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21화: 연회(宴會)의 격류와 소공자의 도전
보름의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갔다.
그동안 청죽헌은 철저히 통제된 요새처럼 움직였다.
혁이 흑풍채에서 거두어들인 막대한 재물과 가주에게서 얻어낸 영약들은 남궁백과 남궁연을 비롯한 여섯 명의 수하들에게 아낌없이 주입되었다. 혁의 마도 조식법과 정교한 기혈 침술을 거친 그들의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이제는 내당의 웬만한 정예 무사들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강자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황의 오십 세 탄신 연회와 가문의 가장 큰 행사인 ‘청년 비무대회’가 개최되는 날이 밝았다.
세가 전체가 붉은 비단과 황금빛 등불로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중원의 내로라하는 무림 명문가들의 사절단이 속속 들이닥쳤다.
무당파(武當派)의 장로 송진 도인, 제갈세가(諸葛世家)의 가주 대행 제갈현, 그리고 사천당가(四川唐家)의 소가주 당위까지.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들이 연회장에 가득 들어찼다.
연회장 중앙의 상석에는 가주 남궁황이 위엄 넘치는 자세로 앉아 있었고 그의 오른쪽에는 세가의 안주인이자 남궁위의 생모인 정실부인 ‘독고 부인(獨孤 氏)’이 앉아 있었다.
독고 부인은 연회장 구석진 곳에 화려하고 고운 소저의 예복을 입고 앉아 있는 소소와 혁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비천한 시녀의 자식 년놈들이 내당의 자리에 앉아 있다니, 가문의 수치로다. 오늘 내 저 계집의 콧대를 꺾어 미천한 출생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독고 부인은 손짓으로 소소를 가리키며 맑고 높은 목소리로 연회장을 울렸다.
"거기 셋째 소녀 소소야. 오늘 아버님의 탄신일인데, 구석에 멍하니 앉아 무엇 하느냐? 이리 나와 귀빈들의 잔에 술을 올리도록 하거라."
가문의 귀한 잔치에서 정식 소저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것.
그것은 다른 문파의 영웅들 앞에서 소소를 하인이나 기녀 취급하여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려는 잔인한 수작이었다. 연회장의 영웅들은 남궁세가 내부의 권력 갈등을 눈치채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소소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소소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혁의 낡은 철검은 두고 왔으나, 그의 허리에 찬 무거운 현검(玄劍)이 묵직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혁은 독고 부인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부인. 가문의 귀한 상객들 앞에서 세가의 정식 소저를 시비(侍婢) 취급하는 것이 남궁세가의 정당한 예법입니까?"
"이, 무엄하구나! 어디서 서자 놈이 정실의 명령에 혀를 놀리느냐!"
"부인께서 세가의 예법을 잊으신 것 같아 상기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누님은 가주님께서 공인하신 세가의 소저입니다. 술을 따를 하인들이 연회장에 차고 넘치거늘, 소저에게 시중을 들게 하려는 부인의 처사는 세가의 안주인으로서 품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짓입니다."
혁의 차갑고 날카로운 지적에 연회장의 귀빈들 사이에서 헛기침 소리와 동조의 웅성거림이 일었다. 독고 부인의 얼굴이 붉다 못해 파랗게 질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 불한당 같은 놈이 감히……! 집법당 무사들은 당장 이자를 끌어내라!"
독고 부인이 비명을 지르던 그때 가주 남궁황이 찻잔을 탁자에 무겁게 내려놓았다.
탁-
"그만해라."
가주의 단 한마디에 연회장의 모든 소란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부인. 오늘처럼 경사스러운 날에 굳이 격을 따질 필요는 없소. 혁이의 말이 맞으니 소소는 자리에 앉도록 하시오."
가주의 판결에 독고 부인은 입을 굳게 다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궁위는 가죽 장갑을 낀 손을 움켜쥐며 혁의 목줄기를 쏘아보았다.
이어서 가주 남궁황이 우렁찬 목소리로 선언했다.
"탄신 연회를 축하하기 위해, 지금부터 세가의 미래를 이끌 신진 제자들의 실력을 겨루는 ‘청년 비무대회’를 시작하겠소!"
관중들의 탄성과 함께 연회장 중앙의 대리석 바닥이 열리며 웅장한 비무대가 솟구쳐 올랐다.
비무대회가 선포되자마자 남궁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에 쥔 명검 ‘창공검(蒼穹劍)’이 푸른 진기의 불꽃을 내뿜으며 맑은 검명을 울렸다. 그는 가벼운 신법으로 날아올라 비무대 중앙에 사뿐히 착지했다.
남궁위는 검을 뻗어 관중석의 혁을 똑바로 가리켰다.
"아버님 그리고 중원의 영웅분들! 오늘 아버님의 탄신을 경축하기 위해, 나 남궁위가 첫 번째 비무로 내당의 셋째 동생 남궁혁에게 도전장을 던지겠습니다!"
남궁위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려 있었고, 일류의 극의에 달한 압도적인 진기의 폭풍이 비무대 주변을 거칠게 짓눌렀다.
"남궁혁! 네놈이 외당의 쥐새끼들을 쓰러뜨리고 내당에 들어와 제법 기세를 올렸다 들었다. 하지만 오늘 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너희 년놈들은 가문 밖으로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어서 비무대로 올라와라!"
천하의 귀빈들 앞에서 선포된 소공자의 도전장.
남궁세가의 진정한 후계자와 절맥에서 깨어난 대마법사의 피할 수 없는 장엄한 결전이 비로소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연회장의 영웅들은 침을 삼키며 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