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17화: 현검(玄劍)과 신검각(神劍閣)의 충돌
내당 제자로 승격된 제자에게는 세가의 무기 창고이자 보물 보관소인 ‘신검각(神劍閣)’에서 정식 보검(寶劍) 한 자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혁은 소소, 그리고 남궁백을 대동하고 신검각으로 향했다.
내당 중심부에 위치한 신검각은 거대한 대리석과 기와로 지어진 웅장한 누각으로 입구부터 가문의 수호 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수십 자루의 화려한 장포와 금실로 장식된 명검들이 벽면에 걸려 영롱한 진기의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공자님, 저기 있는 검들이 내당의 일류 무사들이 쓰는 보검들입니다. 기운이 대단합니다."
남궁백이 감탄을 흘렸으나, 혁의 눈에는 그저 겉만 화려한 조잡한 쇳조각들에 불과했다. 마도사의 눈으로 스캔한 결과 그 검들은 진기의 전도율은 높았으나 마력의 투사율은 지극히 낮아 마법 무공을 펼치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때, 신검각을 관리하는 내당의 장로 ‘남궁규(南宮圭)’가 거만하게 수염을 만지며 다가왔다. 그는 소공자 남궁위의 파벌에 속한 인물이었다.
"셋째 공자 남궁혁이로군. 네가 외당 비무에서 우승해 이곳에 올 자격을 얻었으나, 세가의 정통 핏줄이 아닌 서자에게는 1등품 보검을 내줄 수 없다. 저기 구석에 쌓인 잡철(雜鐵)들 중에서 골라가도록 하거라."
남궁규가 가리킨 곳은 창고 한구석에 녹슨 철검들과 구부러진 고철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초라한 폐기물 보관소였다.
"장로님! 이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내당 제자는 신검각의 2등품 이상 보검을 받을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남궁백이 참지 못하고 따졌으나, 남궁규는 콧방귀를 꼈다.
"시끄럽다, 방계의 사냥개 놈이 어찌 내당 장로의 판결에 토를 다느냐! 서자 주제에 내당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지."
혁은 격분하는 백의 어깨를 짚어 말렸다.
그의 시선은 이미 남궁규의 비웃음을 넘어, 폐기물 무더기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2서클 마나 감지망에 기묘할 정도로 주위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금속의 파동이 감지된 탓이었다.
혁은 폐기물 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먼지와 녹이 잔뜩 슬어 있는 검고 무거운 둔기 같은 형상의 검 한 자루를 집어 올렸다.
검날은 무뎠고, 장식도 없이 뭉툭한 검은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무게 또한 일반 검보다 다섯 배는 무거운 삼십 근(약 18kg)에 달해 보통의 무인은 한 손으로 휘두르기도 벅찬 괴물 같은 철판이었다.
남궁규가 그것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 쓸모없는 현철반(玄鐵板)을 고르다니, 과연 안목 또한 쓰레기답구나. 그 검은 백 년 전 세가의 장인이 특수한 철광석으로 주조했으나 내공(內功)을 완전히 차단하고 흡수해 버리는 반기(反氣) 속성을 지녀 그 어떤 무인도 쓰지 못하고 버려둔 흉물이다. 기가 흐르지 않는 검을 골라 무엇에 쓰려느냐?"
내공을 차단하고 흡수하는 반기 속성.
무인들에게는 내력을 검 끝으로 보낼 수 없으니 쓰레기 형틀에 불과하겠지만, 혁에게는 이것보다 완벽한 마법 매개체가 없었다.
마력은 진기와 성질이 완전히 다르기에 반기 속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내공 참격을 검날로 받아쳐 무력화(Dispel)시킬 수 있는 무림인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사기적인 마검(魔劍)의 재료였다.
"이 검으로 하겠다."
혁은 묵직한 검을 가볍게 한 손으로 쥐어 들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그의 신체 능력 앞에서는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흥, 마음대로 하거라. 장부에 기록해 둘 테니 썩 물러가라."
남궁규는 혁이 스스로 족쇄를 찼다고 확신하며 비열하게 웃었다.
신검각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무리의 내당 제자들이 길을 막아섰다. 그 중심에는 남궁위의 사촌동생이자 외당 감시자였던 ‘남궁민’이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남궁혁! 마 집사를 감옥에 보내고 내당에 기어들어 오니 세상이 네 발아래에 있는 것 같더냐?"
남궁민은 허리춤의 명검을 스르릉 뽑아 들었다.
"그 흉물스러운 철판때기를 들고 무공이라도 펼쳐 보이겠다는 심산인가 본데, 오늘 내당 제자들의 매서운 맛을 보여주지. 덤벼라!"
남궁민의 검날이 쾌속하게 빛을 내뿜으며 혁의 안면을 향해 쏘아져 왔다.
내당의 일류(一流) 제자다운 매서운 살초(殺招)였다. 검 끝에 실린 날카로운 검기가 바람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혁은 피하지도, 마법을 캐스팅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손에 쥔 무거운 검은 철검을 가볍게 휘둘러 남궁민의 검을 맞받아쳤다.
깡!-
무거운 철음과 함께 공중에서 두 검이 맞닿았다.
그 순간, 남궁민의 검에 실려 있던 청색의 진기가 거짓말처럼 눈 녹듯 소멸해 버렸다. 검에 흐르던 내력을 현검의 반기 속성이 순식간에 빨아들여 지워버린 탓이었다.
"어, 어라?! 내력이……!"
남궁민이 당황해하는 찰나, 삼십 근에 달하는 무거운 현철검의 물리적 파괴력이 그의 검신을 통째로 짓눌렀다.
콰직!
강철로 제련된 남궁민의 명검이 쇳가루를 뿌리며 단번에 부러져 나갔다.
부러진 검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현검의 묵직한 기세가 남궁민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끄하학!"
남궁민은 가슴을 짓눌리는 충격에 뒤로 날아가 신검각 앞 대리석 돌기둥을 들이받으며 쓰러졌다. 그는 부러진 검 자루를 쥔 채 각혈을 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민 공자님!"
뒤에 서 있던 내당 제자들이 겁에 질려 남궁민을 부축했다.
혁은 어깨에 검은 현검을 걸친 채 바닥에 쓰러진 남궁민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내공을 차단하는 무딘 철판이라도, 네놈들의 목줄기를 부러뜨리기엔 충분한 것 같군."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현검의 무딘 칼날이 서서히 푸른 마력의 빛을 흡수하며 기괴한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음에는 검이 아니라 네놈의 목뼈가 부러질 것이다. 비켜라."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남궁민을 짊어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검각 주변을 지키던 장로 남궁규조차 창문 틈새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혁은 현검을 고쳐 쥐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대마법사의 진정한 뇌력을 투사할 마검, ‘현검(玄劍)’이 비로소 그의 손에 쥐어졌다. 내당의 권력 구도를 뿌리째 뽑아버릴 파멸의 검이 잠을 깨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