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22화: 마나와 진기의 격돌
연회장에 모인 영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사내에게 쏠렸다.
남궁혁.
시녀의 몸에서 태어나 단전이 파괴된 절맥의 서자. 가문의 수치이자 버림받은 낙오자로 불리던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걸음걸이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바람 위를 걷는 듯한 가벼움과 대지처럼 묵직한 안정감이 공존하는 기묘한 보법이었다.
"혁아, 조심하거라……."
뒤에서 소소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혁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의 손을 살포시 떼어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님. 금방 끝날 것입니다."
비무대 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올라서는 혁의 모습에 귀빈석의 고수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상하군."
무당파의 장로 송진 도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보법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은데, 몸에서 느껴지는 기혈의 흐름이나 단전의 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구나. 정말 내공이 없는 일반인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절맥의 폐물이라 불렸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내공이 없이 어떻게 외당의 고수들을 꺾었는지 참으로 기이합니다."
제갈세가의 제갈현이 흥미로운 듯 부채를 살랑이며 대꾸했다.
마침내 비무대 중앙, 남궁위의 맞은편에 혁이 마주 섰다.
남궁위는 창공검을 비스듬히 겨눈 채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결국 올라왔구나, 쥐새끼 같은 놈. 대외적으로는 동생이라 불러주마만,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의 그 건방진 대가리를 깨뜨려 주마. 아버님과 천하 영웅들 앞에서 네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말이 많군, 남궁위."
혁은 허리에 찬 묵직한 현검(玄劍)의 자루에 손을 올렸다.
"네놈이 자랑하는 그 '진기'라는 것이 내 '마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몸소 깨닫게 해주마."
"건방진 놈!"
쉬이이익!
남궁위가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서슬 퍼런 푸른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혁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일류 고수의 경지에 도달한 남궁위의 검격은 세차고 빨랐다. 관중석의 젊은 무사들이 침을 삼켰다.
하지만 혁은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의 발끝이 바닥에 닿는 순간, 공기가 미세하게 굴절되는 듯하더니 혁의 신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앗!
"무엇?!"
남궁위의 눈이 크게 번뜩였다.
분명히 검끝에 걸려야 할 혁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검기는 빈 허공만을 갈랐다. 남궁위가 급히 신형을 돌려 사방을 경계하려는 찰나,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보고 있는 거지?"
스스슥.
혁은 이미 남궁위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공간을 접어 이동하는 9서클 마법사 시절의 '블링크(Blink)'를 응용한 보법. 무림인들이 보기에는 전설적인 축지법이나 극성인 신법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괴이한 신체 이동이었다.
"이 빌어먹을 놈이!"
남궁위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몸을 회전시켰다. 창공검법의 초식 중 하나인 '창공선풍(蒼穹旋風)'이 펼쳐지며 매서운 바람과 함께 수십 개의 검영이 혁의 전신을 덮쳐갔다. 피할 공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집요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혁은 이번에도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왼손을 가볍게 내밀어 허공에 올렸다.
"실드(Shield)."
혁의 나지막한 영창과 함께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마력 장벽이 겹겹이 솟구쳐 올랐다.
깡! 깡! 깡! 깡!
남궁위의 매서운 검격들이 푸른 장벽에 부딪히며 금속성의 굉음만을 낼 뿐, 단 한 치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반사되는 진기의 충격에 남궁위의 손목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이, 이게 무슨 해괴한 무공이냐! 호신강기(護身罡氣)란 말이냐? 내공도 없는 네놈이 어떻게 강기를 펼친단 말이냐!"
남궁위는 경악했다. 호신강기는 초일류 고수조차 극심한 진기 소모를 감수하며 펼치는 극의의 방어 무공이다. 그런데 내공도 감지되지 않는 서자 놈이 손짓 한 번으로 아무런 징후도 없이 견고한 장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연회석의 고수들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저 방어막은 무엇인가? 진기의 파동이 전혀 없는데……!"
"마치 천지의 다른 기운을 억지로 묶어 장벽을 만든 것 같소. 무당의 태극혜검으로도 저런 식의 즉각적인 방어막은 불가능하거늘!"
혁은 경악에 찬 남궁위를 바라보며 마침내 허리의 현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검신이 드러나자마자 검날을 따라 차갑고 맑은 은빛의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진기로 이루어진 검강(劍罡)이 아닌, 순수한 마력을 극도로 압축시킨 '마력 검강'이었다.
"이제 내 차례다, 소공자."
혁의 눈동자가 깊고 푸른 심연처럼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