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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시녀장은 식단표로 반란을 막는다2화

망겜 시녀장은 식단표로 반란을 막는다

망겜 시녀장은 식단표로 반란을 막는다

2화: 소금 항아리의 자리

오리 수프 냄비는 식탁에 오르지 못한 채 주방 한가운데 놓였다.

밀랍으로 봉한 천이 뚜껑 가장자리를 덮었다. 검게 변한 은수저는 흰 접시 위에 따로 올려졌다. 주방 하인들은 칼도 국자도 내려놓은 채 그것을 보았다.

아무도 먼저 숨을 크게 쉬지 않았다.

"전부 멈추지 마."

서윤의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후계자 식사는 끝난 게 아니야. 보리죽은 따뜻하게 유지하고 닭육수는 다시 한 번 끓여. 오리 수프 냄비, 향신료 주머니, 검식 수저, 배식표는 봉인한다."

하녀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국자를 집었다가 떨어뜨렸다. 쇠가 돌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누군가 말했다.

속삭임이었지만 주방 전체가 들었다.

"시녀장님이 냄비를 갈랐잖아요."

다른 목소리가 뒤따랐다. 더 작고 더 날카로웠다.

마리의 얼굴이 굳었다. 카일은 펜 끝을 기록지 위에 세운 채 그 말을 적지 않았다.

서윤은 장부를 펼쳤다. 종이 위에 회색 문장이 번졌다.

[독 노출 위험: 오리 수프 89% -> 21%]
[소문 압력: 주방 63%]
[하인 불만: 상승]
[다음 위험: 주방]

범인 이름은 없었다. 답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대신 주방 안의 눈빛이 답처럼 몰려왔다.

엘나가 절차를 바꿨다.

엘나가 냄비를 갈랐다.

엘나가 은수저를 넣었다.

그러니 엘나가 주방에 죄를 씌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서윤은 그 의심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한다고 사라질 의심이 아니었다.

"누가 했는지는 지금 말하지 않는다."

마리가 낮게 물었다.

"말할 수 없는 겁니까? 모르는 겁니까?"

"모른다."

그 대답에 주방이 다시 술렁였다. 카일의 펜 끝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서윤은 그를 보았다.

"그것도 기록해. 시녀장은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대신 다음 배식을 막지 않기 위해 증거를 봉인했다."

"불리한 기록입니다."

"거짓 기록보다 낫지."

카일은 짧게 침묵한 뒤 적었다. 그의 손글씨는 반듯했다. 사람을 살린 기록도 언젠가 사람을 죽이는 문서가 될 수 있다는 듯 지나치게 정중했다.

마리가 팔짱을 꼈다.

"주방 사람들은 저 냄비만 보고 밤새 도둑 취급을 받을 겁니다."

"그래서 전부 세우지 않는 거야. 저녁은 끝까지 낸다. 일을 멈추면 소문이 먼저 식당에 도착해."

"소문보다 독이 먼저였습니다."

"다음 독은 소문을 타고 들어올 수 있어."

마리의 눈썹이 움찔했다.

서윤은 검식표를 뒤집어 빈 칸에 빠르게 적었다.

오리 수프 봉인.

후계자 식사 대체 완료.

주방 창고 야간 실사.

소금 항아리 위치 변경.

손끝이 멈췄다. 소금 항아리.

주방 오른쪽 배식대 끝에 놓인 회색 항아리가 눈에 걸렸다. 후계자 배식대와 너무 가까웠다. 검식 뒤에도 한 숟갈의 소금은 언제든 들어갈 수 있었다.

서윤이 항아리로 다가가자 하인 둘이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이 항아리, 누가 옮겼지?"

대답이 없었다.

마리가 대신 말했다.

"원래 저 자리였습니다."

"언제부터?"

"전 주방장이 있을 때부터요."

그 이름 없는 빈자리가 주방 위로 지나갔다. 전 주방장. 사라진 사람. 마리가 아직 꺼내지 않은 기록.

장부 위 회색 선이 또렷해졌다.

[소금 배치 위험: 52%]
[검식 이후 개입 가능 구간: 높음]

역시 독이 냄비에만 들어간 게 아닐 수 있었다. 수프가 식탁으로 가는 동안, 맛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하인이 고개를 돌린 순간, 누군가는 마지막 손질을 할 수 있었다.

"소금 항아리는 시식대 앞으로 옮겨."

젊은 조리 보조가 얼굴을 들었다.

"배식 때마다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시간이 늦어집니다."

"늦어지는 쪽이 낫다."

"후계자님 식사는 끝났지만 다른 식탁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꾸는 거야."

서윤은 항아리를 직접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팔이 휘청였지만 놓치지 않았다. 마리가 한숨을 내쉬고 다가와 항아리 반대편을 잡았다.

"시녀장님이 허리 다치면 제 일만 늘어납니다."

"그럼 도와."

"돕는 겁니다. 믿는 게 아니라."

"충분해."

두 사람은 항아리를 시식대 앞에 내려놓았다. 작은 이동 하나에 주방 동선이 바뀌었다. 국자가 지나가는 길이 좁아지고 배식 접시를 놓는 폭이 줄었다. 하인 셋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던 자리에 둘만 설 수 있게 됐다.

로그가 흐렸다.

[검식 이후 개입 가능 구간: 높음 -> 중간]
[주방 피로: 상승]

비용은 즉시 붙었다.

서윤은 이를 악물었다.

"마리. 창고로 간다."

"지금요?"

"지금."

카일이 고개를 들었다.

"야간 창고 개방은 집사실 입회가 필요합니다."

"입회해."

"정식 감사로 처리하면 주방 전체에 책임이 걸립니다."

"감사가 아니라 실사야. 내일 아침 죽을 끓일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

"표현만 바꾼다고 기록의 의미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서윤은 카일의 장갑 낀 손을 보았다.

"표현 하나로 사람이 죽기도 하지. 그러니까 정확히 써. 공작저 후계자 식사 사고 직후, 다음 식사 공급을 위한 야간 재고 확인."

카일은 그녀를 오래 보았다. 눈동자가 차가웠다.

"시녀장님은 원래 그런 문장을 고르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잠깐 엇박자로 뛰었다.

서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원래대로 했으면 은수저가 아니라 아이 입술이 검어졌겠지."

카일의 눈가가 더 굳었다.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주방 뒤 창고는 낮은 돌계단 아래 있었다. 문을 열자 찬 공기와 곡물 냄새가 밀려왔다. 벽에는 말린 양파 다발과 허브 묶음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밀가루 포대와 소금 항아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리는 등불을 높이 들었다. 빛이 흔들리자 천장에 매달린 월계수 잎 그림자가 마른 손가락처럼 움직였다.

"월계수 잎은 여기. 기록상 두 묶음이 들어왔고 남은 건..."

그녀가 말을 삼켰다.

반 묶음.

서윤은 장부와 창고 선반을 번갈아 보았다.

"말린 양파."

마리가 다발을 내려 바닥에 놓았다. 마른 껍질이 부서져 발밑에서 작게 바스러졌다.

"세 망이 비었습니다."

"닭뼈."

마리는 뼈 상자를 열었다. 육수 냄새가 아니라 젖은 나무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이틀 치가 모자랍니다."

"소금."

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안쪽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등불이 항아리 속을 비췄다. 바닥이 보였다.

장부에는 닷새 치가 남아 있어야 했다.

카일이 낮게 말했다.

"비싼 향신료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나빠."

서윤은 창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소금 가루가 항아리 주변에 아주 얇게 흩어져 있었다. 누가 급하게 퍼 갔다면 자국이 더 거칠었을 것이다. 이건 조금씩, 계속, 표시 나지 않게 덜어 낸 흔적이었다.

장부 위로 로그가 번졌다.

[식재료 누락: 18일 누적]
[하인 식당 불만: 74%]
[주방 피로: 68%]
[보존 재료 손실: 진행 중]

누락은 사치품이 아니었다. 소금, 양파, 뼈, 월계수 잎. 하인 식당 죽에 맛을 내고 오래 끓인 육수의 냄새를 잡고 상하기 쉬운 재료를 버티게 하는 것들.

비싼 고기를 훔치지 않아도 저택은 망할 수 있었다.

죽이 묽어지고 냄새가 나빠진다. 하인들은 굶었다고 느낀다. 주방은 욕을 먹고 피로가 쌓인다. 불만은 식탁보다 빠르게 복도를 돈다.

서윤은 마른 입술을 눌렀다.

"이건 독살과 따로 보지 않는다."

마리가 등불을 내렸다.

"누군가 후계자님 수프에 독을 넣고 동시에 하인들 밥맛까지 망쳤다는 말입니까?"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같은 구조일 수는 있고."

"구조라니요."

"주방이 지치고 하인들이 배고프면 검식은 허술해진다. 누가 항아리 앞을 지나도 아무도 끝까지 못 본다. 독은 그런 틈으로 들어와."

마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화가 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화가 전부 엘나를 향하지는 않았다.

창고 뒤쪽에서 가벼운 소리가 났다.

카일이 등불을 돌렸다.

작은 뒤문. 바깥뜰로 이어지는 납품문이었다. 빗장은 걸려 있었지만 나무 가장자리에 새 긁힌 자국이 있었다.

"오늘 생긴 흔적은 아닙니다."

카일이 말했다.

"며칠은 됐습니다."

서윤은 다가가 손끝으로 나무를 훑었다. 문을 강제로 열려던 자국이라기보다 같은 높이에서 여러 번 닿은 자국이었다. 꾸러미를 밀어 넣거나 빼내며 생긴 흔적.

로그는 여전히 흐렸다.

[납품문 출입 기록: 불일치 가능]
[다음 위험: 창고]

"출입 기록 가져와."

카일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기록은 집사실 보관입니다."

"그럼 집사실에서 가져와."

"시녀장 권한 밖입니다."

"후계자 식사 사고 직후 주방 창고 납품문 확인이야. 권한 밖이면 네가 입회해서 열람해."

카일의 눈가가 굳었다.

"시녀장님은 오늘 선을 많이 넘습니다."

"선이 너무 많아서 누가 독을 넣었는지 못 본 거야."

마리가 낮게 웃었다. 즐거운 웃음은 아니었다.

"그 말은 맞네요."

카일은 마리를 보았다. 마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집사 대리님, 저도 출입 기록 보겠습니다. 제 창고에서 소금이 사라졌습니다."

"주방장에게는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

"그럼 제 손으로 내일 아침 죽을 맹물로 끓여서 후계자님께 냄새 맡게 해 드릴까요?"

카일의 입술이 얇아졌다.

서윤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이건 좋은 징후였다. 마리가 엘나를 믿어서가 아니라 주방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침 식단을 바꾼다."

서윤은 장부 빈 칸에 적었다.

"귀족 식탁 반찬 하나 줄이고 남은 닭육수는 하인 식당 죽에 섞어. 소금은 오늘 밤부터 조별 확인. 항아리마다 봉인을 붙이고 뜯을 때 두 명이 서명한다."

마리의 얼굴이 험해졌다.

"주방 애들 서명 못 하는 애도 있습니다."

"그럼 표시로 한다. 이름을 못 쓰면 조장이 대신 적고 본인은 칼등으로 표시한다."

"처벌 명단처럼 보일 겁니다."

"처벌 명단으로 안 쓰겠다고 문장 첫 줄에 적어. 확인표의 목적은 책임 추궁이 아니라 단독 접근 차단."

카일이 펜을 꺼냈다.

"그 문장도 기록합니까?"

"기록해."

"나중에 책임을 피하려는 문장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나중에 누가 혼자 뒤집어쓰는 걸 막는 문장이기도 해."

마리가 등불을 든 손에 힘을 줬다.

"시녀장님."

"왜."

"오늘 정말 이상합니다."

"그 말은 두 번째야."

"세 번째도 할 수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살아 있으면 들어 줄게."

마리는 기막힌 듯 숨을 뱉었다. 그래도 창고 선반 쪽으로 돌아섰다.

"포대부터 다시 셉니다. 어설프게 세면 제가 못 잡니다."

그 말이 허락이었다.

창고 실사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밀가루 포대는 맞았고 보리는 반 되 모자랐다. 말린 사과는 기록보다 많았다. 누군가 훔치기만 한 게 아니라 위치를 바꿔 혼동을 만들고 있었다.

서윤은 장부 위에 재고 흐름을 다시 그렸다. 깔끔한 표가 되지 않았다. 얼룩, 손때, 지워진 획, 누군가 일부러 흐린 날짜가 줄마다 걸렸다.

그래도 방향은 보였다.

누락은 후계자 식사 재료보다 하인 식당과 보존 재료에 집중됐다.

저택을 한 번에 죽이는 독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망치는 손.

밤이 더 깊어졌을 때 어린 하녀가 창고 문 앞에 나타났다.

"시녀장님."

"무슨 일이지?"

"이안 님께서 식사를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녀는 마리를 보고 카일을 보고 다시 서윤을 보았다.

"주방에 오시겠다고 합니다."

카일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주방은 봉인 증거와 실사 중인 창고 때문에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지 말라 전해."

서윤이 말했다.

하녀가 안도한 듯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복도 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왔다."

이안 벨라노르가 창고 입구에 서 있었다. 잠옷 위에 짧은 외투를 걸쳤고 은발은 흐트러져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아직 창백했지만 두 발은 물러서지 않았다.

카일이 허리를 숙였다.

"후계자님, 이곳은 냄새가 좋지 않습니다."

"오늘 내 식탁 냄새도 좋지 않았겠지."

카일이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서윤을 보았다.

"내가 먹지 않은 수프는 어떻게 되었나?"

"봉인했습니다."

"범인은?"

"모릅니다."

아이의 눈썹이 떨렸다. 실망인지 분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모르는데 내 식사를 바꿨나?"

"예."

"모르는데 앞으로도 바꿀 건가?"

"필요하면 바꿉니다."

"그럼 나는 네가 무엇을 근거로 내 식사를 바꾸는지 알아야겠다."

주방 뒤편의 찬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서윤은 이 아이에게 운영 로그를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원래라면 네가 오늘 죽는다고 말하면 더더욱 안 됐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만 골랐다.

"식재료 장부와 창고 수량이 맞지 않았습니다. 검식 이후에도 손댈 수 있는 소금 항아리가 배식대 옆에 있었습니다. 남쪽 복도는 후계자 식사가 지나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안은 천천히 들었다.

"그것들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 증거인가?"

"아닙니다."

"그럼?"

"그것들이 누군가 후계자님을 죽이기 쉽게 만든 조건입니다."

이안은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아이가 이해한 것은 반쯤뿐일 것이다. 하지만 공포는 이해보다 빠르다.

"나는 공작가의 후계자다."

"알고 있습니다."

"보리죽을 먹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 식사가 바뀌면 다들 내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서윤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소년은 죽을 뻔했다. 그런데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배고픔도 통증도 아니었다. 약해 보이는 것. 후계자답지 않아 보이는 것.

이 세계는 아이에게도 체면을 먹였다.

"그럼 내일부터 식사를 숨기지 않겠습니다."

이안의 눈이 움직였다.

"무슨 뜻이지?"

"후계자님 식단 변경 사유를 병색이 아니라 검식 절차 강화로 적겠습니다. 보리죽은 벌이나 병자식이 아니라 오늘 필요한 대체식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이 믿나?"

"전부 믿지는 않습니다."

"너도 참 쉽게 말하는구나."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록합니다."

이안은 말없이 서윤을 보았다. 아이의 시선은 원망과 의심 사이에 있었다. 신뢰는 아니었다. 그 점이 오히려 정확했다.

"엘나."

"예."

"내 식사를 바꿀 때는 나에게도 말해라."

카일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후계자님, 절차상..."

"나는 먹는 사람이다."

이안의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끝까지 이어졌다.

"내가 먹는 것을 나만 몰라서는 안 된다."

서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안은 대답을 듣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빈 소금 항아리에 닿았다.

"저것도 독인가?"

"아닙니다.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소금인데?"

"소금이 없으면 죽이 맛없어집니다. 맛없는 죽이 계속되면 하인들은 자신들이 버려졌다고 느낍니다. 버려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습니다."

마리가 조용히 서윤을 보았다.

이안은 오래 생각했다. 열두 살짜리 얼굴에 피곤이 내려앉았다.

"내 아침 반찬을 줄여라."

서윤은 눈을 들었다.

"후계자님."

"한 접시만."

이안은 서둘러 덧붙였다. 마치 두려움을 들킬까 봐 명령의 모양을 단단히 다듬는 것처럼.

"내가 굶겠다는 뜻이 아니다. 공작가답게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서윤은 그 말이 아이의 자존심으로 만든 작은 다리라는 걸 알았다. 건너가도 되는 다리인지 잠깐 계산했다.

로그는 없었다. 이건 문서 위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선택이었다.

"한 접시 줄이고 닭육수는 하인 식당으로 돌리겠습니다. 대신 후계자님 식사량은 줄이지 않습니다. 빵과 보리죽으로 맞춥니다."

"허락한다."

허락이라는 말에 마리의 눈썹이 아주 작게 풀렸다. 카일은 이미 기록하고 있었다.

이안이 돌아선 뒤에도 주방은 한동안 조용했다.

마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애한테 그런 말까지 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는데요."

"나도."

"그래도 한 접시이면 죽 농도는 맞출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안에 조별 확인표 만들어."

"글 모르는 애들 표시까지 넣어서요?"

"응."

"귀찮게 됐군요."

"믿는 게 아니라 돕는 거라며."

마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 말 취소는 안 합니다."

서윤은 시녀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웠다. 주방 쪽 불빛만 낮게 흔들렸다.

책상 위에는 봉인 목록, 새 검식표, 창고 실사표가 쌓였다. 카일이 남긴 기록 사본도 있었다.

시녀장 엘나 로웬의 판단으로 검식 절차 강화.

주방 창고 야간 재고 확인.

후계자 식단 변경 사유: 독성 의심 물질 노출 방지 및 검식 절차 보완.

책임은 문장마다 엘나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서윤은 펜을 들고 새 식단표를 썼다.

아침.

후계자 식탁: 보리죽, 구운 사과, 흰 빵, 묽은 닭육수.

귀족 공용 식탁: 반찬 한 접시 축소.

하인 식당: 닭육수 보강, 소금 조별 확인 후 사용.

주방: 소금 항아리 시식대 고정. 납품문 출입 기록 대조.

종이 위로 회색 문장이 번졌다.

[독 노출 위험: 안정]
[하인 식당 불만: 74% -> 69%]
[주방 피로: 68% -> 73%]
[소문 압력: 주방 63% -> 66%]
[다음 위험: 창고]

숫자는 전부 좋아지지 않았다. 하나를 낮추면 다른 하나가 올랐다. 주방은 더 피곤해졌고 소문은 더 커졌다. 그래도 하인 식당 불만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서윤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

마리는 지금도 포대를 세고 있을 것이다. 글 모르는 하녀는 자기 표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안은 아침 반찬 한 접시를 잃고도 당당한 얼굴을 연습할 것이다.

한 줄을 고치면 누군가의 밤이 줄었다.

그래도 고쳐야 했다.

문밖에서 마리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시녀장님, 항아리 봉인 끝났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보셔야겠습니다."

서윤이 문을 열자 마리가 작은 끈 조각을 내밀었다. 향신료 주머니를 묶었던 끈이었다. 끈 끝에는 검은 기름 같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요리 기름은 아닙니다."

마리가 말했다.

"냄새가 없습니다."

서윤은 끈을 직접 만지지 않고 흰 천 위에 올렸다. 장부를 가까이 대자 회색 글자가 떠올랐다.

[출처 불명 향신료: 추적 필요]
[납품문 불일치와 연결 가능]
[다음 위험: 창고]

이번에도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방향은 충분했다.

서윤은 천을 접었다.

"내일 아침 첫 일은 식단표가 아니야."

마리가 피곤한 눈으로 물었다.

"그럼 뭡니까?"

"문부터 센다."

저택은 아직 굶주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굶주림이 어느 문으로 드나드는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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