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29화: 철검문(鐵劍門)의 위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상단의 상주(商主)가 혁의 앞에 넙죽 엎드렸다.
"대협!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소인은 호북성의 상인 이정길이라 합니다. 대협이 아니었다면 저희 상단 전원이 저 흉악한 도적 놈들에게 목숨을 잃고 재물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혁은 이정길을 담담히 일으켜 세웠다.
"지나가는 길에 방해물이 있어 치웠을 뿐이오. 감사할 것 없소."
이정길은 혁의 비범한 기세와 앳된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혹 중원으로 향하시는 길입니까? 그렇다면 부디 저희와 동행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 근방의 치안이 최근 극도로 악화되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듭니다."
"치안이 악화되었다니, 관청이나 인근의 문파는 무엇을 하고 있소?"
마차 옆에 서 있던 남궁백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상로라면 인근의 명문정파나 지방 문파들이 보호비를 받고 치안을 유지하기 마련이었다.
이정길이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원래 이 지역은 의기 있는 소문파인 '철검문(鐵劍門)'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철검문의 문주께서 성품이 곧고 무공이 뛰어나 도적들이 감히 날뛰지 못했지요. 하지만 최근 '흑귀방(黑鬼幫)'이라는 흑도 방파가 괴이한 무공을 들고 나타나 철검문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흑귀방?"
"예. 본래는 삼류 잡배들의 모임이었으나 최근 정체불명의 조력자로부터 힘을 얻었는지 급격히 세력을 불렸습니다. 철검문의 장로들이 연이어 그들에게 암살당했고 이제 철검문의 본산마저 포위되어 멸문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인근의 상로가 무법천지가 된 것입니다."
혁은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정체불명의 조력자, 그리고 급격히 강해진 삼류 방파. 마법사로서의 예리한 직감이 무언가 배후가 있음을 감지했다. 단순히 무림인들끼리의 영역 다툼이 아니었다.
'흑월교의 음모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항간에 소문으로 떠돌던 중원의 거대한 암천, 흑월교(黑月敎). 그들이 중원의 소문파들을 집어삼키며 세력을 확장하는 음모의 단초일 수 있었다.
또한, 혁에게는 강호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근거지가 필요했다. 철검문이라는 올곧은 문파를 구원하고 그들을 흡수한다면, 마도문(魔導門)의 훌륭한 기반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이정길이라 했소?"
혁이 물었다.
"예, 대협."
"우리 마차를 그 철검문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오. 마침 나도 그곳에 볼일이 생겼소."
혁의 결정에 남궁백과 남궁연은 묵묵히 주군의 뜻을 따를 준비를 마쳤고 소소는 긴장되면서도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혁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격류가 기다리는 철검문의 본산, 낙양 외곽의 영월현으로 향하는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