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3화: 쇳소리를 듣는 소녀
대장간 뒤편에서 망치질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첫 번째는 낮고 둔했다. 두 번째는 길게 떨렸다. 세 번째 소리가 끝나자 카엘은 걸음을 멈췄다.
마력 증폭 화로의 철판이 내는 신음과 비슷한 울림이었다.
“에리나!”
모리스가 대장간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재 더미와 부러진 수레바퀴 사이에서 소녀 하나가 일어섰다. 카엘과 비슷한 또래였다. 잿빛 머리칼은 대충 묶여 있었고 뺨에는 검댕이 길게 묻어 있었다. 두꺼운 장갑도 없이 모루 위의 쇠 조각을 집던 손가락 끝에는 오래된 상처가 겹겹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눈은 화로가 아니라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귀를 막고 있으면 못 들으니까요.”
에리나는 모리스의 타박보다 먼저 말했다. 그녀는 화로 가까이 다가가 철판에 귀를 댔다.
“왼쪽 구리선이 너무 팽팽해요. 불이 두 번째로 숨을 들이쉴 때마다 여기서 막힙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로 뒤편의 이음새를 짚었다.
“송풍관도요. 꽉 막으면 세게 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숨이 나갈 틈이 있어야 다음 바람이 들어와요.”
모리스의 얼굴이 굳었다.
“도련님 앞에서 아는 체하지 마라. 저건 네가 만질 물건이 아니다.”
“만지지 않았어요. 들었을 뿐이에요.”
대장간에 모여 있던 광부 몇 명이 숨죽여 웃었다. 에리나는 그 웃음에 반응하지 않았다. 익숙한 소리라는 듯 다시 화로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카엘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생의 공방에는 수많은 장인이 있었다. 수치를 읽고 도면을 해석하는 자는 많았다. 하지만 금속이 식을 때의 미세한 비명만 듣고 내부 균열을 알아채는 귀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 재능이 변방 대장간의 견습에게 묻혀 있었다.
“이름이 에리나였지.”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고칠 수 있나?”
질문은 짧았다. 에리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제가 고치면 도련님이 만든 화로가 되는 거 아닌가요?”
모리스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건방진 소리 그만해라. 막내 도련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아니.”
카엘이 모리스를 막았다.
그는 품에서 도면을 꺼내 화로 옆 모루 위에 펼쳤다. 불꽃에 그을린 종이였지만 회로의 선은 또렷했다.
“네가 고친 부분은 네 것이 된다. 내가 모르는 소리를 네가 들었으니까.”
에리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도면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글자를 더듬는 눈이 아니었다. 선이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끊기는지 먼저 짚어 내는 장인의 눈이었다.
“여기요.”
잠시 뒤 그녀가 가느다란 송곳으로 회로 한 귀퉁이를 눌렀다.
“이 선은 열을 모으기만 해요. 그런데 옆 선이 너무 가까워서 열이 되돌아올 때 길을 잃어요. 간격을 넓히고 이 부분만 세 겹으로 감으면 덜 흔들릴 거예요.”
카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가 노린 보정과 정확히 같지는 않았다. 에리나의 방식은 불안정한 흐름을 억지로 누르는 대신 바깥으로 빠질 작은 숨구멍을 남기는 구조였다. 조악한 재료로 만든 지금의 화로에는 그쪽이 더 나았다.
“좋아. 네 방식으로 해.”
“정말요?”
“시간이 없다.”
카엘은 소매 안에 감춘 손을 한 번 움켜쥐었다. 데인 살이 갈라지며 욱신거렸다.
“그리고 네 귀가 맞는지 확인할 기회도 필요하겠지.”
에리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구리선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 대장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공작 각하의 명입니다!”
성의 전령이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중앙 조사관들이 영지 장부를 확인한 뒤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화로를 보여 줄 거라면 지금 준비하라 하셨습니다.”
모리스의 손에서 장부가 미끄러졌다.
“여기로 직접 온다고?”
카엘은 화로 앞의 에리나를 보았다. 소녀는 풀어 낸 구리선을 손가락에 감고 있었다.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 다만 손끝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한 번이라도 시험해 본 적 있나?”
“없어요.”
“나도 없다.”
카엘은 도면의 빈 곳을 접어 쥐었다.
“그러니 실패하지 말자.”
중앙 조사관 헤르만은 대장간 문턱에서 발을 멈추자마자 손수건을 코에 댔다.
검은 연기와 젖은 장작 냄새가 밴 곳이었다. 바닥에는 광부들의 진흙 발자국이 겹쳐 있었고 화로 옆에는 폐마석 조각이 자루째 쌓여 있었다. 중앙의 석조 공방에 익숙한 자라면 고개를 돌릴 만한 광경이었다.
“이것이 켈른이 장부 대신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까?”
헤르만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짜증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의 뒤에는 회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 한 명과 서기관 둘이 따랐다. 서기관이 든 가죽 서류철 가장자리에는 붉은 봉인이 보였다.
지원금 조정안.
바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광맥이 죽지 않았다는 반응을 확인했다. 화로도 보았고.”
“반응 하나로 겨울 식량 예산을 뒤집으라는 말씀입니까?”
헤르만은 서류철을 두드렸다.
“켈른의 채굴량은 석 달째 하락했습니다. 성벽 보수는 지연됐고 세금은 걷히지 않았습니다. 중앙은 동정으로 곡물을 보내는 곳이 아닙니다.”
바란의 턱이 단단히 굳었다. 반박할 수 없는 숫자였다. 화로 하나가 살아났다고 해서 빈 창고가 곧바로 차는 것은 아니다.
카엘이 앞으로 나섰다.
“시험을 허락해 주십시오.”
헤르만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왔다. 어린아이가 검댕투성이 화로 앞에 서 있는 모습은 그에게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막내 도련님이 이 일을 꾸몄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같은 무게의 폐마석을 두 화로에 넣겠습니다. 하나는 기존 화로에 넣고 하나는 이 화로에 넣죠.”
카엘은 옆의 자루를 가리켰다.
“귀하의 마법사가 남는 열과 잔류 마력을 측정하면 됩니다. 장부의 말이 아니라 눈앞의 결과로 판단해 주십시오.”
헤르만은 호위 마법사를 돌아보았다.
“가능한가?”
마법사는 화로를 한 번 훑어보았다. 구리선과 마석 가루로 얼기설기 얽힌 구조를 본 그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측정은 가능합니다. 다만 폐마석은 이미 힘이 빠진 물건입니다. 차이가 난다고 해도 우연일 수 있습니다.”
“우연이 아닌지 보이게 하겠습니다.”
카엘의 말에 헤르만이 옅게 웃었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지요. 실패하면 이 대장간을 이용한 소동도 영지의 무능으로 기록하겠습니다. 공작 각하께서 이의 없으십니까?”
대장간 안의 공기가 식었다.
바란은 카엘을 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단단했다. 믿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들에게 마지막 선택의 책임을 지우겠다는 눈이었다.
“이의 없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시험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서기관이 폐마석을 저울에 달아 똑같이 나누었다. 하나는 낡은 화로의 재 위에 부었다. 다른 하나는 에리나가 손본 증폭 화로의 중심 홈에 넣었다.
에리나는 구리선을 세 겹으로 감은 곳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송풍관 이음새에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작은 틈이 남아 있었다.
모리스가 그 틈을 보고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저걸 열어 둬도 되는 거냐?”
“막지 마세요.”
에리나는 화로에 귀를 댄 채 답했다.
“여기가 닫히면 불이 안에서 부딪혀요.”
카엘은 그녀의 옆에 섰다.
“불꽃이 세 번 작아지면 말해.”
“왜 세 번이죠?”
“그때부터 회로가 열을 되돌리기 시작한다.”
“그럼 그 전에 말할게요.”
소녀의 대답은 뜻밖에도 단호했다.
기존 화로에 불이 붙었다. 젖은 장작이 타들어 가며 검은 연기를 토해 냈다. 폐마석 조각은 붉게 달아오르다가 곧 검게 식었다.
마법사가 수정구를 들여다보았다.
“잔류 마력 감소. 열량도 낮습니다.”
모두가 아는 결과였다.
카엘은 증폭 화로의 구리선에 손을 올렸다. 소매 안에서 풀어 둔 붕대가 손목까지 흘러내렸다. 벌겋게 부은 손바닥이 드러났다.
바란의 눈썹이 움직였다.
카엘은 보지 못한 척 마력을 밀어 넣었다.
푸른 빛이 첫 번째 구리선을 타고 달렸다.
화로의 불이 작아졌다.
두 번째 빛이 회로를 지나자 불꽃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주변의 공기가 한순간 화실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에리나가 눈을 감았다.
“하나.”
카엘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어린 몸에 남은 마력은 적었다. 화로에 흐름을 붙들어 두려면 마력이 아니라 집중력부터 바닥나고 있었다.
불꽃이 다시 작아졌다.
“둘.”
구리선 한 가닥이 붉게 달아올랐다. 카엘의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와 선 위에 떨어졌다. 뜨거운 쇠와 닿은 피가 지직 소리를 냈다.
모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만두십시오.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아직 아니다.”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바로 그때 화로가 거칠게 떨렸다. 푸른 불꽃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송풍관을 향해 치솟았다. 구경하던 광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셋!”
에리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송풍관의 작은 틈에 송곳을 끼워 넣었다. 틈이 넓어지자 화로는 더 크게 숨을 토해 냈다.
“왼쪽 밸브 반 바퀴! 지금은 안으로 밀지 말고 빼야 해요!”
카엘은 순간 망설였다. 회로의 흐름만 보면 그녀의 지시는 효율을 깎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쇳소리는 그녀가 듣고 있었다.
“모리스!”
“예!”
“왼쪽 밸브!”
모리스가 달려가 녹슨 밸브를 돌렸다. 손잡이가 뻑뻑하게 움직이는 순간 화로 안에서 막힌 공기가 터져 나왔다.
콰앙!
짧은 폭음과 함께 검은 재가 천장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방으로 새던 푸른 빛이 천천히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에리나가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요.”
카엘은 남은 마력을 한 줄기처럼 흘려보냈다.
화로의 중심에 푸른 점이 생겼다.
점은 작은 심장처럼 한 번 뛰었다.
쿵.
대장간 바닥이 울렸다.
수정구를 든 마법사의 손이 떨렸다. 그는 마치 잘못 본 사람처럼 수정구를 뒤집어 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잔류 마력 수치가 올라갑니다.”
헤르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올라간다고?”
“사라질 마력이 회로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열량도 기존 화로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아니… 아직 상승 중입니다.”
기존 화로의 불은 탁한 연기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반면 증폭 화로의 불꽃은 맑았다. 푸른 빛은 폐마석 가루 사이를 돌며 버려졌던 힘을 다시 한 점으로 밀어 넣었다.
카엘은 광산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 보십시오.”
마력은 양보다 흐름이었다.
흐름을 잃지 않은 광맥은 완전히 죽지 않는다.
그가 마지막 힘을 밀어 넣자 대장간 안의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손끝의 통증도 심장의 고동도 한 겹 물속에 잠긴 듯 흐려졌다.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서 답이 돌아왔다.
쿵.
폐광 쪽 땅이 낮고 무겁게 울렸다.
대장간 지붕의 먼지가 쏟아졌다. 광부 하나가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광산 입구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빛입니다! 입구 바위틈에서 빛이 나요!”
사람들이 우르르 문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바란도 움직이지 못한 채 화로와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헤르만의 손에서는 붉은 봉인이 찍힌 문서가 미끄러져 내렸다.
카엘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눈앞의 푸른 점이 두 개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도련님!”
로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카엘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대장간의 검은 천장이었다.
목구멍은 바짝 말라 있었고 오른손 전체가 불덩이처럼 아팠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옆에서 누군가 그의 어깨를 눌렀다.
“움직이지 마세요.”
에리나였다.
그녀는 언제 묻었는지 모를 약초 냄새가 나는 붕대를 카엘의 손에 감고 있었다.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은 사라지고 눈가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화로는?”
“안 터졌어요. 제가 지켰으니까.”
“광맥은?”
“살아 있대요. 바위틈에서 파란 빛이 나왔다고 사람들이 난리예요.”
카엘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성공했다. 정확히는 첫 번째 문을 열었다. 아직 광맥에 닿지도 못했고 화로는 겨우 버텼다. 하지만 켈른이 죽은 땅이라는 장부의 문장은 오늘로 거짓이 되었다.
대장간 입구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멈췄다.
바란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찢어진 지원금 조정 문서가 아니라 새로운 얇은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조사관은 열흘간 삭감 결정을 보류하겠다고 했다.”
카엘은 고개를 들었다.
“재조사 조건입니까?”
“그래. 광맥을 실제로 확인하고 화로가 반복해서 작동한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바란의 시선이 붕대 감긴 손으로 향했다.
“그 전에 네가 죽지 않는다는 것도 증명해라.”
카엘은 웃지 못했다. 그것은 걱정처럼 들렸지만 경고이기도 했다. 바란은 아직 그를 믿지 않는다. 단지 눈앞의 결과를 함부로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누가 네게 이런 걸 가르쳤지?”
대장간 안이 조용해졌다.
카엘은 잠시 대답을 찾았다. 멸망하는 성벽과 불타는 하늘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공방의 냄새가 스쳐 갔다.
“켈른이 망하는 걸 본 적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서 의심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공작은 한참 뒤 에리나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가 화로를 손봤다고 들었다.”
에리나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렇습니다.”
카엘이 먼저 답했다.
“그 애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모리스가 입을 벌렸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에리나는 붕대 끝을 매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바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 인원과 대장간 자재를 네게 맡긴다. 열흘이다. 그 안에 쓸 만한 결과를 내놔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카엘은 바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겨우 열흘. 전생의 그라면 도면 한 장을 검토하기에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지 전체가 굶주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에리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붕대 때문에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정식으로 제안하겠다.”
에리나가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무슨 제안인데요?”
“나와 함께 정밀 화로를 만들자.”
“저는 견습이에요. 도련님이 필요할 때만 부르는 손이 아니고요.”
카엘은 잠시 말을 골랐다.
“맞아. 그러니 네 이름을 새기자.”
그는 화로의 검게 그을린 철판을 보았다.
“첫 번째 화로의 설계자란에 네 이름을 넣겠다. 네가 들은 소리와 네가 고친 길이 들어간 물건이니까.”
에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장간 밖에서는 광부들이 광산 입구의 빛을 보러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그녀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마침내 에리나가 카엘의 손을 밀어 내고 일어섰다.
“조건이 있어요.”
“말해.”
“다음부터 화로에 손 올릴 때는 저한테 먼저 묻기.”
카엘은 잠깐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지.”
에리나는 그제야 아주 작게 웃었다.
화로 안에서 푸른 재 한 조각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재는 대장간 문밖으로 흘러나가 폐광의 어둠을 향했다.
카엘은 그 빛을 놓치지 않았다.
잠든 광맥은 첫 번째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켈른에는 그 숨을 끝까지 끌어낼 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