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7화: 화면 뒤의 눈동자
저녁 식사 자리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은수는 진우가 끓여온 대구탕을 거의 먹지 못한 채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국물은 고소하고 시원한 냄새를 풍겼지만 은수의 머릿속은 온통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다. 은수의 기색을 살피던 진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수를 바라보았다.
“은수 씨, 요즘 들어 표정이 너무 어둡고 밥도 잘 못 드시네요. 혹시…… 제가 이 집에 머무는 게 불편하시거나, 제가 어떤 짐이 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 몸이 아직 성치 않더라도 은수 씨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여기에 머물고 싶진 않습니다.”
진우의 눈가에 미세한 물기가 서렸다. 그의 눈빛은 헌신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모습은 도저히 잔인한 연쇄살인마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애처로웠다.
은수는 그의 가련한 눈물을 보며 소름 끼치는 이중성을 느꼈다.
진우가 문득 은수의 숟가락을 쥔 왼손을 흘끗 쳐다보더니 손목 부근을 가리켰다.
“은수 씨, 손목 안쪽에 긁힌 상처 자국이 있네요. 꽤 오래되어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은수의 손목에는 오래전 깨진 유리잔을 치우다 긁혔던 엷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은수는 황급히 소매를 내려 상처를 감추었다.
“아, 그냥 어릴 때 유리컵을 깨뜨려서 다쳤던 흔적이에요. 별거 아니에요.”
진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상처 입은 옆구리를 쓸어내렸다.
“상처라는 건 참 기묘합니다. 겉은 아물어서 새 살이 돋아나도, 피부 아래에 새겨진 그 흉터는 영원히 남아 그날의 통증을 기억하게 하니까요. 저 역시…… 이 상처가 아물어가면서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어떤 통증이 매일 밤 찾아옵니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아주 아픈 형태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아요.”
진우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은수는 그의 눈물이 연극인지, 정말로 기억을 잃어버린 자의 진심 어린 슬픔인지 헷갈렸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주는 기괴한 위험성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아니요, 진우 씨. 그냥 요즘 삽화 마감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래요. 진우 씨 탓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머리가 조금 아파서 그런데, 오늘 저녁은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어서 들어가서 푹 쉬세요. 식탁은 제가 완벽하게 정리해 두겠습니다.”
진우는 다정하게 은수를 배웅했다.
밤 11시 반. 거실을 맴돌던 진우의 발소리가 마침내 잦아들었다. 욕실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샤워기 물소리가 멈추고 타일 바닥을 쓸어내리는 스퀴지 소리가 몇 번 울린 뒤 집안은 다시 칠흑 같은 적막 속에 잠겼다.
은수는 자신의 방 문을 굳게 닫고 침대 밑에 넣어두었던 노트북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책상 스탠드 조명만을 가장 어두운 조도로 켠 채 노트북 화면을 띄웠다.
파르스름한 화면의 빛이 은수의 퀭한 눈과 파리하게 질린 뺨을 비추었다. 마우스를 쥔 손끝에 끈적하고 차가운 식은땀이 쉴 새 없이 배어 나왔다.
은수는 마우스 휠을 굴리며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스크롤이 내려갈 때마다 휠이 짤깍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날카롭게 채웠다.
은수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적색 야경 연쇄살인’과 용의자 ‘강태오’를 입력하고 마우스 클릭을 멈추지 않았다. 관련 뉴스 기사와 범죄 동호회 사이트의 분석 글들이 수만 건이나 쏟아져 나왔다.
기사들을 하나씩 클릭하며 읽어 내릴 때마다 은수의 호흡은 가빠졌고 가슴뼈가 욱신거렸다.
사건은 1년 전 봄부터 시작되었다. 희생자들은 모두 비가 내리는 밤에 외딴 민가나 주택에 홀로 사는 여성들이었다.
[1차 피해자: 24세 대학생 - 읍내 자취방에서 사망 발견. 현장은 피를 제외하면 깨끗하게 청소됨.]
[2차 피해자: 31세 직장인 - 도심 외곽 빌라에서 사망 발견. 가구와 식기들이 대칭으로 정돈됨.]
[3차 피해자: 29세 학원 강사 - 단독주택에서 사망 발견. 옷 라벨이 전부 잘려 나감.]
대중 언론의 추측성 기사들에는 용의자 강태오에 대한 온갖 괴담들이 적혀 있었다. '강태오는 과거 명문대 의대생이었으나 모종의 정신질환으로 제적당했다', '혹은 전직 수사 관계자로 현장 접근 방식에 익숙하다', '사설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 구조와 가구 배치를 완벽하게 숙지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었다.
특히 범죄 프로파일러들의 심층 분석 자료에는 소름 돋는 강태오의 성장 배경이 언급되어 있었다.
“용의자 강태오는 유년 시절, 결벽증이 심하고 가혹한 부모 밑에서 매일같이 좁고 어두운 청소 도구함에 갇힌 채 방 안을 쓸고 닦아야 하는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더러운 상태에 대한 극도의 강박을 가지게 되었고 살인을 저지른 후 현장을 모델하우스처럼 완벽하게 정돈해 둠으로써 자신이 저지른 피비린내 나는 '더러움'을 정화하고 통제하려는 병리적 심리를 보여줍니다.”
정화.
진우가 며칠 동안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식기를 칼같이 맞추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집요함. 그것은 단순한 가사 도우미의 헌신이 아니라, 은수를 살해하기 전 주변을 '정화'하는 살인마의 끔찍한 제의적 행동일지도 몰랐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은수는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물감 상자 바닥에 숨겨두었던 갈색 지갑 속 메모를 떠올렸다.
[05. 14. - 읍내 민가 뒤편 주택]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지도 앱을 켜고 그 주소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로드뷰 화면이 로딩되며 파란 하늘 아래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낡은 단층 주택의 모습이 드러났다. 은수는 화면을 확대했다. 단층 주택의 대문 앞에는 여전히 노란색 경찰 통제선(폴리스라인)이 쳐진 채 비바람에 찢겨 널브러져 있었다.
그곳은 실제로 지난 5월 14일, 5번째 피해자가 발견된 살인 사건 현장이었다. 메모 속의 날짜와 장소가 실제 살인 사건의 타임라인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일치했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진우는 그 범행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살인마 강태오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은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지갑 속에서 함께 나왔던 또 다른 단서였다. 신문 스크랩의 뒷면에 적혀 있던 그 꼼꼼한 필적의 분석 메모들.
[사건 현장 간의 거리 계산: 평균 4km 이내]
[다음 예상 지점: 북서쪽 외곽 주택가]
그리고 기사 하단에 쓰여 있던 ‘강 형사’라는 이름과 연락처. 은수는 인터넷 검색창에 ‘강 형사’와 ‘적색 야경 연쇄살인’을 함께 검색해 보았다.
수십 페이지를 넘긴 끝에, 은수는 3년 전 적색 야경 연쇄살인 사건 초기 수사팀 소속이었고 1년 전까지도 사건을 쫓았던 ‘강혁 형사’에 대한 짧은 지방지 기사 하나를 찾아냈다.
[적색 야경 사건 수사하던 강혁 형사, 괴한의 습격으로 의식불명…….]
기사에 따르면 강혁 형사는 40대의 우직한 인상에 거친 콧수염을 기른 베테랑 수사관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던 도중 비가 내리던 밤 한 외딴 골목길에서 둔기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현재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양 공급 장치에 의존해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동료 형사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강혁 형사는 습격을 당하기 직전 가족에게
“용의자 강태오의 진짜 아지트나 은신처를 알아낸 것 같다. 오늘 밤 마지막 확인만 하면 끝난다”
라는 통화를 남겼다고 한다.
‘괴한의 습격…….’
강태오가 자신을 쫓던 강혁 형사를 눈치채고 먼저 습격해 살해하려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의 수사 수첩이나 지갑을 탈취해 소지품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신문 기사 뒷면에 적힌 정교한 범행 분석 메모는 살인마의 메모라기보다 오히려 형사나 프로파일러가 범인을 쫓기 위해 작성한 것처럼 지나치게 학구적이고 관조적이었다.
‘아니야, 깊게 생각하지 말자. 범인이 형사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형사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던 것뿐이겠지. 살인마들의 지능적인 기만술일 뿐이야.’
은수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복잡한 생각을 지워냈다. 지금 확실한 것은 지갑 속에서 나온 메모에 은수의 집인 ‘숲길 붉은 벽돌집’이 6월 2일 자 타깃으로 적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은수를 죽이기 위해 칼을 품고 찾아왔던 잔혹한 야수일 뿐이었다.
은수는 급히 인터넷 방문 기록과 검색어 목록을 철저하게 삭제했다. 진우가 가진 결벽증적 성향이 혹여 브라우저 기록이나 마우스 패드의 정돈 상태까지 향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브라우저의 캐시와 쿠키까지 완벽하게 지운 뒤 노트북의 전원을 껐다.
은수는 노트북을 책상 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올려두었다.
그때였다.
똑, 똑.
정적을 깨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은수 씨, 자고 있나요?”
진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은수는 심호흡을 하며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뇨, 안 자요. 들어오세요.”
미닫이문이 열리고 진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 두 개가 쟁반에 담겨 있었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길래 가져왔습니다. 따뜻한 우유에 꿀을 조금 탔어요. 요즘 은수 씨가 밤잠을 잘 못 이루시는 것 같아서요.”
진우는 쟁반을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의 시선이 책상 위 텅 빈 공간과, 은수의 떨리는 손끝을 스쳐 지나갔다.
진우는 책상 구석에 놓여 있던 은수의 노트북을 힐끗 보며 가만히 손을 뻗었다.
“아, 맥북을 쓰시네요. 화면이 알루미늄 바디라 참 차갑고 견고해 보입니다.”
진우가 노트북 상판을 가볍게 쓰다듬자, 손가락이 금속 스크래치 소리를 내며 쓸려 나갔다. 은수는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컴퓨터 내부의 잔여 온도가 감지되어 '방금 전까지 컴퓨터로 무언가를 검색했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진우는 고개를 돌려 은수의 책장과 은수가 그리던 동화 삽화 스케치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소년은 왜 항상 혼자 숲을 헤매고 있나요? 그리고 늑대는 왜 그를 집요하게 쫓아가나요?”
진우가 스케치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은수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소년이…… 늑대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거예요. 늑대가 무서우니까요.”
은수의 대답에 진우는 나지막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늑대는 소년을 보호하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년이 숲의 험한 어둠에 빠져 길을 잃고 죽지 않도록 말입니다. 때로는 도망치려는 행동이 스스로를 더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어요. 조용히 늑대의 곁에 머물면 안전할 텐데 말이죠.”
진우의 대사에는 은수의 뼈를 때리는 은밀한 경고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은수가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진우는 책장 구석에 꽂혀 있던 낡은 전공 서적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범죄 프로파일링과 이상심리학]
진우는 그 책을 펼쳐 들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사락, 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은수의 목을 조여왔다.
“인간의 광기라…… 작가님들은 이런 무서운 책도 읽으시나 봅니다. 아무리 다정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반대로, 겉은 무서워 보여도 속은 상처받은 아이일 뿐일 수도 있고요.”
진우는 침대 옆 협탁 위의 스탠드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스탠드 조명이 참 은은하네요. 어둠 속에서 오직 이 조명 하나만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강한 빛은 주변의 그림자를 더 어둡게 만들기도 하죠. 불 끄고 일찍 주무세요.”
진우는 책을 꽂아두고 방을 나갔다.
진우가 방을 나간 뒤, 은수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불안감이 해일처럼 밀려와 은수의 전신을 덮쳤다. 은수는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패턴을 풀고 화면을 켜는 순간, 은수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굳었다.
홈 화면의 아이콘 배열이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은수는 스마트폰의 첫 페이지에 자주 쓰는 메신저와 메일 앱만을 정렬해 두고 기본 앱들은 폴더 안에 숨겨두는 규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폴더 밖에 나와 있어야 할 메일 앱이 폴더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설정 앱이 홈 화면 구석에 삐져나와 있었다.
은수는 서둘러 최근 실행한 앱 목록(멀티태스킹 창)을 띄웠다. 그곳에는 은수가 켠 적이 없는 '설정' 앱과 '연락처' 앱, 그리고 '통화 기록' 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문자메시지 함이었다. 은수가 확인하지도 않은 어제 오후 단짝 친구 혜진이 보낸 “은수야, 요새 연락이 왜 안 돼? 잘 지내고 있는 거지?”라는 문자가 이미 '읽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진 앨범을 확인해 보니 어젯밤 캡처해 두었던 연쇄살인마 수배 기사 이미지 파일이 흔적도 없이 삭제되어 있었다.
진우가 은수가 깊이 잠든 사이 지문 인식을 풀거나 패턴을 훔쳐 스마트폰을 샅샅이 검사하고 의심의 증거를 지워버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은수의 외부 연락 여부와 경찰 신고 가능성을 매일 밤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등 뒤로 차가운 소름이 쫙 돋았다.
진우는 다 알고 있었다. 은수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으며 몽타주를 보았고 자신의 소지품을 뒤져보고 있다는 사실까지 전부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은수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촉수를 뻗어 은수의 스마트폰과 일상 그리고 정신줄까지 옥죄고 있었다.
은수는 스마트폰을 꽉 쥔 채 방 안의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바람이 불어와 붉은 벽돌집의 벽면을 거칠게 때려댔다. 이 집 안의 모든 공간, 모든 물건이 진우의 손에 통제당하고 있었다.
화면 뒤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그 차가운 눈동자. 은수는 자신이 거대한 살인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광대에 불과하다는 처절한 무력감에 휩싸인 채, 차갑게 식어가는 꿀 우유를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다정한 악마는 은수의 목덜미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