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8화: 노크하는 위기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은수는 침대 위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몰골은 끔찍했다.
밤새도록 지속된 신경증적인 공포와 긴장 탓에 눈밑은 시퍼렇게 그늘져 있었고 입술은 다 터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스마트폰을 켜보니 여전히 첫 화면의 아이콘들은 기괴하게 정렬된 채 자신을 조롱하고 있었다. 이 집이라는 감옥의 통제권은 완전히 진우에게 있었다.
어젯밤의 스마트폰 검열은 은수에게 큰 타격이었다. 진우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심지어 디지털 소통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수를 완벽하게 고립시켰다.
'당장 짐을 싸서 도망쳐야 할까? 하지만 진우가 거실 소파에 누워 자는 척하며 내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문을 여는 찰나 어둠 속에서 그의 거대한 손이 내 목을 낚아챈다면?'
끔찍한 상상들이 꼬리를 물며 은수를 방 안바닥에 웅크리게 만들었다.
과거 대학생 시절, 은수는 허름한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에 살던 중 밤마다 누군가 방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기괴한 발소리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의 공포는 은수에게 지독한 트라우마를 남겼고 결국 사람을 멀리하고 외진 단독주택으로 숨어들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은수가 처한 현실은 그때의 트라우마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지옥이었다. 문을 흔들고 가는 낯선 괴한이 아니라 아예 집 안방에 들어앉아 다정한 연인 노릇을 하고 있는 연쇄살인마와의 동거였으니까.
창밖에는 비가 그친 직후의 짙은 새벽안개가 마당의 젖은 흙 위를 낮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은수의 숨통을 조여오는 거대한 장막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부스럭, 슥.
대문 밖 자갈밭을 밟는 거친 발소리가 창문을 넘어 들려왔다. 은수는 귀를 쫑긋 세웠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 두 명 이상의 묵직하고 단호한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거침없이 다가왔다.
딩동— 딩동—
고요한 거실에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은수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세차게 요동쳤다. 그녀는 침대에서 튕겨 나가듯 일어나 현관 인터폰 앞으로 달려갔다.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벽지를 짚을 때마다 기분 나쁜 마찰음이 났다.
인터폰 액정에 비친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은수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경찰이었다.
어깨에 무전기를 찬 푸른색 제복의 순경과, 그 옆에 서 있는 사복 차림의 중년 형사. 두 사람은 엄숙한 표정으로 은수의 집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은수는 당장 현관문 자물쇠를 풀고 밖으로 뛰어나가 저 경찰들의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 울부짖고 싶었다. 이 다정한 연극의 막을 내리고 저 괴물 같은 살인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유일무이한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은수가 현관으로 한 걸음 내딛으려던 찰나, 옆쪽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소리도 없이 스윽 다가왔다.
턱.
진우가 다용도실 문턱에서 걸어 나와 은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먼지를 쓸어내리던 플라스틱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평소의 다정한 서진우가 아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감정의 잔물결 하나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는 은수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듯 거대한 장벽처럼 앞을 막아섰다.
진우는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속삭였다.
“쉿. 조용히 하세요, 은수 씨.”
딩동— 딩동—
“계십니까? 서부경찰서 수사팀에서 나왔습니다. 안에 누구 계시면 문 좀 열어주십시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둔탁하게 거실을 흔들었다.
진우는 가볍게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소파 위에 단정하게 개어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 손을 슥 집어넣었다. 주머니 원단 너머로 날카로운 과도의 형태가 뾰족하게 도드라졌다.
진우는 은수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악.
은수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릴 뻔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 실린 악력은 어깨뼈를 부스러뜨릴 것처럼 강력했다.
“은수 씨, 사랑하는 아내이자 집주인처럼 차분하게 손님을 맞아 주세요. 알겠죠? 괜한 의심을 사서 서로 곤란해지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이면에는 끔찍한 협박이 서려 있었다. 만약 여기서 경찰에게 구조 요청을 보낸다면, 문이 열리는 찰나 진우의 품속에 든 칼날이 은수의 목이나 경찰들의 목덜미를 망설임 없이 노릴 것이라는 끔찍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그것을 실행하고도 남을 만큼 침착하고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은수는 떨리는 호흡을 억누르며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진우는 만족스러운 듯 은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현관문 자물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철컥. 스으으…….
아침의 눈부신 햇살과 함께 차가운 바깥바람이 거실로 들이쳤다.
“아, 안녕하십니까. 고생이 많으십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진우는 경찰들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하고 평범한 청년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형사는 진우의 얼굴을 꼼꼼하게 훑어보더니 경찰 공무원증을 제시했다. 은수는 형사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 '강민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 선 순경의 명찰에는 '이재식'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실례합니다. 서부경찰서 강력팀 소속 강민구 형사라고 합니다. 최근 이 일대 외곽 국도 변과 주택가에서 ‘적색 야경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강태오의 행적이 목격되었다는 제보가 있어서 탐문 수색 중입니다. 주변에 낯선 인물이나 수상한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형사는 주머니에서 수배 전단지를 꺼내 진우에게 건넸다.
진우는 전단지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 전단지에는 진우와 닮은 얼굴과 왼쪽 눈썹 끝 흉터가 선명하게 묘사된 몽타주가 크게 실려 있었다. 진우는 전단지 속의 몽타주를 아주 신기하다는 듯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뉴스에서 보던 그 연쇄살인마로군요. 정말 험상궂고 무섭게 생겼네요. 저희는 최근 비가 많이 와서 문단속만 철저히 하고 집 안에서만 지내서 바깥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몰랐습니다. 무서운 사람이 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네요.”
진우는 가슴을 쓸어내며 넉살 좋게 연기했다.
그때 순경 이재식이 집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거실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는 거실 바닥, 출판사별로 기하학적인 대칭을 그리며 오와 열을 맞춘 책장, 그리고 양념통들이 일렬로 정렬된 주방 조리대를 스쳐 지나갔다.
“집이 참…… 깨끗하네요. 가구들이 대칭으로 아주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순경의 지적에 은수의 등줄기에 끈적한 식은땀이 흘렀다. 뉴스에서 말했던 ‘청소광 살인마’의 특징을 경찰이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진우는 태연하게 웃으며 순경의 말을 받아쳤다.
“아, 제가 좀 강박증이 있어서 정리를 안 해두면 마음이 불안해져요, 하하. 제 아내가 일러스트레이터라 집에서 주로 작업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조수가 집안일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여보, 그렇죠?”
진우가 몸을 돌려 은수를 바라보았다.
경찰들의 시선이 은수에게로 쏠렸다.
은수는 현관 옆에 뻣뻣하게 굳은 채 서 있었다. 은수는 탈출 경로를 본능적으로 계산해 보았다. 현관 도어록은 이중 잠금이 되어 있어 번호와 지문을 다 대야 풀렸고 대문은 진우가 2미터가 넘는 쇠빗장을 걸어 잠가두어 타고 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자신에게 열린 구멍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남성분, 왼쪽 눈썹 끝에 있는 그 상처 말입니다.”
형사 강민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우의 옆얼굴을 지목했다.
“몽타주에 나온 수배범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왼쪽 눈썹 끝의 비스듬한 흉터인데, 본인의 흉터와 꽤나 닮아 보이시네요. 실례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순간, 거실 안의 공기가 영하로 얼어붙는 듯한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은수의 심장은 쇳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고동쳤다. 은수의 손가락 관절은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통제할 수 없이 가늘게 경련했다.
신분증. 진우는 기억을 잃어 신분증이 없을 터였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코트 안감 속에 숨겨져 있던 그 ‘강태오’의 피 묻은 지갑 속 신분증뿐이었다. 만약 신분증이 없다고 하거나, 강태오의 신분증을 보여준다면 그 즉시 정체가 들통날 터였다.
진우가 태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 신분증이요? 안방 화장대 서랍에 지갑이 있는데 제가 들어가서 가져오겠습니다. 아니면 형사님, 누추하지만 안방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마침 아침 차도 끓여두었는데 차 한 잔 하시면서 보시죠.”
진우가 너무나도 공손하게 형사들을 집 안방으로 유인하려 했다. 은수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공포가 스쳤다. 안방에는 진우의 신분증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 좁고 밀폐된 안방으로 형사들을 끌어들인 뒤, 문을 닫고 주머니 속 과도로 형사들의 경동맥을 순식간에 난자하려는 강태오의 무시무시한 살인 시나리오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은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짓이기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 저기, 형사님! 제 남편 흉터는 어릴 때 시골 친가 밭일 돕다가 농기구 쇠창살에 긁혀서 생긴 상처예요. 제가 결혼하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상처거든요. 지갑은 안방 화장대 서랍이 아니라 지난번 외출 때 제가 제 가방에 넣어두었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은수의 갈라진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은수는 미친 듯한 힘으로 자신의 가방으로 가려 했으나, 형사는 고개를 돌려 은수를 바라보았다. 은수의 창백한 안색과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를 본 형사의 미간이 좁아졌다.
“부인,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십니다. 어디 아프신가요?”
“아…… 아니요. 그냥 아까 말씀드렸듯이 요즘 삽화 마감 때문에 밤을 새워서 피곤해서 그래요. 그리고 용의자 소식을 들으니 너무 무서워서…….”
은수는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꾸며냈다.
진우가 은수의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은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뜨거운 손바닥이 은수의 얇은 옷자락을 타고 들어와 뼈마디를 지그시 눌렀다.
“여보, 겁먹지 마요. 여기 경찰관님들이 지켜주고 계시잖아. 형사님, 보시다시피 제 아내가 겁이 많아서요. 지문 대조를 해보셔도 상관없습니다. 흉터가 닮았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으니 참 당황스럽네요, 하하.”
진우는 너무나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행동했다. 은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가방을 뒤적이려던 찰나, 형사의 어깨에 달린 무전기가 요란한 노이즈와 함께 울려 퍼졌다.
치익— 강 형사님, 강민구 형사님! 3킬로미터 앞 국도 삼거리 부근에서 용의자 강태오와 인상착의가 일치하는 남성이 산으로 도주 중이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인근 순찰차들 전부 집결 중입니다. 즉시 지원 바랍니다!
긴박한 목소리가 거실의 공기를 순식간에 깨뜨렸다. 강민구 형사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는 진우와 은수를 번갈아 보더니 신속하게 무전기를 잡고 답했다.
“강민구 형사, 즉시 이동하겠다.”
그는 전단지를 진우에게 쥐여주며 현관 밖으로 몸을 돌렸다. 떠나기 전 강민구 형사는 현관 앞 우편함에 적힌 주소를 수첩에 빠르게 적고 은수와 진우의 얼굴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신분증 확인은 순찰 도중 다시 들러서 정식으로 하겠습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 절대로 문 열어주지 마시고 문단속 철저히 하십시오.”
“네, 당연히 그래야죠. 고생 많으십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진우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경찰들을 배웅했다.
현관문이 천천히 닫혔다.
철컥. 스으으…… 쾅.
문이 완전히 닫히고 도어록이 잠기는 금속음이 들리자마자, 진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그 싹싹하고 다정한 기운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진우는 현관문 앞에 등을 지고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 한 자락 남아 있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은 차갑게 식은 기계처럼 은수를 관찰하고 있었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의 손에는 은수가 주방에서 쓰던 날카롭게 갈린 과도가 쥐어져 있었다.
진우는 테이블 위로 다가가 과도를 짤깍 소리가 나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은수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진우는 손을 뻗어 은수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방울을 거친 손가락 끝으로 살포시 닦아주었다.
“왜 우나요, 은수 씨? 저들이 나를 데려갈까 봐 무서웠나요? 아니면…… 저들이 나를 데려가지 않아서 슬픈가요?”
그의 질문에는 소름 돋는 냉소가 깔려 있었다.
“잘하셨어요, 은수 씨. 만약 거기서 이상한 소리를 하셨다면…… 정말 곤란할 뻔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다정하고 행복한 부부여야 해요. 그래야 서로가 안전하니까요. 그렇죠?”
진우는 과도를 집어 들어 주방 칼꽂이에 정확하게 꽂아 넣었다. 칼날이 부딪치는 쇳소리가 은수의 머릿속에서 날카롭게 메아리쳤다.
진우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식어버린 아침을 다시 데워올게요. 따뜻한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나죠, 은수 씨.”
주방에서는 다시 냄비가 끓는 소리와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평온한 백색소음이 들려왔다.
은수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하나하나가 은수에게는 사형집행인의 발소리처럼 끔찍한 노이로제로 다가왔다.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저 칼날이 내 목덜미를 노릴 것이다. 경찰이 다녀갔으니 이 근처의 수사망은 더 좁혀질 테고 그러면 저 살인마는 조만간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나를 먼저 해치고 이 집을 완벽하게 청소한 뒤 달아날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은수는 거실 소파의 가죽 모퉁이를 손톱이 하얗게 되도록 꽉 쥐었다.
집 안을 채우고 있는 진우의 다정한 온기와 맛있는 냄새는 이제 은수의 목숨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철사 줄이었다.
구원의 동아줄은 눈앞에서 허망하게 잘려 나갔고 덫은 더 견고하게 은수의 목을 죄어왔다. 은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다정한 악마와의 숨 막히는 동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절망적인 공포 속에서 소리 없는 오열을 삼켰다. 거실 안에는 오직 똑딱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잔인한 긴장을 조롱하듯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