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11화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11화: 덫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새벽 2시 반.
거실 벽면의 낡은 괘종시계가 희미하게 두 번 울렸다.
붉은 벽돌집 안은 물을 가득 채운 수조처럼 무겁고 축축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은수는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어둠 속을 응시했다.
방 안의 벽지는 며칠째 계속된 장마 같은 비에 젖어 눅눅하게 밀려오고 있었고, 스탠드의 흐릿한 불빛은 마치 감옥의 취조등처럼 은수의 눈을 아프게 자극했다.
주머니 속에 든 스마트폰은 무거운 돌덩이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부와의 디지털 연결은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 외진 곳에서 은수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 집을 물리적으로 탈출하는 것.

은수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늘 고독과 자유를 사랑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집은 자유의 안식처가 아닌, 서서히 자신을 질식시키는 다정한 연쇄살인마의 밀실일 뿐이었다.
왜 자신이 이런 끔찍한 운명 한가운데서 무기력하게 벌벌 떨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독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은수는 눈물을 삼키며 결심을 굳혔다.
은수는 숨을 최대한 가늘게 내쉬며 미리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작은 천 배낭을 꺼냈다.
지퍼를 열 때 나는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고요한 방 안을 찢을까 두려워, 은수는 이빨로 지퍼 가죽을 물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퍼를 열었다.
배낭 안에는 지갑과 신분증을 넣었다. 이어 아크릴 물감 상자 바닥에서 몰래 끄집어낸 강태오의 피 묻은 가죽 지갑과 안혜원의 은반지도 조심스럽게 쓸어 넣었다.

그 은반지를 만질 때마다 손가락 끝을 통해 피해자의 차갑고 서늘한 철분 냄새가 배어 나오는 것 같아 가슴이 요동쳤다.
이것은 바깥세상에 진우의 정체를 증명해 줄 유일한 열쇠였다.

은수는 방 문손잡이를 잡았다.

철컥.

조심스럽게 자물쇠를 풀고 미닫이문을 아주 조금, 사람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만 열었다.
문틈 사이로 차가운 거실 공기가 들어오며 은수의 볼을 때렸다.

은수는 문틈 너머 거실을 향해 모기만 한 소리로 속삭였다.

“진우 씨……? 자요?”

대답은 없었다.
거실 소파에는 진우가 길게 누워 자고 있었다.
이불을 목끝까지 덮은 채 그의 넓은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은수는 그의 바로 옆을 지나쳐야만 현관문에 닿을 수 있었다.

은수는 뒤꿈치를 완전히 들어 올려 발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무 바닥의 비명 소리를 피하려고 바닥의 옹이와 이음새를 교묘하게 비켜 짚으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바닥의 차가운 나뭇결이 맨발바닥을 타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소파 옆을 지나갈 때, 진우가 갑자기 끙…… 하고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돌려 누웠다.
그가 몸을 돌리는 사이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그의 탄탄한 어깨와 옆구리의 흉측한 칼자국 흉터가 희미한 빛 아래 도드라졌다.
진우는 잠꼬대로 손가락 끝을 파르르 떨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안 돼…… 가지 마……”

은수는 소파 옆에 주저앉아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버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사정없이 때려대며 고통스러운 맥박을 뿜었다.
진우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옅은 땀 냄새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은수는 눈을 꼭 감고 10초가 넘는 침묵 속에서 숨을 정지했다.

그의 잠꼬대가 잠든 상태의 무의식인지 아니면 자신을 감시하는 기만적인 행동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행히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진우의 호흡은 다시 규칙적인 리듬으로 돌아왔다.
은수는 현관문 앞으로 기어갔다.
이중 잠금이 걸린 도어록 수동 레버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철컥.

해제음이 났지만, 진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은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밀어 열었다.
밤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며 붉은 벽돌집의 온기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은수는 밖으로 빠져나와 현관문을 부드럽게 닫았다.


마당은 새벽안개와 흩뿌리는 보슬비로 온통 축축했다.
은수는 마당 대문으로 달려갔다.
진우가 질러둔 거대한 쇠빗장이 은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쇠빗장을 들어 올렸다.
빗장이 쇠 대문과 부딪치며 깡— 하고 둔탁한 금속음을 냈다.
은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탈출이었다.

은수는 안개 낀 숲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외진 국도 변은 암흑 그 자체였다.
보슬비가 은수의 시야를 가렸고, 바람막이 점퍼 안쪽으로 차가운 빗물이 스며들어 체온을 뺏어갔다.
숲길의 어두운 나무 실루엣들이 마치 자신을 붙잡으려는 괴물의 손길처럼 좌우에서 흔들렸다.

은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읍내 방향을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쁜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쇠 냄새가 나는 비릿함이 전해졌고, 폐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발목이 돌부리에 걸려 진흙탕에 미끄러지고 가시덤불이 뺨을 사정없이 긁어 피가 흘렀지만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달아나야 했다.
저 악마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했다.

사각, 사각, 사각.

그때였다.
은수의 등 뒤, 자욱한 새벽안개 저편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갈밭을 규칙적이고 묵직하게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
발소리는 은수와 달리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고, 흐트러짐도 없었다.

마치 먹잇감을 추적하는 맹수의 단호한 발걸음처럼 거리를 빠르게 좁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환청이라 여겼으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깝고 선명하게 은수의 귓전을 때렸다.
은수의 뇌리 속에 극한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 안 돼…… 제발…….”

은수는 비명을 지르며 달리려 했으나, 진흙에 미끄러져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투둑.

배낭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은수의 무릎이 돌에 부딪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은수는 무릎을 움켜쥔 채 진흙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 했다.
그림자가 은수의 머리 위를 덮쳤다.
은수는 절망감에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줘요!”

하지만 은수의 몸을 덮친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나 끔찍한 악력이 아니었다.

따뜻하고 젖은 거대한 포옹이었다.

진우가 진흙 바닥에 주저앉으며 은수를 자신의 품속에 거칠게 끌어안았다.
그의 전신은 비에 흠뻑 젖어 차가웠지만, 은수를 안은 그의 가슴팍만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은수가 버둥거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자, 진우는 더욱 힘을 주어 은수를 안았다.

“은수 씨…… 제발…… 제발 가지 마세요.”

진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빗물만이 아니었다.

뜨거운 눈물이 은수의 목덜미를 적셨다.

“제가 그렇게 무서웠습니까? 제가 정말…… 은수 씨를 해칠 괴물로 보이셨나요?”

진우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흐느꼈다.

“제 머릿속은 온통 하얀 안개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오직 은수 씨라는 불빛 하나만을 바라보며 이 어둠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세계는 너무나 무섭고 외롭습니다. 하지만 은수 씨와 함께 주방에서 죽을 끓이고 마당을 정리하고 은수 씨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 며칠 동안만큼은…… 제 영혼이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은수 씨마저 저를 버리고 떠나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갈 곳 없는 괴물이 될 뿐이에요. 그 핏빛 안개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을 겁니다. 만약 제가 괴물이 된다면 은수 씨 손에 죽을 테니 제발 버리지만 말아 주세요.”

진우는 은수의 뺨을 젖은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눈동자는 절망과 슬픔으로 얼룩덜룩하게 번져 있었다.

“만약…… 만약 제 안에 잠재된 그 괴물이 정말로 깨어나 은수 씨를 다치게 하려 한다면, 그때는 제발 은수 씨가 저를 죽여주세요. 은수 씨의 손에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발 제 곁에 있어주세요. 나를 혼자 어둠 속에 버려두지 마세요, 제발…….”

살인마의 애원.

은수를 죽이기 위해 칼을 품고 찾아왔던 용의자 강태오가, 지금 은수의 발끝에 매달려 울부짖으며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구걸하고 있었다.
이 끔찍하고도 슬픈 비극 앞에서 은수는 심장이 통째로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지금 혼자 도망쳐도 숲길 끝까지 가지 못한다. 경찰에 닿기 전 저 사람이 무너져 내리거나, 정말 괴물이 되어 누군가를 해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도망이 아니라, 그의 기억을 끌어내고 증거를 잡는 것 아닐까?’

그를 향한 본능적인 공포, 그의 진실한 절망을 마주하며 느끼는 지독한 가여움, 살아남기 위해 증거를 더 붙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동시에 은수를 지배했다.
은수는 결국 힘을 풀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진우 씨.”

은수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결국 폭우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숲길을 걸어 붉은 벽돌집이라는 덫 안으로 돌아왔다.
진우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은수를 욕실로 안내했다.
진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따뜻한 물을 샤워기로 틀어 은수의 흙탕물 범벅이 된 발가락과 무릎 상처를 조심스럽게 씻어주기 시작했다.
그의 젖은 손길이 은수의 발바닥과 복사뼈를 스칠 때마다 은수는 온몸이 굳었다.

‘이 손이 내 목을 조를 수도 있었던 손인데…… 왜 이렇게 상냥하고 따뜻하게 흙을 털어내 주고 있지?’

진우는 은수의 발바닥에 박힌 미세한 잔돌멩이들을 손톱끝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집어내어 물로 헹궈냈다.
물방울이 타일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욕실을 울렸다.


씻고 난 뒤, 진우는 은수를 소파로 안아 올려 눕힌 다음 구급상자에서 면봉과 소독약을 꺼냈다.
은수의 까진 무릎과 장미 가시에 긁힌 뺨에 붉은 약을 조심스레 바르고 하얀 거즈를 촘촘하게 덮어 붕대를 감아주었다.
진우는 다 젖은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은수의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은수 씨, 감기 기운이 올라오네요. 보일러 온도를 한껏 높여둘 테니 방에 들어가 얼른 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오늘 밤 있었던 일은…… 그냥 저의 아주 나쁜 악몽이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은수는 방으로 돌아와 잠긴 미닫이문 뒤에 주저앉았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상처 난 뺨을 어루만졌다.
진우가 꼼꼼히 감아준 하얀 붕대에서는 약품 냄새가 풍겼고, 뺨에 닿았던 그의 뜨거운 눈물의 여운이 여전히 살갗에 새겨져 있었다.

은수는 다시 아크릴 물감 상자를 열어 신문 스크랩을 꺼냈다.
어두운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스크랩의 메모를 한 단어씩 세밀하게 읽어 내려갔다.

[범인은 비 오는 날만 골라 피해자의 목을 찌르고 현장을 기하학적으로 청소한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청소가 아니라, 완벽한 질서 속에 시신을 박제하려는 강박이다. 그의 행동 반경은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다음 표적은 아마 숲길 근처 단독주택일 것이다. 그 주택의 이름은 '붉은 벽돌집'.]

이 꼼꼼한 필적의 분석 메모는 강태오가 쓴 것이 틀림없었다.
은수는 문득 안혜원 사망 기사 속 피해자 가족의 통곡 어린 인터뷰 구절을 떠올렸다.

"혜원이 주변을 3개월 전부터 서성이며 지켜보던 수상한 스토커 같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자가 혜원이를 죽인 범인임이 분명합니다."

은수는 전신에 오한이 일었다.
진우가 안혜원을 스토킹하며 범행을 모의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그의 철저하고 세밀한 살인 시나리오 아래 감시당하던 타깃에 불과했단 말인가.

은수는 깨달았다.

자신이 결국 이 다정한 살인마의 덫에서 스스로 발을 빼지 못했음을.

밤은 한층 더 깊어갔고, 빗소리는 그들의 어두운 운명을 조롱하듯 온 집안을 흔들어댔다.
그림 속의 소년은 이제 늑대에게서 달아나는 것을 완전히 멈춘 채, 늑대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살기 위해선 그 뇌 속 안개를 강제로라도 걷어내야만 했다.

그가 살인마인지, 아니면 다른 진실이 있는지 그 비밀의 껍질을 벗겨내는 사투는 이제 은수 자신의 몫이었다.
은수는 방 안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몸을 떨었다.
어둠은 걷혔지만 은수의 영혼은 가장 깊고 차가운 심연에 잠기고 있었다.

피와 광기의 흔적들은 지워졌지만 그들이 나눈 잔인하고도 슬픈 온기마저 지울 순 없었기에.

창밖에는 거센 비가 지붕을 때리고 있었고, 은수는 눈을 감으며 자신의 나약한 연민을 무섭게 다잡았다.

내 집의 다정한 살인마.
그와의 동거는 이제 가장 치열한 심리적 전쟁터였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