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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2화

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

2화: 첫 번째 균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튜토리얼: 집의 위기를 막아라]

푸른 창은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승우는 세면대 앞에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찬물이 손바닥에 고였고 얼굴에 끼얹는 순간 어린 피부가 따끔하게 조여 왔다.

꿈이라면 이 정도 감각은 없어야 했다.

"승우야! 밥 식는다!"

부엌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전생에서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소리였다. 그런데 승우의 시선은 거울이 아니라 거울 옆 벽면에 박혀 있었다.

[대상: 한태호 가옥]
[부분 분석: 거실 북측 내력벽]
[진행성 균열: 폭 2.1mm]
[원인 후보: 창호 상부 보강근 부식, 결로 누적, 외벽 방수층 손상]
[위험도: 18% -> 21%]

숫자가 올라갔다.

승우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18퍼센트에서 21퍼센트. 단순한 노후가 아니었다. 하중이 한쪽으로 몰리며 균열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방치하면 장마 전에 터진다.'

그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거실로 나왔다. 식탁에는 김이 오르는 된장국과 계란말이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교복 셔츠를 덜 잠근 승우를 보고 눈을 흘겼다.

"밥 먹고 얼른 가. 지각하면 담임한테 또 전화 온다."

"엄마, 저 벽 언제부터 저랬어?"

승우는 식탁 대신 거실 북쪽 벽을 가리켰다.

낡은 꽃무늬 벽지 위에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선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 눈에는 벽지 주름 정도로 보일 흔적이었다. 그러나 승우의 눈에는 벽지 아래 벽체가 푸른 선으로 겹쳐 보였다.

창문 모서리에서 시작된 균열은 사선으로 내려와 내력벽 한복판을 갈랐다.

어머니가 찌개 국자를 내려놓았다.

"그거? 겨울 지나고 생긴 거 같던데. 네 아빠가 주말에 본댔어."

"주말까지 두면 안 돼."

"뭐?"

승우는 대답 대신 벽 앞으로 다가갔다. 손바닥을 대자 축축한 냉기가 묻어났다. 북쪽 외벽의 찬 공기가 단열이 약한 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결로가 철근을 천천히 먹었다. 부식된 철근은 부풀었고 벽을 안쪽에서 밀어냈다. 눈앞의 얇은 금은 결과일 뿐이었다.

[권장 조치]
[1. 균열 주변 마감재 제거]
[2. 임시 지지대 설치]
[3. 부식부 청소 및 방청 처리]
[4. 에폭시 충전 후 보강 철판 고정]

"학교는?"

"늦게 갈게."

"한승우."

어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평소라면 승우는 그 한마디에 밥그릇 앞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베란다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공구함이 낡은 선반 아래 놓여 있었다.

"이 벽 열어봐야 해."

"얘가 아침부터 무슨 소리야!"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목장갑을 낀 한태호가 작업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새벽 현장에서 돌아온 듯 어깨에 톱밥과 시멘트 먼지가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 거실 북쪽 벽이 위험해요."

한태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 어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잠 덜 깼냐?"

"창문 오른쪽 위에서 사선으로 갈라졌어요. 벽지만 보면 얇은데 속 균열은 더 길게 내려왔을 겁니다. 창틀 위 보강근이 녹슬었을 가능성이 커요."

거실이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황당한 표정으로 승우를 보았다. 한태호는 공구함을 내려놓고 벽 앞으로 다가갔다. 손등으로 벽을 두드리자 둔탁한 소리 사이에서 한 지점만 빈 북소리를 냈다.

통.

한태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너 이걸 어떻게 알았어?"

"보였어요."

"뭐가."

"위험한 게요."

설명할 수 없었다. 시스템이라고 말해도 믿을 리 없었다. 믿는다 해도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승우는 숨을 고르고 가장 현실적인 말만 골랐다.

"건축 잡지랑 구조 책을 봤어요. 창문 모서리에서 사선 균열이 나면 그냥 벽지 문제가 아닐 수 있어요. 북쪽 벽이면 결로 때문에 철근이 부식될 수도 있고요."

한태호가 말없이 승우를 바라보았다. 아들의 말투가 고등학생 같지 않다는 사실을 그도 느끼는 듯했다.

"책 봤다고 벽 뜯자는 말이 쉽게 나오냐?"

"뜯는 게 아니라 확인만 할게요. 위험하면 오늘 잡고 아니면 제가 학교 끝나고 벽지 다시 붙일게요."

"생활비 아껴야 하는 집에서 벽을 열겠다고?"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그 말에는 꾸중보다 걱정이 많았다. 승우는 전생에서 자신이 외면했던 표정을 보았다.

몇 만 원짜리 자재값도 계산해야 했던 집. 그는 그런 집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만 했지 무너지지 않게 지키겠다는 생각은 늦게 배웠다.

"큰돈 안 들어가게 할게요."

"네가 뭘 안다고."

"확인만 해도 늦출 수 있어요. 그냥 두면 더 커져요."

승우의 목소리가 자신도 놀랄 만큼 단단하게 나왔다.

한태호는 한참 동안 아들을 보다가 공구함을 열었다. 커터칼과 작은 망치와 수평계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벽지는 내가 가른다. 너는 옆에서 말만 해."

"아버지."

"공구 잡는 손도 제대로 안 굳은 놈이 내력벽을 건드리겠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그냥 보냐."

투박한 말이었지만 승우는 안도했다. 막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커터칼이 벽지를 갈랐다. 꽃무늬 종이가 벌어지자 그 아래 회색 모르타르 면이 드러났다. 머리카락 같던 선은 안쪽에서 확연히 벌어져 있었다. 창틀 모서리 아래로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어머니가 입을 막았다.

"세상에. 이게 뭐야."

[은폐 균열 확인]
[위험도: 21% -> 27%]
[임시 지지 없이 작업 지속 시 균열 확대 가능]

"멈춰요."

승우가 낮게 말했다.

"여기서 더 뜯으면 받침부터 세워야 해요. 창문 위 하중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어요."

한태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중이 쏠렸다고?"

"창틀에 수평계 대보세요."

한태호는 말없이 수평계를 창틀 위에 올렸다. 기포가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밀려 있었다. 일반인은 놓칠 정도였지만 현장 목수의 눈에는 충분히 보였다.

"...기울었네."

그 한마디에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승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구함 안을 살폈다. 목재 쐐기와 각재 몇 개가 있었다. 그러나 임시 받침으로 쓰기엔 길이가 모자랐다.

"아버지, 근처 철물점 아직 열죠?"

"열긴 하지."

"각재 두 장, 조절식 지지대 하나, 에폭시 균열 보수제, 방청제, 얇은 철판이 필요해요. 피스는 콘크리트용으로요."

"학생이 아침부터 철물점 가서 그런 걸 달라면 주인이 기절하겠다."

"아버지가 같이 가주시면 돼요."

한태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눈은 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위험을 인정하고 있었다.

철물점 주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태호 씨, 애가 기술 배워? 왜 학생이 물건을 다 고르나?"

승우는 진열대에서 필요한 것만 골랐다. 에폭시 제품의 경화 시간과 점도를 확인하고 철판 두께를 손끝으로 눌러 보았다.

"이건 너무 얇아요. 2밀리 이상 있나요?"

주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 네가 어디 쓰게?"

"창호 상부 균열 보강에 쓸 겁니다. 너무 얇으면 피스 자리에서 휘어요."

철물점 주인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태호가 짧게 말했다.

"줘요. 애가 고른 걸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식탁의 국은 완전히 식어 있었다. 승우는 교복 상의를 벗고 낡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신문지를 바닥에 깔았다.

"먼지 날리면 밥상까지 다 닦아야 해."

허락이었다.

승우는 각재를 창문 아래에 세우고 조절식 지지대로 천천히 밀어 올렸다.

[하중 흐름 안정화 중]
[우측 상부 응력 집중 완화: 12%]

푸른 선이 벽 안에서 흐르듯 움직였다. 붉게 달아올랐던 균열 주변이 조금씩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거기서 반 바퀴만 더요."

한태호가 지지대 손잡이를 돌렸다.

"됐어요. 더 올리면 창틀이 뒤틀려요."

"너 진짜 이걸 어디서 배웠냐?"

"책에서 배운 거랑... 그냥 알겠어요."

한태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망치와 끌을 건넸다.

"손 조심해라."

승우는 균열 주변의 약한 모르타르를 긁어냈다. 먼지가 올라오자 어머니가 창문을 열었다. 검은 가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부식된 철근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인 확정: 창호 상부 보강근 부식]
[방청 처리 필요]

"녹이 이렇게..."

한태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더 이상 승우를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아이로 보지 않았다. 벽 안에 숨어 있던 위험이 눈앞에 드러난 순간부터 이 일은 아들의 돌발 행동이 아니라 집을 살리는 작업이 되었다.

승우는 철근 표면을 닦고 방청제를 발랐다. 이어 균열 안쪽에 에폭시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전생의 대형 현장과 비교하면 우스울 만큼 작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손끝은 그 어떤 초고층 프로젝트 때보다 긴장했다.

이 집 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로만 계산할 수 없는 하중이 있었다.

"철판 대요."

한태호가 철판을 벽에 맞췄다. 승우는 피스 위치를 표시했다. 균열을 그대로 가로지르지 않고 힘이 양쪽으로 나뉘도록 지그재그로 잡았다.

"여기 박으면 안 돼요. 금 간 선 바로 위라 깨져요. 두 치 옆으로."

"알았다."

드릴 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첫 피스가 박히자 시스템 창의 위험도 숫자가 내려갔다.

[위험도: 27% -> 19%]

두 번째 피스가 들어갔다.

[위험도: 19% -> 11%]

마지막 피스가 철판을 단단히 물었다.

[위험도: 11% -> 4%]
[튜토리얼 조건 충족]

승우는 그 자리에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퀘스트 완료!]
[스킬 '투시(Lv.1)'를 획득했습니다.]
[구조 분석 경험치 +100]
[구조 분석 등급이 F에서 F+로 상승했습니다.]

눈앞이 잠깐 밝아졌다. 벽체 내부의 선들이 더 선명해졌다. 방금 전까지는 균열과 철근 정도만 보였다면 이제는 하중이 어디로 흐르고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지까지 얇은 빛의 맥처럼 보였다.

"승우야."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너 괜찮아? 얼굴이 하얘."

"괜찮아요."

진짜로 괜찮았다. 아니, 처음으로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태호는 보강된 벽을 두드려 보았다. 빈 소리가 사라졌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승우의 어깨를 툭 쳤다.

"오늘 학교는 내가 전화해 두마. 집에 문제 생겨서 늦는다고."

"혼나지 않아요?"

"혼나야지. 근데 벽 무너지는 것보단 낫다."

그 말에 승우는 웃을 뻔했다. 전생에서 듣지 못했던 평범한 농담이었다.

어머니는 뒤늦게 화가 난 사람처럼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미리 말해. 아침부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네."

"그리고 밥 먹어. 다 식었지만."

승우는 식탁 앞에 앉았다. 식은 된장국을 한 숟갈 떠먹자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맛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 현관 옆에 놓인 아버지의 작업화가 눈에 들어왔다.

작업화 밑창에 회색 시멘트가 두껍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 위에 희미한 붉은 빛이 겹쳤다. 승우가 눈을 가늘게 뜨자 새로 얻은 투시가 먼지 속의 석분 입자와 작은 철사 조각을 잡아냈다.

[대상: 한태호 작업화]
[현장 잔류물 분석]
[고강도 모르타르 분진, 거푸집 박리제, 절단 철선]
[관련 현장 추정: 서림동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

승우의 숟가락이 멈췄다.

서림동.

그 이름이 기억 깊은 곳을 찔렀다. 아버지가 다쳤던 현장과 이어진 이름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흐릿했지만 사고 직전 며칠 동안 아버지는 늘 시멘트 냄새를 묻히고 돌아왔었다.

"아버지."

"왜."

"오늘 어디 현장 다녀오셨어요?"

"서림동. 작은 상가 건물. 왜?"

심장이 내려앉았다.

승우의 시야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긴급 분석 가능 대상 발견]
[서림동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
[간접 정보만으로 산출된 예비 위험도: 43%]
[위험 징후: 3층 슬래브 거푸집 하중 편심, 동바리 간격 불량 가능성]
[예상 악화 시간: 72시간 이내]

전생의 기억이 파편처럼 돌아왔다.

병원 복도. 흙먼지가 묻은 작업복. 어머니의 울음.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리던 말.

'받침대가 한쪽으로 밀렸다더라.'

승우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저 내일 아버지 현장에 같이 갈게요."

한태호가 눈을 크게 떴다.

"학교는?"

"조퇴하든 결석하든 갈 겁니다."

"야, 한승우."

승우는 아버지를 똑바로 보았다. 방금 전 벽을 살릴 때와는 다른 눈이었다. 한태호는 그 눈빛을 보고 말을 멈췄다.

"제가 먼저 봐야 해요."

거실 북쪽 벽은 더 이상 붉게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승우의 시야 저편, 아직 가보지 않은 서림동 현장 위로 선명한 경고색이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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