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53화: 죽음의 계곡과 원소(Element)의 세례
흑풍곡(黑風谷)의 초입.
유적을 방불케 하는 깊고 좁은 협곡의 입구는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 독무(毒霧)로 빽빽하게 메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쇠가 부식되는 듯한 지독한 산성의 피비린내와 독기가 일행의 코를 찔렀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흑풍독무'로군."
제갈운이 해독약을 꺼내 대원들에게 나누어 주며 경계했다.
"해독단을 먹어도 저 안에 오랫동안 머물면 피부가 문드러지고 시력을 잃게 될 것이오. 조심해서 진입해야 하오."
하지만 혁은 해독약에 손을 대지 않은 채 협곡 입구로 걸어 나갔다.
"그럴 필요 없소. 내 주문 하나면 충분하니까."
혁이 두 손을 넓게 벌리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4서클에 도달한 대마법사의 강력한 바람 원소 지배력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토네이도(Tornado) - 인보크(Invoke)."
쿠우우우웅-!
협곡 내부에 엄청난 기압의 소용돌이바람이 솟구쳐 올랐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협곡의 좁은 틈새를 사정없이 휩쓸며 빽빽하게 차 있던 흑풍독무를 하늘 높이 통째로 쏘아 올렸다.
동시에 혁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와이드 퓨리피케이션(Wide Purification)."
순백색의 정화 광선이 벼락처럼 대지 위로 흩어지며 공기 중에 남아 있던 미세한 독소와 마기의 잔재를 흔적도 없이 정화해 버렸다. 단 몇 초 만에 죽음의 지옥이라 불리던 흑풍곡의 공기는 고산지대의 맑고 청정한 바람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신룡대원들과 마도문의 제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연의 험지 자체를 마법의 권능으로 개조해 버린 것이다.
"진격하라."
혁의 명령이 떨어졌다.
"예!"
남궁백과 남궁연이 선두에 서서 제자들과 함께 협곡 안으로 들이쳐 들어갔다.
협곡 내부 공터에는 갑작스럽게 독무가 걷히자 놀란 수백 명의 흑월교도와 그들이 조종하던 썩어 가는 시체 흉물, '괴시(傀尸)' 백여 구가 뒤섞여 있었다.
"이, 침입자들이다! 괴시들을 풀어라! 한 놈도 남기지 마라!"
흑월교의 하부 간주들이 지팡이를 흔들며 괴시들을 몰아붙였다.
"마도문 제자들은 진형을 유지하라!"
남궁백의 지휘 아래 이십 명의 마도문 정예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 주변으로 맑고 투명한 마나의 빛무리가 은은하게 아른거렸다.
스샤샤샤샥-!
제자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력이 깃든 예리한 은빛 참격이 괴시들의 부패한 살과 뼈를 손쉽게 잘라 내며 그들을 무력화했다. 정예 제자들은 혁의 기초 마도 조식법으로 단련되어 이미 이류 무인 이상의 신체 능력과 파괴력을 지녔다. 그들은 기괴한 괴시 군단을 상대로도 전장을 완전히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