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19화: 진짜 괴물의 침입
바람이 흔들어대는 대문의 흔들림이 아니었다.
깡, 깡— 콰직!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금속 파열음이 붉은 벽돌집 마당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누군가 대문의 무거운 쇠빗장을 쇠지레 같은 철제 도구로 비틀어 억지로 뜯어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문 빗장이 완전히 뜯겨 나가며 대문이 바람에 거칠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젖은 자갈밭을 거칠고 규칙적으로 밟으며 다가오는 묵직한 장화 소리가 현관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은수는 2층 작업실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아침내 멎었던 빗줄기가 다시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붉은 벽돌집 지붕 위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둔탁한 진동이 은수의 발바닥을 지나 심장까지 때려대는 것 같았다.
은수의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려 마른 티셔츠를 적셨다. 강태오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며 방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의 손목 결박 상흔의 아픔과 절박한 열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은수 씨, 2층 작업실에 머무세요. 문을 안에서 잠그고 내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내려오지 마세요.”
“하지만 태오 씨, 몸도 안 좋은데 혼자…….”
“미안합니다. 당신을 이런 위험한 지옥으로 끌고 들어와서…… 하지만 내가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지킬 겁니다.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테니, 제발 어서 문을 잠가요.”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은수는 결국 눈물을 삼키며 방 안으로 피신했다. 은수가 작업실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그는 철컥 소리가 들리자마자, 강태오는 식도를 쥔 채 1층으로 소리 없이 달려 내려갔다.
강태오는 1층 부엌 조리대 옆에 서서 현관 밖의 장화 소리를 기다리며 동생 안혜원이 차가운 비 내리는 골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던 그 끔찍한 밤의 기억을 곱씹었다. 분노가 그의 뇌 속 혈관들을 터뜨릴 것처럼 고동쳤다.
1층 현관에서 곧 소름 끼치는 굉음이 발생했다.
쨍그랑! 와장창!
육중한 금속 둔기가 현관문의 이중 유리창을 무자비하게 깨부쉈다. 유리 파편들이 거실 바닥 타일 위로 사방에 흩어지며 비명 같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깨진 유리의 날카로운 단면들이 주황색 스탠드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은빛 궤적을 그리며 반사되었다.
뒤이어 깨진 유리 틈새로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이 쑥 들어와, 현관 도어록의 이중 잠금 레버를 수동으로 거칠게 돌려 풀었다.
띠리리릭—
문이 열리며 빗물과 안개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거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안개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검은색 비닐 우비를 입고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의 실루엣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는 젖은 우비를 거칠게 벗어 거실 바닥에 던졌다. 그 남자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뺨에 얇고 긴 칼자국 흉터가 새겨진, 며칠 전 은수에게 접근해 사진을 건네며 강태오의 살기를 경고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그의 이름은 오태수.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적색 야경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자, 강태오가 목숨을 걸고 추적하던 남자였다.
오태수의 뺨에 난 흉터가 근육의 실룩임에 따라 일그러졌고 그의 젖은 장화 아래 묻은 숲의 진흙이 카펫 위에 지저분한 흙탕물 얼룩을 남겼다. 흙탕물 자국 끝에는 우편함 봉투에 찍혀 있던 것과 닮은 작은 네모꼴 흔적이 눌려 있었다. 오태수는 거실 한가운데서 칼을 겨누고 있는 강태오를 바라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강 형사…… 아니, 사냥개 놈이라고 불러야 하나? 머리에 붙은 거즈를 보니 그날 밤 숲속에서 내 쇠파이프에 맞은 보람이 있었던 모양이야. 안혜원 현장에서 네가 내 흔적을 재고 정사각형 운운하며 쫓아오던 꼴이 아직도 눈에 선해.”
오태수는 품 안에서 번뜩이는 차가운 수술용 메스 한 자루를 꺼내 손가락 사이로 뱅글뱅글 돌렸다.
“기억이 드디어 돌아왔나 보군, 강태오. 사냥개 주제에 주인을 물어뜯겠다고 집착하더니, 결국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 이 외딴 붉은 벽돌집으로 숨어들어 왔을 줄이야. 순진한 그림쟁이랑 다정한 부부 놀이까지 하고 있었다니…… 꽤 어울리더군.”
오태수의 조소에 강태오의 목줄기에 굵은 핏대가 섰다. 그제야 은수는 오태수의 우비 안쪽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비닐 봉투를 보았다. 희미하게 마른 핏자국이 묻은 흰 천 조각과 강태오의 지갑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얇은 신문 스크랩 조각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오태수…… 네놈을 잡기 위해 내 동생 혜원이의 시신 앞에서 맹세했다.”
“해볼 테면 해보시지. 하지만 끈에 묶여 손목이 다 뭉개지고 머리가 깨진 사냥개가 나를 물어뜯을 수 있을까?”
말을 마치자마자 오태수가 맹수처럼 거실 바닥을 차고 달려들었다. 강태오 역시 식도를 치켜들고 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두 사내의 처절하고 잔혹한 육탄전이 1층 거실 한가운데서 벌어졌다.
스걱! 챙!
식도와 메스가 부딪치며 날카로운 마찰음과 스파크가 튀었다. 강태오는 온 힘을 다해 칼을 휘둘렀으나, 어젯밤 겪었던 발작적인 두통의 후유증과 손목 결박 상처 때문에 신체적 반응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오태수는 기민하고도 비열하게 강태오의 약해진 왼쪽 옆구리와 손목 상처만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강태오가 메스를 식도로 받아낼 때마다 금속음이 튀었고 그 반동으로 부어오른 손목 상처에서 피가 다시 터져 나와 황마 끈 조각들을 붉게 적셨다.
오태수가 강태오의 목덜미를 휘어잡아 거실 가죽 소파 위로 밀쳐 넘어뜨렸다. 소파 내부의 낡은 철제 스프링이 가해지는 압력에 삐걱- 텅! 하고 찢어지는 비명을 냈고 소파 가죽이 날카롭게 찢어지며 하얗고 부드러운 솜털들이 거실 공중으로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이어 책상이 무너지며 스탠드가 바닥에 떨어져 백열전구가 펑! 하고 터졌다. 거실 안이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졌다. 두 사람은 바닥의 깨진 유리 파편들 위에서 뒹굴며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강태오의 찢어진 회색 티셔츠 틈새로 살을 파고들어 피가 타일 바닥을 적셨다.
퍽! 콰당!
오태수의 거친 발차기가 강태오의 복부를 강타했고 강태오는 거실 탁자에 부딪치며 비틀거렸다. 탁자 위의 스탠드와 화분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며 흙과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강태오는 억지로 버티며 식도를 가로로 그었으나 오태수는 가볍게 피하며 강태오의 오른손목을 스치듯 베어냈다. 손목에 마비가 번지며 식도가 식탁 아래로 툭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강태오는 식도를 놓치고 오태수에게 일방적으로 타격당했다.
오태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태오의 어깨를 밟아 바닥에 짓누른 뒤, 메스 끝을 강태오의 눈동자 바로 위에 바짝 들이댔다.
“끝났네, 사냥개 놈. 네 동생 곁으로 보내주마.”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태오 씨!”
2층 계단 위에서 비명 섞인 외침이 들렸다. 은수였다.
그녀는 강태오의 비명 소리와 가구 부서지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작업실 구석에 놓아두었던 묵직하고 단단한 철제 삼각대를 양손으로 꽉 움켜쥔 채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왔던 것이다. 은수의 무릎 상처가 욱신거리며 다리가 비틀거렸으나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오태수의 등 뒤를 향해 삼각대를 휘둘렀다.
깡!
삼각대가 오태수의 어깨 뼈 부근을 때렸으나 오태수는 둔탁한 신음만 흘렸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오태수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며 은수를 바라보았다.
“숨어 있으라니까 꼭 기어 나오지.”
오태수는 뱀처럼 기민한 동작으로 일어서며 은수의 삼각대를 발로 걷어차 날려버렸다. 철제 삼각대가 거실 구석으로 요란하게 뒹굴었다. 은수는 반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오태수는 그녀보다 훨씬 빨랐다.
오태수는 거칠게 손을 뻗어 은수의 흩날리는 머리칼을 움켜잡아 거실 바닥에 팽개쳤다. 두피가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은수는 비명을 질렀고 오태수는 그녀의 목덜미를 장화 발로 지긋이 누르며 메스를 뺨 가까이 밀어 넣었다. 은수의 무릎 붕대가 풀려나와 바닥의 진흙과 핏물에 더럽게 뭉개졌다.
아악!
은수가 바닥에 쓰러지자 오태수는 즉시 그녀의 등 뒤를 무릎으로 누르고 차가운 수술용 메스의 칼날을 은수의 뺨과 하얀 목줄기에 바짝 들이댔다. 메스의 서늘한 날이 은수의 연약한 목 살갗을 지긋이 누르자 미세한 붉은 핏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똑똑 떨어져 그녀의 쇄골 뼈의 깊은 홈에 고이며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마.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이 목에 정사각형의 첫 번째 선을 그어버릴 테니까.”
오태수의 음산하고 비열한 목소리가 거실의 공기를 무섭게 얼려버렸다.
“안 돼…… 은수 씨……!”
강태오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비명 섞인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는 일어나려 했으나 오태수는 은수의 목을 겨눈 칼날에 더 힘을 주며 강태오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움직이지 마, 강태오. 손 떼고 무릎 꿇어.”
오태수는 은수의 머리칼을 더 꽉 거머쥐며 비열하게 웃었다. 강태오의 손가락 끝이 마룻바닥의 유리 파편들을 움켜쥐어 손톱 끝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네가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애걸한다면, 이 그림쟁이 목숨을 단 1분이라도 더 연장해 줄 테니까. 어서 무릎 꿇어, 사냥개 놈아!”
오태수의 명령과 은수의 목덜미에서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붉은 핏방울, 그리고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찬 강태오의 핏발 선 눈동자가 교차했다. 붉은 벽돌집의 침묵은 마침내 그들의 마지막 사투의 무대를 열어젖히고 있었다. 창밖의 안개는 그들의 비극을 완전히 은폐하려는 듯 더욱 짙게 깔려 대문을 삼켜가고 있었다.
강태오가 천천히 무릎을 꿇기 위해 바닥을 짚을 때 그의 무릎이 깨진 전등 유리 조각들 위로 짓눌렸다. 하지만 그는 비명조차 삼킨 채 오직 은수만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거실 벽의 괘종시계가 무거운 아홉 번의 종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거운 금속성의 타종 소리가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어둠을 차갑게 때려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