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귀환 무신의 백수 생활

2화: 게이트 앞 민원 처리
주민센터 정문을 밀고 나서는 순간 강한얼의 코끝에 썩은 흙냄새가 들러붙었다.
검은 게이트는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천천히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노란 학원 버스가 그 앞에 비스듬히 멈춰 있었고 운전석 쪽 유리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문이 안 열려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기사는 핸들을 붙잡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얼은 뒤를 돌아보았다. 주민센터 안에서는 박 과장이 목이 쉬도록 외치고 있었다.
"뒷문으로! 어르신 먼저 모셔! 박 서기 어디 있어!"
민원인 몇이 정문 쪽으로 뛰어나오려 하자 한얼은 손을 들었다.
"이쪽은 막혔습니다. 뒤로 가세요."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그래!"
성질 급한 남자가 한얼의 어깨를 밀치려 했다. 한얼은 그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방향만 틀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려 후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내가 왜 이쪽으로..."
"살고 싶으시면 계속 뛰십시오."
그 말에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천장 쪽 간판 하나가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한얼은 시선도 주지 않고 손끝으로 허공을 툭 쳤다. 철제 간판이 보이지 않는 벽에 맞은 듯 방향을 바꾸더니 화단의 흙바닥에 처박혔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다들 비명과 사이렌 속에서 제 발을 찾기 바빴다.
'C급이라.'
한얼은 검은 구멍 너머를 보았다. 현대의 장비가 무슨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는지는 몰랐다. 다만 저 안쪽에서 기어 나오는 사기와 마력의 농도는 절대 C급이 아니었다.
무림의 혈교 장로들이 부리던 시체진보다 조금 덜 불쾌한 정도.
그 정도면 이 동네 한 블록쯤은 어렵지 않게 씹어 먹는다.
"나 첫날인데."
한얼은 낮게 중얼거렸다.
첫 출근. 첫 민원 창구. 첫 점심 짜장면 곱빼기.
그 소박한 꿈 위로 검은 손톱 하나가 게이트 밖으로 삐져나왔다. 길쭉한 팔이 아스팔트를 찍자 도로가 찰흙처럼 움푹 꺼졌다.
한얼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공공시설 훼손은 좀 선 넘지."
첫 번째 몬스터는 네 발로 기어나왔다.
개와 원숭이를 뒤섞은 듯한 몸뚱이에 사람 손가락처럼 긴 발톱이 달려 있었다. 놈은 버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린 침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연기를 피웠다.
아이들이 더 크게 울었다.
"조용히."
한얼이 말했다.
그 말은 버스 안에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울음이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다. 살기보다 더 짙은 기운이 도로 위를 눌렀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한얼을 향해 튀어 올랐다.
한얼은 길가에 박힌 표지판 기둥을 붙잡았다. 콘크리트와 함께 박혀 있던 금속 기둥이 무 뽑히듯 뽑혀 나왔다.
퍽.
크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러나 몬스터의 머리는 몸보다 먼저 게이트 안쪽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몸뚱이가 두어 걸음 더 달리다가 힘없이 무너졌다.
"요즘 괴물은 머리도 약하네."
한얼은 표지판을 어깨에 걸치고 버스로 다가갔다. 버스 문은 충격으로 틀어져 있었다. 안에서는 초등학생 대여섯 명이 서로를 끌어안고 떨고 있었다.
"얘들아. 눈 감고 열까지 세라."
"아저씨 누구예요?"
"주민센터 직원."
"주민센터가 뭐예요?"
"나중에 커서 등본 뗄 때 알게 된다."
한얼은 문틈에 손가락을 넣고 살짝 당겼다. 쇠가 종이처럼 찢어졌다. 너무 쉽게 뜯겨 나가서 그는 순간 멈칫했다.
'힘 조절. 힘 조절.'
그는 문짝을 바닥에 조용히 눕힌 뒤 아이들을 하나씩 내려주었다. 지나가던 젊은 여자가 떨리는 손으로 아이 하나를 받아 안았다.
"저쪽 골목으로 가세요. 뛰지 말고 빨리."
"저기요. 방금 그 문을..."
"원래 고장 나 있었습니다."
여자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지만 아이가 울먹이자 곧장 골목으로 달렸다.
그때 게이트 안에서 또 다른 울음이 번졌다. 이번에는 세 마리였다. 아니 다섯 마리.
검은 짐승들이 서로의 등을 밟고 쏟아져 나왔다. 등에는 뼈로 된 돌기가 솟아 있었고 눈구멍에서는 붉은 불빛이 번쩍였다.
한얼은 버스 앞에 섰다.
"관리국인지 뭔지 올 때까지 기다리면 점심시간이 끝나겠군."
그는 표지판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그럼 민원은 신속 처리다."
싸움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첫 놈은 달려드는 각도가 정직했다. 한얼은 옆으로 반 발짝 움직여 표지판을 휘둘렀다. 몬스터의 갈비뼈가 통째로 접히며 옆 건물 셔터에 박혔다.
둘째는 위에서 덮쳤다. 한얼은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손바닥으로 놈의 턱을 올려쳤고 놈은 몸을 뒤집은 채 게이트 입구 위쪽에 처박혔다.
셋째와 넷째는 동시에 왔다.
"합공?"
한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무림에서 합공이란 최소 스물은 모여야 입에 올릴 말이었다. 두 마리가 양쪽에서 덤비는 정도로는 동네 체조에도 못 끼었다.
그는 표지판을 놓고 양손을 뻗었다. 검지와 중지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두 몬스터의 미간에 작은 구멍이 생겼고 놈들은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졌다.
마지막 놈은 멈춰 섰다.
지능이 있었다.
놈은 한얼과 게이트를 번갈아 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검은 구멍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에게 보고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어딜."
한얼의 발이 바닥을 눌렀다.
쿵.
도로 전체가 한 번 흔들렸다. 다음 순간 한얼의 몸은 게이트 앞에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도망치던 놈의 목덜미를 잡았다.
마력의 냉기가 손끝으로 기어올랐다.
순간 한얼의 눈썹이 꿈틀했다.
몬스터의 몸속에 실 같은 검은 기운이 박혀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게이트라면 있을 수 없는 흔적이었다. 누군가 멀리서 줄을 묶어 당기는 듯한 감각.
"주인이 있나?"
놈은 대답 대신 목을 꺾어 한얼의 손을 물려 했다.
한얼은 대답을 포기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몬스터의 형체가 검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게이트 안쪽이 크게 요동쳤다.
한얼은 주민센터 쪽을 돌아보았다. 박 과장이 아직 안에 남은 사람을 끌어내고 있었다.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저 양반은 겁이 많은데 도망은 안 가네."
나쁘지 않았다.
한얼은 어깨를 굴렸다.
"그럼 나도 월급값은 해야지."
그는 검은 균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게이트 내부는 동굴과 늪 사이 어딘가를 닮아 있었다.
천장은 낮고 바닥은 젖은 살가죽처럼 꿈틀거렸다. 벽면에는 붉은 핏줄 같은 선들이 얽혀 있었고 그 선들이 한가운데 떠 있는 검은 덩어리로 모여들었다.
핵.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부를 물건이었다.
핵 주위에는 사람 키의 두 배쯤 되는 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까 밖으로 나온 놈들과 같은 종이었지만 덩치와 기운이 달랐다.
놈이 고개를 들었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캬아아아악!
소리가 공간을 찢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비명만으로도 기절했을 것이다.
한얼은 귀를 후볐다.
"시끄럽다. 민원실에서도 그렇게 소리 지르면 번호표 다시 뽑아야 해."
괴물이 튀어 올랐다. 바닥의 살가죽이 함께 솟구쳤고 벽의 핏줄이 채찍처럼 한얼을 향해 뻗었다.
한얼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무림에서 그는 검으로 천하를 눌렀다. 그러나 검이 없다고 무신이 무신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손날은 검이 되고 발끝은 창이 되며 숨결은 산을 가르는 바람이 된다.
첫 손날이 채찍들을 잘랐다.
둘째 손날이 괴물의 앞발을 떼어냈다.
셋째 손날은 놈의 가슴을 열었다.
괴물이 뒤로 밀려나 핵을 등졌다. 그제야 한얼은 놈이 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핵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검은 실들이 괴물의 척추를 파고들어 있었다.
"불쌍하다고 해줄 정도는 아니고."
한얼은 손가락을 세웠다.
"그래도 오래 끌 일은 아니지."
그의 손끝이 괴물의 미간을 찍었다. 괴물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핵이 맹렬하게 뛰었다. 검은 덩어리 속에서 눈처럼 보이는 것이 열렸다. 그것은 한얼을 보았다.
한얼도 그것을 보았다.
아주 잠깐 낯선 시선이 맞닿았다. 먼 곳에서 누군가 이쪽을 엿보고 있었다. 무림의 사마외도들이 쓰던 주술과 비슷하지만 훨씬 끈적하고 비겁한 방식이었다.
"너냐?"
대답은 없었다.
핵이 터지듯 팽창했다. 한얼은 주먹을 쥐지 않았다. 그저 검지 하나를 앞으로 찔렀다.
점혈.
무림에서는 사람의 혈도를 찍어 움직임을 멈추는 기술이었다. 한얼에게는 공간의 흐름과 기운의 매듭도 혈도와 다르지 않았다.
손끝이 핵의 중심을 찔렀다.
쩌적.
검은 덩어리에 금이 갔다. 게이트 전체가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퇴근 전까지 원상 복구는 알아서 해라."
한얼은 붕괴하는 공간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주민센터 앞 게이트는 발생 십이 분 만에 소멸했다.
공식 방송에서는 C급 게이트의 불안정 자연 붕괴라고 떠들었다. 현장에 도착한 헌터 관리국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측기를 두드렸다. 수치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얼은 그때 주민센터 1층 화장실 창문 아래에서 먼지를 털고 있었다.
"좀 과했나."
셔츠 소매가 찢어져 있었다. 넥타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굴에는 흙먼지가 묻었다.
그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거울을 보았다. 뿔테 안경을 다시 쓰자 제법 얌전한 신입 공무원으로 보였다.
"좋아. 배탈 난 사람치고는 자연스럽군."
문을 열고 나오자 박 과장이 복도 끝에서 달려왔다.
"강한얼 씨!"
"예. 과장님."
"이 사람이 진짜! 대피하라니까 어디를 갔다 온 거야! 화장실? 정말 화장실이었어?"
"급했습니다."
박 과장은 더 말하려다 한얼의 얼굴과 찢어진 소매를 보았다. 그러더니 괜히 헛기침을 했다.
"다치진 않았고?"
"멀쩡합니다."
"됐어. 살아 있으면 됐지. 신규 첫날부터 사람 속을 이렇게 뒤집어 놓나."
투덜거리는 목소리였지만 끝이 떨렸다. 한얼은 그제야 박 과장이 정말로 걱정했다는 걸 알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면 오후에 민원 서류 정리 두 배로 해."
"그건 좀..."
"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검은 밴 한 대가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남녀가 내렸다. 가슴에는 신성을 뜻하는 은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도로 위에 남은 흔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스팔트에는 얇고 곧은 선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불에 탄 것도 아니고 폭발에 갈라진 것도 아니었다. 칼날로 금속을 자른 듯 매끈했다.
"이거 관리국 장비 흔적 아닙니다."
"몬스터끼리 싸운 자국은?"
"아닙니다. 너무 깨끗합니다. 절단면에 마력 찌꺼기도 거의 없습니다."
"현장에 헌터 투입 전이었다면서요."
조사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주민센터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먼지를 묻힌 신입 공무원이 박 과장에게 혼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얼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읽었다.
강한얼.
조사원은 조용히 단말기에 이름을 입력했다.
한얼은 그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모른 척했다. 지금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과장님."
"또 왜."
"혹시 짜장면은..."
박 과장이 허탈하게 웃었다.
"불었지."
한얼은 눈을 감았다.
게이트보다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날 오후 신성 길드의 내부 보고망에 짧은 현장 메모가 올라갔다.
[동작구 주민센터 앞 C급 게이트 조기 소멸. 현장 절단흔 비정상. 민간인 추정 인물 강한얼 확인 필요.]
보고의 수신자는 이설아.
국내 최대 길드 신성의 A급 헌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