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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22화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22화: 심연 속의 사투

새벽의 찬 안개가 산자락을 무겁게 덮고 있을 무렵, 강태오와 한은수는 마침내 버려진 채석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깎아지른 암벽 사이로 기괴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사방에는 깎인 채 방치된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들과 녹슨 굴착 장비들이 거대한 뼈대만 남긴 채 괴물처럼 서 있었다. 그 녹슬고 깨진 기계의 부속품들 사이로 빗물이 뚝뚝 떨어지며 쇠비린내를 밤공기에 섞어 보냈다.

그 안쪽, 잡초와 가시덤불이 무성하게 우거진 비탈길 끝에 반쯤 허물어진 시멘트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전 폐광으로 사용되다 방치된 갱도의 입구이자, 연쇄살인마 오태수의 숨겨진 아지트였다.

건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는 바깥보다 훨씬 차갑고 축축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곰팡이 냄새와 녹슨 쇠붙이 냄새, 코를 찌르는 역한 비린내가 진동했다.

어두컴컴한 통로는 외부의 새벽빛조차 차단하고 있어 오직 콘크리트 벽 틈새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에 의지해야 했다. 은수는 절로 마른침을 삼키며 강태오의 남색 코트 자락을 꼭 쥐었다.

강태오는 한 손으로 옆구리의 상처를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는 품 안의 식도를 단단히 쥐고 한 걸음씩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발밑의 깨진 시멘트 가루와 흙먼지가 사각거리며 긴장을 더했다.

"은수 씨, 절대 내 등 뒤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지시 없이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의 낮고 단단한 속삭임이 은수의 귓가에 닿았다. 은수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지만 강태오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온기가 그녀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건물 내부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소름 끼치는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는 낡고 삐걱거리는 철제 수술용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침대 모퉁이에는 피해자들을 묶어두었을 가죽끈들이 헤진 채 매달려 있었다. 가죽끈에는 오래된 검붉은 피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동안 이곳에서 벌어졌을 끔찍한 일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벽면은 온통 붉은색 스프레이와 낙서들로 가득 차 있었다. 피해자들의 사진, 그들이 살해당한 날짜와 정교하게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 수사본부의 신문 기사 스크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그 스크랩 중에는 강태오의 동생 안혜원의 살해 당시 사진과 기사도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경찰관의 여동생,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이라는 헤드라인 위로 오태수의 조롱 섞인 낙서가 붉은 잉크로 덧칠해져 있었다. 오태수, 그 괴물은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들을 예술이라도 되는 양 기록하고 기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제 책상 위에는 피해자들의 유품이 날짜별로 봉투에 나뉘어 있었고 낡은 녹음기와 캠코더 몇 대가 전원선에 연결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천장 가까이에는 붉은 경고등과 끊어진 듯 이어진 기폭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은수는 이곳이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범행 기록과 도주 대비 장치까지 갖춘 작업실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게…… 전부 그놈이 저지른 짓이군요. 당신의 동생 혜원이 씨를 죽인 것도, 당신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것도 전부 이 방에 증거로 남아 있어요.”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벽면의 스크랩과 붉은 낙서, 날짜가 적힌 유품 봉투, 녹음기와 캠코더, 천장 쪽 기폭선까지 차례로 찍기 시작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끔찍한 진실 앞에서 손끝이 흔들렸지만 은수는 이를 악물고 셔터를 눌렀다. 이것들이야말로 강태오의 누명을 벗기고 오태수가 진범임을 세상에 증명할 유일한 열쇠였다.

“강 형사, 결국 내 작업실까지 기어들어 왔군. 끈질긴 사냥개 놈 같으니라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낮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으으으—

녹슨 철문 뒤편의 짙은 어둠 속에서 오태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목에는 강태오에게 찔려 피로 얼룩진 붕대가 대충 감겨 있었고 한 손에는 묵직한 쇠지레를 들고 있었다. 뒤틀린 입꼬리가 광기로 번뜩였다.

그의 눈동자는 완전히 초점을 잃은 채 충혈되어 있었다. 이미 이성이 마비된 얼굴이었다.

“내 성스러운 신전을 이 더러운 눈으로 더럽히다니, 정말 참을 수가 없군. 강태오, 머리가 깨지고도 기억을 찾아 여기까지 기어 오다니 칭찬해 주마. 네 동생 년이 죽을 때 냈던 그 아름다운 비명 소리를 여기서 다시 들려주지. 이번에는 네 곁에 있는 저 앙증맞은 그림쟁이 년의 목줄기를 그어가며 말이야.”

오태수가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조롱했다. 그 도발에 강태오의 목줄기에 굵은 핏대가 섰고 그의 온몸이 살기로 팽팽해졌다.

“오태수…… 네놈은 오늘 여기서 살아 나가지 못한다.”

“말은 잘하는군, 사냥개 놈아!”

말을 마친 오태수가 쇠지레를 치켜들고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은수 씨, 피해요!”

강태오가 은수를 옆으로 세차게 밀쳐내며 앞으로 나섰다.

깡—! 콰아앙!

쇠지레와 식도가 공중에서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좁은 콘크리트 방 안을 찢어발기듯 울려 퍼졌다. 강태오는 붕대를 감은 옆구리의 상처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오태수의 묵직한 내리치기를 겨우 받아내며 뒤로 밀려났다.

바닥의 흙먼지가 두 사람의 발걸음에 의해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하하하! 몸뚱이가 그 모양인데 나를 감당할 수 있겠냐? 이 병신 같은 짭새 놈아! 네 무릎을 박살 내고 머리를 짓개겨서 동생 옆으로 보내주마!”

오태수는 웃어대며 쇠지레를 연달아 휘둘렀다. 쇠지레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쉬익, 쉬익—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강태오는 필사적으로 몸을 피하며 식도로 쇠지레의 궤적을 쳐냈으나 어젯밤의 두통과 부상의 피로가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오태수의 거친 군화 발차기가 강태오의 부상당한 옆구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퍽!

“크헉!”

강태오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며 낡은 철제 캐비닛 위로 쓰러졌다. 캐비닛이 무너지며 그 안에 있던 공구들과 서류 상자들이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고 요란한 소음이 고막을 때렸다. 캐비닛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강태오의 이마에서 다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려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태오 씨!”

은수가 비명을 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무거운 철제 스패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은수는 두려움을 잊은 채 스패너를 양손으로 주워들고 오태수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이 괴물아, 그만해!”

은수가 온 힘을 다해 스패너를 오태수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오태수는 기민했다. 은수의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돌려 왼팔로 스패너를 막아냈다.

깡!

스패너가 오태수의 팔뚝을 때렸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오히려 비열하게 미소 지으며 은수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사정없이 팽개쳤다.

콰당!

은수의 몸이 콘크리트 바닥의 깨진 모서리에 부딪치며 뒹굴었다. 등과 허리에 끔찍한 고통이 몰려왔고 시야가 아득해졌다. 오태수는 쓰러진 은수를 향해 쇠지레를 높이 쳐들었다.

“이 쥐새끼 같은 년부터 처리해주지.”

“안 돼—!”

강태오가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려 은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직!

묵직한 쇠지레가 강태오의 등뼈 부근을 정통으로 내리쳤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태오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와 은수의 얼굴과 뺨을 적셨다. 강태오는 그 고통 속에서도 은수를 두 팔로 꼭 껴안아 보호했다. 그의 뜨거운 피가 은수의 셔츠 깃을 붉게 물들였다.

“태오 씨! 안 돼, 제발…… 나 때문에……!”

은수는 절망감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강태오의 의식이 멀어지는 것이 그의 떨리는 손끝과 풀려가는 눈동자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강태오의 내면에서 어두운 암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혜원아…… 오빠가 또 지키지 못하는구나……'

그의 무의식 속에서 절망의 독백이 흘러갔다.

“끝이다, 강태오. 지옥에서 네 동생과 손잡고 평생 울부짖어라.”

오태수가 광기 서린 미소를 지으며 쇠지레를 다시 한 번 높이 치켜들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강태오의 감겨가던 눈동자가 번뜩 뜨였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푸른 광기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형사의 집념이자, 이 여자를 절대 잃지 않겠다는 맹세였다.

강태오는 쇠지레가 내려오는 궤적 안으로 자신의 왼쪽 어깨를 내던졌다.

퍽!

쇠지레가 그의 어깨뼈를 내리찍는 고통을 감내하며 강태오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식도를 오태수의 복부를 향해 온 힘을 실어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학—!

“크…… 으헉!”

오태수의 비열한 웃음기가 순간 뚝 멈췄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강태오의 칼날은 오태수의 아랫배를 뚫고 들어가 척추뼈 부근까지 파고들었다.

강태오는 이를 악물고 칼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옆으로 비틀었다. 오태수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와 강태오의 얼굴에 튀었다.

“이…… 이 개새끼가…….”

오태수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강태오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강태오는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오태수의 멱살을 잡고 앞으로 돌진했다. 두 사람의 몸이 시멘트 벽면에 거칠게 돌출되어 있던 녹슨 철근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오태수의 등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굵은 철근 끝에 정통으로 박혔다.

“아아아악!”

오태수의 비명이 폐광 건물의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철근이 오태수의 몸을 관통했고 오태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벽에 걸린 채 피를 쏟아냈다. 그의 손에서 쇠지레가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하, 하하…… 강태오…… 결국…… 나랑 같이…… 지옥으로 가는군…….”

오태수는 고개를 떨구며 마지막 비열한 미소를 남긴 채 의식을 잃어갔다. 그의 눈동자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강태오는 식도를 쥔 손을 놓고 바닥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의 등과 어깨, 옆구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쉬지 않고 흘러나와 바닥에 고여갔다. 그의 호흡은 얕고 불규칙했다.

“태오 씨! 정신 차려요! 제발 눈을 떠봐요! 내 목소리 들리죠?”

은수가 기어가 강태오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얹었다. 그녀의 손이 강태오의 차가워지는 뺨을 감싸 쥐었다. 은수의 눈물이 강태오의 얼굴에 묻은 피와 흙먼지를 닦아내렸다.

“은수 씨…… 사진은…… 다 찍었습니까…….”

“네, 다 찍었어요. 전부 다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이제 경찰들도 진실을 알게 될 거예요. 태오 씨의 누명이 벗겨질 거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마세요.”

“다행…… 입니다. 은수 씨를…… 지킬 수 있어서…… 약속을…… 지켰습니다…….”

강태오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은수의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가락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안 돼! 눈 감지 마요! 강태오! 정신 차려요!”

은수는 오열하며 그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폐광 건물 밖에서 수십 대의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하얀 서치라이트 불빛들이 창문 틈새와 무너진 벽 틈으로 쏟아져 들어와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경찰이다! 사방을 포위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수많은 경찰들의 거친 발자국 소리가 갱도 내부를 가득 메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은수는 강태오의 피투성이가 된 몸을 가슴에 꽉 껴안은 채 다가오는 하얀 빛더미를 매섭고 단단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진실을 증명할 물증이 담긴 휴대폰을 꼭 쥔 채,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강태오의 무죄를 밝히고 그를 구하기 위한 법정과 세상과의 싸움이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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