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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3화

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

3화: 서림동 현장

"안 된다."

한태호의 대답은 예상보다 빨랐다.

승우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교복 셔츠 위에 낡은 후드 집업을 걸쳤고 책가방 안에는 교과서 대신 줄자와 작은 수첩과 목장갑이 들어 있었다.

"구경만 할게요."

"공사 현장이 구경하는 데냐?"

"오늘 3층 슬래브 보죠."

한태호의 손이 작업화 끈 위에서 멈췄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아."

승우는 대답 대신 작업화 밑창을 보았다. 말라붙은 회색 모르타르와 거푸집 박리제의 미끄러운 광택. 그 사이에 짧게 잘린 결속선 조각이 박혀 있었다.

눈앞의 푸른 창은 새벽부터 같은 경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서림동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
[예비 위험도: 43%]
[위험 징후: 3층 슬래브 거푸집 하중 편심]
[예상 악화 시간: 68시간 이내]

"작업화에 묻은 걸 봤어요. 고강도 모르타르 분진하고 거푸집 박리제. 어제 거푸집 손봤잖아요."

"네가 그런 걸 어떻게 구분해."

"냄새가 달라요."

완전한 설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짓도 아니었다. 현장에서 오래 산 사람은 재료의 냄새를 기억한다. 승우는 그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았다.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던 어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승우야. 학교는?"

"오전만 빠질게요."

"그게 말이 돼?"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승우도 알았다.

하지만 병원 복도에서 들었던 낮은 말이 계속 귀를 찔렀다.

받침대가 한쪽으로 밀렸다더라.

그 말 하나 뒤로 아버지의 걸음은 평생 비뚤어졌다. 집안의 웃음은 줄었고 어머니는 병원비 봉투를 만지며 밤마다 한숨을 삼켰다.

이번에는 그 복도를 다시 걷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승우가 낮게 말했다.

"방해 안 할게요. 대신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제가 괜한 소리 하는 거면 바로 학교 갈게요."

한태호는 한참 동안 아들을 노려보았다.

어제 거실 벽을 열었을 때도 저 눈이었다. 겁먹은 아이의 눈이 아니라 이미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의 눈.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마라."

"네."

"소장 눈에 띄면 바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도시락 하나를 더 꺼냈다.

"먼지 마시지 말고 마스크 써. 그리고 이상한 데 올라가지 마."

승우는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서림동 현장은 골목 끝에 있었다.

녹슨 철제 가림막 너머로 3층까지 올라간 골조가 보였다. 1층은 점포로 쓰고 2층과 3층은 사무실로 나눌 예정인 흔한 근린생활시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다.

승우의 눈에는 아니었다.

[대상: 서림동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
[공정: 3층 슬래브 타설 준비]
[구조 안정성: 불안정]
[위험도: 46%]

붉은 선들이 거푸집 아래를 그물처럼 뒤덮었다. 정상적인 하중 흐름은 보와 기둥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임시 지지 구조의 힘은 오른쪽 계단실 방향으로 심하게 쏠려 있었다.

"왜 그래?"

한태호가 낮게 물었다.

"동바리부터 봐야 해요."

"말 낮춰. 여기선 다 어른이야."

"네."

입구에서 김반장이 손을 들었다.

"태호 형님 왔수? 어라. 뒤에는 아들?"

"건축 쪽 관심 있다길래 잠깐 데려왔어."

"요즘 애들은 현장 먼지도 구경하나 보네."

김반장이 웃었다. 하지만 눈 밑의 피로는 숨기지 못했다.

현장 안쪽에서는 전동톱 소리와 망치 소리가 뒤엉켰다. 위층에서는 작업자들이 철근망 위를 걸으며 레미콘 호스를 받을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승우는 바닥 아래부터 보았다.

동바리들이 숲처럼 서 있었다. 문제는 그 숲의 간격이었다. 중앙부는 촘촘했지만 계단실 쪽 모서리는 눈에 띄게 벌어져 있었다.

하부 받침은 더 나빴다.

몇 개의 동바리는 전용 받침판이 아니라 깨진 벽돌 조각과 합판 자투리 위에 서 있었다. 전날 비에 젖은 흙바닥은 발자국마다 눌렸다.

천장 바로 아래 멍에재 한 줄은 눈으로 보기에도 살짝 배가 불러 있었다. 목재가 하중을 받으면 먼저 결이 운다. 그다음 못 주변이 벌어지고 마지막에는 버티던 선이 한꺼번에 꺾인다.

전생의 현장에서는 그 순서를 너무 자주 보았다.

사람들은 늘 마지막 소리만 사고라고 불렀다. 승우에게는 지금 이 침묵도 이미 사고의 일부였다.

[동바리 간격 불량]
[하부 지지면 침하 가능성]
[위험도: 46% -> 51%]

승우의 목 뒤가 뻣뻣해졌다.

"아버지. 저기 받침 보이세요?"

한태호가 시선을 따라갔다. 얼굴이 조금 굳었다.

"누가 저렇게 괴었어."

"오늘 타설하면 못 버텨요."

"조용히 해."

한태호는 주변을 살폈다. 일용 목수가 현장 시공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순간 다음 일감이 끊길 수도 있었다. 승우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의 값이 사람 목숨이면 계산은 끝난다.

그때 가림막 밖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예. 오늘 무조건 붓습니다. 레미콘 잡아놨는데 미루면 손해가 얼만데요."

노란 안전모를 쓴 사내가 휴대폰을 끊으며 들어왔다. 안전모 앞에는 박문식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김반장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소장님."

박문식의 시선이 승우에게 닿았다.

"쟨 뭐야?"

"태호 형님 아들입니다. 건축 공부한다길래 잠깐..."

"여기가 학원 견학장이야?"

박문식이 한태호를 쏘아보았다.

"태호 씨. 애 데리고 나가. 오늘 바쁜 거 몰라?"

한태호가 승우의 팔을 잡았다.

"가자."

승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타설 전에 동바리 보강부터 해야 합니다."

현장이 조용해졌다.

박문식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뭐라고?"

"계단실 쪽 간격이 넓고 하부 받침이 불량합니다. 멍에재도 이미 휘었어요. 지금 서쪽 모서리부터 콘크리트 부으면 하중이 한쪽으로 몰립니다."

"네가 뭔데 현장 판단을 해?"

"줄자 대보면 나옵니다."

박문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책 몇 장 보고 와서 어른들 일에 끼어드는 거 아니다. 여긴 네 학교 동아리방이 아니야."

"사람 밑에 깔리면 동아리방이든 현장이든 차이가 없습니다."

그 말에 한태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승우야."

박문식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 자식이 진짜."

김반장이 사이에 끼려다 멈췄다. 그의 장갑 끝에는 젖은 흙이 묻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도 그 받침 주변을 밟고 다녔다는 뜻이었다.

"소장님. 그래도 한 번만 더 받쳐 놓고 붓는 게..."

"김 씨까지 왜 이래? 오늘 밀리면 다음 공정 다 꼬여. 발주처에서 아침부터 전화 온 거 못 들었어?"

박문식은 말끝을 씹었다. 손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압박이 잠깐 드러났다.

그때 골목 밖에서 후진 경고음이 울렸다.

삐익. 삐익.

레미콘 차량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위층 작업자들이 호스를 잡으러 움직였다.

[하중 증가 예정]
[현재 위험도: 54%]
[작업 강행 시 위험도 급상승]

승우는 박문식을 똑바로 보았다.

"소장님. 3층 서쪽 모서리부터 붓게 지시했죠."

박문식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호스가 서쪽에 있고 작업자들이 그쪽 철근망 위에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에서 제일 약한 곳이 그쪽과 연결된 계단실 라인입니다."

김반장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소장님. 호스 위치는 맞습니다."

"시끄러워."

박문식이 소리쳤지만 현장에는 이미 작은 균열이 생겼다. 사람들의 눈이 천장 아래 동바리 숲으로 향했다.

승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줄자 주세요."

김반장이 무심코 허리춤의 줄자를 건넸다.

승우는 계단실 쪽으로 걸어갔다. 가장 벌어진 두 동바리 사이에 줄자를 걸고 숫자를 확인했다.

"1미터 42."

"그래서?"

"여기 판재 두께와 멍에재 상태로는 너무 넓습니다. 더구나 저쪽 동바리는 벽돌 위에 서 있어요."

승우가 무릎을 굽혔다.

깨진 붉은 벽돌 조각이 동바리 발 아래에서 모서리만 버티고 있었다. 그 아래 흙은 젖어 검게 눌려 있었다.

"콘크리트 한 차만 올라가도 여기부터 주저앉습니다."

"타설 미루면 손해가 얼만지 알아?"

박문식이 이를 갈았다.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사람 깔리면 그 손해는 누가 책임집니까?"

순간 박문식의 표정이 사라졌다.

한태호는 승우의 어깨를 붙잡고도 끌어당기지 못했다. 그의 시선도 깨진 벽돌과 젖은 흙에 박혀 있었다.

위층에서 작업자가 외쳤다.

"소장님! 차 붙었습니다!"

박문식이 짧게 숨을 뱉었다.

"작업 진행해."

[위험도: 54% -> 63%]

붉은 빛이 거푸집 아래로 번졌다. 승우의 눈에는 계단실 쪽 동바리 하나가 검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아직 콘크리트가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축이 아주 조금 휘어 있었다.

승우가 소리쳤다.

"멈춰요."

"또 뭐야!"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동바리. 지금 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박문식이 비웃음을 띠려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낮은 금속음이 바닥 아래에서 울렸다.

김반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소장님. 소리 났습니다."

한태호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위층 계단 쪽으로 고개를 들고 목청껏 외쳤다.

"위에 있는 사람들 내려와! 당장!"

승우도 같은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호스 놓고 내려오세요! 계단실 쪽 밟지 마세요!"

박문식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그때 위층에서 작업자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어? 바닥이 왜 이렇게 출렁거려!"

현장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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