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64화: 공간(空間)의 제어와 무형(無形)의 결빙
백은찬은 혁의 방어가 자신의 검로를 완벽하게 예견하고 펼쳐진 것임을 깨달았다. 그의 입가에 묵직한 미소가 어렸다.
"과연 흑사귀의 목을 벨 만하군. 하지만 대기의 흐름은 단순히 읽히는 것에 그치지 않소!"
백은찬이 공중으로 신형을 날리며 청풍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신형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십여 개의 잔상을 형성했다. 화경 고수의 극성 신법에 의한 분신술에 가까운 초식이었다. 각각의 분신들이 동시에 검을 휘두르자, 죽림 공터 전체가 수천 개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칼날 폭풍으로 메워졌다.
천풍문의 절정 비기, '천풍만화참(天風萬花斬)'이었다.
사방의 공기를 채찍으로 바꾸어 그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게 옭아매는 무차별적인 학살의 검이었다.
소소와 남궁백이 비명을 지르려던 그 순간.
"텔레포트(Teleport)."
파앗-!
대지를 메우고 있던 수천 개의 바람 칼날들이 혁이 서 있던 자리를 잘게 다져 놓았으나, 정작 혁의 신형은 이미 백 장 상공에 홀연히 떠 있었다.
"공중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인가!"
백은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청풍검을 하늘로 곧게 찔렀다.
바닥에서 상쇄되지 못한 채 날뛰던 수천 개의 바람 칼날들이 백은찬의 검의(劍意)를 따라 방향을 바꾸어 마치 살아 있는 용오름처럼 소용돌이치며 상공의 혁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보석 같은 푸른색 바람 칼날 용오름이 혁의 신형을 집어삼키려던 그 찰나.
혁은 허공에서 검을 내밀고 은빛 마나를 강하게 방출했다. 4서클의 비기이자 공간 변형 마법이었다.
"스페이스 디스토션(Space Distortion) - 공간 왜곡."
우우웅-!
혁의 주변 반경 일 장(丈) 이내의 허공이 마치 두꺼운 얼음판이나 유리창처럼 푸르스름하게 왜곡되며 물리적으로 차단되었다.
올라오던 무형의 바람 칼날들이 혁의 주변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빛조차 굴절되는 왜곡된 다차원 결계에 가로막힌 바람의 속도가 극한으로 느려지더니, 급기야 공중에서 뚝 멈춰 서 부르르 떨기만 했다.
마치 날아가던 화살들이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늪에 갇혀 멈춰 선 형국이었다.
"이, 이게 어찌 된……! 내 천풍검기가 허공에 얼어붙었단 말이냐!"
백은찬은 자신의 검의가 완전히 차단되어 검기들의 제어권을 잃자 경악하며 외쳤다. 무림의 그 어떤 무학 체계로도 공간의 차원을 뒤틀어 날아오는 강기를 물리적으로 멈춰 세우는 일은 불가능했다.
혁은 공중에서 백은찬을 내려다보며 검을 비스듬히 눕혔다.
그의 검날 주변으로 은백색의 마나가 번개 사슬을 피워 올리며 차가운 살기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제 내 차례다, 백 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