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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13화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13화: 진실 혹은 거짓

주방의 주황색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엉겨 붙었다.
진우의 차분한 목소리는 얼핏 상냥하게 들렸지만, 그 속에 담긴 집요한 무게감은 은수의 가냘픈 어깨를 가차 없이 내리눌렀다.

“은수 씨. 밖에서…… 누구를 만난 겁니까?”

은수는 순간 숨구멍이 꽉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뺨에 붙인 하얀 거즈 아래로 깊게 긁힌 상처가 박동에 맞춰 욱신거렸고, 빗방울이 미닫이 유리창을 사납게 두드리는 소리가 기분 나쁜 이명처럼 귓가를 울렸다.
은수는 떨리는 손끝으로 가방끈을 더 꽉 움켜쥐었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진우의 옛 사진—차갑고 냉혹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짓누르던 그 남자의 모습—이 가방 가죽을 찢고 당장이라도 바닥에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요…… 아무도 안 만났어요. 그냥 화방에서 마감용 마커랑 스케치북을 몇 권 사고,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신 게 전부예요. 비가 갑자기 많이 쏟아져서 버스를 한 대 놓치는 바람에 좀 늦었어요.”

은수는 애써 목소리 톤을 한 옥타브 높이며 평온을 가장했다.
목구멍에서 바짝 마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스스로에게도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진우의 검고 깊은 눈동자는 은수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근육의 경련, 좌우로 흔들리는 시선,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호흡을 정밀한 계측기처럼 포착해 내고 있었다.

진우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비어 있었고, 그의 눈빛 밑바닥에는 서늘한 의구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밖에서 은수 씨를 위협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도 마주쳐서 해를 입지는 않으셨을까 정말 걱정했습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고, 이 근처 숲길은 외진 곳이니까요.”

진우는 은수의 젖은 어깨에 얹어주었던 수건을 부드럽게 거두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배려는 늘 완벽했지만, 은수에게는 그것이 숨통을 조여오는 올가미처럼 다가왔다.

“얼른 2층 방으로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쉬세요. 감기 기운이 심해지면 안 되니까요. 따뜻한 차를 끓여서 올려 보낼 테니, 오늘 밤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자는 게 좋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진우 씨.”


은수는 도망치듯 계단을 디뎠다.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등 뒤로 진우의 끈적이고 집요한 시선이 화살처럼 따라붙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방으로 들어와 미닫이문을 서둘러 닫고 자물쇠를 걸어 잠근 뒤에야 은수는 참았던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방 안은 온통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은수는 책상 위의 낡은 스탠드 조명만을 가장 어둡게 켜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를 귓가로 들으며 떨리는 손으로 가방 지퍼를 열었다.
그 흉터 난 남자가 가방 안에 억지로 쑤셔 넣었던 꼬깃꼬깃한 사진이 가방 밑바닥에서 흉측한 비밀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은수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모서리를 펴며 사진을 펼쳤다.
구겨진 종이 너머로 드러난 진우의 얼굴은 은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설고 무시무시한 야수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거친 머리칼은 땀과 빗물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고 단추가 뜯어진 남색 셔츠 깃 너머로 드러난 목줄기에는 성난 핏대가 서 있었다.

무엇보다 은수의 심장을 멎게 만든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맹수가 사냥감을 찢어발기기 직전의 그 잔인하고 냉혹한 희열과 억눌린 분노가 사진 너머로 은수를 찌르는 것 같았다.
지금 아래층 주방에서 은수를 위해 수프를 끓여주고 진흙 묻은 발바닥을 씻겨주며 눈물을 흘리던 그 다정한 남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만약 저 눈빛이 이 남자의 본모습이라면. 지금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다정함은 그저 기억을 잃은 육체가 생존하기 위해 임시로 지어낸 위장막에 불과한 걸까?’

은수는 사진을 가슴팍에 꼭 안고 흐느꼈다.
읍내 카페에서 마주쳤던 뺨에 흉터가 난 남자의 목소리가 가슴속에서 비수처럼 박혀들었다.

“그놈이 다정한 얼굴로 밥을 차려주고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해서 착각하지 마. 그놈은 자기가 점찍은 타깃을 가장 완벽하게 도살하기 위해 덫을 놓는 놈이니까. 다음 타깃은 바로 너였어. 그 붉은 벽돌집은 그 새끼가 널 가두고 서서히 숨통을 조이기 위해 고른 무덤이라고.”

은수의 머릿속이 공포와 의심,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애정의 모순으로 완전히 뒤엉켜 터져버릴 것 같을 때였다.

똑똑.

미닫이문 너머에서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은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은수 씨, 진우입니다. 따뜻한 생강차를 끓여 왔는데 문 앞에 두고 가도 될까요?”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온화해서 조금 전의 공포와 의혹이 비현실적인 망상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은수는 사진을 이불 밑으로 급히 밀어 넣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아…… 잠시만요.”

은수는 자물쇠를 풀고 미닫이문을 조금 열었다.

쟁반을 들고 서 있던 진우는 문이 열리자 은수의 젖은 속눈썹과 창백한 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은수의 얼굴을 지나 침대 위의 흐트러진 침구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진우는 방 안으로 조용히 들어와 쟁반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차를 마시고 나면 몸이 좀 풀릴 겁니다. 그런데 은수 씨…….”

진우가 은수에게 등을 돌린 채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그의 넓은 등판이 스탠드 조명을 가려 방 안에 거대한 음영을 만들어냈다.
“아까부터 저를 보는 눈빛이 많이 불안해 보입니다. 마치…… 제가 모르는 무언가를 혼자 안고 괴로워하시는 것처럼요.”

진우는 천천히 은수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아까의 다정한 미소와 달리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 서 있었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통찰력이 번뜩이고 있었다.

“오늘 읍내에서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맞습니까? 제게 숨기시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은수는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의 집요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은수의 마음속 밑바닥에서 묘한 오기와 두려움이 함께 솟구쳤다.
언제까지 이 아슬아슬한 거짓 동거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진짜 정체를 밝혀내고 그의 뇌 속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자신은 이 붉은 벽돌집이라는 감옥에서 피 한 방울 남지 않고 말라 죽어갈 터였다.
은수는 심호흡을 한 뒤 침대 시트 밑으로 손을 뻗어 구겨진 종이 조각을 끄집어냈다.

“……오늘 읍내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어요. 그 남자가 이걸 제 가방에 강제로 넣으면서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당신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았어요.”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진우의 앞에 내밀었다.
진우의 시선이 은수의 손끝에 들린 사진으로 향했다.
순간 진우의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규칙적이던 호흡이 일시에 멎었고, 사진을 응시하는 그의 검은 동공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건…….”

진우는 홀린 듯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의 긴 손가락 마디마디가 미세하게 떨리며 사진의 구겨진 표면을 쓸어내렸다.
그 순간 진우의 왼쪽 눈썹 끝 흉터 부위가 붉게 충혈되더니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 윽……! 머리가……!”

진우는 갑자기 신음을 지르며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쟁반 위에 놓여 있던 찻잔이 그의 큰 몸집에 쓸려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그랑! 하고 박살 났다.
뜨거운 액체가 방바닥으로 사방에 튀었지만, 진우는 그 열기나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머리를 감싸 안고 침대 모서리에 주저앉았다.

“진우 씨! 왜 그래요? 정신 차려봐요!”

은수는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진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구멍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악! 머리가…… 머릿속이 쪼개질 것 같아……! 뭔가가 들어와……!”

진우의 핏발 선 눈동자 너머로, 굳게 닫혀 있던 기억의 거대한 철문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폭풍처럼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밤하늘에서는 붉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쏴아아아…….

차가운 빗물이 아스팔트 위를 적시고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붉은 피가 강물처럼 흘러내려 하수구로 스며들었다.
진우는 자신이 누군가를 거칠게 벽에 밀쳐 올린 채 사납게 포효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손아귀에 멱살이 잡힌 남자는 겁에 질려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고 자신의 손에는 끈적이는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태오 씨…… 제발…… 그만해……!’

비명 섞인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안개 너머에서 들렸다.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골목길 저편으로 한 여자가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그 여자의 곁으로 칼을 든 채 다가가는 검은 그림자.
진우 자신의 몸이 그 그림자를 쫓아 어둠 속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칼날이 연약한 살점을 파고드는 서늘한 느낌과 피비린내가 온몸의 감각을 지배했다.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진우는 기억 속의 끔찍한 영상들을 거부하듯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방 벽에 세차게 찧기 시작했다.

쿵! 쿵!

벽이 흔들리며 책상 위의 스탠드가 위태롭게 좌우로 흔들렸다.
진우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눈빛은 이성을 잃은 야수처럼 사나워져 있었고 전신에서는 폭력성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진우 씨! 제발 그만해요! 진우 씨!”

은수는 공포에 질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피를 흘리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진우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은수는 몸을 던져 진우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전신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터질 듯이 뜨거웠다.
은수는 그의 이마와 벽 사이에 자신의 손바닥을 끼워 넣었다.

퍽!

묵직한 충격이 은수의 손바닥을 강타하며 통증이 일었지만, 은수는 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참았다.
진우의 목덜미를 두 팔로 꽉 껴안았다.

“제발…… 제발 진정해요, 진우 씨! 날 봐요, 제발 내 목소리를 들어요!”

은수의 애원 섞인 울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 절박한 목소리가 진우의 폭주하던 뇌 속에 가느다란 구원의 밧줄이 되었는지, 진우의 몸이 서서히 굳어지며 스스로를 해치던 행동을 멈췄다.
진우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얼굴은 이마의 피와 눈물로 엉망이었다.

그는 자신을 꽉 안고 있는 은수를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악마의 살기가 아닌, 길을 잃고 벼랑 끝에 몰린 어린아이의 순수한 공포와 절망이었다.

“은수 씨…….”

진우의 갈라진 목소리가 방 안의 무거운 정적을 찢었다.

“방금…… 내 머릿속에 보인 것들…… 그 붉은 비와 끔찍한 비명 소리…… 그리고 내 손에 묻어 있던 피…….”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여전히 그곳에 붉은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는 것처럼, 그의 손끝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 사진 속의 남자가…… 내가 맞습니다. 나는…… 나는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었던 겁니까? 은수 씨가 뉴스에서 본 그 연쇄살인마가…… 정말로 나였던 건가요? 내가 은수 씨를 해치기 위해 이 집에 들어왔던 겁니까?”

진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다시 쏟어져 내려 이마의 피와 섞여 뺨을 타고 흘렀다.
그는 전신을 잘게 떨며 은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길은 거칠고 억셌지만 은수의 구원을 갈구하는 듯한 애처로움이 담겨 있었다.

“제발……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 내가 사람의 목을 찌르고 피를 쏟아내게 하던 그런 추악한 짐승이 아니었다고…… 은수 씨가 말해주세요.”

진우는 은수의 무릎 위에 이마를 묻고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넓은 어깨가 규칙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은수의 가슴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런 잔인한 기억을 품고 있는지, 왜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내 머릿속의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우는 고개를 들어 은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젖은 눈동자 깊은 곳에는 기괴할 정도의 진실함과 애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제발 이것 하나만은 믿어주세요, 은수 씨. 지금 은수 씨를 바라보고 있는 이 진우라는 껍데기의 마음은…… 전부 진짜입니다. 은수 씨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고, 은수 씨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은수 씨 곁에서 살고 싶다고 느끼는 이 감정만큼은…… 결코 거짓이 아니에요. 내 과거가 아무리 더럽고 끔찍했다 해도,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이 마음은 진짜란 말입니다…….”

진우는 은수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며 애원했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겠는데…… 은수 씨마저 나를 살인마로만 보고 버린다면, 나는 정말로 그 핏빛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진짜 악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제발 나를 믿어주면 안 될까요? 나를 가여워해 주면 안 됩니까?”

살인마의 고백.

그것은 은수를 무섭게 옭아매는 가장 잔인하고도 따뜻한 올가미였다.
은수는 그의 눈물을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밖에서 만난 남자의 경고와 지금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남자의 온기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 남자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그 남자의 경고대로 이 다정함 뒤에 숨겨진 칼날을 두려워해야 할까?’

은수는 결국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뜨겁고도 가여운 온기가 은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은수는 힘없이 그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두 사람을 둘러싼 방 안의 어둠은 한층 더 깊어갔고, 창밖의 빗소리는 그들의 위태로운 운명을 비웃듯 온 집안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진실과 거짓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그들의 파멸적인 동거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심연을 향해 서서히 침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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