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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4화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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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다정한 악마의 몽타주

비가 완전히 그친 뒤 찾아온 주말 오후는 나른했다. 진우의 손을 거친 정원은 깔끔한 잔디밭의 형태를 갖추었고 거실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젖은 흙내음 대신 상쾌한 풀꽃 향기가 묻어났다.

은수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태블릿으로 가벼운 스케치를 끄적이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진우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부드러운 소고기 찜이라고 했다.

진우는 요리를 시작하기 전, 은수에게 다가와 어떤 양념을 좋아하는지, 단맛이 강한 것이 좋은지 아니면 짭조름한 맛이 좋은지 꼼꼼하게 물어보았다.

은수가 대충 해주는 대로 잘 먹는다고 하자, 진우는

“은수 씨가 밤샘 작업을 많이 하니 단맛으로 피로를 풀고, 짭조름한 간으로 입맛을 돋워야겠습니다”

라며 혼자서 완벽한 레시피를 설계했다.

주방에서 고기를 칼등으로 두드려 연하게 만드는 규칙적인 소리가 은수의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깔렸다.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 녹아들 때마다 은수는 가끔 기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평생을 홀로, 벽을 세우고 살아왔던 삶에 이토록 완벽하게 밀착된 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타인이 주는 온기가 생각보다 너무나 거대하다는 사실이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은수 씨, 소고기 찜은 한 시간 정도 푹 끓여야 하니까 그동안 조금 쉬고 계세요. 고기를 결대로 찢어서 양념이 잘 배도록 졸여낼 테니까요.”

진우가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 문턱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의 뺨에는 밀가루가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의 일원 같았다.

“네, 고마워요. 진우 씨도 와서 좀 쉬어요.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일하셨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오히려 잡생각도 안 나고 좋습니다. 은수 씨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거든요.”

진우는 싱긋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은수는 태블릿을 끄고 옆에 놓아두었다. 마침 입이 심심하기도 하고 바깥세상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여 정말 오랜만에 TV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전원 코드조차 뽑아두기 일쑤였던 낡은 브라운관 스타일의 스마트 텔레비전이었다. 전원을 켜자 지익— 하는 정전기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밝아졌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뉴스 채널에 멈추었다. 마침 저녁 메인 뉴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화면 속 앵커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엄숙하고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이른바 ‘적색 야경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 속보입니다. 경찰이 오늘 유력한 용의자의 새로운 몽타주를 공개하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당부했습니다.”

‘적색 야경 연쇄살인…….’

은수도 인터넷 기사로 몇 번 접했던 사건이었다. 비가 내리는 밤에만 홀로 사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삼아 잔혹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마.

시신의 목에 날카로운 흉기로 단 한 번의 깊은 자상을 입혀 즉사시키는 수법으로, 살해 현장에는 지문이나 DNA는커녕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남기지 않아 경찰이 애를 먹고 있는 사건이었다.

특히 최근 피해자는 은수가 살고 있는 이 외곽 지역에서 불과 차로 30분 거리인 인근 읍내에서 발견되어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는 뉴스를 언뜻 본 기억이 났다.

앵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 공개된 몽타주는 목격자들의 진술과 사건 현장 인근 CCTV 분석을 토대로, 최신 3D 복원 기술을 적용해 작성되었습니다. 용의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나 극도로 위험한 성향을 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한 남자의 얼굴이 대대적으로 송출되었다.

그 순간, 은수의 손가락이 리모컨 위에서 그대로 멈추었다.

숨이 턱 막혔다. 허파에서 산소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처럼 머릿속이 핑 돌았다. 눈앞의 시야가 하얗게 바래 가며 이명이 귀를 가득 채웠다.

화면 가득 드러난 남자의 얼굴.

조각처럼 선명한 콧대, 날카로우면서도 깊은 눈매, 도톰하지만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왼쪽 눈썹 끝부분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선명하고 작은 하얀 흉터.

은수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거칠게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보았다.

하지만 몽타주 속 인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주방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소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남자, 서진우의 얼굴을 그대로 판화처럼 찍어낸 듯 똑같았다.

은수의 등뼈를 타고 얼음송곳이 흘러내리는 듯한 극도의 공포가 전신을 관통했다.

앵커의 냉정한 해설이 은수의 귀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용의자가 흔적을 지우는 데 병적으로 집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합니다. 경찰은 구체적인 현장 상태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피해자 주변이 비정상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명 ‘청소광 살인마’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쿵.

은수의 가슴속에서 무거운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청소…… 정돈…….’

거실 책장의 높낮이와 색상 톤까지 맞춘 완벽한 정리. 양념통의 라벨이 정확히 정면을 향하도록 오와 열을 맞춘 주방.

더러운 꼴을 보지 못해 매일같이 쓸고 닦던 진우의 강박적인 행동들. 그것은 단순히 성격이 깔끔한 사람의 습관이 아니었다. 범행을 저지르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몸에 밴, 피비린내 나는 살인마의 습성이었다.

뉴스는 멈추지 않고 은수의 숨통을 조여왔다.

“또한, 용의자는 피해자들의 신원 파악이나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피해자들의 소지품을 전부 회수했으며 자신이 입었던 옷이나 흔적이 남을 만한 의류의 상표 라벨을 정교하게 도려내어 폐기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입힌 자상은 단 한 번의 베임으로 경동맥을 정확히 절단한 것으로 보아 해부학적 지식이 매우 뛰어나거나 칼을 다루는 데 극도로 숙련된 자로 보입니다.”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소름 끼치는 속도로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모든 증거가 단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진우.

그는 기억을 잃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잔혹한 연쇄살인마였다.

은수의 온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손끝 발끝에서부터 온기가 빠져나가며 몸이 납처럼 무거워졌다.

도망쳐야 한다. 지금 당장 이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마트폰을 쥐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은수의 가방은 주방과 거실 사이에 놓여 있었고 현관문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방 앞을 지나쳐야만 했다. 즉, 주방에 있는 진우의 시선을 피해 밖으로 달아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공포가 육체를 완벽하게 지배해 버린 상태였다. 은수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리모컨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사각, 사각, 사각.

그때, 주방 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수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천천히 돌려 주방 입구를 바라보았다. 진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은수가 아침에 씻어 둔 붉은 사과와 날카로운 과도가 들려 있었다. 진우는 소파 쪽으로 걸어오며 과도를 쥔 손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붉은 사과 껍질이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얇은 실타래처럼 돌돌돌 말려 아래로 늘어지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 완벽한 힘의 조절.

그것은 칼을 쥐고 살아온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극상의 손놀림이었다.

“은수 씨, 고기 찜 끓이는 동안 입가심으로 사과 좀 깎았어요. 같이 먹어요.”

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의 미소는 어제와 다름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은수의 눈에는 이제 그 미소가 굶주린 맹수가 먹잇감을 안심시키기 위해 흘리는 기만적인 미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우가 TV 화면을 슬쩍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여전히 몽타주와 함께 ‘용의자 강태오’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뉴스에 뭐 재미있는 거라도 나오나요?”

진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은수에게 물었다.

그의 시선이 TV 화면으로 향하려던 찰나, 은수는 미친 듯한 힘으로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픽.

화면이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꺼졌다. 거실 안에는 순간적인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날씨 뉴스였는데, 비가 또 올지 모른다고 해서…….”

은수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졌다.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숨이 차올라 턱밑까지 숨이 가빠졌다.

진우의 검은 눈동자가 꺼진 TV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은수는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그가 눈치를 챈 걸까?

은수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손안의 리모컨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하지만 진우는 이내 부드러운 얼굴로 돌아와 소파 앞 테이블에 깎아놓은 사과를 정갈하게 내려놓았다. 한 입 크기로 완벽하게 썰린 사과 조각들이 접시 위에 꽃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날씨 예보라면 다행이네요. 비가 또 오면 상처가 쑤실까 봐 걱정했는데. 은수 씨, 사과 드세요. 아주 달고 맛있게 잘 익었습니다.”

진우는 과도를 쥔 손으로 사과 한 조각을 콕 찔러 은수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예리하게 날이 선 과도의 칼끝이 은수의 입술 바로 앞에서 차갑게 빛났다.

그 칼날의 은빛 반사를 바라보는 순간, 은수의 등줄기에 끈적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여기서 거절하거나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저 칼끝이 순식간에 자신의 경동맥을 꿰뚫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뇌리를 지배했다.

은수는 침을 억지로 삼키며 떨리는 손을 뻗어 진우가 건넨 사과 조각을 받아 쥐었다.

“고,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은수는 사과를 입에 넣고 씹었다.

아삭.

맑고 경쾌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사과즙은 달콤했지만 은수의 목구멍은 모래를 삼킨 듯 서걱거렸고 도무지 삼켜지지 않았다.

억지로 사과를 씹어 넘기는 은수의 목젖이 가늘게 떨렸다.

진우는 은수가 사과를 먹는 모습을 아주 흡족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제 손에 든 과도를 앞치마 주머니에 슥 집어넣었다.

“그럼 저는 마저 저녁 준비를 하러 갈게요. 다 되면 부를 테니 맛있게 드세요.”

진우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그의 넓은 등판을 바라보며 은수는 겨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격렬하게 위아래로 요동쳤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자신을 구원해 준 천사라 여겼던 남자.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맛있는 밥을 지어주고 따뜻하게 안마를 해주던 다정한 서진우.

하지만 지금 은수의 주방에 서서 칼을 쥐고 있는 남자는, 사람의 목을 망설임 없이 베어내고 현장을 청소하는 잔혹한 살인마 ‘강태오’였다.


이윽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진우는 주방에서 소고기 찜을 가득 담은 큰 그릇을 들고 나와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간장 양념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가득 퍼졌지만, 은수에게는 그것이 마치 썩어가는 시신의 냄새처럼 역하게 느껴졌다.

“은수 씨,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고기가 아주 연하게 잘 조려졌습니다.”

진우는 먼저 은수의 밥그릇에 두툼한 갈빗살을 하나 얹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은수는 숟가락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넣고 고기를 얹어 씹었다.

고기는 진우의 말대로 이가 없어도 씹힐 정도로 부드러웠다. 하지만 은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 부드러운 고기를 손질한 칼이, 뉴스에 나온 피해자들의 목을 베었던 칼과 같은 종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왜 그러세요? 입맛에 잘 안 맞으시나요?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신데.”

진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다정함이 오히려 은수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으로 변했다.

“아, 아니요! 정말…… 정말 맛있어요. 그냥 아까 마감 작업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지, 급하게 피로가 몰려와서 그래요.”

은수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식사 마치고 어서 푹 쉬세요. 오늘은 설거지도 제가 다 할 테니까요.”

진우는 다정하게 은수의 밥공기에 국물을 더 부어주며 말했다.

은수는 꺼진 TV 화면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집 안은 여전히 진우가 풍겨놓은 소고기 찜의 고소한 냄새와 정갈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공간은 은수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살인마의 덫 한가운데였다.


식사를 마치고 은수는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문손잡이를 돌려 걸어 잠갔다.

찰칵.

자물쇠가 걸리는 쇳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날카롭게 귀에 박혔다. 하지만 이 얇은 나무문 하나가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연쇄살인마를 막아줄 수 있을까?

은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어둠 속에서 은수는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만을 들으며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렸다.

은수는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진우의 설거지 소리를 들으며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창밖을 향해 절망적인 시선을 던졌다. 어떻게든 여기서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척 연기하는 저 살인마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만약 저 다정함조차 은수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잔인한 연극이라면?

은수의 심연 속으로 공포의 검은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목숨을 건 위험한 동거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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