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

4화: 기울어진 받침대
"어? 바닥이 왜 이렇게 출렁거려!"
위층 작업자의 외침이 허공을 갈랐다.
승우는 계단실 아래의 동바리 숲을 올려다봤다.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동바리. 검은 경고선이 기둥 몸통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동바리 발밑의 깨진 벽돌이 젖은 흙을 누르며 한쪽으로 돌아갔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임시 구조물은 작은 움직임 하나로도 무너진다. 한 기둥이 밀리면 그 옆 기둥이 하중을 받아낸다. 버티던 기둥은 더 무거워지고 그다음 기둥은 더 빨리 휜다.
마지막에는 아무도 피할 틈이 없다.
[위험도: 63%]
[국부 좌굴 진행 중]
"계단실 반대편으로 내려오세요!"
승우가 목청을 높였다.
"가운데 통로로 한 명씩! 벽 쪽 붙지 말고 호스도 놓으세요!"
박문식이 레미콘 차량을 힐끗 보며 소리쳤다.
"호스 잡아! 아직 콘크리트도 안 부었어. 애 말에 현장을 세울 거야?"
"지금 무너지면 호스 잡을 사람도 없습니다."
승우의 대답은 짧았다.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끼이익.
낮고 길게 찢어지는 금속음이 바닥 아래에서 울렸다.
이번에는 박문식도 들었다. 그의 시선이 저절로 문제의 동바리로 향했다.
한태호가 안전모를 벗어 들고 위층을 향해 외쳤다.
"전원 내려와! 장비부터 놓고 내려와!"
"김반장님, 난간 쪽에 몰리면 안 돼요! 중앙 통로로 사람 간격 벌려서 보내세요!"
김반장은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승우가 가리킨 발밑을 보고 얼굴빛을 바꿨다. 깨진 벽돌 모서리가 이미 흙 속으로 반쯤 파묻혀 있었다.
"들었지? 한 명씩 내려와! 뛰지 마!"
그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태호도 뒤따르려 했지만 승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아래에서 받으세요. 계단실 기둥 옆은 지나가면 안 됩니다."
"너는?"
"여기서 봐야 해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라."
한태호는 그렇게 말하고 출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위에서는 작업자들이 철근망 사이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누군가 호스를 놓으며 욕설을 삼켰다. 한 사람이 계단실 쪽으로 발을 옮기려 하자 승우가 다시 외쳤다.
"거긴 안 됩니다! 오른쪽으로 세 걸음 더 가세요!"
작업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쿵.
그가 지나가던 자리의 합판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내려앉았다. 멍에재에서 못 하나가 튕겨 나와 바닥을 굴렀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숨이 동시에 멎었다.
"빨리!"
한태호의 고함이 다시 울렸다.
마지막 작업자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기울어진 동바리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벽돌은 버티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동바리 상부가 거푸집을 밀었고 천장 전체가 낮게 신음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내려오지 않았다.
아직 콘크리트가 타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우는 고개를 들었다. 작업자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온 것을 하나씩 확인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얼굴들. 겁에 질려 서로의 어깨를 붙잡은 손들.
전생의 자신은 무너진 건물 앞에서 이 얼굴들을 보지 못했다. 경고가 묵살된 뒤에는 숫자도 도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무도 깔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가슴을 세게 쳤다.
박문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정도면 다시 받치면 되잖아. 레미콘 차는 이미 왔어."
"안 됩니다."
승우는 동바리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하나가 밀렸다는 건 나머지가 원래 하중보다 더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만 대충 괴면 반대쪽이 먼저 꺾여요."
"네가 뭘 안다고."
"그럼 소장님은 왜 저 받침을 벽돌 위에 세웠습니까?"
박문식의 눈썹이 꿈틀했다.
승우가 손가락으로 흙바닥을 가리켰다.
"전용 받침판도 아니고 깨진 벽돌입니다. 비 맞은 흙 위에 놓았으니 눌릴 수밖에 없어요. 계단실 쪽 동바리 간격도 1미터 42입니다. 이 상태에서 서쪽부터 붓게 하면 하중이 한쪽으로 쏠립니다."
김반장이 젖은 장갑을 내려다봤다.
"어제 배수 못 뺐습니다. 밤새 물이 여기로 고였어요."
"김 씨. 입 다물어."
박문식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한태호가 부서진 벽돌을 발끝으로 굴렸다. 벽돌은 힘없이 가루가 됐다.
"이걸 받침이라고 놓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잖아."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 공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박문식은 답하지 못했다.
승우는 레미콘 기사에게 다가갔다.
"기사님, 타설 보류 부탁드립니다. 현장 구조 확인 전에는 호스 올리면 안 됩니다."
기사는 기울어진 동바리와 흩어진 벽돌을 번갈아 봤다.
"보류 사인 주시면 기다리죠. 대기 시간은 기록합니다."
그 말에 박문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레미콘 한 차가 서 있는 시간은 곧바로 돈이었다.
그러나 작업자들이 전부 보는 앞이었다. 박문식은 결국 손을 내저었다.
"일단... 보류해."
승우는 숨을 내쉬지 않았다.
대피는 시작일 뿐이었다. 기울어진 구조물 아래에는 아직 사람 손으로 되돌려야 할 위험이 남아 있었다.
"기울어진 걸 먼저 빼면 안 돼요."
승우는 바닥에 분필로 동바리 위치를 그렸다. 시스템이 보여 주는 하중의 흐름이 푸른 선으로 겹쳐졌다. 붉은 선은 계단실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고 가장자리에 선 동바리 두 개가 간신히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저걸 빼면 위에서 누르던 힘이 옆으로 튑니다. 먼저 양옆에 새 동바리 두 줄을 세워서 하중을 나눠야 합니다. 그다음에 받침을 바꿔야 해요."
한태호가 표시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각재 가져와. 철판 받침도. 벽돌은 전부 치워."
"태호 씨가 왜 학생 말에 끌려다녀?"
박문식이 쏘아붙였다.
한태호는 망치를 든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소장님이 방법을 말해 보세요. 지금 당장 붓자는 말 말고."
박문식의 시선이 현장을 훑었다. 누구도 그를 거들지 않았다.
김반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단실 쪽은 원래 동바리 네 개 더 넣기로 했었습니다. 자재가 모자라서 간격 좁히자는 지시가..."
"그만해!"
"지금 그만하면 사람 다칠 뻔한 것도 없던 일이 됩니까?"
한태호가 김반장 대신 받아쳤다.
박문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더 굳었다. 그는 통화를 받지 못한 채 전원 버튼을 눌렀다.
승우는 그 짧은 행동에서 충분히 읽었다. 공기를 당기라는 압박은 진짜였다.
그렇다고 안전을 깎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김반장님, 저기 첫 줄 아래 흙부터 파내고 자갈을 채워야 합니다. 물 먹은 흙 위에 철판만 올리면 또 가라앉아요."
"그래. 배수로도 잠깐 내자."
작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우는 위험한 동바리 근처에 누구도 오래 서지 못하게 했다. 한태호와 목수 둘이 양옆에 새 동바리를 먼저 세웠다. 조절 나사를 조금씩 돌릴 때마다 승우는 상부 멍에재의 떨림을 살폈다.
"왼쪽 반 바퀴. 거기서 멈춰요."
"이 정도?"
"네. 더 올리면 반대편 합판이 들립니다."
한태호는 아들의 말대로 손을 멈췄다.
[하중 분산 진행 중]
[위험도: 63% -> 49%]
푸른 선이 두 개의 새 동바리로 갈라졌다.
기존 동바리의 하중이 빠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한태호는 벽돌 조각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그 아래 흙은 검은 죽처럼 질었다.
"이걸 믿고 위에 사람을 올렸단 말이지."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승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생의 현장들에도 이런 받침대가 있었다. 누군가는 비용을 아꼈고 누군가는 공기를 맞췄다. 그 사이에서 작업자들은 늘 가장 먼저 위험을 떠안았다.
이번에는 그 순서를 끊어야 했다.
철판 받침 아래에 자갈과 단단한 각재가 들어갔다. 휜 멍에재 옆에는 새 각재를 덧대고 볼트와 못을 촘촘히 박았다. 작업이 이어질수록 승우의 이마에도 땀이 흘렀다.
목수 하나가 새 동바리를 세우며 물었다.
"학생. 이쪽도 하나 더 넣을까?"
승우는 잠깐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나 더요. 대신 저 보 바로 아래가 아니라 반 칸 옆에 세워 주세요. 거긴 이미 하중이 몰렸습니다."
"알겠어."
처음에는 비웃던 목소리가 사라져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동바리가 수직을 되찾았다. 승우는 줄자를 잡아 간격을 재고 멍에재를 손으로 두드렸다. 둔탁하고 단단한 소리가 돌아왔다.
[구조 안정성: 주의]
[위험도: 49% -> 24%]
"이제는요?"
김반장이 물었다.
"타설은 가능합니다."
승우는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서쪽부터 한꺼번에 붓지 마세요. 중앙에서 얇게 나눠 올리고 계단실 쪽은 마지막입니다. 한 차가 들어올 때마다 아래 동바리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박문식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시간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없습니다."
승우가 그를 바라봤다.
"오늘 이미 확인했잖아요."
박문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재개된 타설은 느렸다.
레미콘 호스가 중앙부터 움직였고 작업자들은 승우가 표시한 구역에만 나뉘어 섰다. 콘크리트가 거푸집 위로 퍼질 때마다 한태호가 아래를 확인했다.
"이상 없다! 다음 구간!"
그 외침이 세 번 반복됐다.
바닥은 더 이상 출렁이지 않았다.
마지막 구간까지 콘크리트가 고르게 채워진 뒤에야 승우는 굳어 있던 어깨를 내렸다.
[긴급 위험 대응 완료]
[구조 분석 경험치 +80]
[보조 기능 '하중 경로 표시'가 활성화됩니다.]
눈앞의 창이 한 번 밝아졌다.
동바리와 보와 기둥을 잇는 가느다란 선들이 전보다 또렷하게 이어졌다. 단순히 위험한 곳을 보는 단계가 아니었다. 힘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한눈에 읽히기 시작했다.
그때 박문식이 현장 사무실 앞에서 말했다.
"오늘 일은 밖에서 떠들지 마. 괜히 애가 소란 피운 걸로 커지면 다들 피곤해져."
승우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이 아니라 사고를 막은 겁니다."
"네가 뭘 막아?"
"애 말 안 들었으면 우린 아직 위에 있었어요."
김반장이 먼저 나섰다.
"동바리 꺾이는 것도 저 애가 먼저 봤고 바닥 출렁인 것도 다 봤습니다."
"맞아요."
철근망 위에 있던 작업자 하나가 헬멧을 벗으며 거들었다.
"중앙으로 나오라고 안 했으면 계단실 쪽으로 갔을 겁니다."
박문식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대꾸하지 못하고 사무실 문을 세게 닫았다.
한태호는 한동안 그 문을 바라보다 승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까는 겁났냐?"
승우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도 끝까지 봤고."
한태호의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오늘 네가 나선 건 잘한 거다. 사람을 살린 거니까."
짧은 말이었다.
그런데 승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전생의 자신은 수많은 경고를 문서로 남겼다. 그 문서는 늘 누군가의 서랍 속에서 묻혔다.
지금 아버지는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다음부터도 위험한 게 보이면 말해라."
"그래도요?"
"그래도 먼저 같이 확인하자. 혼자 들이받지 말고."
승우는 그제야 웃었다.
"네. 아버지."
오후 늦게 한태호는 필요한 못과 장갑을 사러 인근 철물점에 들렀다. 승우는 계산대 옆에서 손에 밴 시멘트 가루를 털었다.
철물점 주인이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아침에 현장으로 철판 받침 나간 게 그쪽이었구나. 태호 씨 아들이 소장하고 붙었다는 소리는 벌써 들었어."
"소장하고 붙은 건 아닙니다."
"사람 안 다치게 한 거면 됐지."
그때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회색 조끼를 입은 중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낡은 건물 사진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사장님, 아까 전화로 말한 철물은..."
남자는 승우를 보고 말을 멈췄다.
철물점 주인이 웃으며 소개했다.
"이 학생이야. 서림동에서 동바리 위험하다고 잡아 세운 애. 최 총무가 찾는 애가 이 애 맞을걸."
남자는 사진을 든 손을 내려놓았다.
"정말 학생이었구먼. 나는 동원시장 상인회 총무 최기석이라고 하네."
한태호가 경계하는 눈으로 승우 앞에 섰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 시장 2층 건물 말입니다. 벽에 금이 가고 비만 오면 복도가 눅눅해져요. 손님도 안쪽까지 안 들어오고요. 수리하자는 사람도 있고 그냥 버티자는 사람도 있어서 난리입니다."
최기석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어두운 복도 끝. 오래된 상가의 출입구 위로 가느다란 균열이 사선으로 뻗어 있었다. 입구 앞에는 물건이 쌓여 있어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도 답답해 보였다.
승우의 시선이 사진에 닿는 순간 푸른 창이 떠올랐다.
[분석 가능 대상 발견: 동원시장 2층 상가]
[구조 결함 및 공간 흐름 이상 징후]
[정밀 분석을 위해 현장 방문이 필요합니다.]
사진 위로 희미한 붉은 선과 탁한 기운이 겹쳐 보였다.
승우는 사진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단순히 금 간 건물이 아니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머물지 못하고 밀려 나가는 공간이었다.
"주소를 남겨 주세요."
최기석의 눈이 커졌다.
"봐 주겠나?"
"직접 보고 말하겠습니다."
승우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너질 건물만 막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