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23화: 붕괴 속의 희생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채석장의 가파른 벽을 타고 울려 퍼질 때, 폐광 건물 내부의 공기는 사투의 열기와 피비린내로 팽팽해져 있었다. 철근에 관통당한 채 콘크리트 벽면에 걸려 있던 오태수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거품을 그리며 흘러나왔다. 흐려져 가던 회색 눈동자에 기괴한 안광이 마지막으로 스쳤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바지 주머니 속으로 떨리는 피 묻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얼굴은 피와 먼지로 엉망이었지만 비열한 입꼬리만큼은 여전히 호를 그리고 있었다.
은수는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지난번 읍내 카페에서 그가 다정하게 다가와 강태오의 몽타주와 사진을 건네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경고와 친절은 모두 강태오를 범인으로 몰아넣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설계된 연극이었다. 오태수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강태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와 저 계집애도…… 결국 나와 함께 이 심연의 구렁텅이에 묻히게 될 테니까…….”
오태수가 짓이겨진 목소리로 쇳소리를 냈다. 그의 손끝이 주머니 안에서 낡은 플라스틱 무선 스위치를 꽉 움켜쥐었다. 은수는 조금 전 벽면과 천장 근처에서 보았던 붉은 경고등과 기폭선이 머릿속을 스치자 숨이 얼어붙었다. 그것은 이 버려진 탄광 아지트가 경찰에 발각되거나 자신이 궁지에 몰렸을 때를 대비해 갱도 지지대에 설치해 둔 다이너마이트 폭파 스위치였다.
딸칵.
가느다란 기계음이 폐광 내부의 공기를 가르고 울린 것과 동시에, 건물 안쪽 깊은 갱도벽에서부터 붉은색 경고등이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삐이이— 삐이이—
귀를 찢는 듯한 경고음이 울려 퍼지자마자 갱도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이 발생했다.
쿠구구구구—!
천장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나며 굵은 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녹슨 철골 구조물들이 가해지는 엄청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끼이이익— 비명을 지르며 비틀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벽들이 쩍쩍 갈라지며 그 틈새로 오랫동안 갇혀 있던 메탄가스와 흙탕물이 뿜어져 나왔다.
입구 쪽으로 진입하려던 경찰들도 갱도가 무너져 내리는 요란한 굉음과 땅울림에 놀라 황급히 밖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태오 씨! 일어나야 해요! 건물이 무너져요! 어서 가요!”
은수는 오열하며 소리쳤다. 사방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시야를 가렸고 매캐한 냄새가 목구멍을 찔렀다.
“붕괴 위험이다! 전원 퇴각해! 함몰된다!”
확성기를 통한 경찰들의 긴박한 고함 소리가 갱도 입구 너머로 들려왔다. 진입하던 대원들도 무너지는 구조물과 추가 폭발 위험 때문에 뒤로 밀려났다. 붉은 벽돌집 뒤편에서 울부짖던 대자연의 경고가 이제는 이곳 폐광을 완전히 매장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듯했다.
강태오는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전혀 가누지 못했다. 오태수의 쇠지레에 맞은 등뼈와 어깨는 이미 모든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고 복부의 깊은 자창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의 진흙과 섞여 거대한 검붉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천장이 갈라지며 거대한 암석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는 동생 안혜원의 마지막 모습과 한은수의 울부짖는 얼굴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강태오는 마음속으로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다시는…… 혜원이 때처럼 내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
기억을 잃었을 때조차 그를 지배했던 그 지독한 무의식의 약속이 지금 그의 다 죽어가는 육체에 마지막 불꽃을 지피고 있었다.
“은수 씨…… 어서…… 도망치십시오…… 나를 놔두고…… 어서 가요…….”
강태오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피를 꿀컥 삼키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다.
“싫어요! 같이 나가요! 조금만 더 버텨봐요! 내가 부축해 줄게요!”
은수는 강태오의 양팔을 붙잡고 온 힘을 다해 그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가녀린 그녀의 몸집과 찢어진 무릎 부상으로는 핏기가 가신 거구의 사내를 단 한 걸음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은수의 손끝이 그의 피 젖은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지만 미끄러운 진흙 바닥에서 손가락 끝이 찢어지며 피가 배어 나왔다. 은수의 이마에서 식은땀과 눈물이 흘러내려 강태오의 뺨에 묻은 피와 섞였다.
그때, 그들의 머리 바로 위를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콘크리트 보가 크게 어긋났다.
콰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콘크리트 잔해와 뒤틀린 철근 더미가 은수가 서 있는 자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위험해!”
강태오는 찢어진 육체가 보내는 모든 고통의 경고를 짓누르며 몸을 솟구쳤다. 초인적인 힘이었다. 오직 은수를 살리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가능한 반응이었다.
강태오는 은수의 허리를 낚아채며 그녀의 몸을 거칠게 안아 굴렸다. 그의 억센 팔이 은수를 감싸 안았을 때, 은수는 그의 전신이 고통으로 격렬하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두 사람의 몸이 바닥을 뒹구는 순간, 그들이 방금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박혔다. 사방으로 튄 돌가루와 유리가 그들의 살을 긁어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연쇄적인 폭발이 갱도 안쪽을 흔들었고 갱도의 천장 전체가 한꺼번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콰과광! 쿠구구구!
강태오는 은수를 아래에 감싼 채 자신의 넓은 등으로 무너져 내리는 돌가루와 철골 파편들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윽……!"
그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붉은 피가 은수의 가슴팍 위로 뿜어져 나왔다. 등 뒤로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에 그의 등뼈와 갈비뼈가 갈라지는 듯한 파열음이 은수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은수는 그의 품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그의 심장 고동 소리가 점차 약해지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며 오열할 뿐이었다.
“태오 씨…… 태오 씨! 안 돼……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마요…….”
강태오는 피 젖은 거친 손을 들어 은수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손끝에 실린 온기는 은수의 가슴을 저리게 할 만큼 따뜻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과거 혜원이를 지키지 못했던 속죄의 빛과 지금 은수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은수 씨…… 살아남아…… 주십시오. 당신의…… 다정한…… 살인마로…… 기억해 줘서…… 고마웠습니다…… 나 같은 놈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습니다…….”
강태오는 온 힘을 다해 은수의 몸을 출구 쪽의 좁은 틈새로 밀쳐냈다. 마침 천장이 크게 무너지며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바위 더미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 돼! 태오 씨! 손 놓지 마요!”
은수가 손을 뻗었지만 그들의 손가락 끝이 미처 닿기도 전에 거대한 시멘트 블록과 흙더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와 두 사람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듯 차단해 버렸다.
콰과과과광—!
은수의 시야가 칠흑 같은 먼지와 흙더미 속으로 완전히 잠겼다.
“태오 씨—!”
은수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무너진 광산 안을 메아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두운 암석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둔탁한 소리와 자욱한 먼지바람뿐이었다.
입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원들과 경찰들이 붕괴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틈을 타 먼지 구덩이 속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붕괴된 잔해 근처에서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은수를 발견하고 황급히 들것에 실어 밖으로 나갔다.
"생존자 발견! 여성 1명이다! 즉시 에어백을 준비하고 후송해! 맥박이 약하다, 빠르게 움직여!"
“안에 사람이 있어요…… 아직 안에…… 태오 씨가 갇혀 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은수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들것을 붙잡고 구조대원들에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은 갱도의 추가 붕괴 위험과 폭발 가능성 때문에 더 이상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서둘러 은수를 구급차에 실었다.
구급차의 문이 무겁게 닫히고 붉은 경광등의 불빛이 빗물에 젖은 채석장 바닥을 피처럼 붉게 물들이며 멀어져 갔다. 은수는 차가운 구급차 안에서 산소마스크를 쓴 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구급대원들은 다급하게 심전도 모니터를 연결하고 은수의 찢어진 이마와 무릎을 소독하며 무전기로 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취했다.
"환자 여성 1명, 의식 상태 혼미, 두부 열상 및 전신 타박상 심함. 수액 주입 시작한다. 혈압 90에 60으로 저하 중!"
“안에…… 사람이…… 진범은 오태수예요…….”
은수는 웅얼거리며 피투성이가 된 휴대폰을 부러질 듯 꽉 쥐고 있었다. 그 안에 찍힌 오태수의 연쇄살인 아지트 사진들이야말로 강태오가 살인 용의자가 아니라 누명을 쓴 형사였음을 입증해 줄 유일한 법적 증거였다.
강태오는 은수를 지키기 위해 무너져 내리는 지옥 속으로 스스로를 던졌다. 그가 다정한 모습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다친 발을 붕대로 묶어주고 젖었던 남색 코트를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널어두던 모든 순간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은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비록 세상은 그를 연쇄살인 용의자로 낙인찍었지만 은수에게 강태오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다.
구급차가 빗속을 뚫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창밖의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은수는 서서히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끈을 붙잡으려 애썼다.
무너진 갱도 속에 홀로 남겨진 강태오의 젖은 코트 자락과 그의 다정했던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기다려줘요, 태오 씨. 내가 반드시 당신의 누명을 벗겨줄 테니까. 그리고 꼭 살아서 돌아와 줘요.'
은수는 찢어진 손톱을 움켜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녀의 눈가에 흐른 뜨거운 눈물이 산소마스크 너머로 흘러내려 차갑게 식어갔고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이 빗속의 도로 위를 길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