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8화: 뒤바뀐 독(毒)
조산과 그의 패거리들이 전신에 심각한 동상을 입은 채 실려 가자 외당의 분위기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집사 마태식이었다.
천팔의 실종, 적양초의 감쪽같은 도난, 그리고 무사들을 얼려버린 괴이한 무공까지.
마태식은 더 이상 남궁혁을 단순한 서자로 볼 수 없었다.
‘그 쓰레기가 사악한 마공(魔功)을 익혔거나, 상상도 못 할 배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공자님께 더 이상 내 실책을 보일 순 없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한다.’
마태식은 남궁혁을 무력으로 꺾기보다는, 가문의 법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죽이기로 음모를 꾸몄다.
세가에서 가장 엄격하게 다스리는 중죄는 바로 ‘가문 내 독살(毒殺) 및 암습’이었다. 만약 서자가 소공자나 가문의 어른들을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운다면, 즉시 집법당(執法堂)의 칼날에 목이 날아갈 터였다.
마태식은 내당의 밀수꾼을 통해 구한 금지된 맹독인 ‘단혼산(斷魂散)’을 준비했다.
단혼산은 한 방울만으로도 삼류 무사는 즉사하고, 일류 고수도 내력을 쓰지 못하게 맥을 끊어버리는 맹독이었다.
그는 평소 별채 근처를 청소하는 외당 시비 ‘춘아(春娥)’를 돈으로 매수했다.
"오늘 밤, 이 독병을 서자 놈의 침상 밑에 숨겨두거라. 내일 아침 집법당 무사들을 이끌고 들이닥칠 테니, 네가 첫 목격자로 고발하면 된다. 성공하면 은자 백 냥을 주마."
춘아는 백 냥이라는 거금에 눈이 멀어 마태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깊은 밤, 사위가 고요해진 별채.
혁은 방 안에서 명상을 하던 중 눈을 번떴다.
별채 경계선에 그가 설치해 둔 미세한 마력의 경보망, 즉 ‘얼람(Alarm)’ 마법이 반응한 탓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마당을 지나 별채의 뒤편 벽 틈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발소리의 무게와 호흡으로 보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시비의 걸음걸이였다.
혁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창문 틈새로 춘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어 침상 밑 구석진 곳에 작은 청자기 병 하나를 밀어 넣는 모습이 그의 ‘마나 감지’에 고스란히 포착되었다.
춘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떼려던 찰나.
팟-
그녀의 손목이 보이지 않는 강한 손아귀에 움켜쥐어졌다.
"흐읍……!"
춘아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혁이 이미 침묵 마법을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혁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중에 남의 방에 물건을 숨겨두는 취미가 있나 보군."
혁은 춘아의 손목을 비틀어 안으로 끌어당겼다. 춘아는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혁은 그녀가 숨겨두려 했던 청자기 병을 들어 올렸다. 뚜껑을 살짝 열자 코끝을 찌르는 매캐하고 독한 기운이 풍겼다.
‘단혼산이군. 무림인들이 즐겨 쓰는 맹독이다.’
그는 즉시 사태의 파악을 끝마쳤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가법으로 처단하려는 음모였다. 혁은 주저 없이 춘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1서클 극의의 정신력이 그녀의 뇌리를 잠식했다.
‘정신 지배 - 자백(Hypnotic Interrogation).’
춘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풀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 마 집사님이 시키셨습니다…… 이 독병을 숨겨두면…… 내일 아침 집법당에 고발하겠다고…… 은자 백 냥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혁의 눈가에 조소 가득한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마태식,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구나."
만약 독을 그냥 버리거나 없애버린다면, 마태식은 또 다른 음모를 꾸밀 터였다. 그렇다면 판 자체를 뒤집어 그 독을 음모의 주동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었다.
혁은 춘아에게 최면을 걸어 돌려보냈다.
"너는 오늘 독병을 계획대로 숨겼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오직 마 집사에게만 보고하고 잠을 잔다."
최면에 걸린 춘아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혁은 청자기 병을 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투명 마법과 침묵 마법을 동시에 시전하고 어둠 속을 가로질러 외당 집무실 뒤편에 있는 마태식의 개인 침소로 향했다.
마태식의 침소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주변에 몇 명의 무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의 도약을 마스터한 혁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플리커(Flicker).’
팟-
순식간에 마태식의 방 내부로 도약한 혁은 깊은 단잠에 빠져 침을 흘리고 있는 마태식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혁은 품에서 단혼산 병을 꺼내 마태식의 옷궤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단순히 독만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태식의 서랍장 안에 보관되어 있던 외당의 공금 장부와 은자 주머니들을 조사했다.
장부에는 마태식이 가문의 공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고, 소공자 남궁위의 사적 비용으로 상납한 횡령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것까지 같이 터뜨려주지.’
혁은 횡령 장부와 남궁세가의 가문 문장이 새겨진 귀중한 약재 장부를 함께 독병 옆에 나란히 배치해 두었다. 이 정도라면 집법당에서도 마태식을 즉시 참수하거나 가문 지하 감옥에 평생 가둬두기에 충분한 증거였다.
모든 흔적을 지운 혁은 다시 플리커로 방을 빠져나와 별채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별채의 뜰은 쇠사슬과 붉은 곤봉을 든 집법당 무사 삼십여 명에 의해 포위되었다. 그들의 앞에는 집법당의 깐깐한 수사관인 ‘남궁헌(南宮憲)’ 집사와 개선장군 같은 표정을 지은 마태식이 서 있었다.
"남궁혁은 당장 나와 포박을 받아라!"
남궁헌이 장내를 울리는 고함으로 선언했다.
혁은 조용히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당황함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마태식이 비열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냐고? 네 놈이 외당의 독약고에서 훔친 맹독 ‘단혼산’으로 소공자님을 위해하려 했다는 밀고가 들어왔다! 집법당의 수색을 받아라!"
남궁헌이 차갑게 손을 휘둘렀다.
"수색해라."
무사들이 거칠게 별채 안으로 들이닥쳐 방 안과 헛간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마태식은 혁의 침상 밑에서 단혼산 병이 나오는 순간만 기다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반각이 지나도 무사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보고합니다! 독병이나 의심스러운 약재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뭐, 뭐라고?!"
마태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직접 춘아를 통해 위치를 확인했음에도 물건이 없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혁이 차갑게 남궁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밀고자의 말 한마디에 가문의 핏줄인 서자의 거처를 이리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되는 것입니까? 만약 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밀고를 주도한 자에게 무고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남궁헌의 눈매가 매섭게 마태식을 향했다.
"마 집사. 독이 분명히 숨겨져 있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저놈이 다른 곳에 숨겼거나……!"
그때 혁이 나지막이 제안했다.
"단혼산은 가문 내에서도 엄격히 관리되는 독입니다. 만약 누군가 독을 다루었다면 최근 가문 내에서 그 독의 거래 내역이나 밀수 기록을 역추적해 보십시오. 혹시 그것을 유통할 수 있는 외당 집사의 처소에 다른 증거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 말에 남궁헌의 이성이 움직였다.
"음, 일리가 있군. 마 집사, 그대의 처소도 함께 수색하겠네. 결백하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겠지?"
"예? 제, 제 방을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가문의 집사……!"
"수색해라!"
남궁헌의 서슬 퍼런 명령에 무사들이 마태식의 집무실과 침소로 들이닥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 중 한 명이 붉은 장부와 청자기 병을 들고 달려왔다.
"보고합니다! 마 집사의 옷궤 안에서 맹독 단혼산과 함께 가문 공금을 횡령한 밀수 장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아, 아니야! 그건 내가 둔 것이 아니다! 누명이다! 저 서자 놈이……!"
마태식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으나, 남궁헌의 검가(劍架)가 이미 그의 목줄기를 겨누고 있었다.
"닥쳐라, 마태식! 독을 보관한 것도 모자라 가문의 공금까지 횡령하다니! 당장 이자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장부를 내당에 올릴 것이다!"
집법당 무사들이 마태식을 쇠사슬로 묶어 개처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마태식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으나, 무자비한 매질이 그의 등줄기에 쏟아질 뿐이었다.
멀어지는 마태식의 비명을 들으며, 혁은 옷자락의 먼지를 털어냈다.
배후에 있던 남궁위는 이 사건으로 인해 꼬리를 자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공금 횡령 장부까지 함께 터졌으니 마태식과 엮였다간 소공자의 입지마저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외당의 큰 가시 하나를 조용히 뺐군.’
혁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빠져들었다.
비무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단 보름.
그의 마나 하트는 이제 온전한 2서클의 탄생을 향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가문의 그늘 밑에서 대마법사의 힘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