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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20화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20화: 위태로운 도주

댕— 댕—

거실 한구석에서 괘종시계가 울리는 아홉 번의 타종 소리는 비극의 전주곡 같았다. 둔탁한 놋쇠 종소리가 어두컴컴한 거실의 공기를 무겁게 흔들 때마다, 한은수의 심장은 벼랑 끝으로 한 걸음씩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목덜미에 닿아 있는 수술용 메스의 칼날은 기분 나쁘게 차가웠다. 살갗이 미세하게 갈라지며 한 줄기 더운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빗물이 섞인 오태수의 거친 숨결이 은수의 목덜미에 닿아 소름을 돋우었다.

"얌전히 있어. 움직이면 이 예리한 날이 네 목줄기 안쪽의 경동맥을 아주 정교하게 쪼개놓을 테니까."

오태수의 목소리는 낮고 축축했다. 뺨에 깊게 파인 칼자국 흉터가 그가 속삭일 때마다 기괴하게 씰룩였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진흙 냄새와 비린내가 은수의 코끝을 찔렀다.

은수는 공포로 얼어붙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강태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강태오의 무릎 아래에는 깨진 전등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정없이 깔려 있었다. 몸무게가 실릴 때마다 서슬 퍼런 유리 파편들이 무릎 살갗을 찢고 뼈를 찌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청바지 무릎 부분이 순식간에 검붉은 피로 얼룩졌지만 강태오는 단 한 번의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핏발이 선 채 오직 은수의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만을 좇고 있었다. 동생 안혜원을 잃었던 그날 밤의 무력감과 분노가, 지금 이 순간 그의 전신을 화염처럼 불태우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태수…… 은수 씨한테서 손 떼."

강태오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억누를 수 없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거친 손바닥이 바닥을 짚은 채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에 박히는 유리 파편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움켜진 주먹 틈새로 붉은 피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바닥의 흙먼지와 섞였다.

"오, 그래. 사냥개 놈이 주인을 알아보는군."

"그때 네 동생도 딱 이랬지. 질질 짜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얼마나 가관이던지. 강 형사, 네가 멍청하게 진범을 쫓는답시고 동네를 쑤시고 다니지 않았다면, 그 애는 조금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네가 그 애를 죽인 거야. 네 그 오만한 정의감이 말이지."

"닥쳐……!"

강태오의 이빨 사이로 으드득 뼈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태수는 그 반응을 즐기듯 은수의 머리칼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은수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하얀 목덜미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메스 끝이 은수의 목 피부를 지긋이 누르자 피가 쇄골을 타고 흘러내려 셔츠 깃을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은수는 결심했다. 이대로 주저앉아 강태오가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유리 파편 위에 무릎을 꿇고 피를 흘리고 있다면, 자신 또한 무엇이든 해야 했다.

머리가 꺾여 시야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은수는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태수의 온 신경이 무릎을 꿇은 강태오의 굴복한 모습에 쏠려 있는 바로 그 짧은 찰나. 은수는 이를 악물고 팔을 뒤로 뻗어 오태수의 허벅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통수로 오태수의 턱을 향해 머리를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퍽!

"끄윽!"

예상치 못한 충격에 오태수의 신음과 함께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메스를 쥔 그의 손끝이 흔들렸고 은수의 목을 조이던 손아귀의 힘이 아주 잠깐 느슨해졌다.

"은수 씨!"

강태오는 그 0.1초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릎의 고통을 찢어발기며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킨 그는 바닥의 깨진 유리 조각 중 가장 크고 날카로운 파편을 손에 쥔 채 오태수를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몸체가 공간을 가르는 듯한 위압적인 움직임이었다.

강태오가 몸을 날려 오태수의 허리를 덮치자 두 남자의 몸이 엉키며 바닥으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콰당! 쨍그랑!

바닥에 남아 있던 유리 식탁의 다리가 무너지며 거실 전체가 난장판이 되었다. 오태수는 은수를 거칠게 밀쳐내고 강태오의 목을 조르려 손을 뻗었다. 자유로워진 은수는 거실 구석으로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을 감싸 쥐자 손바닥에 축축하고 뜨거운 피가 묻어났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혈투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어둠과 주황색 스탠드의 깜빡이는 잔광 속에서 두 남자는 짐승처럼 엉켜 싸웠다.

오태수는 기민하게 메스를 휘둘렀고 강태오는 유리 조각을 쥔 손으로 오태수의 손목을 내리찍었다.

스걱!

“아아악!”

오태수의 손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메스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굴러갔다. 그러나 오태수 또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다른 쪽 손으로 강태오의 깨진 머리 상처(거즈가 붙어 있던 부위)를 움켜쥐고 무자비하게 뜯어내려 했다.

“크아악!”

강태오가 극심한 두통과 찢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오태수가 그 위로 올라타 강태오의 목을 졸랐다.

“이 개새끼가……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 너 같은 삼류 형사 놈이!”

오태수의 눈이 완전히 뒤집혀 광기로 번뜩였다. 강태오의 얼굴이 산소 부족으로 점차 붉게 상기되었고 그의 목줄기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은수는 다급하게 바닥을 기어 다니며 아까 놓쳤던 철제 삼각대를 찾아 손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위이이잉—

머나먼 침엽수 숲길 너머에서 불길하고도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붉고 파란 경광등 불빛이 자욱한 안개 속에서 번지며 거실 창문 틈새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 대가 아니었다. 최소 서너 대의 경찰차가 붉은 벽돌집을 향해 빠른 속도로 좁혀오고 있었다.

며칠 전 탐문 때 주소를 적어 갔던 강민구 형사는 국도 삼거리 오인 신고 이후에도 이 집을 순찰 목록에서 지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오태수가 일부러 흘린 제보와 인근 숲길 살인 신고까지 겹쳤다면, 경찰이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충분했다.

오태수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의 충혈된 회색 눈동자가 창밖의 붉은 불빛을 향해 빠르게 굴러갔다.

“쳇…… 끈질긴 것들.”

오태수는 강태오의 목을 짓누르던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강태오의 옆구리를 구두발로 잔인하게 걷어찼다.

퍽!

“끄윽……!”

강태오가 몸을 웅크리며 비틀거렸다. 오태수는 바닥에 흐르는 피를 대충 옷소매로 닦아내며 깨진 현관문 유리창 너머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는 은수를 향해 메스보다 더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태오, 그리고 한은수. 오늘 밤은 저들이 방해하는군. 하지만 기뻐하지 마라. 강태오, 넌 어차피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아도 저들이 널 지옥으로 보낼 테니까. 연쇄살인마 사냥개 놈아. 쇠창살 안에서 네 동생의 비명이나 평생 기억하며 썩어가라.”

말을 마친 오태수는 거실 뒷문, 부엌 쪽 세탁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차가운 빗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문밖 배수로를 따라 일부러 깊은 장화 자국을 남기며 숲의 오른쪽 능선으로 사라졌다. 경찰이 쫓아올 첫 방향을 미리 그어두는 움직임이었다.

“태오 씨! 태오 씨, 정신 차려봐요!”

은수는 풀려나간 무릎 붕대를 질질 끌며 강태오에게 기어갔다. 강태오는 거실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유리 파편에 찔린 상처와 두들겨 맞은 멍, 그리고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은수 씨…… 다친 데는…… 없습니까…….”

강태오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손을 뻗어 은수의 목덜미에 묻은 피를 닦아주려 했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은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은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강태오의 뺨에 묻은 핏자국을 씻어내렸다.

“전 괜찮아요. 태오 씨가 살렸잖아요. 일어나요, 어서 일어나야 해요.”

하지만 멀리서 들리던 사이렌 소리는 이제 집 앞마당 숲길 입구까지 다가와 있었다. 서치라이트의 하얗고 거대한 빛줄기가 안개 낀 나무들 사이를 뚫고 붉은 벽돌집 마당을 비추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경찰들의 거친 장화 소리와 수색견들의 사나운 짖음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경찰이다! 용의자 강태오가 이 근처 주택에 숨어들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정문과 오른쪽 능선부터 막아!”

메가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붉은 벽돌집의 벽을 두드렸다. 강태오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며 은수의 손을 지긋이 밀어냈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절망과 체념이 깔려 있었다.

“은수 씨…… 도망쳐요.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같이 가야죠!”

“아닙니다. 오태수가 나한테 살인 용의를 모두 뒤집어씌웠습니다. 현장에서 내 지문이 발견되었고 내 알리바이는 입증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난 기억상실증 환자로 도망치던 중이었습니다. 지금 잡히면 오태수의 아지트와 증거를 찾기 전에 모든 게 끝납니다. 저 제보도 놈이 흘렸을 겁니다. 나를 살인마로 만들고 자신은 영원히 어둠 속에 숨는 것.”

강태오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하지만 은수 씨는 다릅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다. 여기서 경찰을 맞이하세요. 그리고 나에 대해 아는 대로 다 말하십시오. 기억상실과 오태수의 조작 속에서 당신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도 숨기지 마세요. 그래야 당신이 안전합니다.”

“싫어요!”

은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단호하고 단단한 눈빛이 강태오의 흔들리는 안광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태오 씨는 살인마가 아니잖아요! 나를 지키기 위해 무릎을 꿇었고 동생을 죽인 진짜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로서 싸워왔던 강태오잖아요! 내가 진실을 아는데 어떻게 당신을 버려요? 만약 여기서 당신이 잡히면, 진짜 범인 오태수는 영원히 잡히지 않아요. 그 괴물은 또 다른 사람을 죽일 거예요. 그리고 태오 씨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평생 감옥에 갇히게 되겠죠. 난 그런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은수는 강태오의 피 묻은 거친 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나를 믿어준다고 했잖아요. 나도 태오 씨를 믿어요. 그러니까…… 도망쳐요. 진범을 잡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잡히면 안 돼요.”

강태오는 은수의 올곧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두려움을 넘어선 강인한 결의가 빛나고 있었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잃어버렸던 삶에 대한 의지와, 동생을 향한 약속, 그리고 이 여자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후회는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예요. 어서 가요!"

두 사람은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강태오는 거실 탁자 아래 굴러간 식도를 주워 피 묻은 손수건으로 감싼 뒤 품 안 깊숙이 넣었다. 버리고 가면 오태수가 남긴 흔적과 뒤섞여 또 다른 증거가 사라질 수 있었다. 은수는 겉옷을 대충 걸치고 뒷문을 향해 달렸다.

꽝!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경찰들이 서치라이트를 들고 들이닥치기 직전, 강태오와 은수는 세탁실 바닥의 낮은 창문을 밀어 열었다. 오태수가 빠져나간 뒷문 쪽에는 이미 경찰 불빛이 몰려들고 있었다. 강태오는 은수를 먼저 창밖으로 내보낸 뒤, 빗물 배수로를 따라 기어 어두운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슈우우우우—

숲속은 세차게 내리는 비로 가득 차 있었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침엽수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괴물처럼 아우성쳤다. 발밑의 진흙은 발목까지 푹푹 빠져들며 그들의 걸음을 붙잡았고 젖은 나뭇가지들이 얼굴과 팔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오른쪽 능선에 장화 자국이다! 도주 방향 확인! 수색견 붙여!”

뒤쪽에서 경찰들의 다급한 고함과 서치라이트 불빛이 안개 낀 나무들 사이로 번쩍였다. 수색견들의 날카로운 짖음 소리는 오른쪽 능선으로 먼저 멀어졌다가 빗물에 씻긴 냄새를 다시 찾듯 흔들리며 돌아오고 있었다.

강태오는 옆구리의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숨을 쉴 때마다 입안에서 비린 피 맛이 났다. 하지만 그는 은수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은수의 젖은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손아귀 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은수 씨,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이 숲을 지나면 예전에 내가 수사할 때 봐두었던 버려진 임도가 나옵니다. 배수로와 맞닿은 오래된 사면이라 차가 못 들어와요. 거기로 빠져나가야 수색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네, 갈 수 있어요…… 윽!”

은수가 미끄러운 진흙 경사로에서 발을 헛디디며 넘어졌다. 찢어진 무릎 상처가 흙과 빗물에 닿아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려왔다. 강태오는 즉시 몸을 굽혀 그녀의 허리를 안아 올렸다.

“내가 업겠습니다.”

“하지만 태오 씨도 상처가 심하잖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서 타요!”

그의 단호함에 은수는 그의 넓은 등 위로 매달렸다. 젖어 있는 남색 코트에서 느껴지는 강태오의 체온이 빗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온기처럼 느껴졌다.

강태오는 은수를 업은 채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며 숲의 비탈길을 질주했다. 그의 거친 호흡이 숲의 빗소리와 뒤섞였다. 추격자들의 라이트 불빛이 사방을 휘저었지만 자욱한 안개와 거센 빗줄기가 두 사람의 흔적을 씻어내며 거대한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약 한 시간가량을 어둠 속에서 헤맨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경찰의 수색망을 벗어나 깊은 골짜기 아래에 위치한 낡은 폐공가에 도달했다. 오래전 광부들이 쓰다 버려진 목조 임시 대피소 같았다. 지붕은 반쯤 무너져 내렸고 가구들은 썩어 문드러져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지만 당장의 세찬 비바람과 경찰의 시선을 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은신처였다.

강태오는 은수를 조심스럽게 마른 먼지가 쌓인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기운이 다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흙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폐쇄된 공간 안에는 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만 가득했다. 천장의 틈새로 빗방울이 떨어져 바닥의 플라스틱 통을 때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꺼내온 손수건과 비상용 구급 약품(붉은 벽돌집에서 탈출할 때 은수가 급히 챙겨 넣었던 것)을 꺼냈다.

“태오 씨, 상처 좀 보여줘요.”

은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강태오의 찢어진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오태수의 구두발과 메스에 찔린 깊은 자창이 붉은 피를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었다. 은수는 소독약을 부어 상처를 소독했다.

소독약이 살에 닿자 강태오의 단단한 어깨 근육이 굳어지며 턱관절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신음 한 번 지르지 않고 은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 참지 말고……”

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거즈로 피를 닦아내고 압박 붕대로 그의 탄탄한 가슴과 옆구리를 칭칭 감아 묶었다.

매듭을 짓는 은수의 손가락 끝이 강태오의 젖은 살결에 닿았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기억을 되찾은 살인마 용의자,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친 여자. 이 기괴하고도 서글픈 동행이 그들을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은수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강태오의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그 지독한 진심과 다정함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그녀의 심장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수 씨.”

강태오가 붕대를 묶어준 은수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의 피 묻은 손끝이 은수의 여린 손등을 따뜻하게 덮었다.

“나를 따라온 것을…… 정말로 후회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제 쫓기는 범죄자일 뿐입니다.”

은수는 고개를 들어 그의 깊은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얼굴에 흙먼지가 묻고 머리가 엉망이었지만 그 미소는 어두운 폐공가 안을 환하게 밝히는 것 같았다.

“후회 안 해요. 그러니까 약속해 줘요.”

“무슨 약속 말입니까?”

“반드시 살아남아서, 그 괴물의 목에 수갑을 채우겠다고. 그리고…… 태오 씨의 누명을 벗고 다정한 진우 씨로 내 옆으로 돌아오겠다고.”

강태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은수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움켜쥐며 나직하지만 굳건한 목소리로 답했다.

“약속하겠습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진짜 범인을 잡고 당신에게 온전한 평화를 돌려주겠습니다.”

차가운 비 내리는 산속의 낡은 대피소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길고 위태로운 도주의 첫날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밖에는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지며 산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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