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111화: 세가(世家)의 재편(再編)과 연합(聯合)의 사절
남궁세가의 영토인 합비 장원은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혁의 마법 장벽(Mana Barrier)이 세가 전체를 감싸 안으며 외부의 침입을 원천 차단했고, 가문의 생존자들은 안도감 속에서 부상을 치료했다. 실질적인 권력을 쥐게 된 남궁소소는 혁의 조력 아래 가문의 외당과 재정을 장악해 나갔다.
"소소 님, 가주 가솔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남궁백이 염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혁은 소소의 처소 탁자 위에 서너 개의 은빛 보석을 올려놓았다.
"그리하지 못할 것이다. 가문의 주요 인물들의 영혼에 마법적 계약(Geas)을 각인했다. 만약 소소에게 해를 끼치거나 배신을 꾀할 경우, 그들의 심장 속 마나가 폭발하여 즉사하게 될 터다."
철저하고 냉혹한 안전장치였다. 남궁황과 원로들은 목숨을 건진 대가로 혁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된 셈이었다. 소소는 혁의 은혜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눈빛을 단단히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혁아, 네가 무림의 전면에서 싸우는 동안 가문의 모든 자원을 뒤에서 아낌없이 보급해 주마. 세가의 명성도 네 아래에서 새롭게 쓰이게 하겠어."
소소의 당찬 결의에 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장원 정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궁문의 무사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문주님! 무림맹에서 보낸 특사가 당도했습니다. 긴급한 사안이라며 즉시 문주님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림맹의 사절이라."
혁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들여보내라."
잠시 후, 청색 비단포를 입은 오만한 기세의 중년 사내가 연무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림맹의 외당 당주이자 화산파(華山派)의 일류 고수인 백청학(白靑鶴)이었다. 그는 파괴된 연무장과 그 위를 덮은 반투명한 은빛 장벽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다, 이내 혁을 발견하고 거만한 자세로 포권을 취했다.
"무림맹 외당주 백청학이라 하오. 남궁혁 문주를 뵙소."
백청학의 눈빛에는 서자 출신인 혁을 얕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마장을 베었다는 소문이 자자했으나, 가문의 세력을 등에 업지 못한 신흥 세력의 우두머리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용건만 말해라. 바쁘다."
혁이 자리에 앉은 채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백청학은 혁의 무례한 태도에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험험! 지금 마교의 본대가 하남(河南)성의 숭산 근처까지 들이닥쳤소. 무림맹주님께서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 마도문 역시 맹의 통제하에 들어가 전장에 참전할 것을 명령하셨소. 특히 문주가 다루는 기이한 사술…… 아니, 무공의 비급을 맹에 공유하여 공동의 방어선을 구축하라는 지시요."
백청학의 뻔뻔한 요구에 남궁백의 손이 검자루로 향했다. 무림맹의 위기를 기회 삼아 혁의 독창적인 힘을 빼앗으려는 수작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혁은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맹의 통제? 그리고 내 비급의 공유라."
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백청학을 바라보았다. 그의 은빛 눈동자가 번뜩이는 순간, 백청학의 전신이 감전된 듯 경직되었다.
파자작-!
백청학의 발밑에서 갑작스럽게 수십 갈래의 푸른 번개 채찍이 솟구쳐 올라 그의 사지를 단단히 휘감았다.
"크윽?! 이게 무슨……!"
백청학이 내력을 끌어올려 번개를 털어내려 했으나, 번개의 마력은 그의 진기를 흡수하며 더욱 강하게 옥죄어 왔다.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에 백청학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림맹이 멸망 위기에 처하니 이성이 나간 모양이군. 내 힘을 탐내는 버릇은 정파 놈들이나 마교 놈들이나 다를 바가 없어."
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청학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돌아가서 제갈현에게 전해라. 마도문은 무림맹의 부하가 아니다. 내 힘을 원한다면 맹주가 직접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할 것이다. 한 번만 더 내 구역에서 오만한 혓바닥을 놀린다면, 그땐 화산파의 영토를 통째로 불태워 주마."
혁의 손짓에 번개 채찍이 풀려났고, 백청학은 흙먼지투성이가 된 채 헐떡이며 도망치듯 장원을 빠져나갔다. 무림맹조차 혁의 앞에서는 한낱 협상 대상에 불과함을 보여준 일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