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간 천재 외과의사

3화: 피를 멎게 하는 법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희게 밀어 올렸다.
강현은 눈을 뜨자마자 발목부터 확인했다. 밤새 열은 몇 번이나 올랐고 그때마다 복이가 끓여 식힌 물로 천을 갈았다. 상처 주변은 여전히 붉었으나 어젯밤처럼 팽팽하게 부풀지는 않았다.
[상태 재평가.]
[체온: 38.1도.]
[좌측 발목 감염 병소 압력 감소.]
[권장: 반복 세척. 휴식. 수분 보충.]
살았다.
그러나 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대 병원이라면 항생제와 수액이 들어갔을 몸이다. 지금 이진의 몸은 끓인 물과 술, 그리고 면역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대군마마. 물을 더 올리겠사옵니다."
복이가 낮게 말했다. 눈 밑이 검었다. 밤새 한숨도 제대로 못 잔 얼굴이었다.
"손부터 씻어라. 손톱 밑까지."
"예."
복이는 더는 되묻지 않았다. 아이는 물그릇 앞에서 손을 문질렀고 술을 조금 덜어 손끝을 닦았다. 겁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왜 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얼굴이었다.
그때 방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비켜라. 내의원에서 왔다."
정 의원의 목소리였다.
방문이 열리고 늙은 의원과 젊은 의관 셋이 들어왔다. 뒤따른 의관 하나는 약재가 가득 든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환자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현장을 검분하러 온 관리의 눈이었다.
"대군마마. 밤새 괴이한 처치를 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이제 내의원이 상처를 살피고 법도에 맞게 다스리겠나이다."
강현은 상체를 일으키려다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아직 따라오지 않았다. 발목에서 심장 박동 같은 통증이 되살아났다.
"손 씻었습니까."
"예?"
"상처를 만질 손을 씻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젊은 의관 하나가 헛웃음을 삼켰다.
"의관의 손이 어찌 더럽다 하시옵니까."
"더러운지 아닌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정 의원의 얼굴이 굳었다.
"대군마마께서 병환 중이라 말씀이 과하십니다. 상처에는 이 약재를 붙여 독기를 빼야 하옵니다."
그가 상자에서 눅눅한 약재 덩어리를 꺼냈다. 축축한 냄새가 방 안으로 번졌다. 강현의 턱이 굳었다.
"그걸 내 상처에 대면 다시 곪습니다."
"상례로 내려온 처방이옵니다."
"상례가 내 발목을 썩혔습니다."
정 의원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내의원의 이름을 등에 업고 왔지만 눈앞의 소년이 살아 있는 이상 어젯밤의 실패를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 순간 처소 밖에서 물동이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 사람의 비명이 마당을 찢었다.
"아악! 피가,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강현의 눈빛이 변했다.
몸은 환자였지만 귀는 의사였다.
비명 뒤에 따라붙는 숨소리, 사람들이 한꺼번에 물러서며 내는 발소리, 그리고 공포가 섞인 외침. 그것은 응급실 문이 열릴 때마다 들리던 소리와 닮아 있었다.
그는 이불을 걷었다.
"부축해."
"대군마마! 아직 움직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복이가 놀라 막았지만 강현은 이미 몸을 일으켰다. 발목에 통증이 꽂혔다. 시야가 한순간 하얗게 날아갔다.
"사람이 죽는다."
그 한마디에 복이가 이를 악물고 어깨를 내주었다.
마당에는 어린 내관 하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이진의 처소에 올릴 끓인 물을 나르던 아이였다. 깨진 사기 조각이 발밑에 흩어져 있었고 팔뚝 안쪽은 길게 찢어져 있었다.
피가 맥박에 맞춰 솟았다.
동맥성 출혈.
[응급 스캔.]
[대상: 남성. 추정 십대 후반.]
[좌측 전완부 열상. 표재 동맥 손상 가능성.]
[권장: 즉시 직접 압박. 상지 거상. 오염 제거 후 압박 고정.]
의관들은 이미 둘러서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상처를 누르지 않았다. 한 명은 맥을 짚으려 했고 다른 한 명은 침통을 열었다. 정 의원은 약재 가루를 찾으라고 외쳤다.
"멈춰!"
강현의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모두가 돌아보았다.
"상처에 아무것도 뿌리지 마라. 누가 저 팔을 잡아."
정 의원이 다급히 막아섰다.
"대군마마. 천한 내관의 피이옵니다. 몸을 가까이하시면 병환이 더해지옵니다."
"지금 병환은 저 아이한테 있다."
강현은 비틀거리며 덕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발목이 불타듯 아팠지만 무시했다.
"이름."
"더, 덕삼이옵니다."
"덕삼아. 내 말 들어. 자면 안 된다. 나를 봐."
강현은 깨끗한 천을 찾았다. 없었다. 마당에 있던 천들은 흙과 물에 젖어 있었다.
"복아. 끓인 물에 담근 무명천. 김 내관은 술. 빨리."
"예!"
복이가 달려갔다. 강현은 일단 자신의 속적삼 자락을 찢었다. 완전히 깨끗하진 않았지만 흙바닥의 천보다는 나았다.
그는 천을 뭉쳐 상처 위를 강하게 눌렀다.
"으아악!"
덕삼의 몸이 튀었다.
"잡아. 팔을 심장보다 높게 들어."
젊은 의관 하나가 얼결에 팔을 받쳤다. 피가 천을 빠르게 적셨다.
"천이 젖었다고 떼지 마라. 위에 더 덧대."
"하지만 피가 보이지 않사옵니다."
"보려고 떼는 순간 다시 쏟아진다."
강현은 덕삼의 팔꿈치 안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맥이 뛰는 지점을 찾아 뼈 쪽으로 압박했다. 솟구치던 피의 힘이 줄었다.
주변에서 낮은 탄성이 흘렀다.
그때 세종이 마당 입구에 섰다. 밤새 처소 곁을 떠나지 못했던 왕의 얼굴에는 피로가 어려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정 의원이 엎드렸다.
"전하. 대군마마께서 또 몸소 피를 만지고 계시옵니다. 내의원에서 맡아야 할 일을..."
"조용히 하라."
세종의 눈은 덕삼의 팔과 이진의 손을 향해 있었다.
강현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아바님. 저 아이를 살리고 싶으시면 모두 물러나게 하십시오. 그리고 손 씻지 않은 자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세종은 잠시 침묵했다.
"들은 대로 하라."
왕의 명이 떨어지자 마당이 갈라졌다.
복이가 김이 오르는 대야와 천을 들고 돌아왔다. 김 내관은 술병을 품에 안고 있었다.
"천."
강현은 새 천을 받아 끓인 물로 적신 뒤 상처 주변의 흙과 사기 가루를 닦았다. 피가 다시 비쳤지만 압박점을 놓지 않았다.
[출혈량 감소.]
[의식 저하 위험: 중등도.]
[힘줄 완전 절단 소견 낮음.]
다행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지금은 피부터 멎어야 했다.
"덕삼아. 손가락 움직여."
덕삼이 울면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좋다. 살 수 있다."
그 말에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더 쏟아졌다.
정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피를 보하려면 탕약을..."
"피는 솥에 물 붓듯 바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나가는 길부터 막아야 합니다."
강현은 술을 천 가장자리에 묻혔다. 상처 안쪽에 붓지는 않았다. 통증만 키우고 조직을 더 상하게 할 수 있었다.
"더러운 것을 닦고 누른다. 팔을 올린다. 젖은 천은 떼지 않고 더 얹는다. 이게 먼저입니다."
그는 무명천을 접어 상처 위에 두툼하게 올리고 길게 찢은 천으로 감았다. 너무 느슨하면 피가 새고 너무 조이면 손끝이 죽는다. 손가락 색을 보며 압력을 맞췄다.
"손끝이 저리냐."
"조금... 조금 저리옵니다."
"참을 만하냐."
"예."
강현은 묶은 매듭을 반 치 느슨하게 했다.
"저림이 심해지거나 손끝이 검게 변하면 바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떼면 안 된다. 열이 나거나 상처가 붓는지도 계속 봐야 한다."
마당은 조용했다.
아까까지 피가 솟던 팔은 더는 붉은 줄기를 만들지 않았다. 천 위로 천천히 번지는 얼룩만 남았다.
세종이 낮게 물었다.
"멎은 것이냐."
"완전히는 아닙니다. 하지만 죽을 만큼 쏟아지는 길은 막았습니다."
강현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기울었다. 복이가 급히 그의 어깨를 받쳤다.
"대군마마!"
"괜찮다."
괜찮지 않았다. 발목 상처가 다시 뛰고 있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손끝은 차갑게 식었다.
그래도 덕삼의 얼굴에 핏기가 조금 돌아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세종은 내의원 의관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들은 왜 저 아이의 피를 누르지 않았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정 의원이 겨우 입을 열었다.
"전하. 피에는 기운이 있고 상처에는 독기가 있으니 함부로 막으면..."
"눈앞에서 피가 빠져나가는데 기운을 논하였느냐."
세종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차가웠다.
정 의원이 머리를 조아렸다.
강현은 마른 입술을 열었다.
"아바님. 오늘 본 것을 적게 하십시오. 상처에서 피가 솟으면 먼저 누른다. 손과 천은 깨끗하게 한다. 물은 끓여 식혀 쓴다. 상처에는 흙 묻은 약재를 대지 않는다."
"그리 어려운 법이 아니구나."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쉬운 일을 하지 않아 사람이 죽습니다."
세종은 그 말을 오래 씹듯 침묵했다. 곧 김 내관에게 명했다.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 진성군이 말한 순서를 적어 내의원에 전하게 하겠다."
정 의원의 얼굴에는 수치와 분노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는 마당의 피 묻은 사기 조각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전하. 대군마마의 손재주가 오늘은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수 있사옵니다. 허나 왕실 종친의 병은 다르옵니다."
세종의 눈썹이 움직였다.
"종친의 병이라니."
"청평군께서 오래전부터 등에 종기가 있어 밤마다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시옵니다. 침과 탕약으로도 차도가 더디니 대군마마께서 참된 의술을 아신다면 그 병도 보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시험이었다.
강현은 정 의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어린 내관의 팔을 누르는 것과 종친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은 정치적 무게가 달랐다. 실패하면 이진의 목숨뿐 아니라 세종의 체면까지 걸린다.
하지만 종기와 고열.
농양일 가능성이 높았다.
[예상 과제: 심부 농양 평가 필요.]
[준비물: 절개 도구. 소독용 술. 끓인 물. 배농 후 드레싱.]
강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겠습니다."
세종이 그를 바라보았다.
"네 몸이 이 지경인데 가능하겠느냐."
"제가 못 움직이면 병자를 이리 오게 하시면 됩니다."
정 의원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물러설 틈을 만들려 했지만 강현은 잡아챘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라."
"칼은 가장 얇고 날카로운 것으로 준비하십시오. 술은 독한 것으로, 물은 반드시 끓인 것으로. 그리고 청평군의 상처를 만질 사람은 내 눈앞에서 손을 씻어야 합니다."
세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라."
강현은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선의 궁궐은 아직 피를 멎게 하는 법조차 몰랐다.
그가 고쳐야 할 것은 한 사람의 상처가 아니었다.
이 시대의 손이었다.