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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4화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4화: 첫 번째 압력

카엘은 대장간의 낡은 침상에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붕대 아래가 뜨겁게 욱신거렸다. 화로에 닿았던 손바닥은 아직 주먹도 제대로 쥘 수 없었다.

침상 곁의 화로에서는 푸른 불꽃이 아주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공개 시험을 버틴 시제품이었다. 그러나 불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커졌다가 작아졌고 구리선은 일정한 빛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 손으로 또 하려고요?”

에리나가 화로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밤새 대장간에 있었는지 머리칼 끝에 재가 내려앉아 있었다. 손에는 구리선 조각과 얇은 철판이 들려 있었다.

카엘은 손을 이불 아래로 감췄다.

“확인만 하려던 거야.”

“확인은 눈으로 해요. 손바닥으로 하는 건 고집이고요.”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먼저 묻겠다고 한 약속이 떠올랐다. 그는 손을 꺼내 붕대를 풀었다. 붉게 부은 살 사이로 새 붕대에 밴 피가 보였다.

에리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화를 내는 대신 옆의 송곳으로 화로 철판을 두드렸다.

팅. 팅. 팅.

세 번째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이건 계속 쓰면 갈라져요. 열이 돌아오는 길은 만들었는데 나가는 길이 없어요.”

카엘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압력을 빼면 출력이 떨어진다.”

“터지면 출력도 없죠.”

에리나는 화로 뒤쪽의 좁은 틈을 가리켰다.

“불이 너무 세질 때만 숨을 내보내는 관을 따로 만들어요. 평소에는 닫아 두고요. 제가 송풍관을 열었던 것처럼요.”

카엘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에 머물렀다. 단순한 배출관이 아니었다. 압력실과 회로의 바깥 고리를 분리하면 열은 중심에 남기고 넘치는 힘만 빼낼 수 있다.

전생의 공방에서는 계기와 정밀 밸브가 하던 일이다. 지금의 켈른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철관과 손으로 돌리는 밸브만으로도 최소한의 조절기는 만들 수 있었다.

“좋아.”

카엘이 말했다.

“정밀 화로를 다시 만든다. 이번에는 네 보조관을 넣어서.”

에리나는 잠시 그를 보았다. 말뿐인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도면에도 넣을 거예요?”

“당연하지.”

카엘은 탁자 위의 종이를 끌어당겼다.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 못해 선은 조금 흔들렸지만 압력실 옆에 작은 원을 하나 그렸다. 그곳에서 갈라지는 관을 그려 넣었다.

그 아래에 적었다.

압력 보조관. 에리나식.

대장간 문가에서 모리스가 헛기침했다.

“도련님. 아침부터 견습 말에 맞춰 화로를 뜯어고치겠다는 겁니까?”

“맞춰 가는 겁니다.”

카엘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필요한 자재를 적어 줄 테니 가져와.”

모리스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두꺼운 철관 두 개와 균일한 구리선, 마석 가루 그리고 새 밸브 하나가 적혀 있었다.

“이 철관은 성벽 배수로를 고칠 때 쓰려고 남겨 둔 겁니다. 광산에 쓸 물건이 아닙니다.”

“광산이 죽으면 성벽을 고칠 돈도 없다.”

카엘의 말에 모리스의 입이 다물어졌다.

“공작 각하의 허락을 받겠습니다.”


바란은 집무실 창가에서 광산 쪽을 보고 있었다.

아침 안개 아래 폐광 입구에는 전날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푸른 빛이 호기심을 붙잡아 둔 모양이었다.

카엘이 도면을 내밀었다.

“철관 두 개와 구리선 한 묶음이 필요합니다.”

바란은 도면보다 카엘의 손부터 보았다.

“어제보다 더 하얗군.”

“화로에 마력을 넣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믿기 어렵다.”

“그래서 장치를 만드는 겁니다. 제 마력에 매달리는 화로라면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바란의 손가락이 책상 위를 두 번 두드렸다.

“철관은 성의 보수 자재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광산 입구에서 시험하겠습니다. 화로가 일정한 열과 압력을 내지 못하면 제 작업을 멈추십시오. 대장간 자재도 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바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네가 멈추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아깝습니다. 하지만 열흘은 기적을 기다릴 시간이 아닙니다. 되는지 안 되는지 오늘 확인해야 합니다.”

침묵이 길었다.

바란은 마침내 서랍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로웬에게 던졌다.

“창고를 열어라. 대신 광산 안으로는 아무도 들이지 마라. 입구 암반만 시험한다.”

그는 카엘의 설계를 믿어서가 아니라 성벽 자재와 사람 목숨을 한 번에 걸 수 없어서 조건을 잘랐다. 카엘이 실패한다면 손실은 오늘의 철관으로 끝나야 했다.

“그리고 네 손은 에리나가 허락할 때만 움직여라.”

문가에 서 있던 에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카엘은 짧게 웃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밀 화로는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물건이 아니었다.

카엘은 시제품의 살아남은 철판을 골라 냈다. 에리나는 망치로 철판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금이 간 곳을 표시했다. 카엘이 회로를 새기는 동안 에리나는 구리선을 작은 못 사이에 걸어 같은 간격으로 감았다.

“여긴 너무 가까워요.”

“열을 모아야 해.”

“그러면 이쪽이 먼저 뜨거워져요. 한쪽으로 쏠릴 거예요.”

에리나는 구리선 사이에 얇은 철 조각을 끼웠다. 그녀가 망치로 눌러 자리를 잡자 선은 아주 조금 멀어졌다.

카엘은 그 간격을 눈으로 재었다. 계산으로는 손실이었다. 하지만 불균일한 철판과 거친 구리선은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대로 해.”

에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선으로 넘어갔다.

압력실은 화실 옆에 붙었다. 화로 안에서 넘치는 열이 좁은 철관으로 모이고 밸브를 통과해 바깥으로 빠지는 구조였다. 카엘은 철관 끝에 물을 채운 유리병을 연결했다. 거품이 일정하면 압력이 안정된 것이다.

모리스가 유리병을 보며 물었다.

“저게 무슨 쓸모입니까?”

“물이 너무 빨리 끓으면 압력이 과합니다. 거품이 멎으면 힘이 부족하고요.”

“그걸 보고 광산을 판다고요?”

“광산은 안 팝니다.”

카엘은 막힌 갱도를 가리켰다.

“암반에 좁은 구멍을 뚫고 열과 압력을 넣을 겁니다. 안쪽에 남은 수분층이 뜨거운 증기에 팽창하면 바위는 약한 결부터 갈라져요. 폭약처럼 갱도를 흔들지 않아도 됩니다.”

광부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화약으로 바위를 깨다가 지지대가 무너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리스도 쉽게 웃지 못했다.

해가 기울 무렵 화로의 마지막 철판이 덮였다.

에리나는 검은 철판 한쪽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송곳으로 작은 글자를 새겼다.

카엘.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자신의 이름을 새기려 했다.

카엘이 송곳을 받았다.

“내가 할게.”

“왜요?”

“첫 번째 설계자에게 내 이름을 먼저 쓰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철판에 에리나의 이름을 새겼다. 선은 조금 비뚤어졌지만 끝까지 끊기지 않았다.

에리나는 한동안 그 이름을 보았다.

“글씨는 별로네요.”

“화로만 잘 돌면 된다.”

“그 말은 맞아요.”

그녀가 처음으로 숨기지 않고 웃었다.


폐광 입구의 암반에는 광부들이 손가락 굵기의 구멍을 세 개 뚫어 놓았다.

카엘은 화로에서 이어진 철관을 가장 깊은 구멍에 밀어 넣고 진흙으로 틈을 막았다. 사람들은 충분히 거리를 두고 섰다. 바란은 병사들과 함께 입구 바깥을 지켰다.

“불 붙입니다.”

에리나가 말하자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손을 화로에 올리지 않았다. 에리나가 풀무를 천천히 밟고 모리스가 마석 가루를 중심 홈에 넣었다. 카엘은 옆의 밸브만 잡았다.

불꽃이 한 번 흔들렸다.

구리선이 푸른 빛을 내기 시작했다. 유리병 속 물에 작은 거품이 올라왔다.

하나. 둘. 셋.

거품은 같은 간격으로 터졌다.

“안정됐어요.”

에리나가 화로 철판에 귀를 대고 말했다.

카엘은 밸브를 조금 열었다. 하얀 김이 철관을 타고 암반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유리병의 거품이 갑자기 커졌다. 화로의 철판이 낮게 떨렸다. 구리선 한쪽이 다른 곳보다 빠르게 붉어졌다.

카엘의 손이 밸브를 더 돌리려 했다.

“아니요.”

에리나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지금 더 넣으면 안 돼요. 소리가 달라졌어요.”

“암반이 아직 안 갈라졌어.”

“화로가 먼저 울어요.”

팅.

철판 안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카엘은 전생의 계산을 떠올렸다. 압력을 조금만 더 올리면 암반은 분명 갈라질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화로는 전생의 장치가 아니었다. 에리나가 만든 빈틈과 거친 철판 그리고 이 영지의 재료로 버티는 물건이었다.

카엘은 밸브에서 손을 뗐다.

“보조관 열어.”

에리나가 즉시 작은 밸브를 돌렸다. 화로 옆 압력실에서 하얀 김이 짧게 뿜어져 나왔다. 카엘은 회로 바깥 고리에 박아 둔 작은 마석 조각을 빼냈다.

푸른 빛이 한 번 어두워졌다.

그러나 꺼지지는 않았다.

거품은 다시 작아지고 일정해졌다. 화로의 떨림도 규칙적인 박동으로 바뀌었다.

쿵.

암반 안쪽에서 둔한 소리가 울렸다.

광부 하나가 숨을 삼켰다.

쿵.

바위 표면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금 사이에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카엘은 모두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더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금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졌다. 안쪽의 검은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 틈에서 푸른빛을 머금은 돌 조각 하나가 굴러 나왔다.

모리스가 달려들려 하자 카엘이 막았다.

“멈춰요. 지지대부터 세워야 합니다.”

“마정석입니다! 이 정도 크기면—”

“그래서 더 멈춰야 합니다. 한 조각 얻자고 입구를 무너뜨릴 겁니까?”

카엘은 갈라진 틈을 가리켰다.

“지금 넓히면 지층이 어디까지 젖어 있는지 모른 채 파고드는 셈입니다. 재조사관에게 보여 줄 것은 돌 하나가 아닙니다. 사람이 다치지 않고도 이 광맥을 꺼낼 수 있다는 방법입니다.”

모리스는 이를 악물었지만 물러났다. 카엘은 돌이 더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집게로 조각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마정석이었다. 표면의 푸른 결은 맑고 깊었다. 폐마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순도였다.

주변에서 환성이 터졌다.

바란은 마정석을 받아 빛에 비춰 보았다. 그의 굳은 얼굴에 처음으로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이것이면 재조사관에게 보여 줄 물증은 되겠군.”

“물증 하나입니다.”

카엘은 갈라진 틈을 바라보았다.

“채굴 계획까지 보여 줘야 합니다. 아직은 시작일 뿐입니다.”

에리나가 그의 옆에 섰다. 화로의 푸른 빛이 그녀의 검댕 묻은 뺨을 비췄다.

“그래도 이번엔 안 터졌어요.”

카엘은 철판에 새긴 이름을 바라보았다.

“네가 들었으니까.”

그때였다.

화로의 불을 줄였는데도 암반 너머에서 낮은 진동이 되돌아왔다.

쿵.

카엘의 손끝이 굳었다.

광맥의 반응이 아니었다. 전생에 그가 알고 있던 어느 마정석 맥도 저런 박동을 내지 않았다.

균열 너머의 푸른빛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마치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화로의 첫 번째 숨에 답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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