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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1화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시놉시스

대륙 최고의 마법 공학자 레이먼드, 마수의 침공으로 멸망해가는 대륙을 구하기 위해 금기의 시간 마법을 발동한다. 10년 전, 변방의 척박한 켈른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 '카엘 켈른'으로 깨어난 그는, 미래의 파멸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마법 공학 지식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1화. 운명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다

“쿨럭! 쿨럭……!”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혈향. 폐부 깊숙이 박힌 통증에 레이먼드는 신음하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은 지옥이었다.

찬란했던 마법 공학의 결정체, 하늘 위를 부유하던 부유성 ‘아르카디아’는 반파되어 지면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은 마법 비행정이 아닌, 검은 기운을 내뿜는 익룡 형태의 마수들이었다.

“레이먼드 님! 더는……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피칠갑이 된 기사가 절규하며 달려왔다. 그의 뒤로 수천 마리의 마수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한때 대륙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의 군대는 이미 궤멸했다. 남은 것은 한 줌의 생존자들과, 대륙 최고의 마법 공학자라 칭송받던 레이먼드뿐이었다.

레이먼드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에 박힌 마력석 파편을 움켜쥐었다.

‘끝인가.’

인류의 오만이었다. 마법과 기계의 결합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 생각했건만, 차원의 틈새에서 쏟아져 나온 마수들 앞에 인간의 문명은 한낱 종이성에 불과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등 뒤에는 아직 가동되지 않은, 그의 생애 마지막이자 최악의 발명품이 놓여 있었다.

[금기 기공(禁忌 氣工) : 시간의 톱니바퀴]

지름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체. 수만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며 기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장치였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그리고 시전자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제물로 삼아야 하는 저주받은 기계.

“레이먼드 님! 안 됩니다! 그걸 가동하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카밀.”

레이먼드가 힘겹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거대한 구체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인류가 가진 모든 마력을 압축해 넣은 ‘태양의 핵’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기억해라. 만약…… 만약 내가 성공한다면. 이 지옥 같은 미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하겠어.”

레이먼드가 피 묻은 손을 구체 위에 올렸다.

[생체 인식 확인…… 시전자 : 레이먼드 폰 아르케.]
[시간 좌표 고정 : 10년 전.]
[영혼 추출을 시작합니다.]

“으아아아악!”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고통이 밀려왔다. 육체는 마력의 폭풍 속에서 먼지처럼 흩어졌고, 그의 영혼은 어두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유성이 폭발하며 내뿜는 찬란한 빛이 대륙의 마지막 하늘을 장식했다.

그것이 레이먼드가 기억하는 대륙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카엘. 카엘! 이 망나니 녀석, 또 낮술이냐!”

벼락같은 고함에 레이먼드는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너져가는 천장과 퀴퀴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코를 찌르는 싸구려 술 냄새였다.

‘여기는……?’

고개를 돌리자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 사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낡았지만 위엄 있는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제복. 거칠게 다듬어진 수염과 흉터가 가득한 얼굴.

레이먼드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아니, ‘카엘 켈른’의 기억이 속삭이고 있었다.

바란 켈른 공작. 대륙 북부의 척박한 변방, 켈른 영지의 주인이자 카엘의 아버지였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냐! 네 형은 아침부터 연무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데, 공작가의 막내라는 놈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술에 취해 자빠져 있다니!”

바란 공작의 발길질이 침대를 걷어찼다. 레이먼드—아니, 이제는 카엘이라 불러야 할 소년은 얼떨결에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바닥의 차가운 감촉. 욱신거리는 뒤통수의 통증.

‘꿈이 아니야.’

카엘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몸을 살폈다. 마력석 파편이 박혀있던 가슴은 깨끗했다. 주름졌던 손대신 희고 가느다란, 무기라고는 쥐어본 적 없는 약한 소년의 손이 보였다.

성공했다.

시간의 톱니바퀴는 작동했고, 그는 과거로 돌아왔다. 그것도 10년 전,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제국의 망나니 카엘 켈른의 몸으로.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당장 일어나서 씻지 못해! 오늘은 중앙에서 조사관들이 오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바란 공작은 혀를 차며 방을 나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카엘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방 안에는 빈 술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기억 속의 카엘 켈른은 전형적인 변방 영지의 망나니였다. 천부적인 마력 재능도, 뛰어난 검술 실력도 없었던 그는 현실을 비관하며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다. 덕분에 켈른 공작가는 제국 내에서 조롱거리가 되었고, 영지는 갈수록 가난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카엘은 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10년 뒤의 기술이, 대륙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마수들에 대한 정보가, 그리고 인류 최강의 마법 공학 지식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카엘은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부스스한 머리칼에 초점 없는 눈동자. 하지만 그 너머로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레이먼드…… 아니, 카엘 켈른.”

그가 자신의 이름을 읊조렸다.

“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라고 했나.”

그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켈른 영지는 척박하다. 땅은 메말랐고, 마석 광산은 바닥을 드러냈으며, 영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인다. 중앙의 귀족들은 이곳을 ‘버려진 땅’이라 부르며 무시한다.

하지만 카엘의 눈에는 달랐다.

메마른 땅 밑에는 마력 증기기관을 가동할 수 있는 지열이 흐르고 있었고, 바닥난 줄 알았던 광산 깊숙한 곳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순도 마정석들이 잠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마수의 대침공 때 가장 먼저 무너졌던 최전방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카엘은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깃펜을 들어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과 기하학적인 문양들. 전생의 그가 설계했던 ‘마력 증폭 화로’의 기초 도면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영지의 대장간은 대륙 최고의 무기 공장이 될 것이고, 얼어붙은 영민들의 집에는 따뜻한 온기가 돌게 될 것이다.

“쓸모없다니. 당신들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카엘의 눈동자에 푸른 마력의 불꽃이 일렁였다.

“마법 공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운명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누구도 이 톱니바퀴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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