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7화: 불꽃의 흔적과 가문의 불한당
적양초를 삼킨 혁의 위장 속에서 타오르던 양기는 이내 차갑고 푸른 마력의 흐름으로 재배열되었다.
그의 가슴속 마나 하트는 터질 듯이 팽창했다가 서서히 수축하며 극도로 정제된 마력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비록 두 번째 서클을 완벽하게 안착시키지는 못했으나, 1서클 마도사로서는 다다를 수 있는 절대적인 한계치, 즉 ‘1서클 극의(極意)’에 도달한 것이었다.
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방 안의 식은 공기 속에서 그의 호흡이 길게 뽑아져 나왔다. 대기 중의 미세한 마력 분자들이 그의 피부 세포 하나하나와 호흡하는 듯한 일체감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마력 밀도라면 1서클 마법의 위력을 몇 배는 더 끌어올릴 수 있다. 기초적인 원소 결합도 훨씬 매끄러워졌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뼈마디가 맞춰지고 단단한 근육들이 자리 잡은 그의 몸은 더 이상 일주일 전의 그 나약하고 병약했던 소년의 형색이 아니었다. 키도 한 치쯤 더 자란 듯했고, 눈매는 심연처럼 깊고 그윽했다.
마당으로 나오자 소소가 수레에 실려 온 숯과 쌀가마니를 정리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맞이했다.
"혁아, 몸은 좀 어때? 며칠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괜찮아, 누님. 몸이 아주 개운해."
혁은 웃어 보이며 소소에게 다가갔다. 소소의 안색은 여전히 다소 창백했고, 몸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녀 또한 서녀라는 신분 때문에 제대로 된 무공은커녕 기초적인 운기조식법조차 배우지 못한 탓이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몸이 허해 가을바람만 불어도 감기를 달고 살았다.
혁은 소소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미세한 마력이 소소의 혈관 속으로 흘러 들어가 그녀의 몸 상태를 스캔했다.
‘경맥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혈의 순환이 극도로 나태해져 있군. 이 상태로 겨울을 나면 크게 앓아누울 터.’
혁은 전생에 마법 대륙의 기사들이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사용하던 마나 호흡법을 무림의 기공 공식과 융합하여 머릿속으로 설계했다.
‘마도 조식법(魔導調息法).’
단전에 기를 억지로 모으는 일반 무공과 달리, 심장을 중심으로 온몸의 기혈을 자극해 자연의 생명력을 스스로 순환시키는 안전하고 강력한 호흡법이었다.
"누님, 내가 말하는 대로 숨을 쉬어봐."
"응? 호흡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가슴 중앙에 따뜻한 기운이 모인다고 상상해봐.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손끝과 발끝으로 밀어내는 거야."
혁은 소소의 가슴 뒤편 혈도에 손가락을 대고 미세한 마력을 밀어 넣어 그녀가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소소는 혁의 인도에 따라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시작했다.
몇 번의 조식만으로도 소소의 창백했던 뺨에 붉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몸을 짓누르던 만성적인 한기가 사라지며 이마에 얇은 땀방울이 맺혔다.
"어…… 몸이 정말 따뜻해졌어. 꼭 영약을 먹은 것처럼 온몸이 가벼워."
소소가 신기한 듯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호흡을 삼십 번씩 해. 몸이 아플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응! 고마워, 혁아."
소소의 웃는 얼굴을 보며 혁은 마음속으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소소는 장차 자신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료로 성장할 터였다. 마도 조식법은 그 시작이었다.
같은 시각, 외당 약초 창고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아침 일찍 서랍을 열어본 창고지기가 적양초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고?!"
마태식은 보고를 받고 경악했다.
"예, 마 집사님. 경비 무사들은 밤새 한 놈도 졸지 않았다고 맹세했고, 창고 문에 걸린 기문진법도 멀쩡했습니다. 서랍의 자물쇠 역시 부서지지 않았는데 오직 적양초만 사라졌습니다."
마태식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천팔의 실종에 이어 이제는 보관 중이던 영초의 감쪽같은 도난까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왠지 남궁혁이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단전이 찢어진 서자 놈이 어떻게 가문의 진법을 뚫고 물건을 훔친단 말인가?
‘분명히 어떤 년놈들이 뒤에서 돕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 쓰레기를 미끼로 삼아 외당의 기강을 흔들려는 자들의 소행이야.’
마태식은 남궁혁 단독 범행이 아니라, 가문 내의 다른 파벌이 개입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더욱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마태식이 몸을 사리는 것과 달리, 배급당에서 강태가 처참하게 짓밟혔다는 소문은 외당의 불한당들에게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강태의 친척이자 외당 무사들의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남궁도(南宮濤)의 부하, ‘조산(趙山)’은 이 기회를 틈타 공을 세우고 강태의 원수를 갚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날 오후.
별채의 낡은 사리문이 다시 한번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다.
쿵!
"쓰레기 서자 놈은 당장 나와라!"
마당으로 난입한 자는 거구에 흉터가 가득한 얼굴을 한 사내, 조산이었다. 그의 뒤에는 서너 명의 하급 무사들이 몽둥이와 채찍을 든 채 험악한 기세를 풍기며 서 있었다.
조산은 마당에 쌓여 있는 최고급 숯 상자들과 쌀가마니를 보고 비열하게 침을 뱉었다.
"흐흥, 과연 소문대로군. 어디서 훔친 것인지 모를 호사스러운 물건들이 가득하구나. 가문의 허락도 없이 배급당을 협박해 가져간 장물(贓物)들이니, 가법에 따라 우리가 모두 압수하겠다!"
조산의 지시에 부하 무사들이 쌀가마니를 향해 다가갔다.
소소가 다급하게 뛰어나와 그들을 가로막았다.
"안 돼요! 이건 정당하게 받아온 우리 몫이에요! 가문의 장물이라니요!"
"이 미천한 서녀 년이 어디서 눈을 부릅뜨냐!"
조산이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번쩍 들어 소소의 뺨을 때리려 했다.
그 순간.
팟-
바람 한 점 없는 공중에서 흙먼지가 가볍게 일렁였다.
소소의 앞에 지체 없이 나타난 혁이 조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쩍!
무거운 철판이 부딪치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산의 손목이 허공에 멈춰 섰다.
조산은 자신의 손목을 쥔 소년의 손아귀 힘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거대한 바이스로 손목 뼈를 조이는 듯한 지독한 압박감이었다.
"아, 아윽! 이 자식이……!"
"손버릇이 나쁘군."
혁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조산의 손목을 비틀어 내렸다.
조산은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상체가 구부러졌고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이 쓰레기가 감히! 얘들아, 쳐라!"
조산의 비명에 뒤에 서 있던 무사 넷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혁에게 달려들었다.
혁은 잡고 있던 조산의 손목을 놓아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1서클 극의에 도달한 그의 마력이 나뭇가지로 순식간에 휘감겼다.
‘속성 검법 - 빙결(氷結).’
스스스슥-
나뭇가지 표면에 시린 백색의 서리가 맺히며 주변의 대기 온도가 급격히 하강했다.
혁은 발걸음을 내딛으며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탁! 탁! 탁! 탁!
그의 나뭇가지가 네 무사의 손목과 무릎 관절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타격 부위마다 서리 맺힌 냉기 마력이 뼈와 근육으로 침투해 혈류를 얼려버렸다.
"끄아악! 손이 얼어붙는다!"
"다, 다리가 안 움직여!"
네 명의 무사들은 몽둥이를 떨어뜨리며 바닥에 쓰러져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그들이 맞은 부위는 시퍼렇게 얼어붙어 서리가 가득 피어올라 있었다.
조산은 그 해괴망측한 광경에 경악하며 뒤로 기어갔다.
내공을 쓰지 않는 절맥증 서자가 휘두른 나뭇가지에 맞았을 뿐인데, 동료들의 몸이 얼어붙어 굳어가고 있었다.
혁은 나뭇가지를 가볍게 흔들어 서리를 털어낸 뒤 조산의 턱밑에 가져다 댔다. 나뭇가지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한기가 조산의 목덜미 소름을 돋웠다.
"돌아가서 전해라."
혁의 고요한 목소리가 조산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우리의 숯과 쌀에 다시 한번 손을 댄다면, 그때는 얼어붙은 채 부서지게 될 것이다."
"히익……! 알, 알겠습니다!"
조산은 바지에 지릴 듯한 공포를 느끼며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부하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별채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혁은 서서히 마력을 거두었다. 나뭇가지에 맺혀 있던 서리가 녹아내려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혁아…… 정말 네가 한 거야?"
소소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평생 천대받고 병약했던 남동생이, 이제는 가문의 무사들을 낙엽 쓸듯 쓸어버리는 강자가 되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 누님. 이제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해."
혁은 소소를 안심시키며 쌀가마니를 집 안으로 옮겼다.
1서클 극의의 힘은 확실했다. 하지만 조산과 같은 자잘한 불한당들이 계속해서 꼬인다면 수련에 방해가 될 터였다.
‘조만간 마태식이나 남궁위가 더 큰 판을 짜서 덤벼들겠지.’
그들의 음모가 완성되기 전에, 자신 역시 2서클의 경지를 완성하고 비무대회에서 모든 것을 끝장내야 함을 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 마나 하트는 더욱 세차게 끓어오르며 다음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