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88화: 빙궁주(氷宮主)의 은혜와 마정(魔晶)의 진실
북해빙궁의 대전, 빙설전(氷雪殿).
혁은 얼음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탁자를 사이에 두고, 북해의 지배자이자 화경 고수인 빙궁주 설민태(雪閔泰)와 마주 앉아 있었다. 소궁주 설지원은 여전히 경탄 어린 눈빛으로 혁의 뒤에 서 있었다.
"호북성 마도문의 문주께서 이 먼 북해까지 찾아와 가문을 구해주셨소. 이 은혜를 어찌 말로 다하겠소."
설민태가 찻잔을 들며 진심 어린 사의를 표했다.
"인사는 되었소, 빙궁주."
혁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본론을 꺼냈다.
"내가 만리 길을 달려 이곳 북해까지 온 목적은 단 하나요. 당신들의 성역인 만년한빙동(萬年寒冰洞)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북해마정(北海魔晶)'을 얻기 위함이오."
혁의 단도직입적인 요구에 설민태와 설지원의 얼굴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설민태가 무거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소문대로 문주께서는 천지의 영물에 대해 귀신같이 알고 계시는구려. 북해마정은 우리 빙궁의 대대로 내려온 영물이오만, 사실 지금 그것은 가문의 영물이 아닌 거대한 저주가 되어 버렸소."
"저주라니?"
"두 달 전부터 만년한빙동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검붉은 마기(魔氣)가 뿜어져 나오더니, 북해마정을 검붉게 물들여 버렸소. 그 결과 마정에서 오염된 차가운 냉독(冷毒)이 성 밖으로 유출되었고, 그 독기를 마신 설산의 짐승들이 폭주하여 요수가 되어 우리 빙궁을 매일같이 습격하고 있는 것이오."
설민태는 고통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의 한빙공력으로는 마정을 정화할 수 없고, 동굴 안은 이미 초일류 고수조차 십 보를 걷기 전에 뼈까지 얼어붙는 사지(死地)가 되었소. 만약 저 마정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 빙궁은 몇 달 안에 요수들의 밥이 되어 멸망할 것이오."
혁은 빙궁주의 고백 속에서 더 명확한 답을 찾았다.
마기가 스며들어 오염된 바람의 보석 천풍옥과 마찬가지로, 북해마정 또한 마교나 흑월교의 마기와 결합하여 왜곡된 상태였다. 마법사의 정화 마법 앞에서는 그저 손쉬운 해독 수식에 불과했다.
"동굴의 입구를 열어주시오."
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마정의 사악한 마기를 완전히 정화하고, 그 마정을 취해 가겠소.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 빙궁을 좀먹던 마독의 근원이 영구히 사라질 것이고, 빙궁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오."
설민태는 혁의 기개와 낮에 보여준 지옥 화염의 무위에 희망을 걸었다.
"좋소. 문주님의 법력을 믿어보겠소.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오."
빙궁주 설민태의 인도 하에, 혁은 빙궁의 지하 가장 깊은 곳, 만년 서리가 내려앉아 서리 꽃을 피운 만년한빙동의 어두운 입구 앞에 사뿐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