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16화: 기억의 귀환 (상)
거실 바닥에 흩어진 깨진 사기그릇 파편들과 쏟아진 알약 상자들은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은수는 흐느끼던 울음을 간신히 그치고 품에 안겨 있던 진우의 넓은 어깨를 가만히 밀어냈다.
진우는 마치 태엽이 풀려버린 목각인형처럼 힘없이 은수의 손길에 밀려났다.
그의 눈동자는 공허하게 비어 있었고 이마의 찢어진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여전히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밑에 맺혀 있었다.
“……욕실로 가요. 피 닦아야 해요.”
은수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굳어버린 진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진우는 아무런 저항 없이 은수가 이끄는 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키는 은수보다 한 머리는 더 컸고 체구도 널따랬지만 지금 은수에게 이끌려 욕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길 잃은 거대한 유령처럼 쓸쓸하고 나약해 보였다.
욕실의 하얀 형광등 불빛이 두 사람의 비참한 몰골을 가감 없이 비추었다.
은수는 진우를 변기 뚜껑 위에 앉히고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플라스틱 구급상자의 경첩이 삐걱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은수는 약솜에 빨간 소독약을 묻혀 그의 이마 상처를 톡톡 두드렸다.
소독약 특유의 알싸하고 비릿한 요오드 냄새가 좁은 욕실 안으로 번져 나갔다.
“욱…….”
알코올이 상처에 닿자 진우가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지만 몸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는 얌전히 눈을 감은 채 은수의 손길에 자신의 얼굴을 온전히 맡기고 있었다.
은수는 그의 이마 상처에 새 약을 바르고 새 거즈를 촘촘하게 붙여주었다.
이어 그의 목줄기에 스쳤던 날카로운 칼끝 상처도 조심스럽게 소독했다.
은수의 손가락 끝에 진우의 목덜미 맥박이 쿵, 쿵, 쿵…… 무겁고 가쁘게 뛰는 것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 진동을 느끼자 은수의 머릿속에 수프 냄비 앞에서 조용히 국자를 젓던 모습과 마트 형광등 아래에서 희미하게 웃던 눈빛이 스쳤다.
하지만 동시에 숲길에서 덫에 걸린 들개를 향해 드러냈던 섬뜩한 살기도 떠올랐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운 두 얼굴 사이에서 소름이 돋았다.
은수는 그의 비에 젖은 남색 셔츠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단추를 하나씩 풀 때마다, 진우의 탄탄한 가슴팍과 옆구리에 새겨진 그 수많은 흉터들이 어두운 조명 아래 도드라졌다.
칼에 베이고 긁힌 잔인한 과거의 흔적들.
가슴팍 중앙을 길게 가로지르는 굵은 칼자국, 오른쪽 옆구리에 깊게 패인 둥근 흉터, 그리고 등허리 쪽에 무수히 그어진 가시덤불 같은 긁힌 흔적들.
은수는 그 흉터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남자가 살아온 어둠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가 살인마로서 누군가와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흔적인지, 아니면 일방적인 도살 끝에 얻은 영광의 상처인지 판단할 수 없어 오한이 일었다.
은수는 마른 수건으로 그의 젖은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미리 가져온 단정한 회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혀주었다.
“……은수 씨의 손은 참 따뜻합니다. 어젯밤에도, 그리고 지금도…… 제 더러운 몸을 이렇게 상냥하게 어루만져 주는 유일한 손길입니다.”
진우의 눈동자에 맺힌 슬픔이 너무나 진실해서 은수는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다시 2층 은수의 방으로 올라왔다.
은수는 진우를 침대 밑 나무 바닥에 앉혔고 자신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3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창밖의 폭우는 기세가 꺾여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만 냈지만 숲에서 밀려든 백색 안개는 벽돌집의 창문을 집어삼킬 듯 더 빽빽하게 들끓고 있었다.
집 안은 째깍거리는 낡은 괘종시계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거대한 묘지 같았다.
방구석의 벽지 틈새에서 장마가 남긴 축축하고 무거운 습기 냄새가 번져 나왔다.
진우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두 손으로 이마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미세한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방바닥의 차가운 나뭇결이 그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진우는 어깨를 잘게 떨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끊어진 전선들이 서로를 긁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날카로운 칼로 뇌의 속살을 짓이기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고 그의 이마와 뺨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회색 맨투맨 티셔츠의 목깃을 축축하게 적셔갔다.
“진우 씨…… 괜찮아요?”
은수가 조심스럽게 묻자, 진우는 고개를 젓지도 대답하지도 않은 채 머리를 꽉 쥐어짰다.
“……머릿속이 끓어오릅니다. 안개가 타들어 가면서……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벽들이 무너지고 있어요. 너무 뜨겁고 아픕니다. 신경세포들이 마구 부딪치며 불꽃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퓨즈가 타들어 가는 기분 나쁜 소리가 이명처럼 들립니다. 뇌 속의 혈관들이 하나씩 터져나가는 기분입니다.”
진우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거칠게 닫혀 있던 기억의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젯밤 은수가 보여준 사진과 소매에 묻은 피의 자극, 그리고 숲속에서 겪었던 기묘한 공백의 감각들이 끊어진 장면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고 있었다.
그의 관자놀이 부근의 핏대가 성난 뱀처럼 꿈틀거렸다.
은수는 그 모습을 보며 숨을 죽였다.
삐이이이—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주파 음이 진우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뒤이어 굳게 잠겨 있던 철문이 뜯겨 나가며 수천 장의 사진 파편들이 그의 의식 속으로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내 진짜 이름은…….’
기억 속의 그는 어두운 정장 차림을 한 채 빗속을 걷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가죽 수첩이 들려 있었고 수첩 페이지마다 피해자들의 사진과 이동 경로가 기하학적인 선으로 꼼꼼하게 메모되어 있었다.
‘강태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마침내 떠올렸다.
그의 나이는 29세.
닫힌 방 안에서 차가운 메스와 사건 사진을 앞에 두고 누군가의 동선을 되짚던 고독한 사내.
뒤이어 더욱 끔찍하고 잔혹한 이미지들이 진우의 의식을 피비린내 나게 물들였다.
가로등이 희미하게 깜빡이던 비 내리는 좁은 골목길.
세 번째 피해자 안혜원이 붉은색 우산을 쓴 채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고 진우 자신은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그녀의 등 뒤를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 빗방울들이 아스팔트에 떨어져 붉은 얼룩을 만들고 그녀의 구두가 아스팔트를 때리던 소리가 선명했다.
그녀가 흘리는 옅은 향수 냄새와 빗물 냄새를 따라붙던 누군가의 숨소리가 제 가슴 안에서 난 것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핏빛 현장.
바닥에 쓰러져 초점 없는 눈으로 공허하게 하늘을 응시하고 있던 안혜원의 시신.
그 시신의 목줄기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붉은 피가 골목의 아스팔트 위를 더럽게 적시고 있었다.
그 피가 골목의 하수구 구멍으로 질척한 소리를 내며 흘러들어 가던 양상이 생생했다.
그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것은 진우 자신처럼 보였다.
그의 오른손인지 누군가의 손인지 알 수 없는 손에는 길고 날카로운 사냥용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날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손등을 적셨다.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그 이후의 기억이었다.
기억 속의 몸은 당황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기괴할 정도의 침착함과 완벽주의를 발휘하며 품에서 하얀 라텍스 장갑을 꺼내 끼고 현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특수 약품을 묻힌 흰 천으로 핏자국을 닦아내고 골목길의 빗물 흐름을 계산해 핏자국이 남지 않도록 기하학적으로 물걸레질을 해나갔다.
피해자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소지품들 지갑과 화장품, 빗, 그리고 은반지를 시신으로부터 정확히 떨어진 정사각형 구도로 반듯하게 정렬해 두는 손길이 마치 어제 일처럼 손끝에 되살아났다.
‘내가…… 내가 그 시신을 만졌다. 안혜원을 뒤쫓던 시야가 내 안에 있다. 현장에 있었고 그 정돈을 보았다. 시신 옆에 그 은반지를 놓던 손끝의 감각까지…… 내 손처럼 남아 있다.’
기억의 쓰나미가 진우의 온몸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오늘 오후 읍내 약국을 나선 뒤의 끔찍한 공백도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약국 문을 열고 나섰을 때 들려왔던 고주파 소리.
그리고 이성을 상실한 채 숲길을 걸어가 등산로 입구의 낡은 나무 정자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노란 우의의 여성에게 소리 없이 접근하던 시야.
젖은 안개 속에서 그녀를 기습할 때의 그의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던 심장박동수.
흉기가 번뜩이고 정자 바닥에 몸이 쓰러지자, 지붕 덕에 들이치지 않는 빗줄기 틈에서 신속하고 정밀한 동작으로 핏자국을 지우고 소지품들을 정사각형 구도로 정렬해 두던 기괴한 청소 과정.
그녀의 목에서 번져 나온 붉은 혈흔이 안개 속으로 퍼지던 장면과 깜짝 놀라 도망치던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생생했다.
현장에 남아 있던 그녀의 우산과 전자기기를 정사각형 꼭짓점 구도로 가지런히 배치하던 거친 호흡도 되살아났다.
그 모든 과정이 진우 자신의 손끝에 남은 잔상과 무섭도록 겹쳐졌다.
하지만 그 기억의 조각들은 기묘하리만치 파편적이었고 마치 일그러진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왜곡되어 있었다.
자신이 실제로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목격했던 끔찍한 범인의 모습이 뇌 충격으로 인해 제 몸짓과 기괴하게 겹쳐 보이는 왜곡 현상인지는 모호한 채, 오직 선명한 잔상만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진우는 격렬하게 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우욱……! 웁……!”
그는 위액만 나오는 쓴 구토를 하며 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손톱 밑이 깨지며 붉은 피가 나무 마룻바닥에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묻어났지만 그 고통조차 그의 영혼을 찢어발기는 자괴감과 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그 끔찍한 연쇄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삼켜졌다.
기억을 잃기 전에 보았던 잔혹한 장면들과 기억상실 상태인 지금의 공백이 서로 엉겨 붙어, 마치 자신의 몸이 무고한 이의 목을 그어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은수에게 보여주었던 다정함과 연민마저, 괴물의 잔인함을 숨기기 위한 기만적인 껍데기였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머릿속을 차갑게 굳혀버렸다.
진우의 거칠게 흔들리던 어깨가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의 잘게 떨리던 호흡도 어느 순간 뚝 멈추었다.
방 안의 공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은수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진우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은수를 바라보며 가여운 눈물을 흘리던 그 온순하고 나약한 남자의 눈동자는 온데간데없었다.
차갑고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은 동공, 미동조차 하지 않는 냉혹하고 날카로운 살기.
그것은 은수가 뉴스 몽타주와 어제 사진에서 보았던, 살인을 놀이처럼 집행하는 진짜 살인마 ‘강태오’의 눈빛 그 자체였다.
그의 왼쪽 눈썹 끝 흉터가 기괴하게 도드라져 보였고 그의 미끈한 얼굴선에는 서늘한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은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방 안의 스탠드 조명마저 지워버릴 듯했다.
은수는 벽 구석으로 몸을 움츠렸으나 그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는 낮고 차갑게 식어버린,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 기억났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은수를 향한 존댓말 속의 상냥함이나 떨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진실의 선포만이 방 안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내 진짜 이름은 강태오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매 끝자락에 묻은 피 얼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은수의 겁에 질린 눈동자를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그 뉴스의 연쇄살인마…… 안혜원을 뒤쫓고 피투성이 현장에 서 있던 놈. 오늘 오후 숲길에서 마트 직원 곁에 피 묻은 손으로 주저앉아 있던 놈. 그 괴물의 시야가…… 전부 내 기억처럼 남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것 같습니다.”
강태오의 차가운 고백이 은수의 귓전을 때렸을 때, 은수는 더 이상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은수의 눈동자 가득 눈물이 고였지만 흘러내리지 못하고 눈가에 맺혀 있었다.
자신을 안아주던 그 다정한 품이 실은 날카로운 흉기였다는 사실을 마주한 은수의 영혼은, 차가운 벽돌집의 벽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태오는 갑자기 머리를 다시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이 다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내면에서 '강태오'라는 이름이 불러온 냉혹한 잔상과 그동안 다정하게 쌓아 올린 '진우'의 기억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아니야…… 은수 씨, 도망쳐요. 제발 도망쳐요.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습니다. 그 시야가 당신마저 마지막 꼭짓점으로 만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진우는 당신을 살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제발 나를 묶어두세요. 나를 죽여줘요!"
진우는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고 고함쳤다.
"강태오…… 그래, 난 강태오다. 그 이름이 피 냄새와 함께 돌아왔어. 하지만 왜…… 이 여자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는 거지? 왜 칼날을 쥘 수가 없는 거냐고!"
진우는 스스로의 이중적인 자아 충돌에 신음하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방 안 가득 밀려든 자욱한 새벽안개 사이로, 그들의 다정한 동화는 마침내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종막을 향해 빗장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강태오의 차가운 시선과 진우의 슬픈 절규가 거실과 방 안을 교차하며 흔들 때, 은수는 비로소 자신에게 찾아온 완벽하고도 파멸적인 비극의 냄새를 짙게 맡았다.
은수는 눈을 감으며 차갑게 식어가는 자신의 가냘픈 손끝을 꼭 모아 쥐었다.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이 괴물과 함께 살아갈 수도 없는 지독한 딜레마 속에서 그들의 위태롭고 잔인한 비극은 이제 파국을 향해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창밖에는 밤새 내리는 빗소리만이 그들의 고독한 절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붉은 벽돌집은 그들이 자초한 지옥의 중심에서 위태로운 유령선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두 사람의 무거운 맥박 소리만이 방 안을 싸늘하게 메워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