감췄다. 계약을 어긴 질문은 아니었다. 걱정이었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 어려웠다.
"괜찮습니다."
"방금은 괜찮아 보이려고 한 말이다."
세리아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카시안이 그녀에게서 배운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폐온실 서쪽 문을 보았다. 붉은 기운은 눈가에서 거의 빠졌지만 손등의 검은 선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성 밖에서 불렀다."
"예."
"내가 다시 움직이면."
"전하께서 먼저 땅을 붙드십시오."
카시안의 손끝이 굳었다. 그는 조금 전 발톱을 박아 넣었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돌에는 깊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세리아나는 그 자국을 보며 말했다.
"전하께서 멈추셨다는 증거입니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번에는 부정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르덴은 재와 흙을 밀랍 먹인 종이에 따로 담았다. 서쪽 문 바깥의 흙은 안쪽 흙보다 차가웠다. 문턱 바로 밖에는 아주 가느다란 발자국 같은 선이 남아 있었다. 사람 발자국이라기에는 너무 얕고 짐승 발자국이라기에는 너무 곧았다.
헬라가 낮게 말했다.
"문지기가 몰랐다면 더 이상합니다."
"그 말을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세리아나는 일어섰다.
무릎이 조금 흔들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카시안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세리아나의 발끝과 손목을 놓치지 않고 따라왔다.
서쪽 정원문으로 가는 길에는 밤이 먼저 내려와 있었다.
해는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지만 성벽 가까운 흙은 검게 식어 있었다. 발밑에는 서리가 낀 것처럼 얇은 흰 막이 퍼져 있었다.
문지기 로엔은 초소 앞에서 그들을 맞았다.
젊은 기사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런데도 기록판을 내미는 손은 지나치게 빠르고 반듯했다.
"이상 출입은 없었습니다. 대공 전하."
카시안의 눈이 낮아졌다.
"누가 이상을 물었지."
로엔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세리아나는 기록판을 받았다.
정원문이 봉쇄된 시간, 문지기 교대 시간, 순찰 확인 표식이 빈틈없이 적혀 있었다. 잉크의 선도 가지런했다.
지나치게 깨끗한 기록이었다.
"오늘 저녁 초소에 초를 켰습니까?"
"예. 보급 초를 썼습니다."
"단 냄새가 나는 초였습니까?"
"아닙니다."
대답이 조금 빨랐다.
미나가 초소 안쪽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저쪽에서 냄새가 납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낡은 보관 상자가 있었다. 빗자루와 손등받이가 들어 있는 물건이었다.
아르덴이 상자를 들어 올리자 바닥 아래에서 접힌 천 조각 하나가 나왔다.
천에는 연갈색 재가 묻어 있었다. 아주 미세한 은색 가루도 반짝였다.
그리고 단 향이 났다.
서쪽 탑 촛대에서 맡았던 냄새.
폐온실 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던 냄새.
카시안의 손등 위 검은 선이 짧게 꿈틀거렸다.
세리아나는 바로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카시안은 멈췄다.
이번에도 멈췄다.
그 사실만으로도 초소 안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아르덴의 얼굴이 굳었다.
"로엔. 이 천은 무엇이냐."
"모릅니다. 저는 정말..."
"모른다는 말은 아직 이르다."
카시안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로엔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정원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맹세합니다."
세리아나는 로엔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끝에 검은 밀랍이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
"손을 씻었습니까?"
로엔이 입을 다물었다.
"기록판의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대 확인은 한 시간 전으로 되어 있네요."
로엔의 얼굴이 더 하얘졌다.
아르덴이 기록판을 받아 들었다.
세리아나는 천 조각을 직접 만지지 않았다. 밀랍 먹인 종이에 올리게 하고 보관 상자 바닥의 먼지도 따로 담게 했다.
"누군가 이 초소 안에 들어왔습니다. 로엔 경이 문을 열었는지, 누군가 로엔 경을 지나갔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물건은 남았습니다."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심문한다."
"지금은 아닙니다."
세리아나는 기록판을 다시 보았다.
"여기서 바로 죄를 정하면 진짜 통로가 닫힙니다."
카시안의 눈 안쪽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 숨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덴. 로엔은 근무지에서 떼어 둬라. 감금하지는 마라. 말은 기록하게 하고 누구와도 접촉시키지 마."
"예. 전하."
로엔은 거의 쓰러질 듯 고개를 숙였다.
세리아나는 기록판의 마지막 줄을 다시 보았다.
이상 없음.
그 말 아래에는 작은 검은 밀랍이 찍혀 있었다. 문지기 확인 표식이라고 하기에는 색이 너무 짙었다.
카시안도 그것을 보았다.
"집무실로 간다."
그 목소리는 분노보다 결정에 가까웠다.
집무실의 불은 모두 낮춰졌다.
책상 위에는 서쪽 정원문 기록판, 초소에서 나온 천 조각, 폐온실 문틈의 재와 흙이 차례로 놓였다. 헬라는 폐온실 출입 기록을 품 안에 넣고 있었다. 미나는 문가에 섰지만 세리아나가 돌아보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카시안은 책상 아래 서랍을 열었다.
먼저 나온 것은 짧은 단검이었다.
검집은 검은 가죽으로 감겨 있었고 손잡이 끝에는 발레리우스 문양이 작게 박혀 있었다. 장식용 검이 아니었다. 손에 쥐고 움직이기 좋은 무게였다.
"받아라."
세리아나는 단검을 보았다.
"저를 무장시키시겠다는 겁니까?"
"내 뒤에 숨기겠다는 뜻은 아니다."
카시안은 잠시 말을 골랐다.
"네게 허락을 구하지 않는 자가 다가올 때, 네가 물러서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뜻이다."
세리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검보다 무거웠다.
카시안은 다시 서랍에서 작은 검은 돌 인장을 꺼냈다.
이번에는 아르덴마저 숨을 삼켰다.
세리아나는 그 물건이 단검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대공가의 보조 인장이다. 내 공식 인장과 문양은 같지만 가장자리 금의 방향이 다르다. 내부 보존 명령, 조사 요청, 출입 기록 열람에 쓸 수 있다."
"왜 제게 주십니까?"
"네가 계속 내 허락을 기다리면 늦는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됐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이름으로 길을 열었다면, 내 이름으로 닫을 사람도 필요하다."
"전하께서 하시면 됩니다."
"나는 밤마다 내 이름을 잃는다."
집무실이 조용해졌다.
카시안은 인장을 세리아나의 손에 억지로 쥐여 주지 않았다.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받지 않아도 된다."
세리아나는 검은 돌 인장을 내려다보았다.
권한이었다.
동시에 족쇄가 될 수도 있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라."
"이 인장으로 제 능력을 명령할 수 없다는 조항을 계약서와 같은 효력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인정한다."
"제가 이 인장을 쓴 기록은 모두 남깁니다. 아르덴 님과 헬라가 각각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
"그리고 이 인장은 제게 대공가를 대신해 거짓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카시안의 입매가 희미하게 굳었다.
"나는 네게 거짓말을 시키려고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세리아나는 먼저 단검을 받았다.
검집은 차가웠다. 하지만 손에 익힐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다음 인장을 들었다.
검은 돌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도 대공성의 닫힌 문 하나가 아주 작게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빌린 열쇠가 아니었다.
맡겨진 권한이었다.
카시안의 시선은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 리본 아래 숨은 손목에 한 번 닿았지만 이번에도 묻지 않았다.
"세리아나."
"예."
"단검은 사람을 찌르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요?"
"네게 다가와도 되는지 묻지 않는 자에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 말라는 뜻이다."
세리아나는 잠시 그를 보았다.
투박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물러서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었다.
아르덴이 기록판을 펼쳤다.
"전하. 정원문 기록의 검은 밀랍과 비교해야 합니다."
세리아나는 새로 받은 인장을 밀랍 옆에 놓았다.
카시안의 공식 인장, 보조 인장, 그리고 정원문 기록판 아래 찍힌 검은 밀랍.
셋은 멀리서 보면 비슷했다.
가까이 보면 달랐다.
세리아나는 숨을 낮게 들이켰다.
"이쪽 금은 아래로 빠졌습니다. 서쪽 탑 임시 지시 쪽지와 같습니다."
아르덴의 얼굴이 굳었다.
카시안의 눈이 기록판에 박혔다.
"또 내 이름인가."
"아직은 전하의 이름처럼 보이게 만든 것뿐입니다."
세리아나는 기록판 뒤쪽을 넘겼다. 얇은 보조 기록지가 끼워져 있었다. 평소 물품 반입을 적는 종이였다.
마지막 줄에는 작고 반듯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온실 보수용 초와 향재. 대공가 승인.
승인란에는 검은 밀랍이 찍혀 있었다.
아르덴이 즉시 말했다.
"저는 승인한 적 없습니다."
카시안도 낮게 말했다.
"나도 없다."
세리아나는 초소에서 나온 천 조각을 보았다.
연갈색 재와 은색 가루. 그리고 단 향.
온실 보수용 초와 향재.
죽은 온실을 살리는 이름으로 들어온 물건이 오히려 온실 아래의 검은 뿌리를 깨우고 있었다.
카시안의 손등에 검은 선이 다시 꿈틀거렸다.
세리아나는 인장을 손바닥에 쥐었다.
"전하."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왔다.
"이번에도 사람을 먼저 부르지 마십시오."
그의 눈 안쪽에서 붉은 기운이 희미하게 일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무엇을 먼저 하지."
세리아나는 새로 받은 검은 인장을 기록판 옆에 내려놓았다.
"이 물건이 들어온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때 집무실 밖에서 짧은 발소리가 멈췄다.
문 너머로 하급 시종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황도에서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카시안의 얼굴이 더 차가워졌다.
시종이 문 아래로 밀어 넣은 봉투에는 황실의 금색 문양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는 아주 희미한 단 향이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