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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2화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2화: 버려진 영지의 화로

카엘은 도면 위에 마지막 선을 긋고 깃펜을 내려놓았다.

마력 증폭 화로.

전생의 공방이라면 견습생에게 맡겨도 반나절이면 만들 기초 장치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곰팡이 핀 책상과 질 낮은 잉크 그리고 술 냄새가 배어 있는 낡은 방뿐이었다.

‘재료가 형편없어도 원리는 바뀌지 않는다.’

카엘은 젖은 손끝으로 잉크가 번지지 않게 종이를 접었다. 바로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몰려왔다. 문이 열리고 집사 로웬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공작 각하께서 즉시 나오라 하십니다. 중앙 조사관 일행이 정오 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로웬의 눈이 책상 위를 빠르게 훑었다. 빈 술병과 구겨진 옷가지 사이에 놓인 선명한 도면은 이 방에 어울리지 않았다.

카엘은 종이를 품 안에 넣었다.

“마구간에 말 한 필 준비해.”

“예?”

“성 안 장부보다 영지를 먼저 보겠다.”

로웬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젯밤까지 술 냄새를 풍기던 막내가 한순간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 끝에서 거친 장화 소리가 울렸다. 바란 켈른 공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낡았지만 깨끗하게 손질된 제복과 흉터투성이 얼굴. 그가 멈춰 서자 좁은 복도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조사관에게 보여줄 것이 장부뿐이면 켈른은 끝입니다.”

바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가 장부를 걱정해?”

카엘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벽 아래 마을은 낮인데도 연기가 희미했다. 제대로 타는 화로가 적다는 뜻이었다. 굴뚝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짧고 탁했다. 젖은 연료와 막힌 공기길. 열을 다루는 법을 잊은 가난한 마을의 흔적이었다.

“광산과 대장간을 보겠습니다. 반나절이면 됩니다.”

“중앙에서 온 놈들이 지원금을 깎겠다고 벼르는 날이다. 네가 밖에서 사고를 치면 그 빌미를 손에 쥐여주는 셈이야.”

“그래서 봐야 합니다. 켈른이 아직 가치가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로웬이 숨소리를 죽였다.

바란은 한참 동안 카엘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보다 낯선 것을 확인하려는 경계심이 짙었다.

“병사 둘을 붙인다. 도망치거나 술집에 들어가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끌고 와라.”

카엘은 고개를 숙였다.

“충분합니다.”


켈른의 마을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흙길은 얼어붙은 것처럼 딱딱했고 수레바퀴 자국에는 마른 진흙만 남았다. 우물가에 선 아이들은 빈 양동이를 들고 성 쪽을 바라보았다. 빵 냄새 대신 축축한 장작 냄새가 골목을 채웠다.

“도련님이 웬일이래.”

“돈 떨어졌나 보지.”

따라붙은 병사 하나가 들으라는 듯 웃었다. 카엘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조롱보다 굴뚝이 먼저 들어왔다. 높이가 낮고 배출구가 좁았다. 화실에서 나온 열이 위로 빠지기 전에 벽을 때리고 죽는 구조였다. 저런 화로로는 같은 장작을 써도 절반의 열밖에 얻지 못한다.

마을 대장간 앞에 이르자 안쪽에서 힘없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카엘은 문턱을 넘었다. 화로 안의 붉은 빛은 약했고 풀무가 움직일 때마다 불꽃은 커지는 대신 옆으로 새어 나갔다. 바닥에는 검은 재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굴뚝이 낮고 화실이 넓다.”

카엘은 재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열이 빠져나갈 길만 있고 모일 곳이 없어.”

병사가 콧방귀를 뀌었다.

“술 마시다 대장장이 흉내까지 배웠습니까?”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 속에 반짝이는 가루가 보였다. 연소되지 않은 폐마석 조각이었다. 마력이 남아 있는데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 재와 함께 버리고 있었다.

‘이 정도 잔재면 소형 동력 장치도 움직일 수 있다.’

분노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카엘은 삼켰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탄이 아니라 결과였다.

그는 대장간을 나와 폐광으로 향했다.

광산 입구는 나무 지지대가 비틀려 있었고 낡은 경고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감독관 모리스가 누런 장부를 끼고 뛰어나왔다.

“막내 도련님. 여긴 위험합니다. 들어가실 곳이 아닙니다.”

“오늘 채굴량은?”

모리스의 얼굴에 노골적인 당황이 스쳤다.

“그걸 왜 물으십니까.”

“대답해.”

짧은 말이었지만 장난기가 없었다. 모리스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폈다.

“일곱 상자입니다. 그중 쓸 만한 마석은 한 상자도 안 됩니다. 광맥이 죽었습니다.”

카엘은 광산 입구의 바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돌 틈에서 아주 미약한 떨림이 전해졌다. 보통 마법사라면 지나칠 잔향이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마력의 진동만으로도 광맥의 방향과 순도를 읽던 사람이었다.

깊다.

아주 깊은 곳에 푸른 맥이 잠들어 있었다. 기존 곡괭이와 화약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무식하게 파면 갱도가 먼저 무너진다. 열과 압력을 좁은 방향으로 밀어 넣어 암반을 깨워야 했다.

“죽은 게 아니다.”

카엘이 손을 뗐다.

“잠든 거다.”

모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광부들이 석 달째 굶어 가며 판 곳입니다. 도련님 말 한마디로 광맥이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말로는 안 되지.”

카엘은 품에서 접은 도면을 꺼냈다.

“화로가 필요하다. 낡은 대장간과 폐마석 조각을 전부 모아라. 녹슨 송풍관도 가져오고 구리선이 있으면 한 뭉치 빼내.”

“폐마석은 잡석입니다.”

“잡석으로 보이면 잡석값으로 내게 넘기면 되겠군.”

모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병사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카엘은 웃음소리 사이에서 광산 안의 희미한 공명을 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중앙 조사관이 지원금을 끊으면 켈른은 식량을 사지 못한다. 굶주린 영민들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방벽은 보수되지 않는다.

그 끝에 찾아올 것은 불길과 발톱이었다.

“한 시간 안에 준비해.”

카엘의 목소리는 낮았다.

“실패하면 내가 책임진다.”


낡은 대장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조롱을 구경하러 온 자들이 절반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온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카엘의 손을 좇았다.

카엘은 녹슨 송풍관을 뜯어 화로 뒤쪽으로 돌렸다. 깨진 마석 조각은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구리선은 세 갈래로 꼬아 화실 둘레에 감았다. 손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몸이라 손톱 밑이 금세 찢어졌다.

모리스는 팔짱을 낀 채 입술을 깨물었다.

“저렇게 감으면 열을 더 먹습니다. 화로가 터질 수도 있습니다.”

“터지기 전에 마력 흐름이 중심으로 꺾인다.”

“무슨 뜻입니까?”

“불은 위로만 타오르는 게 아니다. 마력이 섞인 불은 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 움직인다.”

카엘은 설명을 거기서 멈췄다. 말로 납득시킬 시간이 없었다.

그는 화실 바닥에 작은 홈을 새겼다. 홈은 장식이 아니었다. 흩어지는 열과 잔류 마력을 다시 중심으로 되돌리는 회로였다. 마석 가루가 그 홈 안에 얇게 깔렸다.

전생의 마력 증폭 화로에 비하면 조잡했다. 정밀 렌즈도 없고 균일한 마정석도 없었다. 회로를 새기는 칼끝은 계속 미끄러졌고 낡은 화로의 철판은 곳곳이 휘어 있었다.

그래도 원리는 충분했다.

흩어지는 힘을 모아 한 점에 밀어 넣는다.

마력은 양보다 흐름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이 시대에 거의 없었다.

“도련님.”

로웬이 문가에서 말했다.

“공작 각하께서 오십니다.”

대장간 안의 웃음이 멎었다.

바란은 문턱에 서서 반쯤 해체된 화로와 바닥에 흩어진 폐자재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카엘.”

“곧 끝납니다.”

“내가 허락한 건 확인이지 파괴가 아니다.”

“이대로 두면 파괴되는 건 대장간이 아니라 영지입니다.”

바란의 손이 허리의 검자루로 향했다. 병사들이 움찔했다.

“네가 영지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카엘은 화로 앞에서 일어섰다. 작은 몸은 바란의 그림자에 완전히 덮였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없었습니다.”

그는 재투성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만들겠습니다.”

바란의 눈이 좁아졌다.

카엘은 손바닥을 화로의 구리선 위에 올렸다. 약한 소년의 몸은 마력량이 많지 않았다. 술에 망가진 육체는 마력을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래도 한 줄기 불씨를 밀어 넣는 정도는 가능했다.

“멈춰라.”

“멈추면 켈른은 중앙의 장부 속에서 죽습니다.”

카엘은 이를 악물고 마력을 흘렸다.

화로가 먼저 신음했다. 녹슨 철판이 떨리고 구리선이 푸르게 달아올랐다. 병사 하나가 뒷걸음질쳤다. 모리스는 욕설을 삼켰다.

다음 순간 꺼져 가던 불꽃이 안쪽으로 접혔다.

바람이 빨려 들어가듯 화실 중심에 작은 푸른 점이 생겼다. 점은 숨을 쉬듯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검은 연기는 사라졌다. 대신 맑은 열기가 대장간을 채웠다.

“말도 안 돼.”

모리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카엘은 멈추지 않았다. 화로의 숨결을 광산 쪽으로 돌려야 했다. 손바닥 살이 익는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눈앞이 흔들렸지만 그는 마력 흐름을 놓지 않았다.

쿵.

대장간 바닥이 낮게 울렸다.

군중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쿵.

푸른 불꽃이 한 번 더 높아졌다. 폐광 깊은 곳의 고순도 마정석이 화로의 진동에 응답한 것이다. 아직 꺼낼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증거로는 충분했다.

모리스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광맥이 반응했습니다.”

바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화로가 아니라 아들의 손을 보고 있었다. 어린 손바닥은 구리선 열에 데어 붉게 부풀고 있었다. 그런데도 카엘은 손을 떼지 않았다.

“이 화로를 정밀하게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카엘의 숨이 거칠어졌다.

“지금 것은 껍데기뿐입니다. 회로 간격이 조금만 어긋나도 불안정해집니다. 쇠를 알고 손끝이 빠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리스가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한 명 있습니다. 정식 장인은 아니지만 쇳소리를 듣는 귀가 이상할 정도로 좋은 애가 있습니다.”

“이름.”

“에리나입니다. 대장간 견습입니다.”

카엘은 그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미래의 기억 속에는 없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이름은 켈른의 첫 톱니가 될 수 있었다.

화로 속 푸른 불꽃이 다시 뛰었다.

그와 동시에 성문 쪽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앙 조사관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였다.

바란의 시선이 성문 쪽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카엘에게 돌아왔다.

카엘은 데인 손을 천천히 감췄다.

“그 애를 데려와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대장간 안의 누구도 웃지 못했다.

“조사관들이 오기 전에 켈른이 죽은 땅이 아니라는 증거를 완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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