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싶어서 범인 잡았더니 수사 국장이 되어버렸다

3화: 범인은 저기 있네요
응접실의 공기는 비싸고 답답했다.
로젠베르크 남작이 아끼는 향목 벽난로에서는 불도 피우지 않았는데 단내가 났다. 광택을 낸 탁자 위에는 은제 찻잔이 줄지어 있었고 하인들은 그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리안은 문 옆에 기대어 서서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21분.
'지금부터 열 분. 길어도 열두 분. 남작이 쓸데없이 소리치면 십오 분.'
그는 십오 분이라는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피곤해졌다.
"자."
리안이 손뼉을 작게 쳤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였다.
한스가 대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조용히 해 주십시오. 리안 보조 요원이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보조 요원?"
남작의 콧수염이 위로 튀었다.
"내 저택에서 황실 헌상품이 사라졌는데 보조 따위가 우리를 심문하겠다는 건가?"
"심문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저는 확인만 하겠습니다."
리안은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집사 오르만. 하녀 셀라. 정원사 둘. 경비병 셋. 남작. 그리고 창가에 비스듬히 선 젊은 귀족.
회색 장갑 끝의 파란 가루는 아주 희미했다. 평범한 눈으로는 먼지라고 넘길 정도였다. 하지만 리안의 눈에는 그 가루 주변에 푸른 인과의 선이 붙어 있었다. 마차 보관소의 진흙 바닥에서 본 것과 같은 흐름이었다.
선은 손끝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닦여 끊긴 자리에 남은 잔상은 오히려 더 선명했다. 누군가 증거를 지웠다는 사실 역시 하나의 흔적이었으니까.
"장갑을 낀 분들은 벗어 주시죠."
젊은 귀족이 웃었다.
"예절 수업부터 다시 받는 게 좋겠군. 귀족에게 장갑을 벗으라니."
"예절보다 보고서가 짧아지는 게 중요합니다."
"뭐?"
한스가 낮게 말했다.
"협조해 주십시오. 황실 헌상품 도난 사건입니다."
남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젊은 귀족을 흘겨보았다.
"에드릭. 벗어라."
에드릭 로젠베르크는 짜증스러운 손짓으로 장갑을 벗었다. 손끝은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하인들의 손에는 기름과 먼지가 남아 있었는데 그의 손톱 밑에는 방금 씻어 낸 흔적만 있었다.
리안은 장갑을 받아 들지 않고 탁자 위에 놓게 했다.
"한스 수사관님. 냄새 맡아 보시죠."
"냄새요?"
"윤활유입니다. 마차 축에 쓰는 싸구려 기름. 귀족 장갑에 묻기엔 약간 품격이 낮죠."
한스가 장갑 끝을 가까이 가져갔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맞습니다. 마차 보관소 냄새와 같습니다."
에드릭은 코웃음을 쳤다.
"마차를 탄 사람이 마차 냄새 좀 묻히면 범인인가?"
"아니요. 마차를 탄 사람은 손바닥에 묻습니다. 당신 장갑에는 검지와 중지 끝에만 묻었죠. 실을 잡고 당긴 흔적입니다."
응접실 안이 웅성거렸다. 셀라는 놀라서 입을 막았다.
리안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겁먹은 사람을 오래 보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
"어젯밤 누군가 셀라에게 보관실 순찰 시간을 물었습니다. 셀라는 그게 범죄에 쓰일 줄 몰랐겠죠."
남작이 지팡이를 들었다.
"셀라! 네가 말했느냐!"
셀라가 무릎을 꿇을 듯 흔들렸다.
"저는... 에드릭 도련님이 물으셔서..."
"입 다물어!"
에드릭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제 목소리도 나왔군요."
"이게 무슨 무례야. 하녀 하나가 살려고 헛소리하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물증을 보겠습니다."
리안은 벽난로로 걸어갔다. 응접실 벽난로는 보관실과 같은 축에 놓여 있었다. 귀족 저택은 장식과 대칭을 좋아한다. 그 덕분에 도둑은 편해졌고 수사도 조금은 편해졌다.
그는 장식 선반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저택의 굴뚝은 위에서 하나로 합쳐진 뒤 각 방으로 갈라집니다. 외부 낙인 사용자는 지붕에서 금속 실을 내렸고 에드릭 씨는 그 경로를 알려 줬습니다. 마차 보관소에서는 실을 풀고 기름을 먹였습니다. 보관실 굴뚝에서 마석을 끌어올린 뒤 서쪽 방 쪽으로 옮겼죠."
"말도 안 되는 추측입니다."
"추측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여기서 더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리안은 아버지의 낡은 가방에서 작은 황동 추와 얇은 실을 꺼냈다.
"재연합시다. 제가 싫어하는 방식이지만 말싸움보다 빠릅니다."
한스가 바로 움직였다. 수사관 둘이 보관실과 지붕 쪽으로 갔다. 리안은 황동 추 끝에 보관실 재에서 긁어낸 파란 가루를 살짝 묻혔다.
몇 분 뒤 보관실 쪽에서 한스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실이 내려옵니다!"
황동 추가 벽난로 안에서 흔들렸다. 리안은 그것을 받침대 높이까지 내리고 다시 당기게 했다. 추는 벨벳 조각을 걸고 천천히 올라갔다.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그 장면을 보았다.
남작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합니다. 다만 보관실 내부 구조와 순찰 시간을 알아야 하고 지붕에 올라갈 통로도 알아야 합니다. 외부인 혼자서는 번거롭죠."
에드릭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다 해도 내가 훔쳤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아직 있습니다."
리안은 에드릭의 장갑을 뒤집었다. 안감 끝부분에서 푸른 가루가 떨어졌다. 그는 곧장 손수건으로 받았다.
"장갑 겉면은 닦았는데 안쪽 재봉선은 놓쳤습니다. 귀족분들은 청소를 직접 안 하셔서 이런 데 약하더군요."
에드릭의 눈이 벽난로 쪽으로 튀었다.
그 순간 리안의 시야에서 가느다란 붉은 선 하나가 당겨졌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행동이 아니라 이미 몸 안에서 시작된 충동이었다. 어깨가 굳고 발끝에 힘이 실리고 손이 품 안쪽으로 향하는 흐름.
리안은 한 발 옆으로 비켜서며 탁자 위 은제 집게를 집었다.
"그건 안 태우는 편이 좋습니다."
에드릭이 품에서 접힌 쪽지를 꺼내 벽난로에 던지려던 손을 멈췄다. 한스가 바로 달려들어 그의 팔을 꺾었다. 쪽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놓아! 나는 로젠베르크 가문의..."
"그래서 더 문제죠."
리안은 집게로 쪽지를 집어 올렸다. 검은 밀랍이 반쯤 깨져 있었다. 밀랍에는 다섯 손가락이 안쪽으로 휘어진 문양이 찍혀 있었다.
문양을 보는 순간 리안의 눈가가 아주 살짝 굳었다.
아버지의 낡은 서재에서 본 적이 있었다. 먼지 쌓인 사건철 가장자리. 제목은 찢겨 있었고 내용은 대부분 타 버렸지만 그 문양만은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귀찮은 게 아니라 위험한 쪽이군.'
하지만 그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괜히 아는 척하면 질문이 늘어난다.
대신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30분.
'아직 괜찮다. 빠르게 회수하면 점심 전에 복귀 가능.'
"마석은 어디 있습니까?"
에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안은 그의 침묵을 듣고 방 안을 보았다. 인과율의 선들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에드릭의 발밑에서 창가로 이어진 선. 창가에서 복도로. 복도에서 2층 서쪽 방으로. 그 끝에는 푸른 선이 짧게 끊겨 있었다.
"서쪽 방 벽난로 장식 안쪽."
에드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로 충분했다.
2층 서쪽 방은 남작 저택의 사치와 방탕이 한곳에 모인 공간이었다. 벽에는 사냥 그림이 걸려 있었고 책장에는 한 번도 펼친 적 없어 보이는 가죽 장정 책이 꽂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술잔 세 개와 카드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리안은 벽난로 앞으로 갔다. 장식 기둥 오른쪽에 작은 흠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조각가의 실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손으로 누르자 장식판이 낮은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 안에 청색 마석이 있었다.
마석은 주먹보다 작았지만 내부에서 새벽빛 같은 푸른 광채가 맴돌았다. 빛은 벽난로의 검은 그을음 위로 물결처럼 번졌다. 짙은 파란 선들이 공중에서 잠깐 엉켰다가 리안의 시야 안쪽으로 빨려 들어왔다.
한스가 숨을 들이켰다.
"황실 헌상품이 맞습니다."
"그럼 회수했군요. 이제 저는 증거물 분류하러..."
"잠깐만요. 그 쪽지부터 봐야 합니다."
리안은 싫은 표정으로 한스를 보았다.
"수사관님은 생각보다 일을 성실하게 늘리시는군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아닙니다."
리안은 접힌 쪽지를 펼쳤다. 종이는 싸구려였지만 잉크는 특이했다. 빛에 비추면 검은색 안쪽에 남색 광택이 흘렀다.
[푸른 심장을 오늘 밤 종탑 아래로 가져오라. 늦으면 네 빚도 네 이름도 남기지 않겠다.]
한스의 표정이 굳었다.
"푸른 심장이라면 마석을 말하는 걸까요?"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장물상 표현은 아닙니다. 낙인 증폭 재료를 다루는 쪽에서 쓸 법한 은어입니다."
"낙인 증폭이라면 검은 눈 관할입니다."
"그래서 더 싫습니다."
아래층에서 에드릭의 고함이 터졌다.
"나는 협박당했을 뿐이야! 빚을 갚으라고 해서 순찰 시간만 알려 줬어! 마석은 밖으로 가져가려 했지만 운반책이 오지 않았다고!"
남작의 분노 섞인 욕설이 곧바로 뒤따랐다. 셀라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도 희미하게 섞였다.
한스는 마석을 증거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외부 운반책이 왜 오지 않았을까요?"
리안은 창밖을 보았다. 서쪽 골목 위로 검은 선 하나가 끊겨 있었다. 마차 보관소에서 이어지던 잔상이 골목 입구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도주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그 선을 잘라 냈다.
잔상을 지우는 낙인. 혹은 그에 준하는 도구.
리안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퇴근 방해에 특화된 사람들인가.'
"운반책도 누군가에게 정리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리라면..."
"죽었거나 잡혔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됐겠죠. 어느 쪽이든 보고서가 두꺼워집니다."
한스가 말문을 잃었다.
그때 복도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수사관 하나가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종이를 내밀었다.
"한스 수사관님! 수사국에서 급보입니다. 국장님께서 현장으로 오고 계십니다. 리안 앨런 보조 요원을 직접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리안은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사건은 끝났다. 범인도 잡았고 물건도 찾았다.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여기서 퇴근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은 리안에게 유독 비효율적이었다.
"국장님이 왜 저를 봅니까?"
수사관이 난처한 얼굴로 명령서를 내밀었다.
[앨런 가문 관련자 확인. 현장 판단 과정 보고 요구. 사용 능력 여부 확인.]
리안은 문장을 읽고 말없이 종이를 접었다.
"한스 수사관님."
"예."
"제가 지금 기절하면 병가 처리됩니까?"
"아마 국장님이 의무관을 데려오실 겁니다."
"최악이군요."
한스는 청색 마석과 검은 손 문양의 쪽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눈에는 사건 해결의 흥분과 새 위기의 긴장이 동시에 떠올랐다.
리안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눈빛은 대개 추가 업무를 부른다.
아래층에서 남작의 고함과 에드릭의 항변이 뒤섞여 올라왔다. 창밖으로는 수사국 문장이 새겨진 검은 마차가 저택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리안은 벽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열 분 만에 끝내면 퇴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36분.
퇴근까지 남은 시간은 아직 너무 길었다.
그리고 새로 굴러들어 온 일은, 아무래도 하루 안에 끝날 모양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