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12화: 포섭(包攝)의 시작과 혈검(血劍)
남궁철의 처참한 패배는 연무관 전체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남궁위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고, 서무관들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이대로 남궁혁이 비무를 이어가 승리를 거듭한다면 가문 장자로서의 권위는 물론이고 외당에 심어둔 자신의 세력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위기였다.
"다음 판에 바로 사도현(司徒賢)을 올려라."
남궁위가 남궁민에게 은밀히 속삭였다.
사도현은 세가가 외지에서 영입한 초빙 무사, 즉 식객(食客) 중 한 명으로 잔인무도한 사파(邪派) 출신의 검객이었다. 칭호는 ‘혈검(血劍)’. 그의 검에는 사람의 피를 빨아들이는 독특한 혈사기(血邪氣)가 서려 있어,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부패하고 내력이 마비되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비록 정식 혈족은 아니었지만 가문 비무대회의 규칙상 제자들의 실력 검증을 위해 초빙 무사와의 대련도 허용되어 있었다.
"사도현에게 전해라. 실수인 척하고 저 쓰레기의 단전을 완벽하게 꿰뚫어 숨통을 끊어놓으라고. 성공한다면 세가의 수호 무사 지위와 은자 천 냥을 내릴 것이다."
남궁위의 잔혹한 배치가 은밀하게 배급당 뒤편에서 조율되는 동안, 혁은 대기석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대기석 한편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웅크리고 있는 한 소년에게 머물렀다.
소년의 이름은 ‘남궁백(南宮白)’. 방계 가솔의 자식으로, 자질은 뛰어났으나 집안이 가난하고 세력에 줄을 대지 못해 다른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구타당하고 괴롭힘을 받던 아이였다.
방금 전 비무에서 남궁위의 사촌동생인 남궁민의 부하에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채 버려져 있었다.
"아윽…… 으으……."
남궁백이 고통에 신음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꺾이지 않는 독기(毒氣)와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혁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가진 것 없는 자가 세상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뿜어내는 그 날카로운 투지는, 잘 연마한다면 훌륭한 검날이 될 자질이었다.
혁은 소소에게 가볍게 눈짓을 보냈다.
소소는 혁의 뜻을 알아차리고 품에서 따뜻한 물과 붕대를 꺼내 남궁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혁에게서 배운 운기법의 기초를 응용해 따뜻한 온기로 소년의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며 붕대를 감아주었다.
"이걸 마시고 가슴의 통증을 다스려봐. 뼈는 부러졌지만 기혈을 안정시키면 금방 나을 거야."
남궁백은 의외의 호의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가문의 천덕꾸러기이자 쓰레기라 불리던 서자 남매가 자신을 돕고 있었다.
"왜…… 저를 돕는 것입니까? 저는 힘도 없고 줄도 없는 방계의 낙오자일 뿐입니다."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혁이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2서클 마도사의 압도적인 기세가 소년의 영혼을 가볍게 뒤흔들었다.
"줄이 없다면, 내가 네 줄이 되어주지. 힘이 없다면, 힘을 얻을 수 있는 공식을 가르쳐주마. 다만 조건이 있다."
혁의 차가운 눈동자가 소년의 독기를 투과하듯 꿰뚫었다.
"너의 검과 네 충성을 내게 바쳐라. 남궁세가의 장벽 아래에서 짓밟히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나와 함께 그 장벽을 무너뜨리고 세상의 꼭대기에 설 것인지. 선택은 네 몫이다."
남궁백의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단전이 깨진 줄 알았던 셋째 공자는 방금 전 이류 고수를 세 수 만에 분쇄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보여주는 기세는 남궁세가의 가주조차 보여주지 못한, 마치 차원의 틈새를 내려다보는 신비롭고 압도적인 권능이었다.
소년은 주저 없이 피 묻은 무릎을 꿇었다.
"……제 검을 공자님께 바치겠습니다. 저를 이 진흙탕에서 구원해주십시오."
"현명한 선택이다. 비무대회가 끝나면 별채로 찾아와라."
혁은 소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첫 번째 수하이자, 장차 천하를 뒤흔들 마도문(魔導門)의 기초를 닦을 충직한 검이 포섭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판관의 고함이 연무관의 대기를 찢었다.
"두 번째 대전! 초빙 무사 사도현 대 서자 남궁혁! 양방은 비무대로 오르라!"
관중석이 다시 한번 동요했다.
"사도현이라고? 저 살수가 왜 비무대에 오르는 거지?"
"소가주 파벌에서 대놓고 남궁혁의 숨통을 끊으려는구나. 저자는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귀다!"
사도현은 붉은 가죽 장포를 걸친 채 이가 톱날처럼 돋아난 불길한 흑검을 들고 비무대로 올라왔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끈적끈적하고 불길한 혈사기(血邪氣)가 비무대의 목조 바닥을 시꺼멓게 변색시켰다. 일류(一流) 고수의 살기였다.
사도현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으며 혁을 쏘아보았다.
"꼬마야, 네 무형의 방어막이 제법 단단하다 들었다. 하지만 내 혈강(血罡)을 머금은 검날 앞에서도 그 장벽이 유지될 수 있을까? 뼈째로 녹여주마."
혁은 묵묵히 낡은 철검을 뽑아 들었다.
두 개의 마나 서클이 심장 속에서 세차게 공전하며, 2서클 마법의 공식을 완성해 나갔다.
비무 시작을 알리는 판관의 수신호가 내려지자마자, 사도현의 신형이 붉은 안개처럼 흐려졌다.
파아앗!
공간을 뚫고 나온 사도현의 흑검이 수십 개의 붉은 참격을 그리며 혁을 향해 사방에서 쏟아졌다. 사파의 독문 무공인 ‘혈하십참(血河十斬)’. 붉은 참격들이 대기를 부식시키며 독한 냄새를 풍겼다.
혁은 눈동자를 빛내며 주문을 마음속으로 전개했다.
‘환영 분신(Mirror Image) - 삼중 투영.’
스스슥-
사도현의 붉은 참격들이 혁의 몸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가 없는 허영이었다. 잘려 나간 혁의 형상들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뭉쳤다.
"환술인가?! 잔재주를!"
사도현이 경악하며 광역으로 기운을 방출해 환영을 없애려던 찰나 혁의 본체는 이미 그의 대각선 아래쪽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사도현이 황급히 검을 아래로 꺾으려 했으나 그의 디딤발이 순간적으로 허공으로 들리며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소염력(Lesser Telekinesis) - 물리 간섭.’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력이 사도현의 앞발을 뒤로 강하게 낚아챈 탓이었다.
"이, 이게 무슨 요술이……!"
사도현이 비틀거리며 틈을 보인 순간, 혁의 철검이 붉은 불꽃을 가득 머금은 채 사도현의 검을 향해 내리쳐졌다.
‘속성 검법 - 폭염(Combustion).’
콰르릉!
폭발적인 화염 마력이 철검 끝에서 번개처럼 터져 나왔다.
사도현의 흑검에 서려 있던 끈적한 혈사기는 고열의 마력 화염 앞에서는 한 줌의 연기로 증발해 버렸다. 화염의 파괴력이 흑검을 타고 사도현의 오른팔 전체를 덮쳤다.
"아아아악!"
살이 타들어 가는 지독한 냄새와 함께 사도현은 비명을 지르며 흑검을 떨어뜨렸다. 그의 오른팔은 시꺼멓게 숯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혁은 가볍게 한 걸음 더 전진하여 사도현의 턱밑을 구두굽으로 걷어찼다.
퍽!
사도현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비무대 바닥에 큰 대(大)자로 뻗었다. 그의 구강에서 부러진 이빨과 피가 뿜어져 나왔다.
완벽한 압승.
일류 고수인 살수 혈검 사도현조차 단 두 수 만에 불구가 되어 쓰러졌다.
혁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낡은 철검을 어깨에 걸친 채 상석에 앉아 있는 남궁위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마치 남궁위의 목줄기를 겨누고 있는 듯했다.
"다음 인형은 누구지?"
혁의 오만한 도발이 연무관의 침묵을 찢고 남궁세가의 심장부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소공자 남궁위의 얼굴이 짓이겨지듯 잔인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