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4화: 보이지 않는 장벽
배급당에서 일어난 소동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외당 관리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외당의 집사 마태식은 강태의 으스러진 오른손과 기절한 무사들의 처참한 몰골을 보며 노발대발했다.
"단전이 깨진 놈이 무사를 쓰러뜨려? 그것도 단 두 수 만에?"
보고를 올린 수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 집사님. 목격한 하인들의 말에 따르면, 남궁혁의 움직임이 귀신처럼 빨랐고 손바닥 한 번으로 가문의 무사를 날려버렸다고 합니다. 내공의 흐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도 기묘한 외공(外功)을 은밀히 익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공이라니! 아무리 뼈와 근육을 단련한들 내공을 쓰지 못하는 자가 어찌 일류 무사도 아닌 삼류 무사의 기세를 정면으로 꺾는단 말이냐! 분명 무언가 비겁한 술수를 썼을 터."
마태식은 이가 갈렸다.
연이어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조필에 이어 강태까지 처참하게 짓밟히자 가문 내에서 그의 입지도 좁아질 판이었다.
"집법당(執法堂)에 알리기엔 번거롭다. 가문의 장자이신 남궁위 공자님의 이름에 흠집이 날 수도 있어. 내당에 보고하기 전에 우리가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마태식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궁표(南宮彪) 조장을 불러라."
남궁표는 외당의 하급 무사들을 이끄는 조장 중 한 명으로, 남궁세가의 방계 출신이었다. 비록 방계라 외당에 머물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이십 년 넘게 남궁의 가법을 익혀 이류(二流)의 경지에 도달한 실력자였다. 삼류 무사들과는 격이 다른 진짜 무인이었다.
"그 쓰레기 놈이 외공이든 요술이든 썼다면, 진짜 무인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면 되겠지."
마태식은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시각, 별채의 방 안.
혁은 방바닥에 수놓인 푸른빛의 마력 입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배급당에서 가져온 최고급 숯 덕분에 방 안은 훈훈한 온기로 가득했고 쌀과 고기로 배를 채운 그의 육체는 빠르게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 옆에서 박동하는 마나 하트는 이제 티끌이 아니라, 완연한 푸른색의 보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1서클 마나 하트의 완전한 안정화.’
혁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온몸의 혈관과 세포를 타고 흐르는 마력이 전보다 훨씬 유기적이고 부드러웠다. 이제 주문을 외우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1서클 수준의 마법을 지체 없이 시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작은 푸른 불꽃을 피워 올렸다.
이 세계의 무인들이 내력으로 일으키는 삼매진화(三昧眞火)와 유사해 보이지만, 마법의 불꽃은 원소의 배열을 조작해 온도를 영하로 낮출 수도, 수천 도의 고열로 올릴 수도 있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힘이었다.
‘기초적인 원소 제어가 가능해졌군. 마나 검강의 위력을 한 층 더 끌어올릴 수 있겠어.’
그때, 별채 마당으로 거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어젯밤 어둠을 틈타 기어들어 왔던 쥐새끼들과 달리, 이번에는 대낮에 대놓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기운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묵직하고 예리한 진기(眞氣)를 품은 강자가 있었다.
"남궁혁은 당장 밖으로 나와라!"
벼락같은 고함이 별채의 낡은 문을 흔들었다.
방 안에서 바느질을 하던 소소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혁은 소소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 안심시킨 뒤 조용히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마당에는 대여섯 명의 무사들이 삼엄한 기세로 서 있었다.
그 중심에는 덩치가 우람하고 턱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란 중년의 무사가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외당의 조장 남궁표였다.
남궁표는 낡은 문을 열고 나오는 혁을 오만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네가 서자 남궁혁이냐?"
"그렇다."
"감히 가문의 서자 놈이 배급당을 습격하여 가문의 무사를 해하고 집사를 으스러뜨렸으니, 이는 엄연한 가법(家法) 위반이자 모반이다. 마 집사님의 명령에 따라 너를 체포하겠다.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남궁표의 곁에 있던 무사 둘이 철제 포박줄을 들고 다가왔다.
혁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배급당의 강태가 우리 몫의 배급을 갈취하고 누님을 때린 것은 가법에 어긋나지 않는 모양이지?"
"흥, 미천한 시녀의 피를 이어받은 서녀가 가문의 배급에 토를 다는 것 자체가 분수를 모르는 짓이다. 강 집사는 그저 훈육을 했을 뿐. 어디서 감히 말대꾸냐!"
남궁표의 오만한 답변에 혁의 입가에 차가운 실소가 걸렸다.
"역시 이 가문은 대화보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군. 내 고향의 마탑(Mage Tower)과 다를 바가 없어."
"네 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얘들아, 쳐라!"
무사 두 명이 포박줄을 내던지고 혁의 양팔을 제압하기 위해 쾌속하게 손을 뻗었다. 그들의 손끝에는 삼류 수준의 진기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가볍게 들어 허공을 향해 내밀었다.
‘실드(Shield).’
웅-
보이지 않는 다차원의 차단막이 혁의 전면에 전개되었다.
무사들의 손이 혁의 몸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깡!
마치 강철 벽을 때린 듯한 맑은 쇳소리와 함께 무사들의 손가락 뼈가 꺾이며 뒤로 물러섰다.
"아악! 이게 무슨……!"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차단하고 있다!"
무사들은 손을 움켜쥐고 경악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남궁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림의 고수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다다를 수 있다는 무형의 방어막.
"호, 호신강기(護身罡氣)?! 네 놈이 어떻게 호신강기를……!"
남궁표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호신강기는 내공을 체외로 방출하여 무형의 막을 만드는 절예 중의 절예로, 최소한 화경(化境)의 경지에 이른 절세 고수만이 시전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내공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전이 깨진 절맥증 환자가 호신강기를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사파의 요사스러운 방어구라도 몸에 두른 것이 분명하다!"
남궁표는 스스로 무림의 상식을 부정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샤아악-.
검신을 타고 푸르스름한 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류 고수로서 펼칠 수 있는 최선의 내력이었다.
"가문의 가법을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놈! 내 검을 받고도 그 방어막이 버틸 수 있는지 보자!"
남궁표가 대지를 박차고 튀어 올랐다.
남궁세가의 기초 검법인 ‘창공검법(蒼穹劍法)’의 일초가 혁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베어 내려왔다.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내력이 실린 검날이 매섭게 쏟아졌다.
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심장의 마나 하트를 가동해 실드의 두께를 강화했다.
콰르릉!
검날이 보이지 않는 실드의 장벽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강력한 진기와 마력의 충돌로 인해 마당의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지만 남궁표의 검은 혁의 머리 위 삼십 센티미터 허공에 멈춰 선 채 단 일 밀리미터도 더 내려가지 못했다.
"말도 안 돼……!"
남궁표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의 전력을 담은 검 격이 허공에 걸려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반발력으로 인해 그의 손목 뼈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혁은 보이지 않는 벽 너머로 남궁표를 싸늘하게 응시했다.
"무기의 무게를 싣는 법도, 내력을 운용하는 법도 조잡하기 짝이 없군. 9서클 대마법사의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일 뿐이다."
"이, 이 괴물 같은 자식이……!"
남궁표가 황급히 회수하여 다음 초식을 펼치려던 찰나.
혁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플리커(Flicker).’
팟-
남궁표의 눈앞에서 혁의 모습이 지워졌다.
"어디냐?!"
그가 황급히 검을 회수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지만, 혁은 이미 그의 품 안, 심장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혁의 오른손 끝에 시뻘건 열기를 품은 마력의 불꽃이 맺혀 있었다.
‘화염의 접촉(Fire Touch).’
타아앙!
혁의 손바닥이 남궁표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열기가 남궁표의 옷과 가슴 가죽을 태우며 침투했다.
"끄아아악!"
남궁표는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자빠져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옷자락에는 불길이 붙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가슴팍에는 시꺼먼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가 흘리는 내력은 혁의 열기 섞인 마력 앞에서는 아무런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조, 조장님!"
남은 무사들이 경악하여 남궁표를 부축했다.
남궁표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에 입은 화상도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의 모든 무공이 이 무형의 소년에게 단 두 수 만에 무력화되었다는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혁은 옷자락을 가볍게 털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돌아가서 마태식에게 전해라."
그의 발걸음이 남궁표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시 한번 내 영역을 침범하거나 누님을 건드린다면, 다음에는 가문 전체가 들썩일 만한 시체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차가운 경고에 남궁표는 침을 삼켰다. 눈앞의 소년은 더 이상 가문의 버림받은 서자가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었다.
"흐, 힉…… 후퇴하라! 당장 철수한다!"
남궁표의 지시에 무사들은 기절한 동료들을 짊어지고 부랴부랴 마당을 빠져나갔다.
마당에 홀로 남은 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낮의 햇살이 그의 차가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 외당의 하급 무사 수준으로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마태식의 배후에는 남궁위가 있다. 조만간 더 강한 고수들이 올 터.’
혁은 심장 속 마나 하트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더 높은 마법의 극의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다시 한번 수련을 서둘러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