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 대신 마나 쓰는 세가 서자

110화: 사죄(謝罪)와 복속(服屬)의 조약 (4부 시작)
스산한 바람이 얼어붙은 연무장의 잔해를 쓸고 지나갔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황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혁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백발은 흩트려져 있었고, 가슴의 상처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배어 나왔으나, 가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려는 듯 혁을 응시했다.
"혁아……."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내 평생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실리만을 쫓았으나, 네놈이라는 용을 알아보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내버린 것이 내 일생 최대의 한(恨)이 되었구나. 미안하다…… 내 너에게 가주로서, 그리고 아비로서 사죄하마."
남궁황의 두 눈에서 마침내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들이쳤다.
그 뒤에 서 있던 대장로를 비롯한 가문의 중신들 역시 무릎을 꿇었다. 과거 서자라며 천대하고, 비무대에서 누명을 씌워 쫓아내려 했던 자신들의 과오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혁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비라 불렀나."
혁이 핏물 묻은 지면을 굽어보며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나에게 아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굶주림과 구박 속에서 소소와 내가 별채에서 죽어갈 때, 방관했던 가주가 있었을 뿐이지. 이제 와서 피붙이의 정을 운운하는 것은 비겁하고 역겹군."
"혁아……!"
남궁황이 가슴을 쥐어짜며 신음했다. 혁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내 너희를 구한 것은 감정 때문이 아니다. 철저한 계산의 결과물일 뿐."
혁이 허공에 손짓을 하자, 남궁백이 미리 준비한 서찰 한 장을 들고 다가왔다.
"남궁세가는 오늘부로 마도문(魔導門)의 하부 세력으로 복속된다. 가문의 모든 정보망, 무기 생산권, 그리고 재화의 7할을 마도문으로 양도한다."
"그, 그것은 가문의 명맥을 바치는 것과 다름없소!"
한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발했으나, 혁의 차가운 눈길이 닿자 이내 입을 다물었다.
"싫다면 거절해도 좋다. 지금 당장 마도문의 결계를 거두고 철수할 테니, 마교의 다음 파도가 올 때 너희 힘으로 살아남아 보거라. 단, 내 누이 소소는 데리고 갈 것이다."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남궁세가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마교의 다음 기습이 온다면 가문은 흔적도 없이 지워질 터였다. 가문의 명맥이라도 잇기 위해서는 혁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남궁황은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좋다. 남궁세가는 오늘부로 마도문의 하부 문파가 될 것을 선포한다. 그리고…… 가문의 실질적인 운영권과 자금 관리는 혁이 네 뜻대로 소소에게 넘기마."
그것은 찬란했던 남궁세가의 역사가 끝이 나고, 남궁혁의 '마도문' 아래로 들어가는 굴욕적이면서도 유일한 생존의 조약이었다.
혁은 만족스럽다는 듯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선택이다. 남궁백, 가문의 재정비와 결계 복구를 시작해라."
"존명!"
마도문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러져 가는 남궁세가의 장원 위로, 마교의 침공을 막아설 거대한 은빛 마법 장벽이 서서히 솟구치며 안휘성의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4부 시작 - 마교의 호각, 전장의 지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